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음악의 핵심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멜로디, 퍼포먼스 혹은 가사?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통상 우리가 생각하는 대부분의 음악은 선율을 가지고 이야기와 감정을 풀어내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여기 조금은 독특하게 ‘독백’을 가미해 곡을 만든 4개의 인디음악이 있습니다. 악기를 부딪쳐 만들어낸 선율 위에 툭툭 단어의 나열을 내뱉으며 말이죠. 음악과 내레이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요소가 만나 풍기는 색다른 무드를 느껴보세요.
보수동쿨러 ‘0308’
찰랑거리는 기타 리프 위에 ‘삶은 누구에게나 실험이고 중독의 연속이다 / 그 중독으로부터 조금 멀어지는 실험을 해보자’라는 가사가 던져집니다. 너무 심오한 것 같다고요? 긴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내 밴드는 관조적이고 무심하게 앞선 논의에 물음을 던집니다. 마치 꼭 우리의 이야기가 정답은 아니라는 듯 ‘아닌가?’하는 질문으로 말이죠.
보수동쿨러는 현재 가장 핫한 부산 밴드입니다. 이 곡처럼 빽빽한 독백으로 곡을 채우기도 하고 또 때로는 회색빛 감정이 가득 담긴 노래를 써내기도 하죠. 곡의 제목인 ‘0308’은 세계 여성의 날을 의미합니다. 이 사실을 인지한 채 곡을 다시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놓쳤던 새로운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소은 ‘너는 나의 문학’
‘온스테이지’를 즐겨보시나요? 벌써 10년이 넘게 ‘숨은 음악 발견’이란 주제로 인디 뮤지션들의 음악을 라이브로 공개하고 들려주는 플랫폼입니다. 박소은의 ‘너는 나의 문학’은 온스테이지 버전으로 들었을 때 감동이 배가 됩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너는 나의 문학이라 비유하는 이 곡은 스트리밍 사이트에 공유된 버전과 다르게 뜨거운 독백으로 시작됩니다.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이 21세기 현대 사회에 사랑이란 단어는 또 얼마나 지겨워져 가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알알이 떨어지는 단어들이 이후 펼쳐질 음악의 시선과 지향을 아주 시적으로 표현해냅니다. 모든 곡을 직접 쓰고 부르며 항해하는 싱어송라이터 박소은의 음악. 이 노래가 와닿으셨다면 ‘눈을 맞춰 술잔을 채워’란 곡도 추천합니다. 몽글몽글 마음이 차오를 거예요.
이랑 ‘신의 놀이’
코끝 시린 찬바람이 부는 어느 날 이 노래를 처음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나요’ 물으며 시작되는 노래라니. 신선하기보단 어딘지 마음이 아리고 저릿했습니다. 너무나도 적확하게 지금의 나를, 사회를, 그리고 한국의 아픈 면들을 읊조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명 음반의 타이틀인 이 곡은 이듬해 한국 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 부문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상이 음악의 가치를 전부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당해를 응축하고 대표할 만큼 뛰어난 음악이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랑의 음악은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메시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로 시작해 지금은 뮤지션으로서의 책임의식을 선명히 느낄 만큼 성장하고 변화한 음악가 이랑. 얼마 전 발매된 정규 앨범 [늑대가 나타났다]를 통해 그를 더욱 깊게 만나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도재명 ‘토성의 영향 아래(Feat. 이자람)’
토성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세요. 무엇이 그려지나요? 아름다운 고리를 지닌 태양계의 6번째 행성, 토성.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토성의 영향’이란 표현으로 자신의 우울증을 간접적으로 서술하기도 했습니다. 오래전부터 토성은 어둡고 침체된 사람들의 행성으로 여겨졌어요. 도재명 역시 이 역사를 끌어와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자그마치 7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사람의 독백이 이어집니다. 눈으로 그려지는 시리고 차가운 문장들이 한국어, 프랑스어를 거쳐 우리에게 당도합니다. 말들이 쌓이고 노래의 끝 이것들이 무너지듯 폭발하는데요, 곡의 매력은 바로 이 쌓임과 거친 터뜨림으로 완성됩니다. 천천히 올리고 날카롭게 무너뜨리기는 포스트록의 대표 작법이자 도재명의 장기이기도 합니다. 곡의 질감을 그대로 살린 흑백 뮤직비디오를 꼭 보시길 바라요. 이어폰을 꽂고 서울 여기저기서 춤을 추는 댄서의 모습을 통해 여러분은 어떤 감정을 투영하셨나요?
독백 혹은 내레이션. 음악을 표현하는 색다른 방법이 마음에 드셨나요? 세상에 좋은 음악가는 많고 이들이 자신의 것을 그려내는 방식 또한 한 손에 담을 수 없이 다양합니다. 오늘 소개한 노래는 4개뿐이지만 지면에 담지 못한 더 많은 아름다운 곡들이 존재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뺏은 색다른 노래는 무엇인가요? 함께 공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