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는 어떻게
기후 위기를 말하는가

《서울 웨더 스테이션》을 통해 본
포스트-생태주의와 전시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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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여름 끔찍한 홍수가 서울을 덮쳤다. 하늘에서 비는 끊임없이 쏟아지고,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인 땅은 서울을 하나의 거대한 수조로 만들어버렸다. 서울 중에서도 강남의 피해가 극심했는데, 이는 개발중심으로 계획된 강남이라는 지역이 태생적으로 끌어안고 있던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강남역 입구
이미지 출처: Unsplash

한국 미술계에서도 코앞에 닥쳐온 기후 위기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에 대한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울산시립미술관의 《포스트 네이처: 친애하는 자연에게》, 국립현대미술관의 《대지의 시간》, 부산현대미술관의 《그 후, 그 뒤》는 모두 2021과 2022년에 열린 전시로, 환경문제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들은 환경문제를 더 이상 ‘경고성 다큐멘터리’처럼 나타내지 않는다. 이들의 시각은 포스트-생태 담론을 기반으로 기후 위기를 단순히 환경문제로만 치부하지 않고, 그와 함께 얽혀있는 사회적 불평등과 변화하는 기술, 자본에 의한 소외까지 함께 논의한다. 문경원과 전준호의 《서울 웨더 스테이션》도 이러한 포스트-생태주의적 시각을 이어간다. 《서울 웨더 스테이션》은 전 세계 28개국의 작가들이 각 지역의 ‘기상관측소’가 되어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현재 당면한 기후 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월드웨더네트워크(WWN: World Weather Network)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서울의 임시적인 ‘기상관측소’가 된 《서울 웨더 스테이션》은 비인간의 관점에서 기후 환경 문제를 다양한 학문,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풀어나간다.


인간의 관점에서 벗어나 바라보는
기후 위기 《서울 웨더 스테이션》

《서울 웨더 스테이션》 포스터
이미지 출처: 아트선재센터 공식 웹사이트

1) 포스트 휴먼의 과제, 현실과 가상현실을 오가는 불 피우기

《서울 웨더 스테이션》에서 하나의 큰 축을 담당하는 문경원, 전준호의 신작 “불 피우기To Build a Fire”는 관객 몰입형 설치작품으로 전시장의 한 층을 완전히 차지하고 있다. 정해진 입장시간에만 입장이 가능한 이 작품은 15분가량 상연된다. 다양한 지층의 돌을 유형화해 나타낸 드로잉인 “모든 돌들”을 지나 전시장의 내부로 들어가면 거대한 스크린이 정면에 설치되어 있고, 좌측에는 마치 로봇처럼 철제 뼈대를 가지고 구성된 돌 하나가 놓여있다. 작품을 관람하는 내내 인공지능 언어모델(GPT-3)을 통해 만들어낸 이야기가 한국어와 영어를 오가며 흘러나오는데, 잘 들어보면 이야기의 화자가 인간이 아닌 ‘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영상에서는 스케치, 영화, 게임 등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요소가 나타난다. 그중에서 전시에 협업 사진작가로 참여하기도 한 배우 류준열이 출연하는 영화는 작가의 최근작 <미지에서 온 소식: 이클립스>에서 가져온 요소다. <미지에서 온 소식: 이클립스>는 일본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에서 선보인 작업으로 《서울 웨더 스테이션》에서도 짧은 기간 동안 전시 연계 스크리닝으로도 상영한 바 있다.

 아트선재센터 내부
이미지 출처: 아트선재센터 홈페이지

《서울 웨더 스테이션》에서 나타나는 바다는 <미지에서 온 소식: 이클립스>에서 묘사된 것과 다르게 거세게 요동치는 바다가 아니라 격자무늬 위에 물이 채워진 모습이다. 이를 통해 주인공이 표류하는 공간이 현실의 바다가 아니라 알 수 없는 가상공간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가상공간에 대한 탐구는 게임 화면이 직접 영상에 나타나며 심화된다. 이를 위해 작가는 국내에서 최초로 출시된 모바일 MMO RPG인 아이모와 협업을 진행했다. 국내 최초의 MMO RPG를 통해 인류가 처음 수렵생활을 시작하고 ‘불을 피우던’ 모습이 영상에 나타난다. 새로운 시대의 ‘불 피우기’란 무엇일까에 대한 작가의 탐구가 게임 속 가상공간으로 가시화된다. 이는 포스트 휴먼의 관점에서 먼 훗날 인간의 의식은 어떤 세계를 표류하게 될지에 대한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작품에서 묘사되는 세계는 단순히 기후 위기로 황폐화된 미래가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복잡한 공간으로, 작가가 “미지에서 온 소식News from Nowhere” 등 기존의 작품에서 보여주던 세계와 유사하다. “불 피우기”가 묘사하는 세계는 인류가 지금까지 이어온 관습적 생활이 완전히 사라진 아포칼립스 이후의 시대로, 작품이 상연되는 동안 전시장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로봇 개 스팟(Spot)은 인류가 사라진 시대에 남은 유일한 유산처럼 보인다.

