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인류를 구원하는가

예술을 통해
기술 중심의 역사관 헤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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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인류의 열망은 언제나 진보에 사로잡혀 있다. 성장을 기반으로 확장해나가는 진보는 언제나 끊임없이 팽창해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선사해준다. 이러한 믿음은 무한 증식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와 함께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왔다. 인류는 팽창의 불가능성을 목도해 버렸음에도,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다시 무장하며 전진해 나간다. 믿음이 맹신으로 변모해버리기 전 과거의 미래인 현재를 돌아보아야 한다. 과연 지금은 과거의 우리가 꿈꾸던 미래일까. 우리가 바라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가려진 미래를 들추어 보기

서기 2000년의 한국 상상도
도판 1) 서기 2000년의 한국 상상도(『동아일보』, 1970.1.1.) 이미지 출처: 동아일보

미래가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보기 전에 우리가 미래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눈을 감고 10년, 20년 훨씬 그 이후의 시간을 그려보자. 공상과학 영화에서 그려지던 하늘을 나는 자동차, 스마트 칩이 인식된 신체, 우리의 삶을 편하게 해주는 인공지능 로봇 등. 우리가 상상하는 근미래는 대부분 과학기술로 윤택해진 개개인의 삶이 그려질 것이다. 실제로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삶은 언제나 더 편리해지고 있으며, 그 어느 때보다 소통이 원활해진 시대로 진입하였다. 어쩌면 기술의 진보가 우리에게 근사한 미래를 선사해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근사한 미래를 판단하는 기준이 어디에서 발단된 것인지 되짚어볼 필요는 있다. 본 아티클은 미래 담론이 기술 중심/의존적인 사실을 주목하고 동시대 작가들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미래에 무엇을 담보해놓았는지 진단해보고자 한다.

『이코노미스트』 (2010.1.16.-22주차 호)
도판 2) 『이코노미스트』 (2010.1.16.-22주차 호) 이미지 출처: 이코노미스트

1970년 1월 1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서기 2000년의 한국 상상도”(도판1)를 보자. 기술적인 것들로 가득 찬 이 상상도에서는 고속도로가 촘촘히 연결된 도시의 모습이, 항공과 해상에서 자유로이 경제활동을 하는 도시인의 삶이 반영되어 있다.¹ 이와 함께 2010년 초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판2)의 표지를 보면, 스티브 잡스가 오른손에는 아이패드를 경전처럼 들고 있는 종교적 도상을 차용한 모습을 볼 수 있다.² 미래에 도래할 기술이 인류의 삶을 지탱해줄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을 양산하는 이미지들은 우리가 어떤 미래를 기다려야 하는지 학습하게 한다.

이처럼 기술이 세상을 바꾼다는 기술 중심의 역사관, 미래관은 기술결정론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역사를 서술해나가는 방식이나 사회의 변화를 기술이 결정짓는다는 사고의 기반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사고를 골자로 한 기술 중심의 미래사회 담론은 기술이 발전하면 자연스럽게 사회도 진보한다는 기술결정론적 믿음에 근거하고 있지만, 기술과 사회의 관계는 이렇게 단선적이지 않다.³ 발전의 그늘에 가려진 미래를 들추어 보는 작품들을 통해 단선적이지 않은 이들의 관계를 짚어보고자 한다.


기술을 낯설게 바라보기

IT 미래학자인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가 말했듯 “기술은 우리가 기술에 길들여질수록 우리에게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기술에 길들여질수록 우리는 그 익숙함에 속아 분별할 수 있는 감각이 무뎌지게 된다. 가려진 미래를 들추고 기술과 사회와의 관계를 조망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낯설게 바라보는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익숙함을 잠시 뒤로 하고 길들여져 인지하지 못했던 기술의 이면을 들여다 보자.

202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 《히토 슈타이얼 – 데이터의 바다》(2022)를 선보인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은 디지털 기술, 자본주의의 세계화 등의 상황에서 첨예하게 대두되는 사회, 문화적 현상에 대한 흥미로운 논점을 제시한다. 전시작이었던 <미션 완료: 벨란시지>(2019)(도판 3)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 발렌시아가의 상업적 전략을 기반으로 정치, 문화, 포퓰리즘에 대한 성찰을 촉구한다. 여기서 ‘발렌시지’는 ‘발렌시아가적 방식’을 일컫는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의 용어로 ‘패션 데이터’가 정치, 선거, 대중문화에 깊이 영향을 끼치는 사회현상을 추적하고 이들의 전략을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 조망한다.

히토 슈타이얼, <미션완료: 벨란시지>, 2019, 영상 스틸컷
도판3) 히토 슈타이얼, <미션완료: 벨란시지>, 2019, 영상 스틸컷, 이미지 출처: 히토 슈타이얼, 조르지 가고 가고시츠, 밀로스 트라키로비치

마크 피셔(Mark Fisher)가 언급했듯 자본주의가 유일하게 유지 가능한 체계라는 오늘날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부분적으로 자본주의가 이전의 모든 역사를 포섭하고 소비하는 그 방식”에서 비롯된다. 작품은 모든 것을 포섭해버리는 다국적 자본주의 아래 작동하는 ‘소셜 미디어’라는 소통의 기술은 무기화된 문화적 내러티브를 양산해내며, 개개인이 자본의 욕망이 함축된 상품 이미지의 유통을 무급으로 실어 나르는 사회현상을 고찰한다.

