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의 암호 화폐 열풍,
‘NFT’란 무엇인가
올봄 크리스티 미술품 경매에서 최고로 화제가 된 작품은 단연 6,930만 달러(한화 약 785억원)에 낙찰된 비플(Beeple)의 디지털 회화 작업일 것이다. ‘매일매일-5000일’의 제목을 지닌 이 작품은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에 사는 마이클 윈켈만이라는 작가가 2007년부터 5000일 동안 ‘매일매일’ 제작하여 포스팅했던 JPG파일을 모은 콜라주 작품이다. 크리스티에 따르면, 이는 제프 쿤스와 호크니의 뒤를 잇는 생존 작가 경매 사상 세 번째로 높은 가격이었다. 그러나 작품의 금액보다도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 있었으니 바로 ‘NFT’이라는 작품의 거래 방식이다.
‘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한 토큰)’의 약자인 NFT는 미술작품에 주어지는 고유 디지털 ID로, 명칭에서 알 수 있듯 기존 비트코인, 알트코인 등 암호화폐들이 현금으로 환전이 가능한 반면 그 어떤 다른 형태의 화폐나 암호화폐로 교환이 불가능하다는 특수성을 지닌다. 쉽게 말해 암호 그 자체로서 가치를 지니는 디지털 정품 인증서와 같은 개념인 셈이다. 예를 들어 기존 가상 화폐를 ‘도토리’리고 부를 경우 빵은 도토리 1개, 옷은 도토리 10개와 같은 방식으로 교환이 가능한 반면, NFT는 이와는 반대로 빵이나 옷을 만들 수 있는, 자산 그 자체를 구성하는 기술의 가치를 의미한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창작자와 소유자를 포함한 결제, 계약, 작품전송 등의 거래내역과 구매절차를 모두 암호화해 조작, 훼손, 진위여부 논란에서 안전하다고 평가받는다. 별도의 고유 인식값을 지니고 있어 쉽게 복사할 수 있는 디지털 파일(JPG, GIF, 비디오 등)을 위장 변조가 불가능하도록 영구저장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블록체인이 중요 기록 저장에 최적화된 만큼 여타 플랫폼에서 작품이 전시, 혹은 재판매 될 때마다 모든 소유권자의 기록(프로비넌스)이 투명하게 공개된다. 갤러리나 아티스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신뢰도와 거래 내역을 일일이 명시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NFT의 시장규모와 최근 거래 현황
NFT 거래를 분석하는 넌펀저블(NonFungible)은 NFT 거래 총액이 2020년 2억 5천만 달러였고, 2019년엔 약 6200달러 상당이었다고 보도했다. 2021년에는 3월 한 달 동안에만 2억 2천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이는 2019년 대비 2.5배 가량 성장한 수치다. 넌펀저블은 NFT를 컬렉터블, 게임, DeFi(탈중앙화금융), 예술작품, 유틸리티, 메타버스, 스포츠 등 7개로 구분했는데, 예술작품은 거래총액에서 컬렉터블에 이어 두 번째 자리를 차지했으며 가장 거래가 활발했던 3월 중순경에는 매일 3만 건을 오르내리는 거래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렇다면 최근 NFT 세일즈 현황은 어떻게 될까? 크리스티가 비플로 성공적인 NFT 경매를 이끌어내자 경매 회사를 중심으로 NFT 아트가 적극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했다. 소더비와 필립스가 각각 PAK, 매드 독 존스를 내세워 NFT로의 움직임에 합류한 것이다. ‘오픈에디션’, ‘경매’, ‘예약’으로 구성된 PAK의 작품 ‘The Fungible Collection’은 총 1,682만 달러(한화 약 1,88억원)에, 50초 길이의 HD영상인 매드 독 존스의 작품 ‘Replicator’은 414만 4000달러(한화 약 46억원)에 판매되었다.
최근에는 경매 회사 뿐만 아니라 미술관, 갤러리 종사자들도 NFT 아이템에 급격히 관심을 갖는 추세다. 세계적인 작가 데미안 허스트와 무라카미 다카시가 NFT 물결에 동참하기 시작했고 베를린의 쾨닉 갤러리도 NFT 경매를 시도했다. 와중에 가고시안 전속 작가인 어스 피셔(Urs Fischer)는 NFT에 다소 회의적인 가고시안 대신 페이스 갤러리와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해 NFT 플랫폼 ‘메이커스 플레이스’에 진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3월 17일 첫 NFT 미술품 경매가 진행됐다. 경매에 출품된 작품은 마리킴의 NFT 작품 ‘Missing and Found’다. 경매 시작가 최초 5000만원에서 시작해 288이더리움(한화 약 6억원)에 낙찰되었다. 이는 시작가에서 11배 이상 올라간 가격이다.
