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하는 예술
횡단하는 문화

노마드 예술을 통해서 본
집과 고향의 새로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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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정주하지 않고 길 위에서 생을 보내는 유목민(노마드)은 문화와 문화가 만나는 지점을 오가는 중요한 문화전달자였다. 당나라의 화려한 삼채가 바로 그 유목문화의 산물이었고, 신라의 화려한 금제 허리띠 역시 마찬가지다. 유목의 문화 소통 기능은 고대뿐 아니라 현재에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21세기에도 노마드 예술가는 예술의 영역에서 국경을 넘나들며 새로운 횡단의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 그들은 근대적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혼성적 정체성을 통해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탐구한다. 필자는 노마드 예술에서 문화적 혼성성이 만들어내는 ‘집’과 ‘고향’의 새로운 의미를 두 노마드 예술가의 작업 통해 살펴보려 한다.


노마드 예술가가 인식하는
‘집’과 ‘고향’

하늘에서 본 산의 길
이미지 출처: Unsplash

과거의 유목민과 21세기 노마드 예술가는 한 곳에 정주하지 않고 유목하며 그 유목 자체를 삶의 주요한 방식으로 인지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본질적인 차이 역시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바로 그들이 인식하는 ‘집’ 개념이다. 과거의 유목민은 탄생부터 유목하는 존재로 그들에게 ‘집’은 발길이 닿는 모든 곳이자 그들이 속한 공동체다. 그들은 어디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단지 어딘가에 잠시 닿는, 이내 곧 다시 길을 떠날 존재들이다. 그러나 21세기 노마드 예술가들은 대부분 ‘집’에서 출발한 존재다. 그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유목 생활에서 찾아 나가지만, 동시에 떠나온 고향을 가지고 있다. 노마드 예술가는 유목 생활로 정립한 혼성적 정체성을 통해 떠나온 ‘집’과 ‘고향’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고 강조한다. 이는 정주 생활을 유지하는 이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경험이다. 스스로 속해있던 문화에 의문을 표하고, 그 문화가 가진 특수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탐구하는 것은 자신의 문화에서 거리두기를 하는 사람에게만 허락된다.

낙엽이 떨어지고 있는 마당있는 흰색 집
이미지 출처: Unsplash

노마드 예술가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집’과 ‘고향’의 이미지는 결국 작가가 마주한 다른 문화, 새로운 공간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노마드 예술가에게 ‘집’과 ‘고향’은 장소였다가 다시 공간이 되고 다시 장소로 변모하는 곳이다. 장소는 공간과 다른 속성을 가진다. 장소는 경험과 기억을 통해 형성되는 장소감(sense of place)이 지배하는 곳이다. 이런 의미에서 장소는 ‘가치의 중심지’로, 결국 경험과 기억에 묶여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소에서는 기존의 인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과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마치 고향을 떠난 적이 없는 이들에게 고향은 그저 ‘매일 매일 살아가는 곳’일 뿐인 것과 같다. 그러나 누군가 고향을 이탈하는 순간 고향은 삶의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떨어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과거에 속한 ‘공간’으로 변모한다. 고향을 이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심리적 위치를 획득하는 것이다. 노마드 예술가에게 ‘집’과 ‘고향’은 이제 예전과 같지 않다. 그들은 새로운 문화 속에서 자신의 문화를 재평가하고 문화를 교차한다. 이미 길을 떠난 순간, 집은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김수자, 과거를 지고
새로운 곳을 유랑하는 보따리

김수자, “Bottari Truck - Migrateurs”, 2007/2009, Duraclear photographic print in lightbox, 188 x 125 x 16 cm
김수자, “Bottari Truck – Migrateurs”, 2007/2009, Duraclear photographic print in lightbox, 188 x 125 x 16 cm. 이미지 출처: kimsooja.com

