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원고의 내용은 2019년 12월 홍익대학교 학부연구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수행한 보고서를 기고한 것입니다. 자료 조사에 참여하고 기고를 허락해주신 황민우(시각디자인16) 님, 최기섭(시각디자인16) 님, 오가은(판화18) 님께 감사드립니다.
본 WEEKLY PUBLICATION은 총 2부작으로 앞선 원고를 읽으셔야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영화 산업 내 남성 위주 제작 환경은 문제인가?
1) 위계에 의한 영화계 성폭력과 미투 운동
미투(“me too”, “나도”) 운동은 미국의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2007년 제안한 사회 운동이다. 이는 성폭력의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수치심’을 이유로 외면했던 엄연히 실재하는 문제를 직면하자는 취지의 사회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미투 운동은 2017년 10월 헐리우드의 유명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의 피해자들이 피해 경험을 공유하고 많은 이들이 공감과 지지를 표하면서 다시 재조명을 받은 운동이었다. (미투 운동의 지지자들은 SNS상에 ‘#metoo’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을 업로드하여 피해자들을 지지하였다.)
미투 운동을 단순히 여성 인권에 관한 운동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근본적으로는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운동이다.(헐리우드 배우 케빈 스파이시에 의한 성폭력을 고발한 피해자도 남성이었다.) 미투를 제안했던 타라나 버크도 성별 구분이 아닌 피해자 간 연대를 보다 강조한다. 다만 주목할 지점은 미투 운동에 참여한 성폭력 피해자들의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것이라는 것이다. 1장에서 언급한 바 있듯, 한국 영화 산업 내 핵심창작인력의 절대 다수가 남성들이다. 여성들은 대체로 하위 직군 결정권과는 거리가 먼 주변인이 된다. 여성들은 위계 상 동등하게 놓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문화예술 창작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위계에 의한 성폭력들의 피해를 고발한 피해자들은 여성이 많았다.
2018년 한국의 영화 전문 매체인 맥스 무비에서 영화 산업내 종사자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성 종사자 52%는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 관련 피해를 입은 바 있다고 응답했다. 반면 남성은 11%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또한 피해자의 73%는 가해자의 동조자가 있었다고 응답했다. 피해는 업무현장과 술자리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영화계 내 성폭력은 가장 일상적인 현장과 술자리에서 별다른 거부나 제지 없이 자연스레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사회 집단 내 주류를 형성하는 의식과 문화에 대해 위계상 하위에 위치한 상대적 약자들은 실질적인 반론권을 가지기가 어렵다. 이는 비단 영화계 내에서만 있는 문제가 아니라 대학원, 군대, 회사에서 쉽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영화계 핵심창작인력의 주요 성별이 남성이라는 사실은, 영화계 내 남성들이 가지는 의식에 대해 여성들의 실질적인 반론 제기를 어렵게 한다. 반론이 없다면, 주류 집단 내 ‘몰입의 상승효과’가 발생하여 자정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본질적으로 위계에 의한 성범죄도 결국 권력의 차등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별에 따른 권력의 차등이 조정되면 피해자의 절대다수인 여성의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도 상정한다.
2) 영화계 종사 지망인원과 실제영화 종사인원 사이 극명한 차이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핵심창작 인력에 대해 성별로 인위적 조정을 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여성의 종사자가 적은데 인위적 조정을 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 또한 ‘여성들이 핵심제작인력이 되기를 보다 덜 지망하는 것은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2018년 기준 진학 자료를 보면 영화인이 되기를 희망하는 영화 전공자들의 성별은 오히려 여성이 더 많다.(전국 대학 연극영화과 입학생중 여성이 59.0%다.) 물론 극단적으로는 모든 영화 전공자들이 영화인이 되기를 희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유명감독들이 모두 영화전공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영화 핵심창작인력들은 고도의 기술 교육을 요구받는다. 전공자나 아카데미 수료자가 아닌 이들이 핵심창작 인력이 되기는 어렵다. 또한 영화 전공은 경영이나 공학처럼 보다 일반적인 전공이 아니라 해당 전공 진학자들은 업계 종사를 희망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다. 교육부가 운영하는 커리어넷에 따르면 진로 희망 과정에서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영화감독이 되려하는 경향이 더 높다.
