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들 말한다. 뜨거웠던 여름을 지나 가을이 오면 출판사와 서점가의 움직임 역시 더욱 분주해진다. 그러나 가을이라고 유독 더 많은 책이 판매된다는 통계는 어디에도 없다. 사람들이 책을 찾는 계절이라서가 아니라, 책이 유독 더 팔리지 않는 계절이라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명명했다는 사실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군 이래로 출판업계는 늘 불황이었다. 십 년 전에도, 그리고 작년에도, 그리고 올해도 불황은 여전하다. 그런데도 출판업계 사람들로부터 올가을이 유독 더 혹독하다고 이야기가 나오는 건, 해마다 독서 인구가 빠르게 급감하고 있다는 통계와 궤를 같이한다. 지난번 서울 국제 도서전에 대한 담론에 이어 이번에는 책의 위기에 대해 출판업계 현업자들과 함께 짚어보고자 했다.
중소 규모의 출판사 대표 A
월간 프즈즈 발행인 & 종합출판사 경영/경제서 편집자 B
ANTIEGG 에디터 의성
독서의 계절 가을, 책의 위기를 진단하다
1) 현업에서 체감하는 출판업계의 불황
출판사 대표 A_ 출간된 책들의 판매량 관련해서 매년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올해는 유독 더 극심한 것 같기는 해요. 판매에 대한 기대치는 점점 낮아질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래도 신간을 기획할 때 비용을 더 신경 쓰게 되죠. 아마 대부분의 출판사가 비슷하리라 예상합니다만, 매출이 줄고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에요.
편집자 B_ 말씀하신 것처럼 책의 판매량이 점차 감소하고 있는 건 사실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내부에서도 책을 기획할 때 허들이 좀 더 높아지게 되는 것 같아요. 유명 저자라고 해서 판매와 직결된다는 보장도 점차 희미해지고 있을뿐더러 그 파괴력도 상당 부분 감소하는 추세라 잘 팔리는 책 한 권을 만들기란 정말 어려워졌죠. 손에 꼽히는 메이져급 출판사와 유명 저자, 그리고 서점의 마케팅력이 모이면 베스트셀러를 만들 수 있다던, 출판업계 흥행 공식이라는 것도 이제 더는 시장에서 통용되지 않아요. 문제는 이 공식을 대체할 만한 다른 공식을 어느 누구도 모른다는 점이에요.
에디터 의성_ 동의합니다. 사실 공식이라는 건 어느 산업을 막론하고 새로운 트렌드와 함께 해체되면서 동시에 새롭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과정이 계속 반복되는 거죠. 다만 출판업계에서 당면한 문제는 기존 공식이 해체되면서 아직 새로운 공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그 저변에는 ‘책을 점차 멀리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요. 결국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이탈하고 있다는 점에서 녹록한 상황은 분명 아니죠.
편집자 B_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적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소비자 물가가 오르면서 소비 심리가 위축되는 지금 시점에서 사람들이 문화 활동에 제일 먼저 지출을 아끼게 되잖아요. 영화 산업 역시 OTT 서비스의 가치에 비교당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예전만 못한 지금, 하물며 책은 말할 것도 없죠.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수가 현저히 적기 때문에 책의 구매 역시 감소하는 게 당연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2) ‘책의 위기’라는 말에 대하여
출판사 대표 A _ 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결국 관건일 것 같아요. 서점에서의 종이책 판매량이 점차 줄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텍스트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간이 줄었다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결국 그 말은 어느 지점에서 종이책의 문자 콘텐츠들이 모바일 안으로 들어갔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거든요. 정보를 취득하는 경로가 다양해짐으로써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예전에 비해 더 많은 텍스트 콘텐츠를 취득하고 소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책의 위기를 다시 한번 짚어보자면, 텍스트 콘텐츠의 중심, 혹은 기성 권력을 가진 입장에서 보면 위기가 맞겠죠. 다만, 광의의 의미에서 보면 사실 전 오히려 더 부흥의 시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에디터 의성_ 국민 독서량 실태 조사의 경우에도 사실 성인 독서량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거든요. 