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식민주의라는
착취의 새 얼굴

편리한 AI 기술 뒤에
숨겨진, 거대한 착취의 사슬

“기존 식민주의가 땅을 차지했다면, 디지털 식민주의는 인간의 일상과 감정을 점령한다.” 디지털 권력을 연구하는 학자 닉 콜드리(Nick Couldry)의 주장이다.1) 과거의 식민주의는 제국의 풍요와 발전을 위해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어 자원을 채굴하고 노동을 착취해왔다. 이 식민주의의 사슬은 아직 끊어지지 않은 채, 매끈하고 편리한 인터페이스 뒤에서 전 지구를 옭아매고 있다. 바로 오늘날 가장 귀중한 자원인, 우리의 데이터를 연료로 삼아서 말이다. 제국주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현대의 거대 테크 기업, 특히 AI 기업들은 막대한 양의 노동과 자원을 소비하며 이용자의 데이터를 추출해 부를 축적한다. 데이터센터를 가동시키기 위해 글로벌 사우스의 자원과 에너지가 고갈되고, AI 훈련을 위한 데이터 순화 과정에는 아프리카의 케냐를 비롯한 개발도상국가의 노동력이 투입된다. 그 끝에 AI가 가져오는 막대한 부는 북반구 선진국의 극소수 엘리트에게로 향한다. 올해 2월 한국에도 출판된 카렌 하오의 <AI 제국: 권력, 자본, 노동>은, 바로 이 불평등한 권력구조가 식민주의의 형태라고 지적한다. 즉, 데이터 식민주의는 소수의 기술 선진국과 거대한 테크 기업이 플랫폼과 데이터 알고리즘을 독점해 타 국가의 정보 주권을 통제하고, 인프라와 자원, 노동을 착취하는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를 뜻한다. 이 글은 데이터 식민주의를 비판하는 예술작품과 함께, AI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을 둘러싼 더 큰 권력구조를 직시하고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디지털 시민’으로서 나아갈 방향을 탐색하고자 한다.


끝없는 식민주의의 소용돌이
: 프리야기타 디아의 “열대 터빈”(2023)

이미지 출처: 인스타그램 @mmellium

2025년 말, ‘고무짜기’ 영상은 한국인에게 사랑받은 미디어 트렌드 중 하나였다. 주로 외국 채널에 올라오는 영상들로, 나무에 칼집을 내면 하얀 수액이 흘러나오고 굳은 라텍스를 손으로 쥐어짜 물기를 빼내는 단순한 내용이다. 보는 사람에게 시각적·청각적 쾌감을 주는 일종의 ASMR 콘텐츠인 셈이다. 댓글창에는 고무의 ‘익힘 정도’와 짜기 테크닉을 평가하는 품평회가 열리고, 틱톡에서 AI로 제작한 고무짜기 영상의 수는 3,830만 건을 넘는다. 고무를 짜내는 수많은 손들은 이제 사람인지 AI인지 점점 분간이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AI가 모방하는 그 손이 누구의 것인지 한번쯤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보는 사람의 마음에 평안을 주는, 그 말랑하고 쫀득한 고무는 어디서 온 것인지, 고무짜기의 쾌감은 어떤 구조에서 비롯된 것인지 말이다.

싱가포르와 네덜란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프리야기타 디아(Priyageetha Dia)의 “열대 터빈 Turbine Tropics”은 AI 고무 영상이 주는 편안함에 가려진 불편한 역사와 구조를 드러낸다. 식민지 시대의 고무 플랜테이션과 오늘날의 데이터 추출 시스템을 연결하며, 아직 끊기지 않은 식민주의의 사슬과 자원 착취, 비가시화된 노동의 문제를 고발하는 작품이다. 

