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전시장을 한 바퀴 돌며 이런 생각을 한다. ‘하나도 모르겠네. 그런데 나만 그런 건가?’ 미술관에 방문했던 경험을 떠올려본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러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남들은 모두 재미있게 관람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혼자만 이해를 못 하고 있는 것 같아 창피하고 때론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마치 수수께끼와 같은 작품 앞에 설 때면 눈앞이 뿌예지고, 머릿속은 어지럽게 변한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현대미술 작품을 접할 때 나타난다. 그 무엇하나 명확한 지점이 없는 현대미술은 소위 ‘불친절한 미술’로 불리기도 한다. 흰 바탕에 검은색 네모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이 그림을 보라. 이처럼 현대미술은 당최 무엇을 그린 것인지 또 어떻게 표현한 것인지를 가늠하기가 참 어렵다. 그래서일까. 많은 이들은 현대미술을 어려워하고 심한 경우에는 싫어하기까지 한다.
현대미술은 도대체 왜 어려운 것일까? 이번 위클리에서는 현대미술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어떤 문제든 그 원인을 알고 나면 해결하기가 한층 쉬워지는 것처럼, 현대미술을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게 이번 위클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재현과 표현에서 형식 중심의 추상으로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현대미술’이 무엇인지를 먼저 이야기해보자. 만일 여러분이 현대미술(Modern Art)을 그 연대로 규정한다고 하면 명쾌한 합의를 보기가 어려울 것이다. 현대미술의 시작점만 하더라도 20세기 초, 1950년대, 1970년대 등 이에 관해 많은 의견이 엇갈린다.
이러한 가운데, 본문에서는 현대미술을 후기 인상주의⁽¹⁾가 시작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에 성행한 미술을 가리키는 포괄적 용어로 정의하려 한다. 이는 현대미술의 뿌리가 후기 인상주의라는 것, 그리고 현대미술이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미래주의와 같은 20세기 아방가르드 미술운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내린 결론이다.
위와 같이 현대미술을 개념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때, 그와 이전 시기의 미술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재현성’의 여부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낭만주의를 기점으로 미술은 대상을 실물에 최대한 가깝게 묘사해야 한다는 의무에서 벗어나 인간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바로 현대미술이다. 현대미술은 대상의 실물 다운 표현보다 작품 그 자체의 ‘형식’에 주목한다. 이를 ‘형식주의’, 또는 ‘형식미술’이라 부르는데, 형식주의는 미술의 본질을 내용이 아닌 형식에서 찾는 경향을 뜻한다. 쉽게 말해 작가의 의도나 이념 같은 사회환경적 요소는 모두 배제하고 선, 색채, 공간, 형태, 명암 등 작품을 구성하는 각 부분들이 만들어내는 미적 효과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다. 우선 여기까지 정리하자면 고전주의⁽²⁾에서 낭만주의⁽³⁾를 거쳐 모더니즘⁽⁴⁾으로 이행하는 동안 미술은 모방의 미술에서 표현의 미술, 그리고 표현의 미술에서 형식의 미술로 변화를 거듭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형식 미술은 ‘근대 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네로부터 시작된다. 마네는 르네상스 후로 줄곧 사용되어 온 원근법을 거부했다. 그 이유는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환영을 구현한 가상의 공간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회화라는 매체의 고유한 특성인 ‘평면성’에 주목하게 된다. 그렇게 원근법이 사라진 ‘평평한’ 회화는 현실을 모방한 공간이 아니라 회화 자체가 가질 수 있는 고유의 공간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나아가 그 뒤를 이은 후기 인상주의, 야수파, 입체파의 조형 실험은 색채의 해방과 형태의 해체를 차례로 이끌었고, 이는 회화가 더는 현실 세계의 모사에 얽매이지 않고 더욱 자유로운 조형 실험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또한, 20세기 이후의 예술가들은 대상의 외형, 즉 겉모습보다 그 기저에 있는 본질이나 모든 존재를 관통하는 범우주적 질서나 개인의 내적 충동에서 비롯된 우연하고 감정적인 표현 방식을 추구했다. 이들은 점, 선, 면과 같은 최소한의 형식 요소만으로 대상을 단순화했을 때 이러한 것들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 관람객들의 마음을 끄는 것 역시 캔버스에 그려진 식별 가능한 대상들이 아닌 형식적인 요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화면에 나타난 대상은 점차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추상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현대미술 작품을 보았을 때 현실에 있는 명징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힘든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보편적인 도상의 파괴
현대미술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이제는 과거에 통용되었던 일반적인 주제를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모더니즘 이전 시기의 전통 미술이 표현하던 주제는 성서나 신화같이 널리 알려진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중세 시대에는 글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성서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들로 교회를 장식하였다. 이 시기에는 모든 작품이 성서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성서의 주요 장면이나 그 내용을 알고 있다면 작품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수월하게 알 수 있었다. 이후로도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에 이르기까지 이야기에 기반한 작품 제작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성서나 신화, 혹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예술가가 발견한 새로운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일상의 사물과 인물은 물론 예술가 개인이 상상한 그 무엇이든 그림의 주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펼치는 것은 물론 아예 작품에서 이야기를 배제해 버리기도 한다. 이는 앞서 살펴보았던 대상의 추상화, 기호화 과정과도 연관이 있다. 현대미술 작품에서 대상은 더는 현실의 무엇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채로 예술가의 창조 정신과 결합해 자유로운 형태를 띠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품에 담긴 내용과 서사가 다양해지거나, 심지어는 사라지는 현상을 ‘도상의 개별화’라 부른다. 도상이란, ‘어떤 작품을 보았을 때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게 만드는 이미지나 형상’을 의미한다. 이처럼 현대미술 이전에는 특정한 이미지를 이야기와 결부 시켜 하나의 상징처럼 활용하는 방식이 지배적이었다. 다시 말해 도상은 일종의 보편적 시각 언어였던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는 이러한 보편적 도상이 해체되고, 따라서 선행된 지식이나 경험만을 가지고 작품을 해석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각 작품의 개별적인 특징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차이는 현대미술을 점차 다양화, 탈중심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유명 작가와 걸작에만 친숙해진 대중들
