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용 전시는
나쁜 걸까

인증하고 공유하는 시대
전시가 나아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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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전시회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유명 전시는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되는 티켓팅 전쟁이 한창이다. 소량의 현장 판매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 맛집 앞에 줄을 서듯 미술관 앞에 인파가 가득 몰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이토록 간절하게 전시를 보고 싶어 할까? 일상을 벗어나 예술 작품 앞에 느끼는 감흥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뿐이라 하기엔 어쩐지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화려하고, 전시장은 소란하다. 멋진 옷을 입고 예쁘게 꾸민 모습의 관객들, 전시장 가득 울리는 카메라 셔터 소리. 오늘날 우리는 작품만을 보기 위해 전시회에 가지 않는다. 아름다운, 고상한, 난해한 작품 앞의 나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전시회에 간다. 그에 발맞춰 컨셉부터 사진 찍기 좋고, 포토존과 관련 프로그램도 마련한 전시가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전시에 관객들은 열렬히 호응하고 있지만, 깊이 있는 예술이 아니며 한국 예술의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는 비판도 쏟아진다. 그렇다면 일명 ‘인스타그램용 전시’는 나쁜 걸까? 그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고 느껴야 할까?


인스타그램을 위한 전시의 역사

1) 대림미술관, 디뮤지엄의 등장

처음부터 전시회가 사진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화이트 큐브’라는 말처럼 백색의 공간, 무겁게 내려앉은 분위기 속 전시회는 함부로 다가가기 어려운 장소였다. 그러나 좀 더 가볍고, 말랑하며,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주제와 구성으로 전시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춘 미술관이 있다. 바로 대림미술관이다.

한림미술관
이미지 출처: DL 그룹 공식 웹사이트

대림미술관은 DL 그룹(구 대림그룹)이 설립한 한국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인 한림미술관에서 출발했다. 그 영향으로 초창기 사진전 위주의 전시를 선보였는데, 당시 다른 미술관에선 금지했던 사진 촬영을 허용하고, 나아가 인증샷, 인생샷 남기기를 추천하는 마케팅으로 입소문을 탔다.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사진가 라이언 맥긴리 등 유명인의 사진 앞에서 나의 모습을 담을 수 있다는 매력은 미술관이 어렵게 느껴지던 관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와 함께 전시 공간에서 파티, 콘서트, 플리마켓 등을 열어 미술관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일방향적으로 작품을 관람하는 것을 넘어 직접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는, 부담 없고 흥미로운 공간으로 브랜딩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SPATIAL ILLUMINATION - 9 LIGHTS IN 9 ROOMS≫ 전시
≪SPATIAL ILLUMINATION – 9 LIGHTS IN 9 ROOMS≫ 전시, 이미지 출처: 동아일보

이를 토대로 신진 작가를 지원하는 ‘구슬모아당구장’과 폭넓은 체험형 전시를 선보이는 ‘디뮤지엄’을 오픈했다. 특히 디뮤지엄의 개관 특별전 ≪SPATIAL ILLUMINATION – 9 LIGHTS IN 9 ROOMS≫는 빛을 소재로 사진 찍기 좋은 컨셉과 구성으로 누적 관람객 26만 명을 달성했다. 주목할 점은 전체 관람객 중 20대 비중이 68%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SNS 공유문화가 확산되던 시기와 맞물려 거둔 성공임이 분명했다.

2) 대세로 자리잡은 인스타그래머블 전시

대림미술관의 성공은 예술계와 전시 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은 작가의 철학과 예술관이 담긴 무게감 있는 전시가 대부분으로 그것만이 정답처럼 느껴졌다면, 이제는 관객 친화적인 전시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이러한 대림미술관의 성공을 따라 더 쉽고, 재미있는, ‘힙한 공간’인 미술관들이 새로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라운드시소 전경
그라운드시소 전경, 이미지 출처: 브리크 매거진

그라운드시소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 처음 반 고흐 미디어아트를 선보인 미디어앤아트에서 설립한 미술관으로 다가가기 쉽고 직관적인 전시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요시고 사진전: 따뜻한 휴일의 기록≫ 전시는 폭발적인 성공을 거뒀다.