1957년 대구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김수자는 현재 뉴욕과 서울 등을 오가며 활동하는 노마드 예술가다. 1991년에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는 그의 작품세계는 이스탄불, 베를린, 모스코바, 바르샤바, 베이징, 파리 등 전 세계 여러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Bottari Truck – Migrateurs” 등의 작품에서 작가는 해외 도시에 한국의 전통 문화인 보따리(Bottari)의 모습을 등장시킴으로 보따리가 가진 이주, 장소, 전치(displacement)의 의미를 강조한다. 그러나 여기서 보따리가 상징하는 것은 단순히 ‘떠남’만이 아니다. 보따리는 짐을 싸기 위해, 즉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만들어지지만, 동시에 보따리는 과거의 추억과 역사가 담긴 낡은 천을 조각조각 기워 만든 것이다. 보따리에는 떠나온 장소의 추억과 역사가 담겨있다. 과거의 기억과 유산을 조각조각 모아 만든 보따리가 결국 그 ‘집’을 떠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아이러니가 작품에 등장하는 21세기 노마드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김수자는 작품에서 ‘보따리’라는 한국적이면서 공예적인 매체를 사용함으로써 서구 중심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소비자본주의 문화 확산에서 탈피하는 세계화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서도호, ‘한옥’과 집의 다시 읽기

서도호, “Bringing Home”, 2010, Mixed media outdoor installation, Commissioned by Liverpool Biennial 2010
서도호, “Bringing Home”, 2010, Mixed media outdoor installation, Commissioned by Liverpool Biennial 2010. 이미지 출처: 리버풀 비엔날레 공식 홈페이지

서도호는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양화를 전공했다.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한 서도호는 현재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활발한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서도호는 유목 생활을 통해 변화한 ‘집’에 대한 인식을 다양한 작업을 통해 나타낸다. 한옥은 작가가 주로 사용하는 소재다. 작가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인 ”Bringing Home”에서는 한옥이 리버풀 시내 한가운데 마치 유성처럼 떨어져 박혀있다. 기존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다른 문화풍경 안으로 재배치된 한옥은 그 길을 걷는 많은 이들에게 ‘집’이 아니라 이질적인 구조물이다. 그러나 작가에게 한옥은 비록 이제 더 이상 그곳에서 살지는 않더라도(작가는 서울에서 한옥에 거주했다.) 분명히 ‘집’으로 인식되는 공간이다. 다만 그에게 한옥은 이제 유일한 ‘집’이 아니라 ‘서울(고향) 집’이다. 작가에게 한옥은 보편적인 의미의 ‘집’이 아니라 ‘고향’이라는 개념을 포함한 장소로 인식되는 것이다. 결국 작품에서의 한옥은 보편적인 의미의 집과 고향으로써의 집, 그리고 이질적인 문화라는 각각 다른 시점과 의미를 전부 포함하게 된다. 서도호는 세계화 속에서 노마드가 어떻게 스스로 장소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지를 조망한다. 그리고 동시에 노마드가 어떻게 유목 공간에서 이질적인 존재로 기능하면서 새로운 문화경관을 창조하는지를 작품의 장소 특정적인 맥락을 통해 드러낸다.


문화는 멈추지 않는다. 문화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계속 자신의 얼굴을 바꾼다. 그런데 우리는 간혹 문화가 시간을 통해 바뀐다는 것은 인지하면서, 다른 문화가 서로 만날 때 또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은 잊어버리는 듯하다. 문화는 통시적이면서 동시에 공시적이다. 문화를 단순히 하나의 틀로 박제하는 것은 문화가 가진 근본적인 힘을 부정하는 일이다. 문화의 역사는 바르게 서술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문화가 반드시 같은 형식으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새로운 문화가 닿는 곳에는 항상 놀라운 것이 탄생했다. 우리는 그러한 문화 횡단의 순기능을 항상 포용하려 노력해야 한다. 노마드 예술가의 작품이 그 가능성을 우리에게 하나의 예시로 보여주고 있다.

  • 이-푸후안, 공간과 장소, 사이, 2020.
  • 경향신문, 보따리로 감싸고 자수로 엮어낸 여성성…공통된 키워드는 ‘관계맺기’(2021.03.30)
  • 김수자 공식 홈페이지(검색일 2022.11.05.)
  • 국립현대미술관 한진해운 박스 프로젝트: 서도호(검색일 2022.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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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예술과 사회, 그 불가분의 관계를 보고 기록하고 탐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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