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도
관광이 될 수 있을까

비극적인 역사 지닌 문화유산은
어떻게 관광자원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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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기억을 들추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망각이란 선물은 우리가 정신을 온전하게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나를 파편화하는 아픔, 우리는 그 아픔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항상 기를 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 그 사람이 자주 앉던 소파, 자주 보던 그림을 거실에서 치워버린다. 그것은 나에게 더 이상 그저 사물이 아니라,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을 상기시키는 송곳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러한 회피 기제는 개인뿐 아니라 집단에도 작동한다. 우리는 아픈 과거는 잊고 영광만을 남기길 원한다. 침략과 수탈의 역사가 극복되기를, 바라보기만 해도 고통스러운 흔적이 깡그리 무너져버리기를 바란다.

1996년 조선총독부 건물이 철거되었을 때 많은 사람이 쾌재를 불렀던 것도 아마 같은 이유였지 않을까. 조선의 지엄한 궁궐, 경복궁을 가로막고 있던 불쾌한 송곳이 부서져 내리며 광복 후에도 잊지 못한 아픔을 같이 휩쓸어나간 게 아닐까.

그러나 우리가 잃어버린 사람을 완전히 기억에서 지우지 않으려 하듯, 매년 기일 사랑하는 사람의 무덤에 꽃을 가져가듯, 아픈 역사도 기억될 필요가 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기 위해서, 또다시 그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다크 투어리즘,
근대에 바치는 현대의 추모

이미지 출처: 유네스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은 1996년 영국의 관광학자인 존 레논(John Lennon)과 말콤 폴리(Malcolm Foley)가 제시한 개념으로 ‘죽음이나 재난과 관련된 장소를 회상하며 교육, 엔터테인먼트의 목적으로 방문하는 것’을 뜻한다. 이전의 관광이 주로 휴양과 미적 체험 위주로 전개되었다면 다크 투어리즘은 인류사의 비극을 애도하고 기억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 관광지로는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간직한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는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강제 수용소는 주요 사건, 살아 있는 전통, 사상, 신념, 그리고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예술 및 문학 작품 등과 직접적이고 명백하게 연관되어 있다.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는 나치 독일(1933~1945)이 계획적으로 유대인과 수많은 사람들을 집단 학살한 증거이며, 인간성에 반하여 자행된 범죄 행위의 부정할 수 없는 증거이다. 이 수용소는 자유로운 행동과 사상을 억압하고 한 민족 전체를 말살하려고 했던 나치 독일의 시도에 끔찍한 역경 속에서도 끝까지 저항했던 강한 인간 정신을 기념한다.”_유네스코,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등재기준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기준은 명확하다. 아우슈비츠의 비극적인 역사는 인류에게 장엄한 경고를 던지고 있고, 우리는 그 경고를 잊지 않기 위해서 아우슈비츠를 보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는 실제로 당시 학살에 사용된 건축과 물건들이 세심하게 보존되어있어 홀로코스트의 참극을 진정성 있게 전달한다.

이처럼 다크 투어리즘에는 ‘진정성’의 문제가 항상 따라온다. 다크 투어리즘은 죽음, 폭력, 고통과 같은 부정적인 주제를 다루며 체험자를 당시의 비극에 몰입하게 한다. 그리고 체험자는 비극 속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통해 진정한 삶의 가치를 성찰한다. 다크 투어가 단순히 오락만을 추구하거나,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정성이 결여된 다크 투어는 잘못된 역사 지식을 전달할 뿐 아니라 체험자가 비극적 역사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한다.


한국의 다크 투어리즘: 적산가옥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다난한 근현대사를 가진 한국에는 서대문 형무소, 전쟁기념관 등 많은 다크 투어리즘 장소가 있다. 그중에서도 한반도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적산가옥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자주 마주 되는 다크 투어리즘 장소가 적산가옥이기 때문이다. 적산가옥은 말 그대로 적이 남긴 가옥이란 뜻으로,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정부에 귀속되었다가 일반에 불하된 일본인 소유의 주택을 말한다.