NFT의 빛과 그림자
한편, 세상에서 제일 비싼 작품가를 자랑하는 데이비드 호크니는 2020년대부터 떠오르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미술 작품의 수집과 거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국제 사기꾼과 범죄자들’이라는 다소 과격한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는 실체 없이 디지털 매체상에서만 감상되고 저장되는 NFT 미술 작품이 그에게는 그저 ‘변경 불가한 URL’에 불과한 투기성 자본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비플은 ‘컴퓨터로 한 작업이 마치 마법처럼 예술작품으로 둔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출력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네!’라며 응수했다. 호크니 역시 컴퓨터를 이용해 작업하는 디지털 아티스트이므로 그와 자신의 유일한 차이는 작품의 오프라인 출력여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비꼬은 것이다.
호크니와 비플의 논쟁은 전통적인 아트마켓과 새롭게 부상하는 NFT 아트마켓에 대한 인식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과연 NFT는 예술의 신세계를 열어줄 치트키일까? 미술시장의 ‘게임체인저’로 급부상한 NFT를 바라보는 업계의 의견은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1) 디지털 환경에서 작업하는 아티스트들의 새로운 미래
NFT 아트마켓은 예술 창작자와 그들의 커뮤니티가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NFT를 가장 환영하는 이들은 ‘디지털 아티스트’들로 현재 NFT 시장은 디지털 작품 거래를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동안 이들은 예술품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 인쇄본이나 문구류, 의류, 음반 등 실제 세상에 존재하는, 손에 잡히는 물건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만 작품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온라인상에서 전시, 유통되는 그림, 비디오, 음원 등은 예술가들의 포트폴리오 역할만 할 뿐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이를 얼마든지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하거나 무단으로 복제해 유통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NFT는 상당히 반가운 존재다. NFT가 대중화되고 디지털 아트를 거래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는다면 저작권 보호가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앞서 NFT 개념을 소개할 때 언급하였듯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가상 자산의 한 종류지만 ‘코인’이 아닌 ‘토큰’, 즉 동일한 가치로 1:1거래가 가능한 다른 가상자산들과 달리 대체할 수 없는 고유의 인식 값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디지털 원본 저작권’의 성격을 지닌다. NFT가 적용된 작품을 사면, 작품이 담긴 USB와 함께 인증서를 동봉하여 보내준다.
이같은 장점 외에도 NFT의 순기능은 많다. 그 중 하나는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 시스템으로 해당 시스템은 계약서나 증명서 없이도 간단히 거래를 가능하게 만든다. 이는 작가의 ‘추급권(Resale Right)’ 보장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블록체인에 스마트 계약으로 로열티 조항을 코딩하기만 하면 작품이 재판매 되는 경우 수익의 일부를 분배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음원이나 책이 꾸준히 로열티를 배당받는 것과 달리, 작품이 한번 팔리고 나면 작품가가 아무리 올라도 개별 예술가에게는 보상이 없던 시각예술계에서 새로운 수익 창출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NFT 거래의 경우, 일반적으로 작품이 되팔릴 때마다 10~25% 정도의 저작료가 원작자에게 계속해서 돌아가도록 설정되어 있다.
2) 법적, 제도적, 기술적 불안정: NFT의 문제점과 한계
반면, NFT 열풍 속 이에 반기를 제기하는 이들도 많다. 회의론자들은 블록체인 시스템이 법적, 제도적, 기술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점을 들며 NFT가 근본적으로 문제가 많고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손해를 보는 장사’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먼저, 지식재산권법 상의 문제를 보자. NFT로 토큰화한 작품일지라도 실물 작품에 부여된 법적 권리는 다르지 않다. 아직은 NFT로 디지털 자산을 거래했다고 해도 법적으로 ‘지식재산권’이 넘어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소장자에게는 원본 작품에 대한 전시, 그리고 재판매를 위한 제한적 복제권 및 배포권만이 허용되며, 마찬가지로 NFT 작품의 구매자가 해당 작품을 마음대로 가공해서 2차 창작물을 만드는 것은 제한되고 있다. 때문에 타인의 디지털 자산에 누군가가 임의로 NFT를 생성해 파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한국 작가 중 NFT를 가장 먼저 시도한 이소연 작가의 작품이 NFT 플랫폼에 무단으로 토큰화되어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신고 후 해당 플랫폼은 무단 저작물을 즉시 영구 삭제했다. 하지만 지금의 예시처럼 익명 기반의 플랫폼에 법적 제재를 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처럼 NFT는 지식 재산으로서 디지털 재산을 보호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측면을 지닌다. 이를 해결할 확실한 보증 시스템마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채 말이다.
