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칭호를 둘러싼 갈등
무엇이 본질인가

클래식계 ‘국립’ 명칭을 둘러싼 갈등
KBS교향악단이 반발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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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3대 오케스트라를 아는가. 정확한 출처는 알려진 바 없지만 보통 규모와 연주력 면에서 다음의 세 악단이 꼽힌다.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과 KBS교향악단(KBS교향), 코리아심포니(코심)다. 얼마 전 KBS교향과 코심 사이에서 벌어진 알력다툼이 클래식 업계의 눈길을 끌었다. 코심이 명칭을 ‘국립’으로 변경하려고 하자, KBS교향이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KBS교향 측은 “특정 오케스트라에 ‘국립’이라는 이름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국립’이라는 이름의 무게와 국격을 고려하여 그에 걸맞은 실력과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반발했다. 우선은 ‘국립’ 명칭을 달 자격을 묻었지만, 정통성 논쟁으로 비화할 조짐도 보인다. KBS교향 측은 이들의 전신이 ‘국립교향악단’이라는 점을 들며 뿌리를 주장했다. 또한 “국가대표 교향악단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희로애락을 함께해야 한다”면서 과거 대통령 해외 순방, 올림픽 등에서 활약한 이력을 과시했다.

오케스트라의 자질과 실력을 따지는 건 전문가에게 맡겨두기로 하자. 이 글에선 KBS교향이 던진 ‘국립의 자격’에 대해 고민해보려 한다. 어떤 단체에 국립이라는 이름을 붙여왔는가. 악단을 비롯해 수많은 문화예술 단체가 ‘국립’이라는 명칭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위 질문에 답하며 표면의 갈등을 걷어내고 나면, 우리는 본질적인 문제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국가의 예산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예술계의 고달픈 현실이다. 서문만 달라진, 진부한 이야기다.


‘국립’은 왕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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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누구나 어렵지 않게 몇몇 단체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국립국어원, 국립중앙도서관, 국립현대미술관, 국립극장 등. 모두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기 위해 설립된 단체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국가가 운영한다는 점, 즉 국가가 전부 혹은 대부분의 운영비를 지원한다는 점이다. 즉 국립이라는 이름은 해당 기관이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점을 말해주는 수식어일 뿐이다. ‘국가대표’ 인증 마크로 볼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KBS교향이 개명에 반대하며 국격을 언급한 이유는 무엇인가. 필자의 단견으로는, 통상 국가가 예술을 지원하는 목적이 스포츠를 지원하는 목적과 같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예술을 지원하는 목적 역시 ‘국가제일’을 ‘세계제일’로 만들기 위함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예술 분야의 국립단체 목록을 보면 그런 인식이 금방 틀렸음을 알 수 있다. 국가가 예술을 지원하는 목적은 오직 국민의 문화향유를 더 풍부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되려 ‘국립’ 명칭은 일종의 경고장으로 기능한다. 혈세를 들이는 사업이라는 걸 공공연하게 알리고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과 퍼포먼스를 유지하도록 압박을 가하기 때문이다.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진행한 국립박물관 평가에서 인증 대상기관 36개 관 중 기준에 미달한 박물관은 7곳이나 됐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국립이라는 이름을 달고도 품질 관리를 소홀히 한 박물관을 향한 질타가 이어졌다. 문체부 역시 평가의 목적이 지원 중단 등 불이익을 주려는 게 아닌, 경각심을 주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만약 ‘국립’이 ‘국내 최고’를 의미했다면 문체부는 기준 미달 박물관에 대한 지원을 끊고 경쟁 입찰 방식으로 다음 국립박물관을 선정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국가가 예술을 지원하는 목적은 최고를 가려 더욱 최고답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국민이 낸 세금을 문화예술이라는 형태로 돌려주는 사업이다. 따라서 ‘국립’ 칭호를 국격과 연결 짓는 건 다소 억지처럼 느껴진다.

KBS교향은 국격을 우려하고 정통성을 꼬집었지만 실제로는 국가 예산을 지원받는 기관이면 누구나 붙일 수 있는, 더 나아가 붙여야 하는 수식어였다. 코심은 지난해 악단 예산 77억 원 중 74%에 해당하는 57억원을 국가로부터 지원받았다. 따라서 명칭을 변경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될 일이 아니다. 문체부와의 사전협의도 마치고 클래식계의 의견청취도 충분히 진행한 사안이라고 하니, 더욱 KBS교향의 반발에 고개가 기울여진다.


드러난 갈등과 두 악단의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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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명칭을 달면 무엇이 좋은가. 우선 코심 측은 명칭 변경을 추진하는 이유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엄연한 국립 오케스트라인데도 악단 이름 때문에 민간 오케스트라로 비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동안 악단사에 밝지 않은 관객과 해외 예술단체의 입장에서는 코심이 국립 예술단체임을 알 길이 없었고, 이에 10년 전부터 문체부와 논의를 하며 이름 변경을 추진해왔고 덧붙였다. 하지만 단순히 국립 단체임을 알리려는 목적이라면 KBS교향이 굳이 내홍을 일으킬 이유도 없었다. 갈등의 이면에는 더 복잡한 셈법이 존재한다. 바로 국가의 예산지원이다.

