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향유하는 경험
크라이테리온 컬렉션

감상 그 이상의 가치
영화 향유 문화의 새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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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면, 영화보다 거대한 향유의 세계가 다가옵니다. 영화에 등장했던 인물들의 선택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도 하고, 관련된 해설을 찾아보기도 하며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여기 영화를 향유하는 것에 진심인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1984년에 설립된 크라이테리온 컬렉션(Criterion Collection)이죠. 이들은 가치 있는 고전, 예술 영화를 발굴하고 이를 고품질로 복원해 세상에 내놓고 있습니다. 이들의 매력은 명작을 복원하는 것뿐 아니라 영화 향유의 경험도 제공한다는 데에 있는데요. DVD에 부록을 도입하는가 하면, 독자적인 커버 아트를 선보여 DVD를 소장하고 싶은 오브제로 만들기도 합니다. 이름 그대로 영화를 소장하고 향유하는 기준(Criterion)을 제시한 기업, 크라이테리온 컬렉션을 소개합니다.


거장의 세계, 고화질로 돌아오다

8과 이분의 일_페데리코 펠리니
이미지 출처: 크라이테리온 컬렉션

크라이테리온 컬렉션은 1984년 설립된 미국의 DVD/블루레이 제작사입니다. 이들은 고전, 동시대 영화를 복원·발굴해 CD로 발매하죠. 특히 잊기 쉬운 고전 영화와 산업의 변두리에 위치하는 예술·독립 영화를 보존하고 복원해 소개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페데리코 펠리니, 오즈 야스지로, 프랑수와 트뤼포, 빔 벤더스 등 고유한 감각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들의 작품을 최상의 화질로 만나볼 수 있게 된 데에는 그들의 공이 큽니다. 국내 작가 중에는 이창동 감독,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 컬렉션을 통해 발매된 적 있습니다.

베를린 천사의 시_빔 벤더스
이미지 출처: 크라이테리온 컬렉션

이들이 복원한 영화는 최상의 퀄리티를 자랑합니다. 복원이란, 필름으로 제작된 아날로그 시대의 작품들을 디지털 버전으로 변환하는 것인데요. 이 과정은 필름이 가지고 있는 거친 질감과 색감을 매끄럽게 다듬어주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크라이테리온 컬렉션은 최첨단 텔레시네(telecine: 필름을 비디오로 변환시켜주는 장치) 장비와 소수의 실력 있는 컬러리스트와 협업해 이 작업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 원작의 감독과 촬영기사 등, 작품을 제작한 이들을 참여시키기도 하는데요. 크라이테리온이 필름 복원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나아가 홈 비디오 시청자들을 고려해 레터박스(letterbox: 영상의 위, 아래에 검은 띠를 삽입해 원본의 화면비를 살리는 기법) 기법을 도입해 영화관에서 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합니다.


영화를 향한 집요함이 만들어낸 향유의 요소들

400번의 구타_프랑수와 트뤼포
이미지 출처 : 크라이테리온 컬렉션

크라이테리온 컬렉션이 영화 콜렉터와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은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영화를 향유하는 경험을 제안하는 이들만의 섬세한 노력과 열정에 있습니다. 이들은 처음으로 ‘스페셜 에디션(Special Edition)’이라는 개념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곳이기도 한데요. 영화의 내용만을 담아 출시했던 기존의 DVD와는 달리, 크라이테리온 컬렉션의 DVD에는 부록(Supplement)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메이킹 필름, 삭제된 장면, 작품 해설, 인터뷰 등 영화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여러 요소들이 삽입되어 있죠. 이 매력적인 구성은 시장의 보편적인 방식으로 자리 잡아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DVD에 공통의 기준으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타락 천사_왕가위
이미지 출처: 크라이테리온 컬렉션

크라이테리온 컬렉션이 자랑하는 또 한 가지 매력은 바로 커버 아트입니다. 이들은 발매되는 모든 작품에 삽입되는 커버를 독자적인 버전으로 제작하는데요. 그래픽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와의 협업으로 작품에 내재된 고유한 세계를 효과적인 이미지 요소로 변환해 냅니다. 이렇게 선보인 커버 아트만을 모아 『Criterion Designs』라는 도서를 출간하기도 했다고요. CD를 구동할 수 있는 장치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지금, 이들이 내놓은 작품들은 소장가치를 지닌 소장품의 반열에 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판권이 만료되어 절판된 작품들은 컬렉터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 것이기도 하죠. 크라이테리온 컬렉션 버전으로 발매된 프랑수와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 그리고 오우삼 감독의 <첩혈쌍웅>이 대표적입니다.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는 향유의 즐거움

크라이테리온 채널
이미지 출처: 크라이테리온 채널

수많은 영화를 취향에 따라 골라볼 수 있는 OTT 플랫폼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크라이테리온 컬렉션 또한 변화를 모색합니다. 이들은 워너브라더스와 합심해 필름스트럭(Filmstruck)을 론칭했으나, 운영 상의 어려움으로 고배를 마시는데요. 그리고 1년 후인 2019년, 이들은 크라이테리온 채널(Criterion Channel)로 팬들에게 돌아옵니다.

VIVRE SA VIE
이미지 출처: 크라이테리온 채널

크라이테리온 채널에서 접할 수 있는 영화는 1,000편이 넘습니다. 이것은 쉽게 접할 수 있는 대형 스튜디오의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이들이 복원한 고전 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독립, 예술 영화를 합친 수입니다. 그야말로 영화광의 낙원인 셈입니다. 여기에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누벨바그의 기수, 장 뤽 고다르 감독과 이란의 영화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는데요. 크라이테리온 채널이 타 플랫폼과 차별되는 것 중 하나는, 거장들의 작품뿐 아니라 그들의 인터뷰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시대를 풍미하던 감독들의 이야기를 경유해 영화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크라이테리온 채널만이 가진 특권이 아닐까요. 이들이 새롭게 선정해 소개하는 영화가 늘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영상 문화를 추동하는 기술과 매체의 발달로 극장으로부터 풀려난 영화는 이제 어디서든 접할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하철에서, 화장실에서, 그리고 침대 안에서 영화를 봅니다. 극장을 나와 극장을 제외한 장소에서 영화를 향유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모든 장소가 극장이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를 향유할 수 있는 순간은 어쩌면 점점 줄어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영화를 향유하는 경험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크라이테리온 컬렉션의 사례는 영화 향유의 경험이 얼마나 다채롭고 즐거운 일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박종일

박종일

차이를 없애버리려는 시도에 반해,
무엇과도 구별되는 세계를 찾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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