과거에는 식민 역사 청산을 위해 적산가옥을 허물어야 한다는 의식이 우세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적산가옥을 관광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근대 문화유산을 보존함으로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고 미래 세대에게 역사적 가치를 전달해야 한다는 의식이 점점 성장하고, 문화유산의 문화 및 경제적 가치가 높게 평가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본식 적산가옥을 적극적으로 관광에 이용하는 예로는 군산 시간여행마을이 있다. 야시키형식(근세 일본 무가의 고급주택) 히로쓰가옥을 포함한 여행코스가 군산시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미지 출처: 군산시청

군산시는 ‘수탈의 아픔과 이에 항거하는 열정의 도시. 일제강점기의 근대문화를 상상해 볼 수 있는 군산. 올바른 역사관을 정리하는 뜻깊은 시간여행’이라는 표제를 가지고 시간여행마을을 운영한다. 그 안에서 적산가옥과 다른 근대 문화유산이 근대 역사 체험이라는 하나의 테마 아래 소개된다. 이러한 군산시의 관광 정책은 관광객에게 근대역사문화에 대한 포괄적인 체험을 제공하는 모범적인 예시가 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모든 적산가옥이 진정성 있는 형태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다. 특이한 실내장식의 ‘포토스팟’으로 전락해버린 예도 적지 않다. 적산가옥은 건축 양식적 정의가 아니라 사회 역사적 정의인 만큼 일본식 건축, 일식과 양식이 혼재된 건축, 서양식 건축 등 다양한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주로 한옥이나 현대 건축과는 구분되는 일본식 건축물이 관광자원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역사적인 맥락이 제거돼버리기도 한다. 주변 경관과는 다른, 이질적인 근대 건축이라는 미적 측면만이 관광자원화되는 것이다.


개화기 열풍과 포토스팟으로 전락한 적산가옥

이미지 출처: tvN

역사적 맥락이 제거된 적산가옥 관광은 ‘개화기’ 콘셉트의 유행과 맞물려 급작스럽게 성장했다. 지난 2018년,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주목받은 이후 최근 5년간 근대기를 배경으로 한 콘텐츠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개화기 의상 구글 트렌드 분석. 이미지 출처: 구글 트렌드

그에 따라 ‘개화기’를 주제로 한 사진 촬영과 카페 등이 SNS를 통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근대문화가 뉴트로(New+Retro) 유행의 연장선이 된 것이다. 이 유행에 영향을 받아 일부 적산가옥은 단순한 ‘포토스팟’으로 전락했다.

적산가옥은 개화기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건축물로 일제가 당시 조선을 식민 수탈한 역사가 그대로 드러나는 장소이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가 인접한 시대인만큼 문화적으로 유사한 것은 사실이나, 개화기와 일제강점기가 가지는 함의는 엄연히 다르다. 게다가 뉴트로 열풍으로 재현된 SNS 속 근대 풍경에 실제 한국의 근대가 담겨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개화기 열풍이 미디어와 콘텐츠에 의해 시작된 만큼 픽션으로 재해석된 근대가 다시 상업화로 굴절된 모습에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제국주의 시각이 내포된 일본의 ‘다이쇼 로망’이 시대적 유사성으로 인해 ‘개화기’ 콘셉트에 그대로 섞여 들기도 한다. 아픈 역사를 내포하는 만큼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하는 적산가옥 관광이 ‘개화기’ 이미지의 범람으로 왜곡된 역사 인식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가 되는 상황이다.

다크 투어리즘은 인류의 비극과 고통을 소재로 삼는 만큼, 그 배경이 되는 문화유산 자체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탈맥락화된 이미지 소비와 함께 상업화된 다크 투어는 인류사적 비극을 후대에 전하려는 근대 문화유산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크 투어는 비극적 역사를 몰입해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고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 문화유산이 다크 투어리즘의
중심이 되어야하는가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활용한 다크 투어리즘에는 단순한 문화 소비를 뛰어넘은 ‘진정성’이 담겨있다. 문화유산 자체가 가진 실제성(authenticity) 때문이다. 문화유산을 둘러싼 문화는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그러나 문화유산은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과거 사건을 그대로 품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어두운 역사를 관광과 문화로 소비할 때 그 배경이 되는 문화유산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되는 이유다.

근대 문화유산이 아픈 과거를 알려주는 길잡이이자 추모의 제단이라면, 그 속의 가치를 끊임없이 보존하고 재생산하려는 후대의 노력은 치열했던 과거사에 바치는 아름다운 꽃이다. 제단은 헌화하려는 사람 없이는 쓸모를 잃고, 제단이 없이는 꽃을 바칠 곳이 마땅치 않은 것처럼, 근대 문화유산과 다크 투어리즘은 언제나 공진화 해야 한다.

  • 강수환, “5. 다크 투어리즘의 출현”, 관광에서 다크 투어리즘까지, 세계와나, 2017
  • 매일경제, 뉴트로(Newtro) 신드롬- 패션, 콘텐츠, 2019.07.26.
  • 유네스코,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 독일 나치 강제 수용소 및 집단 학살 수용소
  • 송영민-강준수, 다크투어리즘에서의 실존적 진정성에 대한 고찰: 죽음 개념을 중심으로, 관광연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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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예술과 사회, 그 불가분의 관계를 보고 기록하고 탐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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