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인 티보가 그린
황홀한 디저트의 세계

평범한 일상의 사물에
우아한 숨결을 불어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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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로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지루했던 기분마저 순식간에 끌어올리는 마법 같은 음식. 달콤한 디저트를 좋아하시나요? 입이 얼얼할 만큼 달아 이내 질려버린다고 해도, 먹음직스러운 모양새는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데요. 디저트에 매료되어 한평생을 몰두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독보적인 화풍으로 정통 회화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구한 미국의 화가, 웨인 티보(Wayne Thiebaud)입니다.


만화가를 꿈꾸던 캘리포니아 소년

이미지 출처 : Artnet News

1920년 미국 애리조나 출생의 웨인 티보는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만화가를 꿈꾸던 중학생 소년은 디즈니 스튜디오 애니메이션 부서에서 견습생으로 일할 만큼 어려서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였죠. 작품 소재 대부분은 유년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디저트와 아이스크림을 파는 카페에서 일을 하기도 했는데, 디저트를 향한 사랑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웨인 티보, “Tulip Sundaes”, 2010,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웨인 티보, “Jolly Cones”, 2002, 이미지 출처: Crocker Art Museum

그는 2차 대전 시기 훌륭한 그림 실력으로 공군에서 포스터나 만화를 그리며 복무했고, 제대 이후에는 광고 아트 디렉터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습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미대에 진학한 건 30세가 가까워졌을 무렵이었죠. 상업 미술에서 순수미술로 관심을 돌린 그는 1960년대 무렵 디저트를 그리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1962년 뉴욕에서 열린 첫 전시에서 모든 작품이 팔렸고, 미국 유명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함께 최초의 팝 아트 전시회에서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죠.

현대미술 사조나 유행에 무심했던 그는 정통 회화에 화려한 색채를 조합하여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해 나갔습니다. 만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한 경험은 사물을 단순하고 구조적으로 인식하고 접근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죠. 뚜렷한 선과 선명한 색으로 묘사된 대상은 만화에서 튀어나온 캐릭터나 아이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외롭지만 달콤한 현대 사회를 관조하다

웨인 티보, “Pies, Pies, Pies”, 1961, 이미지 출처: Smithsonian Magazine

웨인 티보의 작품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직관적입니다. 달콤한 조각 케이크부터 겹겹이 쌓인 파이, 초코가 입혀진 도넛은 눈앞에 실제로 존재하는 듯 생생합니다. 머랭은 갓 쳐낸 듯 폭신폭신하며 빵 표면을 골고루 덮은 생크림은 도톰한 질감이 느껴질 만큼 입체적입니다. 부드럽고 화사한 색감은 캘리포니아의 찬란한 햇빛을 머금은 듯 반짝거리죠.

웨인 티보, “Three Machines”, 1963, 이미지 출처: Flickr

대량 생산된 공산품이 작품의 주요 소재였으며 밝은색을 즐겨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는 팝 아티스트로 분류되기도 하는데요. 그의 작품은 회화 특성을 더 많이 지니고 있습니다. 앤디 워홀이 작가의 개성을 배제하고 공장에서 찍어낸 듯 매끈하고 기계적인 작업을 추구했다면, 웨인 티보는 수작업을 통해 정교하고 세심한 붓 터치로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그는 임파스토 기법을 주로 활용했는데, 이는 캔버스에 많은 양의 물감을 두텁게 바르는 유화 기법의 하나로 빛을 반사하는 질감을 증대시켜 그림을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들어 줍니다.

자본주의와 소비지상주의를 비판하고 풍자했던 여타 팝 아티스트와 달리 웨인 티보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담아내는 데 집중했습니다. 작품에서는 1960년대 미국 사회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데요. 그는 눈부신 성장 뒤 감춰진 외롭고 쓸쓸한 현대인의 고독을 다루면서도, 한없이 달콤한 현시대를 향해 느끼는 양면적인 마음을 담아냈습니다. 그는 일상을 완벽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포토 리얼리즘의 선구자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평범한 이 시대의 사물, 예술이 되다

웨인 티보, “Dessert Circle”, 1992-1994, 이미지 출처: Artsdot
웨인 티보, “Cold Case”, 2010-2013, 이미지 출처: Hyperallergic

“웨인에게는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종종 그냥 지나치고, 더구나 예술의 주제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찾아내는 천부적인 재주가 있다.”

_미술 평론가 빅토리아 달키

쇼윈도 안 디저트와 가판대의 핫도그, 아이스크림, 구두, 때론 페인트 통까지. 이들은 오랫동안 그림의 소재로 취급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웨인 티보는 주변에 흔히 널려 있는 관습적인 재료를 캔버스 위에 대담하게 올려놓음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일상의 사물은 비로소 그의 손끝에서 낯설고도 특별한 존재감을 뽐내며 빛나게 되죠. 그는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그림을 완성하곤 했는데, 과거에 대한 향수와 애틋한 낭만이 작품에도 어렴풋이 배어있는 듯합니다.

웨인 티보, “Ripley Street Ridge”, 1976, 이미지 출처: Sothebys

1970년대 무렵 그는 고향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도시 풍경화를 작업하기 시작합니다. 한평생을 살아온 도시에 머물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가죠. 도로 위 자동차는 거대한 건물에 비해 장난감처럼 작아 만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지며, 꽉 막힌 답답한 고속도로 풍경은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우리의 일상과도 겹쳐 보입니다.

웨인 티보는 미국 사회의 단면을 가감 없이 포착했다는 점에서 미국적 리얼리즘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곤 합니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 엄마 손을 꼭 잡고 방문했던 케이크 가게를 떠올릴 것이고,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도시 경관을 보며 과거를 그리워하게 될 테니까요. 그의 작품은 우리가 처한 환경을 직시하게 만들고 사라진 것들의 진가를 실감하게 만듭니다.


빛과 공간, 컬러, 그리고 철학을 기반으로 사물의 본질을 탐구했던 거장, 웨인 티보. 그는 60여 년간 시류를 쫓지 않고 우직하게 자신만의 화풍을 갈고 닦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정년퇴임 이후에도 보수 없이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90세가 훌쩍 넘는 나이에도 매일 스튜디오에 출근하여 작업을 이어 나갔다고 합니다.

2021년 101세의 나이로 눈을 감은 웨인 티보. 그림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이 되길 바란다는 말을 남긴 그는 미국 한 시대를 상징하는 역사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 한때는 특별한 것 없던 일상의 풍경은 이제 그의 작품으로 영원히 박제되어 반짝이며 기억되고 있습니다.

  • 웨인 티보, 『달콤한 풍경 Delicious Metropolis』, HB PRES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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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

좋아하는 게 많은 사람.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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