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 미술가는
어떻게 되나요

신진 작가 발굴 시스템과
문제점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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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이미지 출처: 「2018 미술시장실태조사」,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그림을 그리는 것을 업으로 삼는 전업 작가는 그림이 팔려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앞선 위클리에서 미술품의 경제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지표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이런 다양한 요소 중에서도 작품 판매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아마도 작가의 명성일 것입니다. 작가로 인정을 받아야 작품 또한 상업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되는 거죠. 작가는 신진 작가와 중진 작가로 크게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중진 작가는 활동 기간이 오래되어 작가로서 역량을 인정받은 미술계 인사들을 지칭한다면, 신진 작가는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젊은 작가들을 지칭합니다. 그렇다면 신진 작가는 이제 막 미술계에 발을 딛는 계층인데, 어떻게 중진 작가가 되며 작가로서의 명성은 어떻게 쌓을 수 있을까요. 명성을 쌓는 과정에서 문제점은 없을까요.

이번 그레이에서는 신진 작가가 이름을 알리기 위해 필요한 과정과 그에 따른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작가로 명성을 쌓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공모전에 당선되는 것입니다. 공모전은 신진 작가들을 미술계로 등단시키는 관문의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런 역할을 담당해온 공모전은 국내외에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국내 공모전 중 권위가 높고 유명한 공모전에는 한국미술협회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 미술대전이 있고 이밖에는 동아미술제 중앙미술대전 등이 있습니다. 이 공모전들은 전국적인 규모의 공모전입니다. 이것 외에도 지역 규모의 공모전도 존재합니다. 충남미술대전, 경향미술대전, 소사벌 미술대전,  경북미술대전, 충북미술대전, 대전광역시 미술대전, 김해 미술대전 등이 있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전시회를 통해 작품을 알리는 것입니다. 작업실 안에서만 작품이 있다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될 테니 당연히 팔리지도 않게 되겠죠.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전시하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요즘에는 인터넷 갤러리를 통해서 작업물을 보여줄 수 있기도 하고 SNS를 통해서 알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 전통적인 방법은 실재하는 물리적 공간인 갤러리를 대관하여 그림을 전시하고 사람들에게 알려 방문을 통해 구매와 홍보가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방법은 인맥과 연줄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영향력 있는 문화부 기자가 작가와 작품을 소개해주는 기사를 써주거나, 유명한 평론가, 콜렉터들의 도움을 받는 방법입니다. 미디어에 작품과 작가가 노출되고, 이것이 사회적 주목을 끌게 된다면 작가의 명성도 올라가는 식인 것이죠.

위와 같은 세 가지 방법이 주로 신진 작가들이 등용을 위해 넘어야 할 관문입니다. 이런 관문들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어왔습니다. 하지만 많은 부작용과 역기능을 낳고 있습니다.


신진 작가 발굴 시스템의 문제점

공모전

국내에서 제일 권위가 높은 ‘대한민국 미술대전’의 전신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입니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는 광복 이후 근대 미술계를 이끌었습니다. 1949년부터 1981년까지 미술 분야 공모전 가운데 대표적인 신인 등용문이었죠. 초기 국전은 작가 등용을 위한 공모전 외에도 초대작가전과 추천작가전을 혼합 시행함으로써 미술 분야에 많은 작가층을 배출하고 미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는 등 한국미술계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와 함께 ‘대한미협’과 ‘한국미협’ 등 미술 협회도 등장했습니다. 이런 협회들이 공모전을 주최하기 시작했고, 이것을 영리 위주의 행사로 다뤘기 때문에 작가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일부 공모전은 초대작가와 추천작가를 마음대로 상정하고 찬조금을 받거나 작품 기증을 강요하는 등 말썽을 빚기도 했고요. 이 무렵 대한미술전람회는 본래 취지였던 신진 작가 등용문이라는 성격보다 기성 작가 전시 부분이 더 비대해지게 되면서 많은 문제점들이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국전은 1981년에 폐지됩니다.

국전을 해체한 정부는 1982년 이 전시를 두 가지로 나누어 신진 작가 발굴만을 담당하는 ‘대한민국미술대전’ 즉 ‘미전’과 기성 작가를 위한 ‘현대미술초대전’을 국립 현대미술관에서 열도록 전시 체제를 개편합니다. 운영은 문예진흥원이 맡아 했으나 3년 뒤인 1986년부터 이 전시는 민간단체인 ‘한국미술협회(미협)’가 이관받아 주관하게 됩니다. 국가적인 권위를 갖고 있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공모전 입상은 작가들에게 가장 확실한 등용문 역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미전이 과거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운영 주체를 민간기관인 한국미술협회에 이양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폐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입상자 선정에 학연과 인맥 등 부수적 요인이 작용해왔다는 점과 지속적인 표절 시비가 그 이유였습니다.

