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EGG를 조명한 기획자의 감상을 전합니다.

피할 수 없는 기후위기의 도래는 우리가 맞이하게 될 미래다. / 불편함을 견딜 수 없어진 인류는 더욱 선진화된 기술로의 이행이나 대체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 하지만 내연기관차보다 친환경적이라 각광 받는 전기차 역시 배터리 생산과 폐기과정에서의 환경오염이 발생하는 것처럼, 기술로 인한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 기술에 길들여질수록 우리는 그 익숙함에 속아 분별할 수 있는 감각이 무뎌지게 된다. / 기술과 사회와의 관계를 조망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낯설게 바라보는 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익숙함을 잠시 뒤로 하고 길들여져 인지하지 못했던 기술의 이면을 들여다 보자.


류희연, <기술은 인류를 구원하는가> 中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 딱 하나 있습니다.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기술의 발전은 모두에게 주어진 24시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서 갈 수 있는 여행은 한계가 있지만,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여행은 같은 시간 동안 우리를 훨씬 먼 곳까지 데려다주었고, 새로운 모습도 많이 보여주었지요.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분명 우리 삶에 편리와 풍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매일 사용하는 SNS를 통해서는 재밌고 유용한 콘텐츠를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재밌게 본 콘텐츠가 무엇인지 학습해서 비슷한 것을 추천해주는 기술 덕분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딱 맞는 정보를 편리하게 누리면 누릴수록, 나의 취향이나 의견과 정반대되는 내용은 주변에서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이 현상이 지속되면 어느 순간 나와 의견이 다른 내용을 만났을 때, 보다 큰 반감을 일으킬 위험이 있지요. 이처럼 어떤 기술의 개발은 또 다른 문제를 양산하고 있지만 편리한 기술을 사용하는 동시에 떠올리기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지금 이 순간 잠시 멈춰서 질문해봅시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삶의 발전을 기술의 발전에 의존하고 있던 것은 아닐지요. 이미 충분한 역량을 가진 아이템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더 좋은 기술을 탑재한 것을 원하진 않았는지요. 기술이 좋아질수록 나의 삶도 나아질 것이라 믿고 있는 것은 아닐지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서 기술의 발전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꿈꾸는 미래, 더 나은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 먼저 묻고 답해보는 것입니다. 더 나은 기술이나 뛰어난 결과물에 집중하기보다 앞의 질문이 선행된다면, 기술을 배척하지 않고 공존하면서 함께 그리는 미래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장은 더 나은 미래의 모습을 어떻게 그리면 좋을지 막막할 수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 소개하는 류희연 에디터의 아티클을 통해, 동시대 작가들이 기술과 함께 살아갈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기를 권합니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 읽다 어떤 물음이 떠오른다면, 가까운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꿈꾸는 미래의 모습을 같이 그려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