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와 부르기 사이
장기하의 음악 읽기

3년 만에 솔로로 돌아온 장기하
신보 [공중부양]으로 짚어본 그의 음악관
Edited by

지난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뮤지션 장기하의 싱글 ‘2022년 2월 22일’이 깜짝 공개됐습니다. 숫자 2가 무려 6번이나 등장하는 독특한 제목의 노래라니. 과연 ‘싸구려 커피’, ‘달이 차오른다, 가자’ 등으로 보여줬던 장기하식 위트가 듬뿍 반영된 싱글이었습니다. 곡의 내용과 진행은 더욱 장기하스러웠습니다. “2022년 2월 22일 / 앨범 제목이 공중부양이고 / 다섯 곡이 들어있는데 / 곡 제목이 1번 뭘 잘못한 걸까요 / 2번…” 랩도 아니고 노래도 아닌 형식으로 며칠 뒤 발매할 신보 [공중부양]의 정보를 읊조렸기 때문입니다.

문득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늘 우리에게 익숙한 노래의 형식을 비틀며 음악 활동을 이어나가는 장기하식 작법이 왜 이토록 오랜 시간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일까요? 더욱더 가볍고, 더욱 더 여백이 깊어진 채 돌아온 음반 [공중부양]을 통해 장기하의 음악관을 짚어봤습니다. 장기하는 왜 말하듯 음악을 쓰는지, 또 우리는 그를 통해 왜 웃음 너머의 위로를 받는 것일까요. 오늘은 익숙함과 거리를 둔 채 일상의 잡담을 툭툭 던지는 장기하의 음악 세계를 분석해봤습니다.


88만원 세대론? ‘ㅋ’ 됐고, 웃어 웃자고!

2020년 펴낸 에세이 『상관없는 거 아닌가?』에서 장기하는 ‘싸구려 커피’를 만들고 공연할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합니다.

“돈은 안 돼도 ‘멋있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 눈앞에 있는 관객들만은 확실히 재밌게 해 주겠다는 생각이 다였다.”_ 장기하

‘멋’과 ‘재미’. 어쩐지 데뷔 싱글 ‘싸구려 커피’는 재미 쪽에 더 가까웠던 것 같지만 이 노래로 장기하와 얼굴들(이하 장얼)은 소위 대박을 터뜨립니다. 한 번 보면 눈을 뗄 수 없는 비주얼과 퍼포먼스. 거기에 무엇보다 ‘싸구려 커피’가 묘사하는 짠 내 나는 일상은 당시 주류 사회를 휩쓸던 ‘88만 원 세대’ 담론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정작, 이 노래는 사회 비판의 의도보단 군 시절 믹스커피를 마시던 장기하 개인 일화에 더 맞닿아 있었지만 어쨌든 사회의 해석은 세대론으로 쏠렸습니다. 서울대 사회학 전공이라는 그의 학력 역시 이 흐름에 한몫을 거들죠.

장얼은 침체됐던 인디 신을 일으킬 음악가로 명성을 날립니다. 장기하의 색이 강하게 응집된 정규 1집 [별일 없이 산다] 이후 조금씩 멤버들과의 협업을 시작한 2집 [장기하와 얼굴들]까지 연타석 흥행에도 성공했습니다. 때로는 사운드를 꼼꼼히 쌓았고 또 때로는 과감하게 소리를 비우기도 했죠. 밴드 해체를 알린 5집 [mono]은 후자였습니다. ‘모노’라는 제목처럼 사운드 채널을 1개로 잡고 곡의 무게를 최소한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렇듯 몇몇 시도와 변화들이 있었지만 조타를 잡은 장기하는 언제나 이것을 고수합니다. 무엇이냐고요? 바로 ‘재미’입니다.