하지만 본격적인 영화인이 되는 단계의 상위 단계로 올라갈 수록 여성의 비율이 드라마틱하게 줄어드는 피라미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전국 대학 연극영화과 입학생 59.0%, KAFA(한국영화아카데미) 입학생 30.4%, 국내 3대 국제영화제(부산·전주·부천) 여성 감독 영화 12.3%, 제작비 10억/스크린수 100개 이상 여성 감독 영화 11.7%, 제작비 30억 여성 감독 영화 2.5%다. (모두 2018,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성평등소위원회, ‘데이터로 본 성평등 현황 중간 발표’)
만약 여성 영화인들이 비슷한 수준의 남성 영화인들보다 성과의 차이가 대단히 떨어지는 것이 증명된 것 아니라면, 여성 영화인의 분포는 차별에 의한 결과라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한 이러한 영화 산업 내 성별에 따른 기회의 불균등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침해한다고 볼 수 있다.
3) 배우의 출연료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
핵심창작인력은 산업내 동일 연차 다른 기능자보다 많은 보수를 받는다. 핵심창작인력에 남성이 많다. 비록 이것이 실질적인 수평적 기능 분포에서의 차별, 상위 위계로의 루트를 결정짓는 수직적 차별을 의미한다 할지어도,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라는 관점에서는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배우의 출연료로 오면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은 철저히 무너진다. 또한 이러한 차등이 시장의 선택에 따른 것이라는 합리적인 증거는 없다. 이러한 경향은 국가를 떠나 일반적이었다.
할리우드의 경우, 여자 배우가 남자 배우들보다 평균적으로 40% 정도 적은 임금을 받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2014년 해킹에 의해 출연료가 공개된 <아메리칸 허슬>의 경우, 남자배우인 크리스찬 베일은 총 45일간 촬영에 참여한 뒤 선불 출연료 250만 달러, 영화 전체 수익의 9%를 가져갔다. 그러나 함께 주연으로 활약한 여성배우인 에이미 아담스는 크리스찬 베일과 마찬가지로 45일간 촬영에 참여하고도 출연료 125만 달러, 영화 수익의 7%만 받았다. 여성 배우이느 제니퍼 로렌스도 7%를 받았는데, 애초 5%였지만, 그나마도 2% 인상된 것이었다. (출처 – 2015, 맥스무비 취재팀, 출연료도 성별이 있나요?) 세계 최대 유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제공 업체인 넷플릭스의 시리즈 ‘더 크라운’ 에서 에든버러 공작 역을 맡은 남성 조연인 매트 스미스가 여왕을 연기하는 주연급 여성 배우 클레어 포이보다 더 많은 출연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올해 영화계에 알려져 적잖은 충격을 줬다. (출처: 2019, The Guardian, Thandie Newton had ‘swallow of resentment’ over male co-stars’ pay)
배우 성별에 따른 출연료 차이 문제는 국내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 남자 배우의 최고 출연료는 약 8억 원 대. 여자 배우의 최고 출연료는 이보다 1~2억 원 정도 낮다. 주연배우뿐만 아니라 천만 영화에 여러 차례 출연한 조연급 배우도 역시 남녀 출연료의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출연료 격차 원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묻지마 투자’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김윤석, 송강호, 최민식, 황정민 등의 배우들이 출연한다고 결정하면 그 영화엔 묻지마 투자가 들어온다. 투자자들이 굳이 시나리오를 살펴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여자 배우의 경우 “감독은 누구이며, 상대 남자 배우는 누가 출연하는가?”라는 질문이 반드시 따라온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영화의 참신함이나 완성도보다 인기 배우의 출연 유무만을 중요시하는 고질적인 환경이 문제라고 꼬집는다. 이런 문제가 계속 될수록 여배우가 중심이 되는 영화는 더욱 줄어 들 수밖에 없다.(2018.5.10, 맥스무비, ‘출연료도 성별이 있나요?’ 발췌 후 수정)
4) 성 감수성에 민감해지는 영화 시장 대응의 어려움