<표2>은 1983년부터 2012년까지 각각의 미전에서 3회 이상 수상한 작가 수를 출신 대학별로 조사한 것이다. 홍대와 서울대 주도형 현상을 보여준다. (출처: 진작가 발굴 시스템이 한국 현대미술계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_김성희)

<표2>은 1983년부터 2012년까지 각각의 미전에서 3회 이상 수상한 작가 수를 출신 대학별로 조사한 것이다. 홍대와 서울대 주도형 현상을 보여준다. (출처: 진작가 발굴 시스템이 한국 현대미술계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_김성희)

미협이 미전을 주관하기 시작한 이후인 1986년부터 1998년까지의 자료를 종합한 결과 미전 운영위원중 홍익대(38.1%)와 서울대(34.3%)가 72.45%를 차지했다. 운영위원이 심사위원 추천권을 갖는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런 수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소지를 안고 있다. 실제로 홍익대(41.8%)와 서울대(30.4%)가 심사위원의 72.2%를 장악해 나머지 대학은 들러리나 다름없게 됐고, 이는 곧바로 이 두 대학 출신의 입상과 직결됐다. 같은 기간 우수상 이상을 받은 입상자중 홍익대(51.8%)와 서울대(16.1%) 출신이 대다수를 차지해 운영위원과 심사위원, 입상자 사이의 상관관계를 짐작하게 했다. _ 국전폐지 20년과 미술대전 현주소, (2002.01.07)

이러한 문제점들은 대한민국 미술대전과 다른 여러 공모전에서도 지속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2001년과 2020년에 터진 미전 심사 비리 사건들이 대표적인 예인데요.

2001년 경찰청이 미전 심사와 관련해 금품을 수수하는 등의 혐의로 260여 명의 미술인을 조사하던 중 미협의 전・현직 간부 25명을 입건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2020년에는 공모전에서 한 심사위원의 아내와 딸, 아들 그리고 심사위원의 제자들까지 단체로 상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심사위원의 아들이 지난해 다른 대회에서 아버지의 작품과 거의 똑같은 작품을 출품해서 문체부 장관상을 받은 일까지 드러나 논란이 됐습니다.

개인전

이런 폐단이 있는 공모전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에 걸쳐 개인전을 연다면 상황은 좀 더 나아질까요. 전시를 하기 위해서는 화랑(갤러리)이나 대관 전용 공간을 빌려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현대 미술 시장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70년대 이후 오늘날에는 약 450여 개의 화랑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화랑은 1차 미술시장의 중심 행위자를 말하는데요. 화랑은 특정 작가를 선별하고, 그 작가의 작품을 관리, 전시, 판매로 연결하는 업무를 전문적으로 하는 곳입니다. 이렇게 화랑이 작가를 발굴해내면, 이를 콜렉터들에게 연결해 작품을 판매하는 시스템이죠. 이런 전시를 통한 등단도 문제점을 갖고 있습니다.

작가는 구매력이 있는 소비자들(콜렉터)이 즐비한 화랑을 잡아야 그림을 판매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하지만 대관료를 지불할 돈이 부족하다면 이런 소비자들이 많이 있는 상권에서 벗어난 곳을 대관해야 합니다. 여기서 일주일간 전시를 한다고 했을 때, 과연 그림이 얼마나 팔릴 수 있을까요. 미술품은 특수성을 가진 상품이고, 이런 특수성과 구매력이 없는 상권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작품은 거의 판매되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개인전을 열기 위한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대관료는 크기, 위치, 전시되는 작품들의 수준, 갤러리 관장의 급 등등의 다양한 요소에 따라서 천차만별입니다. 대관 기간은 보통 일주일 정도로 잡습니다. 이 경우 하루 대관료가 30만 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대관료만 210만 원이 필요한 상황이 됩니다. 하지만 전시를 위한 비용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작가의 활동 증거물이 되는 ‘전시 도록 제작 비용’과 ‘오프닝 비용’, 그림을 넣을 ‘액자를 제작하는 비용’ 등을 추가로 부담해야 합니다.

이런 비용적인 부분이 해결되더라도 작품과 작가를 알리기 위한 제대로 된 전시를 치르기 위해서는 ‘실질적 구매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야 합니다. 이런 구매자를 불러올 수 있는 사람은 갤러리 관장과 콜렉터입니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신진 작가와 이미 미술계에 입김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이들 사이에는 당연히 갑을 관계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갑·을 관계?

많은 작가들이 이름을 알리기 위해 예술계에 권력이 있는 이들과 인맥을 쌓는 노력과 부당한 압력을 참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공모전 관계자의 금품 수수 논란이 단적인 예가 됩니다.

이런 압력이 을의 입장인 신진 작가가 여성일 경우, 작가를 주목시키는 채널 권력이 ‘성권력’으로까지 확장됩니다. 2016년 일민미술관 함영준 큐레이터의 성폭력 논란과 같은 해 국립현대미술관 최흥철 성폭행 논란 등이 있었죠. 실제로 필자 또한 ‘미술계의 갑을 관계에서 오는 문제점’을 취재하기 위해 한 여성 작가분과 인터뷰를 진행할 때, 남성 콜렉터와 미술계에서 권위 있는 사람에게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고 업계에서 안 좋은 소문이 돌아 작가 생활을 할 수 없게 될까 봐 고발하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인터뷰 전문을 실을 경우 인터뷰이가 누구인지 특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인터뷰이의 허락을 받아 아래와 같이 익명으로 피해 사실과 심정을 간략히 서술해보려고 합니다.