“열대 터빈”은 영상 설치 작품으로, 접이식 플라스틱 박스 구조물 사이에 배치된 두 개의 모니터에서 나선형으로 끊임없이 회전하는 이미지가 흘러나온다. TTS 음성이 내레이션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그 아래에는 채굴 현장을 연상시키는 드릴 소리가 깔린다. 모니터를 둘러싼 접이식 박스는 자원을 이동·저장·수집하는 컨테이너의 형상을 닮았다. 영상 속 소용돌이는 고무나무에 켜켜이 새겨진 칼집의 흔적처럼, 반복된 추출의 상처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즉, 끝없이 회전하는 나선형의 소용돌이는 식민지 시대의 고무 채취 방식이 남긴 패턴화된 흔적이자, 현대의 우리가 무한대로 데이터를 남기고 소비하는 순환 구조를 동시에 은유하는 것이다.2)

이미지 출처: 프리야기타 디아 (2023), 열대 터빈, Image Credits: Jonathan Tan, https://priyageethadia.com/turbine-tropics,-2023

프리야기타 디아의 사유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식민지 플랜테이션의 역사에서부터 출발한다. 19세기 말라야 (현재의 싱가포르·말레이시아) 지역은 영국 최대의 수익성 높은 식민지이자 세계 최대 고무 수출국이었다. 말레이시아를 침략한 영국과 인도네시아를 점령한 네덜란드는 고무와 향신료를 비롯한 천연자원을 수탈하며 광범위한 플랜테이션 경제를 구축했다. 영상에 등장하는 단어 ‘부미(Bumi)’는 말레이 타밀어로 ‘땅 혹은 대지’를 뜻한다. 자원을 수탈당하는 자연과 공간을 뜻하는 부미는 직접 화자가 되어 그 역사의 무게를 조용히 증언한다.

디아는 이 역사적 플랜테이션 구조와 오늘날 디지털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 사이에서 섬뜩한 유사성을 발견한다. 그 개념적 토대가 되는 것이 산드로 메자드라와 브렛 닐슨이 제시한 ‘추출주의(extractivism)’다. 추출주의란 제국주의의 역사적 자원 수탈에서부터 오늘날 개인의 데이터를 자원처럼 수집해 이윤을 창출하는 행태에 이르기까지, ‘추출’이라는 행위의 논리가 확장·반복되어 온 방식을 가리킨다. AI를 가동하는 장치를 제작하고 유지하기 위한 자연 자원의 추출, AI 알고리즘 훈련을 위한 데이터 채굴, 그리고 그 완성을 위한 인간 데이터 노동의 착취까지, 이 모든 메커니즘은 추출주의라는 논리 위에 서 있다. 그리고 말라야의 고무 플랜테이션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채굴과 착취는 주로 글로벌 사우스와 주변부 국가들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불평등의 구조는 같은 패턴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내고 있다.3)

작품 속 모니터를 지탱하는 접이식 박스는 바로 이 두 세계를 잇는 장치다. 식민 무역의 물류 체계를 기반으로 하는 이 상자들은, 역사적 플랜테이션 채굴과 현대적 디지털 데이터 채굴을 나란히 놓는 통로 역할을 한다. 두 체계 모두에서 토지, 노동, 정보는 측정 가능한 단위로 환산되고, 시간과 지역을 초월해 채굴 경제를 지탱하는 상품화의 논리의 기반이 된다. 고무 플랜테이션이 ‘완전히 자연적이지도, 완전히 인공적이지도 않은 경계 공간으로, 끊임없는 격변과 변형의 상태에 존재’했듯4, 오늘날의 데이터 인프라 시스템 또한 그러한 경계 위에 세워져 있다. 이용자에게는 인공적인 가상의 공간처럼 보이는 디지털 플랫폼과 데이터 시스템은, 그 가동을 위해 막대한 양의 전지구적 자원과 인간의 노동력이 동원되는 ‘경계 공간’이다.