최근 콘텐츠 업계에서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을 적극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올바름>에 따르면, ‘차별적’이거나 편견을 조장하는 언어 사용이나 행동을 자제해야한다. 미디어에서 그동안 소외되었던 ‘비주류’에 대한 주목도 이러한 움직임의 일환이다. 백인이 아닌 인종, 남성이 아닌 여성, 성 소수자나 장애인들이 드라마나 영화에 주연, 출연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다만 주류 미디어 업계가 PC해지려는 노력은 ‘시장 논리’에도 철저히 따른 결과이다. 영화 업계의 판도는 극장이 아니라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스트리밍 서비스로 넘어갔다.(2020년에는 코로나 19로 블록버스터의 극장 개봉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이러한 추세는 보다 가속화되었다.)
뉴미디어 시대로 오며, 기술 발달로 과거에는 추적하기 어려웠던 취향과 선호를 추적하기가 쉬워졌다. 세계 시장 전체로 보면 비백인이 더 많고, 남성만큼 여성도 많다. 또 숨은 ‘수요’인 성 소수자들도 숫자가 절대 적지 않다. ‘주류’의 소비력이 여전히 높기는 한데, 이제는 이전에는 잡지 못했던 나머지 수요들을 확인하고 공략할 수 있게 되면서 상업적으로 이 사람들을 공략해보고 싶은 충분한 유인이 생겼다. 새로운 콘텐츠 사업자들이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놓쳤던 다른 기회들도 많았다. 기업 입장에서는 PC해져도 기존 시장은 거의 잃지 않고 시장 크기는 오히려 확장되니까, 이는 상업적으로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세계 최대 콘텐츠 기업인 디즈니의 PC해지려는 노력은 시장에 따른 판단이다. 성 감수성, 더 나아가 인권 감수성은 콘텐츠 시장에서의 성패를 좌우하는 필요조건이 될 수 있다. 한국 영화 산업 내 핵심제작인력들은 남성들이 세계 영화계와 비교해도 과다 대표되어 있다.
최근 다시 대두된 ‘여성주의’ 조류는 여성서사의 소비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은 책이 100만부 넘게 팔렸고, 동명의 영화 역시 손익 분기점을 2배를 넘겼다. 책은 여권이 낮은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도 모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또한 관객들 전반의 성인지 의식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2018년 맥스 무비가 회원 무작위 1,000명 회원을 대상으로 이메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81%는 미투 가해자가 관련된 영화 관람을 관람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즉시 미관람, 관람 보류 포함) 핵심창작인력의 절대 다수가 남성인 환경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트렌드들에 성공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상업적 성공을 위해서라도 기존과는 달라져야 한다. 성 감수성에 예민하게 변화하고 있는 영화 소비자들을 고려하면 여성 영화인들에게도 충분한 기회가 가야할 것이다.
영화 산업 내 여성 차별 해결을 위한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
“ 현재 한국 영화산업이 보여주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모습은 남성 중심적 산업문화의 지속, 우수한 창작 인력의 영화계 이탈을 가속화시킨다는 점에서 여성의 영화계 진입과 영화계에서의 생존 모두를 위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한국 영화의 다양성은 물론이고 장기적 발전의 가능성까지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_2019, 주유신 위원장,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성평등소위원회 주유신 위원장 인터뷰 중
주유신 위원장의 인터뷰는 한국영화계의 남성 위주 창작 환경이 한국 영화 산업 전반에 큰 위기로 다가올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 영화계는 표준 근로 계약서가 이제 막 도입되기 시작했을 정도로 상식적인 인력 운영 시스템이 없다. 공식적인 시스템의 부재는 비공식적 문화와 관행에 의존하게 만들고, 특정인과 업계내 주류 집단에 영향을 비대화하는 요인이 된다. 남성이 과대대표됐던 만큼, 기존 문화를 바꾸는데 주류 집단이 아니었던, 영화 산업 내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다. 결국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
1) 평가와 지원에서의 ‘적극적 평등 실현조치’ 제도 보완 필요.
