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전주의 시대의 초상
자크 루이 다비드

권력과 결탁한 예술가가
그려낸 ‘회화’라는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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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언론은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며, 오늘날에는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여러 매체로부터 다양한 뉴스를 접할 수 있죠. 하지만 전문적인 언론 기관이 태동하지 않았던 1770년에서 1830년에 걸쳐 나타난 신고전주의 시대엔, 이들의 역할을 담당하던 주체는 바로 ‘회화’였는데요. 신고전주의가 유행했던 프랑스는 특히 문맹률이 높았던 터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회화 작품이 국민들의 여론을 형성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냄새를 맡은 권력가들은 뛰어난 예술 실력을 가진 화가들을 수하에 두며,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하는데 이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렇게 정치가들과 연계되어 작품을 제작했던 대표적인 화가로는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가 있습니다.


권력자를 향한 다비드의 붓

이미지 출처: 자크 루이 다비드

자크 루이 다비드(다비드)는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로 손꼽힙니다. 18세기 프랑스 회화의 전통을 고수했던 그는 로마에서의 유학시절 동안 볼로냐, 피렌체 등을 여행하며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에 감명을 받는데요. 이 시기를 기점으로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에 본격적으로 심취하며 신고전주의를 탐구하기 시작합니다.

균형 잡힌 명확한 윤곽과 입체적인 형태가 우선시되는 신고전주의 미술은, 사실 ‘정치적 예술’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습니다. 그만큼 당대 많은 신고전주의 작품들은 권력자의 곁에서 탄생했는데요. 정권을 미화하는 소재로 고전적이거나 역사적 내용을 차용하기도 하며, 엄숙한 영웅의 모습을 그리는 등 다분히 목적성을 띠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비드 역시 여론을 이끄는 선전물의 성격을 가진 작품들을 다수 제작한 당대 예술가 중 하나였죠. 프랑스의 공화정, 대혁명, 그리고 나폴레옹 시기 마다 다른 권력 집단의 옆에 있으며 너른 주제의 작품을 다뤘지만, 해당 시기 동안 그의 예술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바로 ‘정치’였습니다.


다비드의 붓은 무엇을 그렸을까

1) 공화정 시기

자크 루이 다비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Oath of the Horatii)”, 1784

다비드는 고전주의 예술에서 표상적인 화풍만 차용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는 고전주의로부터 도덕적인 것과 영웅적인 것의 결합을 생성하고자 했죠. 또한 그는 그리스 조각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로마의 공화주의에도 매료되었는데요. 영웅적 인물들을 차용해 그들의 행위가 인간에 모범이 되고 사회에 이상이 되는 모습을 적극적으로 그리기 시작합니다.

1785년 살롱전에 걸린 이 작품은 용기와 희생, 애국심, 강인함과 같은 숭고한 미덕을 강렬하게 구현한 점에서 갈채를 받았는데요. 그는 이 작품처럼 로마의 역사를 주제로 삼은 작품들이 많은데, 이를 통해 ‘애국주의’를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역사 속 영웅의 위대한 그림을 보고 감동한 시민들이 조국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것을 기대했던 것이죠.

2) 프랑스대혁명 시기

자크 루이 다비드, “테니스 코트의 서약(Le serment de jeu de Paume)”, 1791

‘테니스 코트의 서약’은 1789년 프랑스에서 제3신분 평민의원들이 베르사유 궁전의 테니스 코트에 모여 헌법 제정을 목적으로 국민의회의 해산을 거부했던 사건입니다. 이는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된 중요한 순간이었는데요. 그는 가장 급진적인 자코뱅당의 일원으로 혁명파에 가담하며, 당의 의뢰로 이 작품의 스케치를 살롱에 제출하게 됩니다.

작품을 살펴보면 제 1, 2, 3 신분을 포함한 모든 프랑스인들이 단상을 향해 손을 뻗어 지도자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의 그림 앞에 선 관객들의 시선이 모이는 가운데, 작품에 담긴 세 신분이 화합하는 장면은 국민의회의 정당성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죠.

3) 나폴레옹 집권 시기

자크 루이 다비드, “나폴레옹의 대관식(Couronnement de Napoleon)”, 1807

1804년 국민투표를 통해 황제로 등극한 나폴레옹은 교황 비오 7세와 함께 대관식을 거행합니다. 하지만 교황이 손에 들고 있던 왕관을 가로채 스스로 머리에 썼던 그의 일화는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역사적 사실과는 달리, 나폴레옹은 왕비 조제핀에게 관을 씌워주고 있으며 교황은 두 손을 들어 그를 향해 은총을 내리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됐습니다. 이로써 나폴레옹을 모두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황제이자, 교황에게서도 정당성을 인정받은 신성한 황제로 재탄생하는데 성공했죠.

다비드는 이 작품의 상징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높이 7m, 폭 10m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의 캔버스를 사용합니다. 이 거대한 화폭에는 실제 크기의 인물만 70여 명이 등장하며, 참석하지 않은 나폴레옹의 가족들도 대거 등장하는데요. 그의 권위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했던 다비드의 치열한 고민은 결국 나폴레옹이라는 황제의 권력이 독립적이고 막강함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데 성공합니다.


이처럼 신고전주의의 또 다른 이름으로 ‘정치적인 예술’을 들 수 있습니다. 당대 사회의 상징을 강력하게 띠고 있는 그의 작품은 예술사조에 중요한 한 획을 그었지만, 사실 그대로를 재현한 작품으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를 수 있는데요. 예술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도 비판적 분석과 통찰이 필요합니다. 마치,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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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연

누군가의 관점이 담긴 모든 것이 예술이라 믿습니다.
ANTIEGG와 함께 예술을 기록하고, 세상에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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