다만, 이 독서량을 정의하는 기준이 ‘책’이라는 점에서 이 뉴스레터, 콘텐츠 구독 서비스 등, 말씀하신 대로 새롭고 깊이 있는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수단과 방편이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출판사 대표 A_ 유튜브의 경우에도 사실 오늘날 책의 역할과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보거든요. 같은 맥락으로 우리가 유튜브를 업로드할 경우에도 퍼블리싱한다는 개념으로 표현하잖아요. 퍼블리싱은 곧 출판과 동일한 의미이고요. 사실 책만 존재했던 시대에서는 당시 그 자체가 권력으로 대표되기도 했지만, 반대로 지금은 그 권력이 모두에게 주어지게 된 셈이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출판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만큼 전통적 의미에서의 책의 위기는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는 흐름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편집자 B_ 책의 위기라는 명제에서 그 대상은 종이책을 의미할 텐데, 저는 종이책의 위기라는 말은 크게 동의하진 않습니다. 종이책은 여전히 유효한 정보 취득의 수단으로 유지하고 기능하리라 예상하거든요. 다만, 책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방식에서 많은 변화를 느낍니다. 특히나 자기개발, 경제, 경영서의 경우 종전까지 유지되고 있던 출판사를 통한 발행 방식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발행자로 부상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거든요. 출판사가 저자를 발굴해서 독자들과 만날 수 있도록 그 접점을 만들어 내는 게 종전의 역할이었다면 지금은 저자가 본인의 마케팅 파워와 플랫폼을 통해 독자분들에게 직접적으로 발행하고 있거든요.
에디터 의성_ 소위 웬만한 작가보다 인플루언서들의 도서가, 그들의 마케팅 영향력을 통해 더 팔리는 시대이다 보니, 말씀하신 대로 굳이 출판사에 자신을 귀속시키지 않는 것 같습니다.
편집자 B_ 그렇기 때문에 책의 위기라는 명제를 살린다고 한다면, 책의 위기라기보다 출판사의 위기, 그중에서도 전통적으로 저자에 의존해서 책을 만들어 온 기성 출판사들의 위기라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물론 위기가 꼭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반대로 이러한 출판 환경 속에서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싶어요.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요.
출판사 대표 A_ 결국 전통적인 문법만을 고집하는 출판사들은 점차 그 설 자리를 점차 잃어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 트렌드와 추세는 사실 굉장히 새로운 게 아니거든요. 독일의 베르테르스만이나 프랑스의 아세트와 같은 세계 굴지의 출판 그룹들의 경우 그 안에 음악과 여행, 방송사의 기능을 또 가지고 있잖아요. 다만 이에 비해 우리의 경우 출판을 책에 국한한 채로 생각하는 경향이 큰 것 같습니다.
에디터 의성_ 요는, 정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느냐인 건데, 우리나라의 경우 그 방법을 책에 한정한 채로 계속 독자를 설득하려고 하는 셈이 아닌가 싶습니다.
편집자 B_ 물론 몇천 년을 넘게 견뎌온 책이라는 고유한 물성이 가지고 있는 실용적, 기능적인 요소와 감성적인 장점은 분명 있거든요. 또한 책의 완성도를 높이는 하나의 방편으로써도 종이 재질과 책의 판형과 표지의 질감 등, 전자책에서 제공할 수 없는 분명한 장점은 있다고 보거든요. 다만, 모든 것을 종합해서 고려했을 때 종이책 역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써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역설적이지만 그래야 종이책의 가치가 더욱 극대화되어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것을 잠재적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리려는 노력과 시도 역시 전제되어야 하고요.
다가올 시대 속 책의 의미와 미래
1) 책의 미래
출판사 대표 A_ 시일이 꽤 흘렀지만 2017년 프랑크프루트 국제 도서전 내 컨퍼런스에서 들었던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이 있어요. “이제와 책은 물과 같아서 어떤 그릇에라도 담길 수 있어야 한다.” 라는 문장이었거든요. 사실 이 문장이 굉장히 당연한 말이기도 해요. 고대 파피루스에서부터 지금의 종이에 이르기까지 그 그릇은 계속해서 진화해왔던 셈이잖아요.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책이라는 물성에 지나치게 천착되어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책이라는 물성에서 벗어나 생각해본다면 텍스트 콘텐츠 시장은 지금 도리어 부흥기라고 전 보고 있어요.