2) 경계를 넘나드는 생태 담론

전시장 3층에 마련된 ‘모바일 아고라: 서울 웨더 스테이션’은 다양한 드로잉과 사진으로 둘러 쌓여있다. 드로잉은 작가의 지금까지 작업을 총망라해 만들어진 것으로 다양한 기업, 단체와 협업을 펼쳐왔던 작가의 연대기를 살펴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드로잉이 마치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룬 코믹스의 일부를 가져온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재활용된 플라스틱 의자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모바일 아고라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진행하는 고기후 문제와 탄소 중립에 대한 토크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아트선재센터 내부
이미지 출처: 아트선재센터 홈페이지

마지막으로 이루어진 토크 프로그램 ‘월드웨더네트워크-세계 각지의 예술가와 작가들의 기상 예보’는 월드 웨더 네트워크의 기획자 제임스 링우드가 직접 설립 취지와 비전, 현재 세계 각국에서 이루어지는 월드 웨더 네트워크 작업들을 소개했다. 토크 프로그램 오프닝으로 진행한 케이티 패터슨의 ‘태움, 숲, 불’ 향 피우기 의식은 후각이라는 감각 기관을 통해 지구 최초의 숲과 최후의 숲을 명상하게 함으로 관람객들에게 아마존의 열대 우림이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 최후의 숲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웠다.

3) 결국 모든 것은 연결되어있다

연결
이미지 출처: Unsplash

《서울 웨더 스테이션》은 기후 환경 위기를 설치, 드로잉(만화), 영상, 퍼포먼스, 강연 등을 통해 논의한다. 예술 내부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문, 사회, 과학, 예술 등의 다양한 영역이 서로 협력하며 기후 위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작가의 신작 “불 피우기”는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작품이지만, 기후 위기를 단순화하지 않고 인공지능과 로봇 등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작품 내에 녹여내며 포스트-생태의 담론을 심도 깊게 탐구하고 있다. 포스트-생태주의는 기존의 환경주의와 달리 인류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는 서로 이어져있고,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시각을 보여준다. 기후위기가 인류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초국가적이며, 경계를 넘어서 다 함께 풀어나가야하는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모두가 함께, 똑같이 행동하기에 환경과 함께 얽힌 다른 사회 경제적 맥락이 그렇게 녹록치가 않다. 국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개인별로도 처한 상황이 다르다. 누구에게는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환경 문제를 압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복잡한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기존의 경계를 허무는 접근이 필수적이다.


환경 문제를 다루는 전시는 매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한국의 사회 참여적 미술이 이제 정치의 영역 뿐 아니라 환경의 영역까지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고무적이다. 특히 환경 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고찰하고, 현대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하나로 연결되어있음을 확인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더욱이 그렇다. 기후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는 포스트-생태시대, 미술과 전시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관객에게 지구를 더 이상 정복할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게 하는 힘을 지니기를,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이 모든 위기를 해쳐나가는 방법이 결국은 사회에 만연한 후기 자본주의적 허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게 되기를 바란다.

  • 월간미술 편집부, 「재난시대 가로지르기Ⅱ: 현장」, 『월간미술』, 2022년 2월호, 72-79. 포스트-생태 섹션
  • 김나정 편집, 『문경원 & 전준호: 서울 웨더 스테이션』, 아트선재센터, 2009
  • 《문경원 & 전준호: 서울 웨더 스테이션》 전시 연계 스크리닝 <미지에서 온 소식: 이클립스> (검색일 2022.11.17)
  • 이동근, 「컴투스, ‘아이모-문경원 & 전준호: 서울 웨더 스테이션’ 협업」, 『뉴스프리존』, 2022 (검색일 202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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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예술과 사회, 그 불가분의 관계를 보고 기록하고 탐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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