우리가 느끼는 현대미술의 난해함은 이를 소개하는 언론과 도서의 상업주의, 그리고 그로 인한 다양성의 결여로부터 비롯되기도 한다. 언론사는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출판사는 판매 부수를 올리기 위해 상품성이 검증된 전근대적 거장에 집착한다. 이들은 시장 반응을 과도하게 의식한 나머지 소위 ‘스타 화가’(이하 ‘스타’)로 알려진 세잔, 고흐, 클림트, 피카소 등의 유명 인물들만 반복적으로 다루게 된다. 그리고 이는 결과적으로 대중이 그 외 다양한 현대미술 작가와 작품을 만날 기회를 막는다. 미술 전공자도, 애호가도 아닌 일반인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이들이 현대미술을 접하게 되는 경위는 주로 매스미디어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현대미술을 어렵게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현대미술 자체의 특성 때문만이 아니다. 검증된 걸작들에게만 친숙해져 버린 관객에게 ‘지금, 여기’ 벌어지는 다채로운 사건들을 강한 개성으로 표현하는 현대미술은 당연히 이해하기 힘든 대상일 수밖에 없다. 정리하고 보니 불친절한 것은 현대미술이 아니라 현대미술에 대해 편향된 정보만을 전달하는 여러 매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작년 한 해 우리나라에서 열린 현대미술 전시 중 대부분의 대형 전시는 ‘스타’들의 것이었다. 무하, 마그리트, 마티스, 바스키아…이름에서부터 유명세가 느껴지는 예술가들의 전시가 주를 이뤘다. 그만큼 관객도 많이 모였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진행되는 ‹장 미쉘 바스키아-거리, 영웅, 예술› 전의 경우 첫 달에만 무려 6만 명의 관객이 방문했다. 이러한 현상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그 기저에 미디어의 편향된 정보 주입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예술가를 ‘스타’라고 칭할 때를 떠올려보자. 그 배경에는 물론 개인의 뛰어난 실력과 작품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일까?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그를 ‘스타’로 인식하도록 하는 생각을 주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가며
이제까지 살펴본 바로 현대미술을 ‘어려운’ 미술로 만든 주요 원인에는 대상의 추상화, 도상과 이야기의 해체, 그리고 매스미디어의 편향된 교육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여기에 언급되지 않은 다른 요인도 여럿 존재한다. 대중미술과의 차별화를 위한 현대미술의 엘리트주의나 급변하는 미술계 트렌드 등이 그러한 것들일 테다.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보면 다시 원점이다. ‘현대미술은 어렵다’는 글의 시작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도입부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여기에 한 가지 발견이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현대미술은 나에게만 어려운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방식으로 현대미술을 어려워한다. 당신이 더는 난해한 미술 작품 앞에서 ‘나만 어려운가?’ 생각하며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이유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말해 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방식으로 현대미술을 즐길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취향의 시대’라 불리는 현대사회에는 세분된 소비자의 취향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촘촘하고 세밀한 취향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 인상주의 이후의 흐름이라는 뜻을 지닌 ‘후기 인상주의(Post Impressionism)’는 영국의 화가이자 미술비평가 로저 프라이(Roger Fry)가 1910년에 기획한 전시 제목 <마네와 후기인상주의(Manet and Post-Impressionism)>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으며 대략 1890년에서 1905년 사이의 프랑스 미술의 경향을 일컫는다.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로는 고흐, 고갱, 세잔이 있다. 후기 인상주의자들은 인상주의의 생생하고 찬란한 색채와 독특한 붓질을 계승하면서도 그것이 지나치게 순간적인 세계에만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해 이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 고전주의(Classicism)는 본래 조화와 균형, 비례를 추구하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예술사조를 뜻하나 이를 이어받은 르네상스 시대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 출현한 신고전주의(Neoclassicism)과 같이 이론과 통일성을 중시하는 미술사조를 통칭하기도 한다. 본문에서는 낭만주의(Romanticism)과 직접적으로 대치되는 신고전주의로 이해할 것을 권장한다. 자유롭고 정서적인 낭만주의와는 대조적으로 고전주의 미술은 형식과 법칙을 엄격히 지켰다.
- 19세기 초 시작된 낭만주의(Romanticism)는 흔히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미술로 소개된다. 신고전주의 미술이 질서와 규범에 입각해 선과 형태를 중시했다면, 낭만주의 미술가들은 그들의 감성과 직관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색채 사용을 선호했다.
- 모더니즘(Modernism)미술은 근대미술, 즉 인상주의 이후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친 다양한 예술사조를 일컫는다. 좁은 의미에서 현대 미술은 이 시기 이후, 즉 20세기 후반기의 미술을 가리킨다. 하지만 현대미술이 이미 20세기 전반기에 일련의 전위적인 미술운동과 함께 시작된 것을 고려했을 때 본문에서는 현대미술을 모더니즘을 포함한 20세기 미술을 포괄하여 지칭하는 것으로 간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