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만 들리는
음악 속 숨겨진 비밀코드

즐겨 듣던 음악 속
공고히 자리한 세계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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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온 더 넥스트 레벨”. 일명 ‘디귿댄스’로 2021년 큰 사랑을 받은 에스파의 노래 가사입니다. 이들이 말하는 ‘넥스트 레벨’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이는 그룹의 ‘세계관’을 제대로 이해했을 때야만 해석 가능합니다.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아바타를 만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에스파. 그 서사 속 ‘블랙맘바’, ‘나비스’, ‘광야’의 의미가 넥스트 레벨의 풀이하는 중요 키워드입니다.

너무 어려우시다고요? 포기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사랑한 많은 K팝에는 이보다 더 구체적이고 복잡한 세계관이 존재합니다. 엑소, 이달의 소녀, 그리고 무엇보다 방탄소년단까지. K팝이 세계로 뻗어 나가는데 이러한 ‘콘셉트 만들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핵심 비법입니다. 콘셉트와 세계관. 음악이 서사와 만나며 흔히 말하는 ‘과몰입’할 지점이 곳곳에 생겨나는 것이죠. 그런데 바로 이 방법이 1960년 즈음부터 사용되었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데이비드 보위의 지기 스타더스트

 Kansai Yamamoto
이미지 출처: Kansai Yamamoto

영국 가수 데이비드 보위의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아마 옛 음악에 큰 관심이 없으시다면 생소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는 1970년대 대중음악을 이끈 최고의 음악가 중 한 명입니다. 그의 화려한 시작을 알린 음반이 바로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즉, ‘화성에서 온 거미들과 지기 스타더스트의 흥망성쇠’란 작품입니다.

이 음반에서 보위는 자신을 외계에서 온 ‘지기 스타더스트’라 이름 붙이고 밴드에겐 화성에서 온 거미들이란 호칭을 부여합니다. 외계인인 자신이 지구에서 록스타가 된다는 설정. 이후 지구 멸망을 막기 위해 자신의 성공을 희생한다는 팬들의 해석이 더해지죠. 남성도 여성도 아닌 양성 혹은 무성의 외계인이 전례 없이 화려하고 파괴적인 행색으로 무대를 사로잡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에서 지기 스타더스트가 내려온다는 내용의 ‘Starman’을 통해 보위의 퍼포먼스를 읽어보세요. 음악이 한층 더 깊고 짜릿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에미넴의 슬림 셰이디

영화 <8마일>
이미지 출처: 영화 <8마일>

에미넴을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누군가에는 과격한 랩을 선보이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는 중독적인 가사를 쏟아내는 최고의 래퍼일 것입니다. 어쩌면 자전적 영화 <8마일> 을 통해 에미넴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데뷔 초 에미넴이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슬림 셰이디’라는 제2의 음악적 자아였습니다.

그의 첫 메이저 데뷔 음반은 [The Slim Shady LP]입니다. 제목에서부터 슬림 셰이디가 등장하는데요. 이는 그가 자신의 거친 노래말 앞에 세워둔 가상의 인물입니다. 불우했던 에미넴의 어린 시절과 평탄치 않았던 가정환경은 그대로 가차 없는 욕설과 조롱, 원색적인 비유 가득한 가사가 됩니다. 그 때문에 대표작 [The Marshall Mathers LP]에 본명인 마살 매터스를 소환하더라도 노래 곳곳에는 슬림 셰이디가 등장하는 것이죠. ‘Stan’이란 곡에서는 또 다른 자아 ‘스탠’을 통해 슬림 셰이디의 사고를 따라 하지 말 것을 구체적인 줄거리를 통해 전하기도 합니다.


데이먼 알반의 고릴라즈

gorillaz
이미지 출처: gorillaz

영국 음악을 좋아하시나요? 쉽게 ‘브릿팝’이라 일컬어지는 어딘가 우울하고 축축한 감성을 가진 음악들. 1990년대 결성된 밴드 ‘블러(Blur)’는 브릿팝의 대표 격으로 여겨집니다. 데이먼 알반은 그런 블러의 리더이자 간판 멤버로 50살이 넘은 나이이지만 여전히 왕성한 창작을 이어나가고 있죠. 블러가 록 중심의 밴드 사운드를 선보인다면 그의 부캐 ‘고릴라즈’는 조금 더 젊은 음악을 들려줍니다.

힙합, 일렉트로니카 등의 장르를 자연스럽게 섞고 익살스러운 설정을 가미해 더 넓은 세대층의 마음을 훔쳤습니다. 익살스러운 설정이 무엇이냐고요? A.I가 지금처럼 성행하기 전 고릴라즈는 만화 캐릭터로 이루어진 가상 밴드(Virtual band)를 만들었습니다. 꼼꼼하게 짜인 캐릭터 성을 바탕으로 4명의 주인공이 부딪히며 쌓는 음악 여정이 한편의 이야기가 되어 대중의 눈앞에 놓이는 거죠. 알반은 고릴라즈의 2D로 분해 역시 그룹의 메인을 맡고 있는데요, 그 누구도 2D를 알반으로 보지 않습니다. 고릴라즈의 콘셉트를 인정했을 때야만 그들이 음악이 더 재밌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비욘세의 ‘사샤 피어스(Sasha Fierce)’, 레이디가가의 ‘조앤(Joanne)’ 등 음악가가 또 하나의 콘셉트 혹은 음악적 세계관을 만드는 것은 비단 K팝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극장가를 끝없이 달구는 마블 시리즈 역시 큰 세계관 안에서 계속 가지 처지는 스핀오프로 이야기를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각각의 콘텐츠들이 세계관 만들기로 지향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모두가 같은 목적으로 작품에 구체적인 서사를 부여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에 주목해보는 것도 예술을 깊게 음미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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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한때 음악으로만 살았던 사람.
N년 간 인디문화를 연구했고 지금은 음악을 읽고 보고 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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