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정치

중립적인 예술은
존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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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세계와 얼마만큼 가깝고, 얼마나 멀리에 있을까? 복잡하고 조잡한 세상, 소음과 얼룩이 엉겨 붙은 세상과는 동떨어진 것일까? 예술이 순수한 완전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은 때때로 날 선 목소리로 되돌아온다. 정치색이 짙은 회화,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음악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엇갈린다. 예술가 개인의 표현을 응원하는 쪽과 예술로 선동하지 말라, 예술에 정치를 담지 말라는 비판이 함께 쏟아진다. 과연 예술과 정치는 완전히 분리될 수 있을까? 그리고 둘을 떨어뜨려 놓는 것이 이상적인 길일까?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그 자체로 온전한 예술은 가능한 것일까? 이 이야기에 불편함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예술가, 정치를 품다

예술로 애도하는 사람들

예술과 정치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말한 예술가들이 있다. 오히려 그들은 정치적인 영역 깊숙이 파고든다. 국가적 재난, 사회적 참사의 현장 가까이로 다가가 이야기를 발굴하고, 작품으로 표현한 이들이다. 이럴 때 예술은 재난과 정치적 사건을 증언하고 발언하는 역할을 한다.

이태원 참사 49재
이태원 참사 49재, 이미지 출처: 가수 하림 인스타그램

지난 12월 16일, 이태원 참사 49재를 맞아 시민 추모제가 열렸다. 종교계와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추모가 이어졌다. 그 현장에는 가수 하림과 아카펠라 그룹 아카시아, 무용가 김민선·최승은 등이 함께했다.

하림은 이태원 참사 추모제에서 공연을 통해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는 소식을 SNS로 공유하였고, 이후 많은 메시지를 받았다고 전한다. 특히 ‘대중음악가로서 중립을 지키지 않는’ 모습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에 대해 의사를 밝혔다. ‘어느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손을 잡은 것입니다. 추운 곳에서 가족을 잃은 슬픔에 울고 있는 사람들의 손을요. 정확하게는 제가 했다기보다 제가 부른 노래가 손을 잡을 것이겠지요.’라는 그의 말에서 삶에서 음악, 나아가 예술이 주는 위안과 희망을 떠올리게 된다. 예술이 정치와 맞닿을 때, 예술은 형형한 빛으로 순간을 포착하고, 그 시간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온기를 전한다.


폭력의 시대에 저항하는 예술

다른 각도에서 이태원 참사를 바라본 예술가들이 있다. 《상실사진》에 참여한 작가들은 사진으로서 10.29 참사를 추모한다. 참사가 발생한 순간부터 SNS를 통해 무분별하게 퍼져 나간 현장의 이미지와 영상물은 많은 이를 충격에 빠트렸다. 희생자에 대한 2차 가해이자,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맞닥뜨린 다수에게 또 다른 폭력을 가한다.

주용성, “영결식"
주용성, “영결식”, 이미지 출처: 아트바바

사진가들은 이러한 ‘이미지의 폭력성’에 낙담하면서도 시대와 사건을 말하고, 연대와 애도의 뜻을 표현하는 길 또한 이미지임을 기억한다. 이태원 참사를 포함해 세월호 참사, 산업재해 등을 주제로 한 사진 작업이 이어졌다. 사진작가를 비롯, 시사IN의 사진팀이 참여한 사진 프로그램으로, 예술이 어떤 형태로 애도를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상실사진》을 기획한 사진가 황예지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의 현장을 사진으로 담기도 했다. 범죄인 인도법(송환 법)에 반대하며 시작되어 중국의 정치적 개입에 저항하며 확대된 시위였다. 작가는 카메라를 들고 시위 현장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다양한 연령과 성별의 사람들이 함께 목소리를 높이는 시위대 안에서, 피로에 지친 경찰의 곁에서 순간을 담는다.

황예지, 홍콩 시위 현장
황예지, 홍콩 시위 현장, 이미지 출처: 보스토크

시위의 참상과 간절함을 담은 사진은 사진 전문지 『보스토크』 매거진 19호에 담겼다. ‘홍콩: 지금 혹은 전혀(Now or Never)’를 주제로 황예지를 비롯한 사진작가와 인문학자가 홍콩의 현재를 그렸다. 그의 사진을 통해 시선은 집단에서 개인으로 좁혀져 간다. 정치적 시위를 뉴스로 접할 때, 우리는 시위대와 정부, 불특정한 다수가 모인 집단 대 집단의 갈등을 본다. 그 속에서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거대한 이미지를 소비한다. 하지만 사진은 현장의 구석구석을 비춰 그 안의 사람들을 보게 한다. 분노와 원망, 용기와 의지, 다양한 감정이 출렁이는 것을 바라보며 사람 대 사람으로 공감하게 된다. 뉴스의 보도사진과는 다른, 참사와 재난의 현장을 담은 사진 작품의 역할 또한 느껴졌다.


대중, 예술로 정치를 말하다

우리는 모두 정치를 노래한 적이 있다

예술로 정치를 말하는 건 예술가들만의 영역은 아니다. 예술가가 아닌 일반 대중, 다수의 사람들도 정치를 노래해 본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탄핵을 요구하는 등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하는 시위의 현장에서 음악은 흔히 흘러나온다.