요시고, “Mallorca, Spain”
요시고, “Mallorca, Spain”, 이미지 출처: 미디어앤아트

스페인의 사진작가 요시고는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사진들로 스타가 되었다.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그는 구도와 색감, 사진 전반에 그래픽 요소를 가미한 작품을 선보인다. 요시고는 사진을 찍고 업로드하는 누구나 사진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그의 작업물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건 트렌드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놓쳐선 안 되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piknic 전경
piknic 전경, 이미지 출처: 현대건설

또 다른 관객 체험형 전시 공간으로 떠오른 곳은 ‘피크닉’이다. 높은 언덕 깊숙이, 찾아가기 힘든 위치에 있음에도 기획 전시마다 많은 관심을 받으며 SNS 피드를 가득 채우는 공간이다. 과거 제약회사였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옛것과 현대의 것이 적절히 뒤섞인 외부부터 ‘힙’함을 자랑한다. 전시장을 채우는 음악과 함께 작품을 관람하고, 옥상에서 차를 마시거나 작품 속 우산을 쓰고 사진을 찍는 등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요소들이 특별하다.


인스타그래머블 전시의 영향

1) 긍정적 영향

이처럼 전보다 가볍고 접근하기 쉬운 전시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지닌다. 가장 먼저, 예술 작품과 전시의 주제, 장르가 더 다양해진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전시, 특히 흥행 전시는 전통적인 미술관에서 기획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명 작가 혹은 유명한 사조의 작품을 다룬 전시들이 많았다. 이러한 기획전들은 ‘전시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형성했다. 오랜 역사와 깊이를 지녀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위대한 작가와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반면 최근에는 인증 문화에 적합한 새로운 장르가 떠오르고 있다. 미디어 아트가 대표적이다. 반 고흐, 모네와 같은 유명 화가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재탄생한 전시들이 인기를 끌었다. 미디어 아트사 디스트릭트의 아르떼뮤지엄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몰입형 미디어 아트’라는 이름 아래, 어두운 공간에서 미디어 아트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가 자연과 우주를 경험하고, 이를 나만의 사진으로 남기는 경험은 고유하다. 이러한 작품들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인증 문화와 함께 더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아르떼뮤지엄
이미지 출처: 아르떼뮤지엄 공식 웹사이트

두 번째 장점은 전시의 진입장벽을 낮췄다는 점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그동안 미술관은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예술의 대중화, 전시의 대중화를 위해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대중은 여전히 난해하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는 미술관에 심리적 허들을 느끼고 있었다.

반면 사진을 찍고, 인증하며 가볍게 즐기는 전시회들은 전시와 예술에 대한 편견을 깨뜨렸다. 수동적으로 작품 앞에 서서 감상하는 행위에서 한발 더 나아갔기 때문이다. 이 공간들은 공통적으로 관객의 직접적인 참여를 중요하게 부각했다. 만져보고, 누워보고, 작품의 일부분이 되어보기도 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향유하는 경험을 제공했다. 이 점에서 전시회에 대한 허들을 낮추고, 예술의 의미를 확장하기도 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코미디언”
마우리치오 카텔란, “코미디언”, 이미지 출처: 아이즈매거진

나아가 미술관과 지역이 상생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시회가 하나의 ‘힙한 문화’가 되면서 많은 관객이 몰려들었고, 이는 곧 주변 상권에 활기를 불어넣는 일이기도 했다. 최근 화제의 전시 리움미술관의 ≪마우리치오 카텔란: WE≫ 전시가 그러했다. 반항적인 감각으로, 선을 넘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유머로 풀어낸 설치, 조각, 사진 등의 작품은 수많은 인파를 끌어들였다. 이에 이태원 참사 이후 침체한 인근 상권에 활기를 부여했다.

2) 부정적 영향

반면, 가볍고 인스타그래머블한 전시는 부정적 측면도 지니고 있다. 먼저 깊이 있는 철학을 담은 예술 작품을 생산하고, 관람할 기회를 제한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미디어아트, 설치미술 등 새로운 장르가 부흥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많은 주목을 받는 일부 장르 위주로만 전시가 지속될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하는 전시기획사, 미술관 및 갤러리는 관객이 반응하고, 궁금해하는 주제와 장르를 탐구하게 된다. 활발한 SNS 인증 문화는 전시회의 성공 기준과 목표를 고민하게 한다. 인증샷을 찍기 좋은 전시, SNS에 공유하고 싶은 전시, 예쁜 굿즈로 다녀온 사실을 자랑하고 싶은 전시, 이러한 기준으로 전시회의 성공을 판가름하게 될 때 예술의 다양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SNS 포스팅용 전시에 대한 인기로 이를 적극 반영해 등장한 문화 공간들은 더욱 그렇다. 새로운 예술을 발굴하기보다 상업적으로 성공할 만한 주제에 집중하고, 마케팅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되면 폭넓은 인간의 감정, 가치, 윤리와 삶을 탐구할 있는 예술을 향유할 있는 기회는 줄어든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또 하나, 과도한 인증샷 촬영은 관람 문화를 해칠 수 있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관람하고 싶은데 너무 과하게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로 인해 방해받았던 적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작품의 크기가 작거나, 특정한 각도에서만 볼 수 있도록 설치된 경우엔 작품 자체를 제대로 보기가 어렵고, 촬영 소음으로 인해 집중이 깨지기도 한다. 작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개최된 ≪걱정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기≫ 전시가 그러했다. 기술과 데이터를 다룬 흥미로운 작업물을 살펴보고 싶었지만, 과도한 촬영을 지양해 달라는 안내 문구에도 불구하고 사방에서 계속되는 촬영으로 인해 관람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후기가 이어졌다.