거대한 추출과 착취의 지도:
케이트 크로포드 & 블라단 욜러
‘AI 시스템의 해부도’

“제미나이야, 이 글을 요약해줘.” “시리야, 음악 틀어줘.”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방법은 지극히 간결하고 직관적이다. 명령어 한 마디만 입력하면 AI가 그럴듯한 텍스트와 이미지, 심지어 복잡한 프로그램까지 단시간에 생성해낸다. 그러나 이 간편하고 친절한 인터페이스 뒤에, 전 지구적 단위로 복잡하게 얽힌 생산, 변환, 노동, 유통의 구조가 완벽하게 가려져 있다. 우리의 편리함을 위해 사용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광물의 추출과 운송, 거대한 데이터 센터의 운용, 그리고 보이지 않는 노동의 착취라는 거대한 물질적인 토대 위에 서 있다.5)

이미지 출처: 케이트 크로포드 & 블라단 욜러, “AI 시스템의 해부도”, https://anatomyof.ai/

케이트 크로퍼드와 블라단 욜러는 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착취의 구조를 한 장의 지도로 펼쳐 보인다. 바로 아마존의 AI 스피커 ‘에코’의 인프라구조를 파헤친  “AI 시스템의 해부 Anatomy of an AI system”다. 이들은 단 하나의 기기를 작동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원이 채굴되고,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동원되는지 그 전체 시스템을 가시화한다. 우리가 편리하게 소비하는 기술이 실상은 지구의 자원을 바닥내고 인간을 부품화하는 ‘추출주의’의 산물임을 증명하기 위해, 사각지대에 감춰진 전체적인 시스템을 ‘사이버 탐정’이 되어 정밀하게 해부한 것이다. 

기기와 내부의 칩을 만들기 위해 광석을 채굴하고 전자 기기 폐기물 처리장에 폐기를 하는 작업까지, 이용자에게 닿는 디지털 기술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은 지구의 지질작용이다. 크로포드와 욜러의 지도 역시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보면, 지구의 이야기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핀란드의 미디어 학자 유시 파리카가 미디어를 ‘지구의 확장’으로 보아야 한다고 제안하듯, 네트워크 라우터부터 배터리, 마이크에 이르기까지 AI 시스템을 구성하는 모든 부품은 수십억 년에 걸쳐 형성된 지구의 원소들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 채굴 과정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삼성, 소니, LG, 폭스콘에 공급되는 주석은 인도네시아 방카섬의 광부들이 임시 뗏목 위에서 목숨을 걸고 물속에 뛰어들어 긁어모은 것이다. 이 섬의 울창했던 숲은 불도저로 밀려나가 황폐한 주황색 대지가 되었고, 그곳에는 주석을 채굴하다 목숨을 잃은 광부들의 무덤이 즐비하다. 인류는 단 몇 년간 소비될 기술을 위해, 수십억 동안 지구에 축적된 광물의 지질학적 역사를 납작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AI 시스템의 해부도”의 일부

반면, “AI 시스템의 해부도”를 위에서 아래의 방향으로 읽으면 인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메자드라와 닐슨이 노동이 추출주의의 핵심이라고 지적하듯이6, 이 거대한 시스템을 지탱하는 것은 실존하는 인간의 신체와 노동이다. AI 기술 제작에 필요한 디지털 노동의 범위는 광대하다. 광물을 채굴하는 광산의 노동자부터, 중국 공장의 엄격한 통제와 감시 하에 일하는 하드웨어 제조 및 조립 노동자, AI가 학습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가공하는 개발 도상국의 데이터 라벨러, 그리고 유독한 폐기물을 처리하는 육체 노동자까지, 전 지구 곳곳에서 막대한 인력이 투입된다. 

디지털 권력을 연구하는 학자 닉 콜드리는,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집단이 과거 식민주의의 희생자들과 동일하다”는 점을 기술식민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는다.7) 즉, 반대로 이 과정에서 창출되는 수익과 권력은 식민주의의 오래된 패턴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극소수의 최상위층에게 향한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하루 평균 약 2억 7,500만 달러를 벌어들일 동안, 콩고의 코발트 광산의 아이들은 하루 1달러 남짓한 임금을 받으며 폭력, 착취, 협박에 시달린다. 이 아이들이 70만 년 이상을 쉬지 않고 일해야 베이조스의 하루 수입을 벌 수 있을 정도로, 부의 불균형이 극심하다. 