에디터 의성_ 동의합니다. 결국 책의 형태와 수단이 점차 파편화되고 있는 셈이죠. SNS를 비롯해서 블로그, 아티클, 뉴스레터 등등, 텍스트 구독서비스의 출현과 함께 텍스트 콘텐츠 자체는 성장하고 있죠.
편집자 B_ 책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책의 페이지 수도 줄고, 심지어 행간도 점차 줄고 있는 추세거든요. 또 성인 남녀의 독서량도 급감하고 있다보니 출판사들이 책을 제작하는 종수 역시 줄고 있거든요. 결국 팔리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니까요. 그러나 산업의 인구는 어느 정도 유지가 되고 있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리는 책은 여전히 팔리는 상황. 이 종이책을 읽는 행위, 종이책을 읽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변함없이 동일하다는 점은 희망. 결국 책의 미래라는 말은 한편으론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미래와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더 제대로 된 책만이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해요.
2) 출판의 미래
에디터 의성_ 짧은 텍스트 콘텐츠들과 온라인상에서 제공되는 파편화된 정보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진다면 긴 호흡의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자들의 수는 분명 감소하겠죠. 그런 점에선 기존 책이라는 물성이 가지고 있는 힘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종이책의 위기’는 도래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디지털 콘텐츠들에 비해 종이책이라는 물성이 급변하는 정보를 시의적절하게 담아내기에, 그것에 수반되는 시간과 비용이라는 약점이 분명 존재한다고 보거든요.
편집자 B_ 맞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널리티로써의 종이책은 계승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그 규모는 상당 부분 축소되겠지만, 그 오리지널리티로써의 책을 제작하고 편집하며 통제할 수 있는 스킬(편집자의 핵심 역량)은 반대로 그 희소성과 함께 가치가 부각되리라고 봅니다. 결국 제대로 된 책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이기도 할 테니까요.
출판사 대표 A_ 그 점은 저도 동의합니다. 과거와 비교해보면 책을 제대로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줄고 있는 것 같습니다. 콘텐츠로써의 완성도와 밀도가 높고, 만듦새가 뛰어난 책들의 종수가 점차 줄고 있어요. 원론적인 얘기지만, 결국 양질의 콘텐츠가 담긴 책을 만들고 그 가치를 소비자들에게 명확히 인지시켜야 하는 게 모든 출판사의 지향점이 되어야 하는데, 줄어들고 있는 시장 규모에서 이 두 가지를 지켜내기란 사실 쉽지 않죠.
에디터 의성_ 출판사는 결국 콘텐츠를 만들고 발행하는 제작자 입장에 더 무게가 쏠려 있기 때문에 양질의 콘텐츠를 만드는 게 지금까지의 가장 큰 우선순위였다고 한다면 앞으로는 출판사 내에서도 독자들에게 책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마케팅의 중요성이 더 증대되어야 한다고 봐요. 단순히 신간이 나왔을 때만 반짝하는 일회성 홍보가 아닌, 사람들의 관심사를 책과 연결시키려는 지속적이면서도 다양한 시도들 역시 필요할 테고요.
편집자 B_ 그런 의미에서 저는 시대적 변화와 새로운 흐름 앞에서 출판계가 그 방법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위기가 있어야 그것을 타개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이 도출되기 마련이니까요. 각자의 출판사에서, 그리고 각자의 영역에서 어떻게든 새로운 책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편집자와 마케터들이 저는 그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고 믿습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책을 정의하는 방법과 수단이 점차 파편화되고 있지만, 그런데도 한 권의 책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진가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올바른 가치를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알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현시점에서 우리 모두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읽지 않는 독자’들을 향한 성토보다,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을 만들고 그것을 널리 알려야 한다. 가을을 넘어 혹독한 겨울이 오더라도 독자들에게 가닿을 수 있는 새로운 공식을 찾아낸다면 이내 따뜻한 봄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는 공허한 구호보다 앞으로는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방안이 모색되길 바란다. 출판업계에 몸담고 있는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또 연대하며 새로운 시도를 만들어 나간다면, 새로운 길을 곧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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