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 게 달갑지 않은 순간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옵니다. 어릴 땐 지금쯤 뭐라도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왠지 나만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위기감에 숨이 막히기도 하고요. 다행스럽게도 이런 감정은 혼자의 것이 아닙니다. 토끼해가 마냥 기쁘진 않은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뒤를 돌아보자니 아쉽고, 앞만 보고 달리자니 막막할 때 지금 소개하는 영화들을 꺼내 보세요. 미생에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프란시스 하>
“무슨 일 하세요?” “설명하기 힘들어요. 진짜로 하고 있진 않거든요.”
프란시스는 무용수지만 스스로를 ‘설명하기 힘든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무용단 소속 견습생에 불과한 처지를 자조하듯 말이죠. 이런 그녀에겐 무대에 설 기회도 좀처럼 주어지지 않습니다. 함께 꿈을 키워가던 절친은 남자친구를 따라 떠나고, 뉴욕의 집세는 점점 감당하기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프란시스는 이대로 삶에 그늘이 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아요.
영화는 이곳저곳 떠도는 그녀를 통해 ‘꿈의 중심부를 좇는 것이 꼭 정답은 아니다’란 메시지를 전합니다. 비록 꿈의 가장자리에 머무르더라도 나만의 새로운 목표를 찾았다면 그 여정은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이죠. 꺾이지 않는 마음만큼이나 중요한 건 꺾여도 되는 마음이란 사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드러납니다. 제목이 왜 ‘프란시스 하’인지 궁금하다면 그녀를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틱, 틱… 붐!>
“그런데 한 일주일만 지나면 전 서른 살이 돼요. 스티븐 손드하임이 브로드웨이에 데뷔하고 폴 매카트니가 존 레넌과 마지막 곡을 만든 나이보다 많죠. 8일 후면 내 청춘은 영원히 끝나는데 난 해놓은 게 뭐죠?”
평소 뮤지컬을 좋아한다면 조나단 라슨이란 이름이 익숙할 겁니다. 전 세계적인 인기작 <렌트>를 탄생시킨 극작가 겸 작곡가죠. 이 영화는 그가 쓴 동명의 자전적 뮤지컬을 원작으로, 풍성한 명곡들을 함께 선사합니다. 곧 서른 살을 맞이하는 조나단은 작품 발표를 앞두고 있는데요. 인생의 결정적 기회가 될 거란 생각에 부담감이 밀려와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우리는 남들보다 빛날 거라 예상했던 내 청춘이 실은 실패투성이라는 걸 알게 될 때 절망합니다. 하지만 그간 쌓아 올린 노력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이는 세월이란 이름으로 공고히 자리 잡아 우릴 성공의 문턱에 데려다줍니다. 조나단도 결국 청춘을 발판 삼아 날아오를 채비를 하죠. 내 청춘이 이제 막을 내리는 것만 같을 때, 이 영화와 함께 마음을 다잡으시길 바랍니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난 내 삶의 구경꾼인 기분이야. 내 인생인데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제목만 보고 흔한 로맨스 장르인 줄 알았다면 큰 착각입니다. 이 영화는 사랑의 탈을 쓴 성장 서사에 가깝거든요. 주인공 율리에는 스물아홉 살이지만 아직 사회에 자리 잡지는 못했습니다. 하고 싶은 게 많아 매번 진로를 바꾸다 보니 이렇다 할 직업이 없는 상태죠. 반면 연상의 남자친구는 잘나가는 만화 작가에 남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불안한 율리에의 속도 모르고 결혼을 보채기도 해요. 결국 비슷한 처지의 남성과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지만 삶은 똑같이 공허하기만 합니다.
긴 방황 끝에 그녀가 깨닫는 건 ‘내 삶의 구원자는 나 뿐’이란 진실입니다. 감상 전, 다소 파격적인 제목에 ‘주인공이 얼마나 최악이길래’ 하며 기대 아닌 기대를 하게 되는데요. 막상 우리가 마주하는 건 그저 흔들리는 보통의 청춘이랍니다. 길에 대한 확신 없이 걷고 있는 모두에게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저요.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그 안에 영화도 있어요.”
사실 찬실이는 복이 많기는커녕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늘 따르던 감독의 사망으로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어 달동네 주민이 되죠. 친한 배우가 뻗은 도움의 손길도 마다하고, 일해서 돈 벌 거라며 그녀의 가사 도우미가 됩니다. 이렇듯 찬실이의 행보는 시종일관 서툴지만 당찹니다. 얼떨결에 얻은 휴식기지만 이를 계기로 그녀는 삶을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특히 주변 인물의 역할이 인상적인데요. 주인집 할머니, 장국영 귀신과의 대화 속에서 찬실은 다시 세상에 나아갈 용기를 얻습니다. 어떤 위기는 내일을 위한 뜻밖의 선물이기도 합니다. 찬실이처럼 웃지 못할 시련을 겪고 있다면 이 영화를 만나보세요. 나도 몰랐던 ‘복’을 발견할지 모릅니다.
때로는 잘 모르는 누군가의 삶이 가장 큰 위로로 다가옵니다. 이는 영화가 가진 힘이기도 하고요. 4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꿈을 간직한 채 어른의 문턱에 섰습니다. 저마다의 상황 속 이들은 현실과 부딪히기도, 손을 맞잡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들이 결국 문턱을 넘어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이죠. 출발을 앞두고 큰 용기가 필요하다면 이 영화 4편을 통해 충전해보시길 권합니다. 주인공들을 따라 울고 웃다 보면 어느새 진한 응원을 받게 될 거예요. 그럼 우리 함께 이 문턱을 넘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