노동의 착취는 은폐된 인지 노동 역시 동반한다. AI 학습을 위해 데이터에 라벨을 붙이며 폭력적인 이미지와 영상을 끊임없이 접해야 하는 제3세계의 작업자 뿐만 아니라, 구글 리캡차(ReCAPTCHA)를 통해 스스로 봇이 아님을 증명하며 무보수로 AI를 학습시키는 이용자 역시 포함된다. ‘인공 지능’이라는 스마트한 단어 뒤에 한땀한땀 기계를 조립하고 데이터를 분류하는 인간의 노동이 동원되는 것이다. 결국 현대의 인공지능은 광산의 고된 육체 노동과 조립 라인의 반복 노동, 그리고 전 세계 이용자들의 무형 노동을 자양분 삼아 작동하는 거대한 포식자다. 우리가 명령어를 던지는 그 짧은 순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거대한 기계 장치가 인류의 자원과 노동을 빨아들이고 있다.


AI 제국의 구조를 탐사하기:
‘탈 식민주의 밈 워크샵’

이용자는 데이터 식민지배의 구조를 지탱하는 중요한 톱니바퀴 중 일부이지만, ‘AI 기술의 소비자’만이 우리의 유일한 정체성은 아니다. AI의 발전이 개개인의 일상을 뒤흔드는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는 기술을 감시하고 견제할 시민으로서의 역할도 있다. 그 구체적인 실천의 가장 쉬운 출발점은, AI의 생성물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삐딱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연구자 크리스토퍼 굴드베르그(Christoffer Guldberg)의 밈 제작 방법론을 활용한, ‘탈 식민주의 밈 워크샵 (Decolonising AI with memes workshop)’은 AI가 만들어낸 이미지의 식민주의적, 인종차별적 및 성차별적인 서사를 읽어내고 이를 밈으로 승화시키는 프로젝트이다. ChatGPT, Gemini와 같이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생성형 AI가 내포하는 고정관념과 차별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그 이미지 아래 어떤 데이터가 학습되었는지 고찰해보게 만드는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주권, 시민권, 국제 개발, 아름다움, 범죄, 이주민, 난민과 같은 인종화되고 성별화된 주체와 개념들을 AI가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분석하고, 그 위에 낙서와 콜라주, 이미지를 덧붙여 ‘밈’으로 만들면 된다. AI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며 편파적이지 않다는 신화를 해체하고, 어떠한 결과물과 기술도 당연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Uncomfortable. 익명의 참가자, AI가 생성한 “expat (국외 거주자)” 이미지 위에 “migrant (이민자)”의 결과물을 콜라주로 합성했다.
이미지 출처: Uncomfortable. Kaveer Padayachee, AI가 생성한 유명한 밈 위에 AI의 편견을 꼬집는 맥락을 추가했다.

그 다음 단계는 거대한 구조 안에서 한 계단씩 내려가보며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AI가 마법처럼 그려낸 그럴싸한 이미지는 어떤 데이터를 학습했을까? 그 데이터는 누가 라벨링했으며 보수는 얼마나 받았을까? 막대한 양의 데이터는 어디에 저장되어 있으며, 그 데이터 센터는 어디의 자원을 끌어다 쓰고 있을까? 우리의 데이터와 구독료는 누구의 배를 불리고 있을까? 혹시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감시와 폭력, 전쟁에 땔감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무수한 질문이 당장 구조를 무너뜨리지는 못할 지라도, 우리의 목적은 AI 제국이 은폐하고 있는 착취의 구조를 해부하는 데 있다. 


크로포드와 욜러는 AI 기술의 이용자를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키메라에 비유한다. 키메라가 사자의 머리, 염소의 몸통, 뱀의 꼬리가 합쳐진 존재였던 것처럼, 이용자 역시 기술을 구매하는 소비자이자, 인적 자원이자,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작업자이자, 기업 간 거래가 가능한 제품이다. 그러나 이용자-키메라에게는 더 빨리, 더 능숙하게 AI 기술과 친해져야 한다는 압박에 가려진 보다 중요한 역할이 있다. 시민으로서의 책임이다. 그 개개인의 사소하고 작은 책임감에서 비롯된 질문 하나하나가, 창을 맞고 숨을 거둔 괴물 키메라의 비극적인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열쇠가 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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