일반적으로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는, 역사적으로 차별받아온 집단이 있고 그들에 대한 차별의 결과가 누적되고 사회구조적으로도 차별적 관행・구조가 굳어져서 법적 차별금지만으로는 도저히 평등을 보장한다고 하기 어려운 경우에 실질적 평등 보장을 위해 마련된 우대조치, 유리한 차별대우라고 설명된다.(2018.3.13, 이재희,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적극적 평등실현조치에 대한 위헌심사’, 2p) 여성이나 소수 인종, 장애인 등에 대한 고용할당이 그 실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계는 직접 고용이 적기 때문에 고용할당제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2018년 현재 영진위 제작지원금을 수령한 성비는 여성 27.4% 밖에 되지는 않는다.(2018,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성평등소위원회, ‘데이터로 본 성평등 현황 중간 발표’) 이를 심사하는 위원의 구성 성비도 남성이 우위에 있다. 주요 영화제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 적극적인 평등실현 조치를 위해 심사위원의 성비를 기계적으로라도 할당을 해야한다.
핵심창작인력에 일정 이상 여성이 포함된 영화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영화 발전 기금에서 문체부 재원을 더해 추가 지원금을 주고, 독립영화에서도 기업의 메세나(문화 후원) 시 세금 공제 한도를 상한해야한다. 당연하게도 이는 제작 환경의 노동환경 공식화와도 함께 연계될 수 밖에 없다. ‘누가 어디에서 일하는지’를 밝혀야 지원 근거가 생기기 때문이다. 영화 현장에서는 아직도 표준근로 계약서와 4대 보험이 적용이 안되는 곳이 대단히 많다. 이러한 비공식적 인력 사용구조를 공식화하여 남성 종사자들도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2) 성폭력 가해자의 업계 추방과 성인지 감수성 교육 의무화
2장 위에서 언급한 바 있듯, 우리 관객들은 미투 가해자들의 영화를 적극적으로 거부할 정도로 성인지 감수성이 예민한 관객들이다. 또한 우리 관객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연 중 4번 이상 영화를 관람하는 적극적인 시장 참여자들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성인지 감수성을 자극하는 영화는 앞으로 시장 내 선택을 받을 가능성도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미투 가해자들이 배우인 영화는 상당 부분 재촬영에 들어가야만 했다. 또 시장에서 폭력성과 선정성이 중심이 되는 이른바 ‘알탕 영화’가 성공하는 시기도 지났다. 성인지 감수성은 시장에서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업계는 가해자들을 적극적으로 추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의 업계 내 잔존은 피해자들이 업계를 떠나게 한다.
촬영현장에서 표준 근로 계약서를 작성한 영화 <걷기왕>의 백승화 감독에 따르면, ‘성희롱 예방교육’은 이미 의무화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키지 않아도 실질적인 제재가 없는 사문화된 의무라고 한다. 이미 지키지 않아도 별 일이 없었던 의무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하기 보다는 지원이 더 준수 유인이 강하다고 판단한다.
바로 앞 절에서 언급한 지원금 지원 및 수령의 필요 조건에 핵심참여인력의 성인지 교육 이수를 기본 전제로 해야한다. 또한 교육의 내용은 성인지 감수성 전문가가 감수하여, 정책 결정 과정에서 성비가 최소한 균등한 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