지난해 재단법인 정동극장은 이름 앞에 ‘국립’ 명칭을 추가해 ‘국립정동극장’이 됐다. 문체부는 “정동극장의 공식 명칭을 변경함으로써 국립 공연시설로서의 정동극장의 위상과 책무를 더욱 강화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그러자 달라진 위상에 걸맞은 지원과 혜택이 뒤따랐다. 예술단이 출범했고, 2024년 확대 개관을 목표로 재건축에 들어갔다. 이처럼 국립이라는 명칭은 예산지원과 직결되는 문제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히 명칭을 둘러싼 갈등이지만 정작 두 악단이 노리는 건 국가로부터의 안정적인 예산지원이다. 특히 2025년, KBS와의 계약만료로 지원금(108억 원)이 끊기는 KBS교향은 억지로라도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다. 한때 국립단체였다는 명분만 갖고 몽니를 부리는 모습을 십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코심도 절박하기는 마찬가지다. 국가로부터 예산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지난해 서울시향(208억원), KBS교향(135억원) 예산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코심의 개명엔 앞으로 이들에 견줄 만한 예산지원을 받을 수 있으리란 기대가 서려 있다.

또 다른 갈등은 정통성을 둘러싼 원조 논쟁이다. 악단의 명예 혹은 자존심과도 연결된 문제라 할 수 있다. 두 악단의 역사를 짤막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우선 KBS교향은 1956년 한국방송공사(KBS) 소속 악단으로 창단됐다. 1969년 정부에 의해 악단 운영권이 국립극장으로 넘어가며 국립화됐고, 이때 명칭이 ‘국립교향악단(국향)’으로 바뀌었다. 얼마 뒤, 이번 원조 논쟁의 핵심 인물인 홍연택 선생이 국향 제2대 상임 지휘자로 부임한다. 이후 1981년 국향은 다시 KBS로 이관되며 현재의 KBS교향이 되는데, 이 과정에서 홍연택 선생이 국향을 떠난다. 1985년 홍연택 선생은 국향 출신 단원들을 모아 코심를 창단한다. 민간 오케스트라로 출발한 코심은 창단 초기 많은 어려움을 겪지만, 1987년 국립극장 전속계약 체결, 2000년에는 예술의전당 상주단체로 지정되는 등 점차 국립 예술단체로서의 입지를 다져갔다. 넓게 보면 홍연택 선생을 중심으로 탈당파와 잔류파의 대립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대립 역시 단순한 자존심 대결이 아닌, KBS교향이 훗날 국향 복귀를 위해 포석을 깔아두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원조 논쟁도 결국에는 예산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어느 방면에서 보던 예산이라는 지리멸렬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예술 분야가 직격탄을 맞은 지금, 곳곳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터져 나오는 건 우연이 아니다.


누구를 위한 반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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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장난일까. 논란의 중심에 선 두 악단이 지난주 닷새 간격으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맞붙었다. 먼저 코심이 23일 연주회를 개최하며 포문을 열었고, KBS교향이 5일 뒤 같은 곳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승자와 패자를 정하는 건 다시, 전문가 손에 맡긴다.

KBS교향이 코심 명칭 변경에 반발한 이유를 들여다봤다. 표면적으로는 국립에 걸맞은 자격을 묻는 듯했지만, 속내는 달랐다. 갈등의 줄기를 당기니 끝에는 예산 문제가 있었다. 코로나19로 공연 수입도 대폭 줄었기에 예산지원이 더욱 절박해진 상황이기에 KBS교향의 무리한 반발도 충분히 이해된다. 그런데도 본말이 전도됐다는 기분은 지울 수 없다. 국가로부터 예산지원을 타내고 악단이 존속하려는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국민에게 더 좋은 음악을 들려주기 위함이 아닌가. 벌써 2년째 이어진 사회적 거리두기에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문화예술의 힘이 절실한 시점이다. 본질이 무엇이든, 위로와 응원이 필요한 시기에 갈등을 드러내 보이는 건 그다지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라 하겠다.

  • 중앙일보, ‘국립’ 간판이 뭐길래···두 오케스트라 팽팽한 신경전, 2022
  • 국민일보, KBS교향악단은 코리아심포니의 ‘국립’ 명칭 사용을 왜 반대하나?, 2022
  • 조선일보. [데스크에서] 씁쓸한 ‘원조 국립 악단’ 논쟁, 2022
  • 이데일리, 코리안심포니 vs KBS교향악단···두 감독, 지휘 맞장, 2022

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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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세상에서 회색지대를 찾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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