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산업 내 공고한
여성 차별과 시사점

그 많던 영화과 여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 첫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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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원고의 내용은 2019년 12월 홍익대학교 학부연구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수행한 보고서를 기고한 것입니다. 자료 조사에 참여하고 기고를 허락해주신 황민우(시각디자인16) 님, 최기섭(시각디자인16) 님, 오가은(판화18) 님께 감사드립니다.


영화 산업 내 공고한 여성 차별과 시사점

영화관
이미지 출처: 월간 시선

본 보고서에서는 영화 산업의 남성 우위 구조를 밝히고, 이로 인해 파생된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하고자 한다. 1장에서는 영화 산업 내 남성 편중을 수치로 드러내는데 주목한다. 이로 인한 문제와 대안에 대해서는 2,3장에서 집중할 것이다. 보고서의 관심은 한국을 중심으로 하되, 참고 자료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 헐리우드를 기준으로 했다. 보고서는 2018년 12월까지의 분석 기간의 주가 된다.

다만 영화진흥 위원회 『2020년 한국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본 원고가 제시하는 문제들은 어느 정도는 개선되었다. 영진위 보고서는 이를 ‘한국 영화사에서 처음 있는 일’로 평가하고 있지만 2020년 코로나 -19로 인해 절대 개봉 편수가 줄고, 개봉 연기가 빈번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추세가 코로나 이후에도 이어질지는 지켜봐야한다.

* 영화관입장권 통합 전산망에 따르면 2020년 개봉한 한국 상업 영화 중 관객 수 100만명 이상 상업 영화는 13개에 그쳤다. 1,000만 이상 관객 영화가 5편이나 있었던 2019년에 비하면 시장 자체가 크게 감소한 것이다.


영화 산업의 제작 구조와 남성 위주 제작 환경 현황

1) 세계 영화 산업에서 한국의 위치

한국 영화 시장의 전체 규모는 2019년 기준 6조 1772억원에 이른다.(2019, 한국콘텐츠 진흥원, 한국영화산업 실태 조사. p4) 대한민국에서 영화관람은 가장 대중적인 문화 생활이며 대한민국 국민은 1년에 영화 4.37편을 관람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치다. 이 덕에 국제적으로도 한국 영화 산업의 절대 규모는 작지 않다. 역대 최대 규모로 성장했던 2019년까지로 보면 세계 4위에 해당했다. 그렇다면 산업 내 종사자의 인적 구성은 어떠할까? 우리가 주목한 차이는 종사자의 성별 구성이었다.

2) 남성 위주 제작(창작) 환경과 출연 배우 구성의 남성 편중

14~18년 5개년의 한국상업영화 핵심 창작인력(감독, 제작, 프로듀서, 주연, 각본, 촬영 기능 담당)으로 참여한 여성은 남성에 비해 훨씬 적다. 특히 촬영에서는 2018년 상위 77편의 영화 중 여성창작인력이 0명이었다. 가장 핵심 인력인 ‘감독’으로 여성이 참여한 영화 편수도 현저하게 낮았다.

2013~2017 한국 상업영화 중 여성 핵심 창작인력 참여 편수
*공동 크레딧인 경우 여성이 한 명 이상인 경우 포함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내 영화인 정보 입력 성별 기준
 『2019년 한국영화산업 결산 보고서』 중 p. 104 <15~19년 순제작비 30억 이상 작품 핵심창작인력 성비>
『2019년 한국영화산업 결산 보고서』 중 p. 104 <15~19년 순제작비 30억 이상 작품 핵심창작인력 성비>

시간 지남에 따라 여성의 핵심창작인력 참여는 증가하는 추세이기는 하나, 감독으로 참여한 건수는 여전히 적다. 2016년부터 2019년 사이 4년간 개봉한 박스오피스 내 총 200편의 영화 중 감독의 성별은 남성 190편, 여성 19편으로 감독의 성별 비중은 여성 9%, 남성 91%이었다. 2020년에는 이러한 문제가 개선된듯 보이긴 한다. ‘실질 개봉작’ 영화들에서 여성의 비중은 감독 21.5%, 제작자 24%, 프로듀서 25.6%, 주연 42.1%, 각본 25.9%, 촬영 8.8%로 ‘한국영화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20년에는 코로나 19로 인해 예년보다 많은 영화들이 개봉하지 못했다. 분석 단위를 ‘실질 개봉작’으로 좀 더 넓혔다.) 그러나 2020년은 코로나 19로 인해 영화 산업의 규모와 전개 양상이 이전과는 다르기 때문에 ‘처음 있는 일’이 계속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16~19년 4개년 박스 오피스 진입 개봉작의 감독 성비. 녹색이 여성