그 다음으로는 ‘거품 논란’을 들 수가 있다. 실제로 3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 블록체인 회사는 미술 경매장에 모인 구매자를 조롱·풍자하기 위해 뱅크시의 그림 ‘멍청이(Morons)’를 스캔해 NFT로 변환한 후 이를 경매에 내놓고 진짜 원본은 불태웠다(뱅크시가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는 저작권 반대론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론적으로 ‘멍청이’의 NFT 버전은 경매에서 228.69 이더리움(한화 약 4억 3천만원)에, 원본은 9만 5천 달러(한화 약 1억 7천만원)에 판매되어 디지털 변환본이 원작보다 비싸게 팔리는 아이러니한 광경을 낳았다. 이처럼 고유 디지털 값을 지닌다는 이유만으로 거액에 거래되는 상황에 대해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심지어 NFT 미술품 거래의 최대 수혜자라 할 수 있는 비플마저도 자신의 크리스티 세일즈 결과를 두고 ‘솔직히 말하면 거품’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NFT의 높은 성장세만큼 가격 거품에 따른 투자 위험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 뒤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이슈는 다름 아닌 환경 이슈다. 블록체인을 운영하는 네트워킹된 컴퓨터는 막대한 양의 전기를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암호화폐 거래 1건은 신용카드 거래 70만 건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알려져 있다. NFT는 생성, 구매, 판매, 재판매 및 저장의 모든 단계에서 암호화폐보다도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이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는 요즘, NFT 플랫폼의 행보는 이에 역행하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에 대응하여 미국 암호화폐 거래소 ‘제미니(Gemini)’가 운영하는 NFT 플랫폼 니프티게이트웨이는 환경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완화시키기 위해 배출량에 준하는 탄소 상쇄권을 매입하고 기술 혁신을 통한 대안적 네트워크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이 그리 높아보이지는 않다는 것이 현실. 예술 작품을 공유·검색할 수 있는 유명 플랫폼 ‘아트스테이션(ArtStation)’은 환경 오염 문제로 비판이 거세지면서 준비한 NFT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해킹·도난의 문제, 예술적 가치와 신뢰도의 불일치 문제 등 NFT는 아직 허술한 구석이 많다. NFT 거래를 제대로 보호하기에는 현행법이 미비하며 ‘디지털 콘텐츠’라는 속성 때문에 여전히 누구나 복제 및 재생산이 가능하다는 태생적인 한계 역시 존재한다.
NFT의 미래, 그럼에도
여태까지의 내용을 종합해서 정리하자면, 그 순기능과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NFT는 작품의 진위 및 소유권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지식재산권 범위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존재하고, 보안의 취약성이라는 중요한 단점도 남아있다. 무엇보다 ‘NFT가 뭔지 아세요?’라는 물음에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는 이들이 무척 드물다는 사실은 NFT의 정체가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FT가 갖는 의의를 부정할 수는 없다. NFT는 분명 그동안 온라인에서 무분별하게 복제되던 디지털 콘텐츠의 진본성과 유일성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수단일 뿐 아니라 예술가들이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구현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공간이 되어 준다. 과거에는 유명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전시를 할 기회가 소수의 아티스트에게만 주어졌다면 NFT 플랫폼을 통해서는 누구나 작품을 거래하고 자동적으로 신뢰도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관의 권위를 줄이고 창작자와 컬렉터의 권위를 높이는 ‘모두에게 열린 무대’를 제공하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NFT, 그리고 NFT 아트에 대해서는 쉽사리 낙관할 수도, 또 비관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어떠한 입장을 취하기도 애매하다. 모든 가치를 물질화하여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시대가 도래한 것 같아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술과 패션,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영역에 가져온 변화의 바람에 설레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찌되었건 신세계로 향하는 열쇠는 주어졌고, 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우리의 몫이다.
- 캐슬린 김, 「NFT, 머니게임의 명암」, 『월간미술』, 2021년 5월호, p158-161
- 박재용, 「미술의 ‘암호화폐’ 열풍」, 『월간미술』, 2021년 4월호, p160-161
- [TIME], NFTs Are Shaking Up the Art World—But They Could Change So Much More, (2021.03.22),
- [에스콰이어], 과연 NFT는 예술의 신세계를 열어줄 게임 체인저일까?, (2021.04.29)
- [코인데스크코리아], NFT(대체불가능토큰)의 약점, (2021.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