붕 떠 있고, 둥둥 떠 있는 [공중부양]

‘재미’란 공통분모는 있지만 장얼 해체 후 솔로로 발매한 첫 음반 [공중부양]은 확실히 그룹사운드와는 다릅니다. 더더더 자유분방하고 더더더 형식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장얼 시절 음악이 ‘재미’와 ‘해학’을 어느 정도 후킹한 멜로디 위에 담아냈다면 신보는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첫인상을 남깁니다. 물론 그는 장얼의 음악에서도 언제나 비우기를 실천했다고 하지만 그때는 밴드 구성이 항상 최소한의 음악 골격을 만들어냈습니다. 적어도 라이브 현장을 가득 메울 수밖에 없는 소리의 힘들이 존재했던 것이죠.

반면 신보는 그의 설명처럼 ‘붕’ 떠 있고, 디딜 땅을 잃은 채 ‘둥둥’ 떠 있는 것 같습니다. 타이틀 ‘부럽지가 않어’는 랩이라고 하기엔 어색하고 노래라고 하기엔 부족한 위치에 ‘붕’ 떠 있습니다. 별다른 효과음 없이 전자음 바탕에 하우스를 장르의 토대 삼아 심지어 디제잉하듯 스크래치를 넣는 노래라니. 이 형식 파괴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는 6분 가까운 러닝타임을 판소리와 뒤섞어 호흡하고 ‘얼마나 가겠어’는 신시사이저를 중심으로 시니컬한 비판과 조롱을 날립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즐겨왔던 노래의 형식이 부재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음반의 끝. 저는 어떤 식으로든 위로를 받았고 다시 음반의 면면을 찬찬히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장기하의 음악에는 대체 무엇이 있는 걸까요?


그래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

핵심은 ‘일관성’에 있습니다. 세상을 까무러치게 웃긴 ‘싸구려 커피’가 신선한 충격을 한차례 몰고 지나간 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일상과 순간을 같은 태도로 대합니다. ‘느리게 걷자’, ‘좋다 말았네’, ‘그건 니 생각이고’ 등 그의 음악에는 세간의 반응이 어떻든 간에 계속해서 내 것을 내식대로 밀어붙이는 뚝심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그는 늘 아무래도 상관없고 모두 다 별거 아니라고 노래하는데요. 강요하지 않고, 재미있게, 말하듯 툭툭 핵심을 전달하기 때문일까요? 필자에게는 이 접근이 근거 없는 낙관주의보단 확신 있는 위로로 다가옵니다.

그리하여 신보 [공중부양]은 붕 떠 있고 둥둥 떠 있는 것들을 표현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지면에 발을 딛고 있습니다. 노래의 형식 자체는 애매할지 몰라도 그가 바라보고 전하는 것은 지극히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 파란 하늘에 눈이 시린 / 오늘 마침내 / 오월이 오랜만에 우리 집 현관문을 탁탁탁탁 두드리네’

끝 곡 ‘다’의 일부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분명 따스한 햇살을 머금은 오월이 현관문을 탁탁탁탁 두드린 경험이 존재할 것입니다. 예전만큼의 획기적인 재미와 충격적인 존재감은 옅어졌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장기하식 창법과 특유의 초연한 태도가 우리에게 질문을 걸어옵니다. 그것이 노래의 형식에 관한 것이든, 삶의 방향과 속도에 관한 것이든 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하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번 장기하의 음반을 어떻게 들으셨나요? 이 글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장기하의 음악을 따라 부르고 있던 누군가에게 하나의 해답이 되길 바라봅니다. 우리는 왜 장기하에 열광하는가. 익숙함을 비튼 그의 음악에 왜 힘을 얻는가. 이상 저의 분석을 마칩니다. 설사 누군가가 제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저는 뭐…

‘상관없는 거 아닌가’


INSTAGRAM : @kihachang


박수진

박수진

한때 음악으로만 살았던 사람.
N년 간 인디문화를 연구했고 지금은 음악을 읽고 보고 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에디터의 아티클 더 보기

아픈 가족을 돌보는 바쁜 청년들

가족돌봄청년에게 스파르타코딩클럽이 대신 기부합니다

– 위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로 ANTIEGG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 위 콘텐츠의 사전 동의 없는 2차 가공 및 영리적인 이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