감독은 촬영 현장 인력을 구성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여성 감독의 제작 환경에서는 배우, 각본가, 프로듀서, 제작자 등 각 분야에서 결정권을 가진 핵심 인력의 여성 비율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남성감독 영화에서는 그 반대였다. 예를 들어 2018년 여성감독의 상업영화 총 10편 중 6편의 핵심 인력 과반수가 여성이었던 반면, 남성감독의 상업 영화에서는 핵심 창작인력 중 남성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2018, 한국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산업결산보고서 p.73)

1993년 영화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으로 데뷔한 변영주 감독
1993년 영화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으로 데뷔한 변영주 감독

감독의 성비는 창작인력의 성비 뿐만 아니라 캐스팅하는 배우의 성비와도 높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대체로 감독이 배우 캐스팅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부터 2019년 사이 4년간 박스오피스 상위 50편 총 200편의 영화 중 주요 역할을 맡은 남성 배우의 수는 총 427명이었던 반면, 여성배우의 수는 총 158명이었다. 이는 남성배우가 해당 영화의 등장 배우들 중 무려 73%를 차지하고 있다는, 스크린 속 남초 현상을 의미한다.

2018년 한국 실질 개봉 영화의 주연배우 성비. 녹색이 여성
『2019년 한국영화산업 결산 보고서』 중 p. 100 <2019년 실질 개봉작 중 순제작비 10억 이상 영화의 주연1-주연2 성비>

2018년 한국 실질개봉영화(실질개봉영화란 상업영화, 독립영화를 모두 포함하여 극장에서 관객이 관람할 수 있는 영화 모두를 의미한다.)에 대한 조사에서, 여성 감독이 여성 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한 비율은 70%(27편 중 19편)이었다. 남성 감독이 여성 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한 비율은 28%(167편 중 47편)이었다.

여성감독 - 70%(19편) 여성, 30%(8편) 남성
남성감독 - 72%(120편) 여성, 28%(47편) 남성
2018년 실질 개봉작 중 감독 성별에 따른 여성 주연 캐스팅 비율. 녹색이 여성
여성감독 - 71%(22편) 여성, 29%(9편) 남성
남성감독 - 65%(81편) 여성, 35%(43편) 남성
2020년 실질 개봉작 중 감독 성별에 따른 여성 주연 캐스팅 비율. 녹색이 여성

이상의 자료는 한국 영화의 핵심창작인력과 주연배우 구성이 남성 중심임을 시사한다. 감독의 경우 점차 여성의 비중이 증가하고는 있으나, 여전히 전체 감독 수 대비 그 수가 10% 내외로 많지 않다. 여성 감독 증가의 경향성이 타당한 추론인지는 보다 오랜 시간 관찰이 필요하겠다. (2018, 한국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산업결산보고서 p.74)

3) 개봉 영화 포스터에서 확인되는 남성 편중

남성 위주의 포스터

포스터에서 확인되는 남성 편중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는 2018년 한국영화산업결산을 통해 포스터 테스트를 발표했다. 포스터 테스트란 여성 주연 배우가 영화를 얼마나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는지, 그리고 스타로서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보는 성인지 감수성 테스트이다. 최근 한국 흥행영화의 메인 포스터에 여성이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을 몇몇 비평가와 언론이 비판하면서 주목받는 테스트로 부상했다. 테스트는 메인 포스터에 등장하는 인물의 여성과 남성 비중을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한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1. 포스터에 여성과 남성은 몇 명 등장하는가?
2. 포스터에 등장한 여성과 남성의 크기와 배치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아래 표는 2018년 총제작비 30억 이상 한국 상업영화 39편의 포스터를 위의 질문에 따라 분석한 결과이다.

2018, 한국콘텐츠 진흥원, 한국영화산업 실태 조사. p84 표 72 재가공 (얼굴 식별이 어려운 조연 혹은 배경으로 처리된 군중은 등장인물로 분류하지 않음)

포스터 테스트에 따르면 포스터에 여성이 아예 부재한 영화는 39편 중 20편으로 61.3%이다. 여기에 포스터에 여성이 등장하지만 남성에 비해 후방이나 배경에 작게 배치되거나 여성 1인과 남성 다수 등장한 영화 7편까지 더하면, 남성 중심 포스터는 39편 중 27편으로 69.2%이다. 동수의 남성과 여성이 유사한 크기와 비중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7편으로 17.9%를 차지하는데, 이 영화들은 이성애 커플의 로맨스와 결혼 생활을 소재로 다루는 경우가 대다수를 이루었다.

반면 여성이 전경과 중심에 더 큰 크기와 많은 수로 등장한 여성 중심 포스터는 39편 중 총 5편으로 12.8%이다. 이중 여성 1인이 단독으로 등장한 포스터는 단 2편 <사라진 밤>과 <도어락>이다. 그러나 <사라진 밤>의 포스터의 배우는 영화 초반에 살해당하는 조연을 맡은 김희애로, 검시소의 침대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도어락> 역시 얼굴이 보이는 주연 배우는 공효진 1인이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는 조연 남성 배우가 거의 비등한 크기로 배치된다.