A 씨는 남성 콜렉터예요. 어떠한 약속도 없이 갤러리에 찾아왔습니다. 대화하던 중 A 씨는 작품에 대한 가격을 물어봤고, 그러고 나서 바로 “작가에게 일탈이 필요하지 않냐? 그림이 너무 어둡다. 그림에 대해 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 일탈해보고 싶지 않냐.” 라는 말을 덧붙여서 했어요. “뭔가, 일탈이라고 하면 낯선 남자와 자보는 것 또한 하나의 일탈이 될 수 있다. 그걸 거부하지 마라. 작가는 그러면 안 되지 않냐.” 라고 말하며 자신은 가끔씩 일탈을 한다고 했습니다.

B 씨는 존경하던 교수님의 예술계 지인이었습니다. 예의상 함께 술자리를 갖게 되었고, B 씨는 제자를 사랑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 대화 중에 저와 교수님의 관계도 남녀관계로 바라보며 얘기를 하셨습니다. 술자리가 마무리될 무렵 B 씨는 “아 참 네가 있었구나, 이 얘기를 네가 어디 가서 하지 않겠지? 내가 사회적 지위가 꽤 높은 사람이거든. 아직 그럴 힘이 있어. 작가 생활 오래 하고 싶지 않아?”라고 웃으면서 얘기하셨어요. 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제게 저항할 힘이 없다는 것과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내가 그걸 고발해서 어떤 영향력이나 변화를 이룰 수 없는 신진 작가라는 사실이 슬펐습니다. ‘내가 아직 더 위를 향해 올라가야 하는 신진 작가이기 때문에 나에게 그들이 그렇게 쉽게 행동한 것은 아니었을까’싶었습니다. 내가 이정도 밖에 안돼서 작품을 지킬 수 없다는 생각들이 이어졌고요. 내가 아무것도 아니어서 이런 수치심을 그저 침묵하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났습니다. ‘우리를 잘 이끌어줘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인데 이렇게밖에 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나가며

우리는 앞에서 권위 있는 미술관이라는 제도와 그러한 사회적·직업적 지위를 통해 형성된 사회적 네트워크가 권력의 중요한 자원이자 토대가 되어 갑·을 관계를 형성하고, 이것이 공모전 심사 문제와 성권력까지 확장되어 영향을 미치는 실태. 그리고 개인전을 열기 위한 비용적 문제 등을 살펴봤습니다.

미술계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목소리를 내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시도 또한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대안 모색 중심으로 자유로운 표현양식을 존중해주는 대안공간’의 등장과 ‘창작촌 중심으로 지역문화 활성화에 기여한 창작스튜디오’의 출현 등이 그 시도에 해당하겠습니다. 대안 공간과 창작스튜디오가 작가 중심의 등용문 역할을 하자 신세대 작가군의 실험적이고 진취적인 작업도 점점 주목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요.

또한 이렇게 발굴된 신진 작가들은 화상이나 화랑, 미술관을 거치지 않고 바로 국제비엔날레에 등단하는 새로운 시스템에도 자연스럽게 편승하고 있습니다. ‘작가-상업화랑- 컬렉터’ 순이 아니라 ‘작가-대안공간 내지 독립큐레이터-국제 비엔날레, 국제 아트 페어’로 등단하는 것이지요. 이는 신인등용문에 대한 미술제도가 바뀌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이로 인해 학연과 인맥 중심의 작가 발굴 현상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하면서 기존 시스템은 점차 그 힘을 잃고 있습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그래도 조금은 희망적인 일입니다.

앞으로 학연이나 인맥 중심이 아닌 온전히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려면 비주류의 비중이 커져 주류의 변화라는 역전된 상황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틀을 깨려는 시도를 계속해서 해야할 것입니다. 또한 대안으로 나온 시스템과 ‘갑질’을 당하는 을의 입장인 작가들에게도 꾸준한 관심을 보낼 필요가 있겠습니다.

  • 김성희, 신진작가 발굴 시스템이 한국 현대미술계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 한국예술경영학회, 예술경영연구 제26집, 2013, p179-214.
  • 최병식, 『미술시장과 경영』 동문선, 1999, p33.
  • 안소현, 『비점성과 비휘발성의 모임들: 문화예술계 성폭력 공론화 이후의 대응』, p97-106.
  • 윤재갑, 대안공간의 발생과 변천사, 『월간미술』, 2월, 2004, p52-53.
  • 박영택, 패러다임의 변화와 3545세대 작가의 오늘, 『월간미술』, 1월, 2003, p60-65.
  • 박영택 외, 『화랑 운영 및 미술품 유통 가이드북』, (사)한국화랑협회, 2019.
  • 국전폐지 20년과 미술대전 현주소, (200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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