이영주, <리자디언들>, 2021, 영상 스틸컷
도판4) 이영주, <리자디언들>, 2021, 영상 스틸컷, 이미지 출처: 탈영역우정국

이처럼 자본에 철저히 예속된 기술은 그 교묘함과 치밀함으로 인해 이면을 들여다보기 어렵게 한다. 이영주의 <리자디언들>(2021)(도판4)은 소비자로서 자주 사용하며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제품들의 생산과 판매 과정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작품으로 인류의 혁신적인 삶을 위해 배제되었던 기술의 이면을 다룬다. 작품은 도룡뇽의 사지 재생 유전자를 인간과 합성한 기술이 상용화된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 3채널의 3D 애니메이션으로 도룡뇽의 뛰어난 재생능력을 활용한 인간의 몸을 미용 혹은 건강 증진 제품으로 제조하고 판매하는 근미래를 다룬다. 작품 속 기업들은 소비자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심어주지 않도록 소비 환경에서 상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윤리적인 측면을 제거하며 생산과 소비의 영역을 철저히 분리하려 노력한다. 작품은 자본에 의해 배제되었던 기술의 윤리적인 측면을 드러내며, 이와 함께 교묘하게 현대사회에 만연한 예술과 자본의 공모관계를 드러낸다.


지속(불)가능한 미래를 위해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키워드에 사로잡힌 요즘, ‘지속가능’이라는 용어의 유행에 대해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인류의 경제활동이 지구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지만, 성장에 제동을 걸기엔 두려운 게 현실이다. 환경학자 요한 록스트룀(Johan Rockström)의 연구팀은 지속가능한 경제로 대전환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추가적인 환경 부하가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지 않도록 2009년에 ‘지구 한계(plantetary boundaries)’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지구 한계는 기술 혁신과 효율화를 진행하기 위한 목표치를 설정하기 위함이었는데, 록스트륌은 10년 후인 2019년 “녹색 성장이라는 현실도피” 논문을 발표하며 ‘경제 성장’ 또는 ‘기온 상승 1.5도 미만 억제’ 중 하나밖에 선택할 수 없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였다.

피할 수 없는 기후위기의 도래 역시 우리가 맞이하게 될 미래다.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는 미래가 아닌 우리의 실천을 촉구하는 미래이기 때문에 이 미래는 쉽게 외면받는다. 이제 불편함을 견딜 수 없어진 인류는 더욱 선진화된 기술로의 이행이나 대체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또 다른 성장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하지만 내연기관차보다 친환경적이라 각광 받는 전기차 역시 배터리 생산과 폐기과정에서의 환경오염이 발생하는 것처럼 기술로 인한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에 기술에서 비롯된 문제를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오만은 경계해야 한다.

파레틴 오렌리, <도시 유전자 The Gene of Cities>, 2022, 영상 스틸컷
도판5) 파레틴 오렌리, <도시 유전자 The Gene of Cities>, 2022, 영상 스틸컷. 이미지 출처: 대안공간 루프

일본의 마르크스주의 생태학자 사이토 고헤이는 그의 저서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2021)에서 자본주의의 세계화 아래 주변부의 약탈이 중심부의 환경 보호를 위해 자행되는 현실을 지적한다. 2022년 대안공간 루프에서 개인전 《도시 유전자 → 버블 인 더 마인드》을 선보였던 파레틴 오렌리(Fahrettin Örenli)의 영상 작품 <도시 유전자>(2022)(도판5)는 선진국의 사회 시스템의 흐름을 다룬다. 작가는 런던에서 출발하여 암스테르담을 거쳐 서울에 도착하여 터져 나가는 정자들의 유동적 흐름을 가시화하여 세계 자본의 흐름과 이를 둘러싼 가부장적 연대를 은유한다. 이와 함께 서유럽 국가에서의 삶이 더 친환경적이라고 여겨지는 이유가 자원 채굴이나 쓰레기 처리 같은 자본주의 경제 발전에 따라오는 부정적 부산물을 글로벌 사우스의 개발도상국에 넘긴 결과에서 비롯됨을 보여준다. 작가는 가부장제 식민주의가 여전히 팽배한 현재의 사회를 직시하여 우리가 함께 나아가야 하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촉구한다.


다가올 미래를 위해 인류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의 검토가 필요한 지금, 어느때보다 진정한 ‘지속가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기술과 자본의 관계를 돌아보고 기술 진보적인 사고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고로의 이행을 촉구하는 작가들의 시선을 통해 무한한 소유는 지속 불가능함을, 유한함을 인정하였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지속 가능함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1. 전치형, 홍성욱, 『미래는 오지 않는다』(서울: 문학과지성사, 2019), 79-80 참고
  2. 전치형, 홍성욱, 앞의 책, 164-165 참고
  3. 전치형, 홍성욱, 앞의 책, 88-89
  4. 니콜라스 카, 『유리감옥』, 이진원 옮김, (서울:한국경제신문 한경BP, 2014), 300
  5. 마크 피셔,『자본주의 리얼리즘』, 박진철 옮김(서울: 리시올, 2018), 15
  6. 사이토 고헤이,『지속 불가능 자본주의』김영현 옮김(경기: 다다서재, 2021), 63
  7. 사이토 고헤이, 앞의 책, 65
  • 니콜라스 카, 『유리감옥』, 이진원 옮김, (서울:한국경제신문 한경BP, 2014)
  • 대안공간 루프, 《파레틴 오렌리 개인전: 도시 유전자 → 버블 인 더 마인드》 전시 서문 참조 (2022.12.7. 접속)
  • 마크 피셔, 『자본주의 리얼리즘』, 박진철 옮김(서울: 리시올, 2018)
  • 사이토 고헤이,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김영현 옮김(경기: 다다서재, 2021)
  • 전치형, 홍성욱, 『미래는 오지 않는다』(서울: 문학과지성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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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희연

느리지만 가치 있는 발걸음들에
발맞추어 걷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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