따라서 주연 남성 1인이 단독으로 등장하는 여타의 포스터에 비견되는 주연 여성 1인 단독 포스터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주연 남성 1인이 단독으로 등장하는 포스터들은 대부분 김명민, 강동원, 마동석, 송강호, 조인성 배우 등 남성 스타의 얼굴을 클로즈업에 가깝게 전면에 배치하여 남성 주연 배우의 스타성을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유사하게 여성 주연 배우를 스타로서 포스터에 활용하는 경우는 김혜수와 공효진 배우가 있지만, 그마저도 남성 주연 포스터에 등장하는 여성 조연에 비해 후방에 배치되는 조연 남성 배우가 상당히 큰 크기로 함께 배치된다. 이는 여성 주연 영화에서도 여성의 서사가 남성의 서사만큼 지배적이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2018, 한국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산업결산보고서 p.82-85)

4) 장르 및 배역에서의 젠더 편중

2018년 한국실질개봉영화의 장르에 따른 통계 분석을 보면 장르에 성별성과 연관된 고정관념이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8년 한국 실질개봉영화 장르별 여성 감독 및 주연

위 표를 보면 여성감독과 여성주연 영화는 드라마, 멜로/ 로맨스, 다큐멘터리 장르에 편향되는 경향이 있었으며 특히 여성 주연 영화는 멜로/로맨스가 가장 높았다. 이는 여성 서사의 상상력이 여전히 이성애 멜로/로맨스라는 한정된 틀에 갇혀 있음을 암시한다. 한편 액션, 전쟁, 사극, SF 같은 장르는 남성 감독과 남성 주연영화가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반면 여성 감독과 여성 주연은 전무한데, 해당 장르는 상대적으로 다른 장르에 비해 제작비가 높다. 특정 장르에서의 극단적 성별 편향이 고예산 영화에서 여성을 배제한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로 나누어 여성 감독의 참여를 비교해 보면, 애니메이션과 기타 장르를 제외한 181편 중 극영화는 총 147편이고 그중 여성 감독 영화는 19편(12.9%)이고 다큐멘터리는 총 34편 중 7편(20.6%)이다. 다큐멘터리에 비해 극영화의 여성 감독 참여율이 월등히 낮은 이유는 극영화가 상대적으로 제작과정이 좀 더 체계화, 분업화 되어 있고 기성 네트워크가 공고하며 자본이 더 집중되어 있어 기존 영화산업의 성별 고정관념이 더 크게 영향을 미치며 여성에 대한 진입 장벽이 높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상은 모두 2018, 한국콘텐츠 진흥원, 한국영화산업 실태 조사. p72를 요약 재구성한 것)

이 같은 장르에서의 젠더 편중화는 배역에서의 젠더 편중화로도 이어진다. 편협한 장르 선택 폭은 캐릭터 선택 폭 또한 제한시키기 때문이다.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의 기근은 이미 많은 영화 잡지, 컨퍼런스, 논문, 그리고 영화인들의 입을 통해 회자되고 있는 만큼 새삼스럽지 않은 이야기다. 많은 여성 배우들은 그동안 인터뷰를 통해 여성 배우들이 받을 수 있는 시나리오의 캐릭터 폭의 한계에 대해 한탄해왔다.

김혜수는 2012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미지 출처: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여배우들이 몸을 불사를 만한 작품이 많이 없기도 해요. (중략) 적당히 예쁜 척만 하는 뻔한 캐릭터라면, 누가 해도 별 차이가 없을텐데 배우들이 무슨 욕망을 느끼겠냔 말이에요”

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손예진, 전지현, 조민수, 김민희, 전도연, 문소리 같은 내로라 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이야기는 기존에 받은 시나리오들이 대부분 남성 배우를 뒷받침해주거나 단선적인 캐릭터라 고르기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이상 내용은 2019. 06. 10, 웹 매거진 핀치, ‘1000만 영화 호황 속 가난한 여성캐릭터에 관하여 ‘를 발췌한 것)

특정 장르에서의 철저한 여성 감독과 주연 배제 현상이 여성 서사가 여러 다양한 장르 영화에서 골고루 기획·개발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결론은 헐리우드에서도 비슷한 경향성을 가지나 그 정도에서 한국영화계가 보다 강했다.


2019, 2020년에는 이러한 추세가 다소 완화되었지만, 절대적인 비중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관련 내용은 2019/ 2020년 각각 영진위가 발간한 『2019년 한국영화산업 결산 보고서』, 『2020년 한국영화산업 결산 보고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반문이 있을 수 있다. 영화 산업 내 성비 불균형이 “시장 또는 개인의 선택에 의한 자연스러운 결과이며, 그 자체로 문제냐는 것”이다.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은 다음 원고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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