이화여대 시위 현장
이화여대 시위 현장, 이미지 출처: 조선일보

2016년 이화여대 시위가 대표적이다. 당시 미래라이프대학 신설을 반대하며 학내 비리를 폭로하며 시작된 시위는 정권과 연루된 이면이 밝혀지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까지 이어졌다. 학생들이 정치적 시위의 주체가 되어 보인 자발성과 적극성은 사회 전체에 큰 물결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대학 본관에서 농성하며 경찰과 대치한 순간, 학생들의 선택은 길이 남을 순간을 탄생시켰다. 그들은 폭력을 행사하거나 뛰어드는 대신, 서로의 팔짱을 끼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함께 불렀다. 그 모습은 SNS를 타고 수많은 이들에게 전해졌다. 질서를 유지하고 두려움을 걷어내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고 말했다.

그들은 함께 부르기 위해 모두가 아는 곡, 현실의 벽에도 용기와 희망을 안기는 노랫말을 지닌 노래를 택했다.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 말고, 눈앞에 선 우리의 거친 길, 알 수 없는 미래와 벽이지만 바꾸지도, 포기하지도 않는다고 노래했다.

정치적 현장에서, 시위의 현장에서 사람들은 왜 자발적으로 노래를 만들고 부를까? 음악은 말로 발화하는 것과는 다른 힘이 있다. 같은 뜻으로 같은 노래를 부를 때, 의미는 강화되고 목소리는 선명해진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긴장감을 완화하고, 분명한 의사를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홀로의 주장이 아닌, 한마음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술은 예술가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도 정치적인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통로가 된다.


지워지는 예술

참사와 재난 속 예술은 어떤 모습을 해야 하는가

반면, 반대로 예술이 정치적 현실을 반영하지 않았다고 비판받은 사례도 있다. 정치적 혼돈이 가중되는 때에, 예술은 어떤 모습을 해야 하는가. 사회적 분위기를 담지 않았다는 질책에는 예술은 마땅히 이래야 하는 것이라는 규정과 고정관념이 새어 나온다.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4 포스터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4 포스터, 이미지 출처: 민트페이퍼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음악 페스티벌 ‘뷰티풀 민트 라이프’(이하 ‘뷰민라’)가 행사 전일 돌연 취소됐다. 공연장인 고양문화재단의 일방적 통보로 희생자와 유가족의 슬픔을 뒤로한 채 행사를 진행할 수 없다는 사유였다. 행사가 취소된 당일 오전, 고양시장 선거를 앞둔 후보자가 ‘세월호 통곡 속 풍악놀이 웬 말인가’라는 제목으로 성명서를 내 공연 취소를 강력히 주장하기도 했다.

행사를 바로 앞에 둔 시점, 급작스러운 통보식 취소는 스태프와 아티스트를 비롯해 음악을 사랑하는 다수를 충격에 빠트렸다. 많은 희생을 불러온 비극에 슬퍼하고 추모하는 분위기임은 맞다. 그러나 하던 일을 모두 일시 중지한 후 묵념에 잠기는 것만이 애도의 표현이었는지, 과연 의문이 든다. 음악, 나아가 예술은 일상에 기쁨과 즐거움을 더하는 것이지만, 슬픔을 표출하고 상처를 보듬어주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고양시장 후보자의 말과 고양문화재단의 수직적 대처에서 예술의 역할에 대해 반문하게 되었다. 이는 관객을 포함해 페스티벌에 참여하려던 모든 이들에 대한 차별과 공격이기도 했다. 그들은 한순간에 국가적 애도 기간임에도 자기만의 즐거움을 위해 음악과 축제를 즐기는, 사회에 무관심한 이로 전락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예술의 장르 간 차이, 정확히는 차별이 여실히 드러났다. 교양 있는 문화생활인 클래식과 뮤지컬 공연은 되고, 다수의 대중이 즐겨보는 드라마와 영화도 되는데, 음악 페스티벌과 축제는 안 된다는 말에는 분명한 차별이 있었다. 예술에 급을 나누고, 대중음악과 공연은 한 등급 낮은 것으로 생각하는 시선이 담겨 있었다. 어떤 예술은 정치적인 상황을 담는다고 비판받고, 어떤 예술은 그 상황에 완전히 지워지기도 한다.


다시금 처음 질문을 되새겨본다. 예술은 정치와 떼어낼 수 있는가? 예술은 온전히 정치 중립적일 수 없다. 사회 속 다양한 분야가 정치에 영향을 받듯, 예술도 마찬가지다. 양극단에 있는 것처럼 다르게 느껴지는 예술과 정치이지만, 둘은 늘 맞닿아 있다. 상호 작용하면서, 함께 호흡하면서 나아간다.

예술이 반드시 정치를 담아내야 하는가 묻는다면 답은 아닐 것이다. 반대로 절대로 정치 이야기를 금기처럼 다루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정답은 없는 질문이지만, 정치적으로 자유로이 의사를 표현할 자유가 있는 것처럼, 예술 또한 그렇다. 이제 일상 속에서, 뉴스를 통해, 세계 어느 곳에서 예술과 정치가 함께하는 것을 볼 때면 이전과는 다른 느낌일 것이다. 아주 가깝기도, 완전히 멀기도 한 둘 사이에서 어색함보다는 자연스러운 융화를 느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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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
삶을 깨트리는 예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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