인스타그램과 예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이처럼 인스타그래머블한 전시 트렌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는 관객과 전시기획자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작품 활동과 전시에도 영향을 준다. 그가 지녀온 예술관, 본인만의 철학뿐만 아니라 작품을 보고, 찍고, 공유하는 문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작품을 눈으로만 보고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진으로서 기록하고, 이 기록물을 누구나 볼 수 있는 사이버 공간에 다시 한번 전시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사람들이 어떤 작품을, 어떤 각도로, 어떤 감정을 담아 찍게 될지 자연스레 그려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트렌드에 예술가들 또한 각기 다르게 반응했다. SNS를 범람하는 이미지를 기회로 포착해 새로운 매체로, 작업의 주제로 빠르게 활용하는 예술가도 있었다. 반면 순수한 예술 작업과 감상에 방해가 되는 문화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예술가도 있었다.

SNS 아이콘
이미지 출처: Unsplash

분명한 것은 이러한 트렌드는 디지털이 친숙한 세대가 주류 문화를 형성하게 되면서 만들어진 시대의 흐름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흐름은 인위적으로 멈출 수 없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효과를 흡수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풍요로운 전시 문화를 만들기 위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전시를 만드는 기획자와 기관은 최소한의 가이드를 세우고 전달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관객의 자유로운 감상을 위해 기획자와 작가가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일부 관객으로 인해 관람에 지연과 불편함이 생길 때, 관람 방법을 안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개입은 필요하다. 전시에 앞서 좋은 관람 방법을 전달하는 중요성이 커진 것이다.

관객에게는 비판적인 관람 태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전시들은 수동적 관람을 넘어 체험하는 콘텐츠로 관객을 작품 안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호기심, 고민, 사유 없이 단순히 빠르게 사진을 찍고, 관광하듯 인증샷을 남기는 건 다시금 관객을 수동적인 위치로 돌려놓는 것과 마찬가지다. 전시를 경험하는 가운데 작품과 나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고, 마음에 들거나 불쾌한 부분을 파악하고, 그 이유를 탐구하면서 감상하고 공유할 때 더 나은 관람이 될 수 있다.


바야흐로 SNS와 공유문화의 시대다. 그에 맞춰 등장하고 인기를 끈 전시들은 원래 그러기로 예정되어 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특유의 가벼움과 산뜻함은 기분 좋은 편안함을 주면서, 어쩐지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없는, 속이 빈 껍데기라는 감각을 동시에 준다. 무엇이든 균형을 잡는 건 불가능해 보이리만큼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어렸을 적 놀이로부터 깨우친 바가 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시소를 바로 세우는 건, 친구를 두고 시소에서 내려 버리는 게 아니라는 사실. 기운 정도와 거리를 보고 가까이에, 멀리에 친구를 한 명씩 더 태워보는 것, 그도 안 되면 일어나 타보기도 하고 발을 구르며 힘을 세게 주고 타보기도 하는 것. 정답을 단번에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여러 번의 시도와 여러 사람의 노력 끝에 순서대로 오르고 내리는 시소 놀이를 할 수 있게 된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너무 가벼울지도, 너무 상업적일지도 모를 이 전시들은 무의미하지 않다. 각자의 장점을 지닌 전시를 예술이 아니라고 규정하며 배제해서는 안 된다. 대중을 예술 가까이로 불러 모으는 전시가 지닌 특별함을 분석하고, 응용하고 적용해 본다면, 우리는 예술로도 즐거운 시소 놀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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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
삶을 깨트리는 예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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