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에게 걷기란 어떤 의미인가요. 체중 감량을 위한 운동일 수도 있고, 마음을 환기시켜주는 산책의 도구일 수도 있겠네요. 이번에 소개하는 책들은 걷기를 조금 다른 이유와 방식으로 권합니다. 세 명의 저자들은 일부러 길을 잃거나, 정처 없이 걸으면서 자기 존재를 깨닫는다고 말합니다. 마음에 위로가 되어줄, 걷기에 대한 세 가지 사유를 소개합니다.
『길 잃기 안내서』
“길을 잃는 것, 그것은 관능적인 투항이고, 자신의 품에서 자신을 잃는 것이고, 세상사를 잊는 것이고, 지금 곁에 있는 것에만 완벽하게 몰입한 나머지 더 멀리 있는 것들은 희미해지는 것이다.”
_레베카 솔닛, 『길 잃기 안내서』
역사가이자 운동가인 레베카 솔닛의 『길 잃기 안내서』는 작가 본인이 경험하거나 들었던, 길 잃은 자들의 이야기를 묶은 산문집입니다. 그는 길 잃기야말로 현재에 완벽하게 몰두하는 방법이라고 말하는데요. 길 잃기가 단순히 물리적인 상태가 아닌, 정신적인 상태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길 잃은 자들 중에는 머나먼 방황의 경험을 통해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하고, 영영 돌아오지 못하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우리에게 길을 잃는 경험이 필요하다 말합니다. 그에게 길을 잃는 경험은 자신을 발견하는 경험이기 때문이죠. 길을 잃었을 때 비로소 세상과 나의 관계를 깨닫고, 자신을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길을 잃음으로써 세상을 잃고, 자신마저 잊게되는 경험을, 여러분은 해본 적 있으신가요? 그 미지의 영역을 안전하게 탐험하고 싶다면 『길 잃기 안내서』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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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의 인문학』
“우리는 보지만 제대로 보지 못한다. 우리는 눈을 사용하지만, 시선이 닿는 대상을 경박하게 판단하고 스쳐 지나간다. 우리는 기호를 보지만 그 의미는 보지 못한다. 남이 우리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_알렉산드라 호로비츠, 『관찰의 인문학』
『관찰의 인문학』 저자, 알렉산드라 호로비츠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지질학자, 일러스트레이터, 야생동물 연구가, 시각 장애인, 반려견 등 11명의 존재와 산책한 경험을 들려주는데요. 지질학자는 도시의 건축물에서 고생대의 암석을 발견하고, 곤충학자는 산책길에 발견한 생물들에게서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를 예측합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지루하리만치 평이했던 자신의 산책길이 각자의 이야기와 역사를 품은 경이로 가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책은 ‘보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말합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은 것처럼, 우리의 출퇴근길, 그리고 산책길은 늘 비슷하고 지루하겠지요. 그러나 감각을 곤두세우고, 불어오는 바람이나 나무의 질감, 새의 지저귐 등 주변 요소를 인식하기 시작한다면 같은 길이어도 매번 다르게 느껴진다고 말합니다. 같은 것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과 접근법이 궁금하시다면 『관찰의 인문학』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느리게 걷는 즐거움』
“걸을 때 중요한 것은 도착 지점이 아니라 걷는 매 순간 일어나는 일, 느낌, 만남, 내면성, 유용성, 한적하게 거니는 기쁨 등 그저 존재한다는 기쁨과 그 기쁨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_다비드 르 브르통, 『느리게 걷는 즐거움』
사회학 교수인 다비드 르 브르통의 『느리게 걷는 즐거움』은 작가의 전작, 『걷기 예찬』에 이은 두 번째 걷기 관련 도서입니다. 그는 주로 책상에 앉아 생활하는 현대인들을 두고 ‘두 다리를 잃었다’고 표현하며, 걷기가 인간의 가장 근본으로 돌아가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걸을 때 중요한 건 도착 지점이 아니라 걸으면서 느껴지는 다양한 감정과 그저 걷기 그 자체의 기쁨이라고 하죠.
이 책은 걷기에서 목적을 분리시킴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걷기를 즐길 수 있다 주장합니다. 여느 목적 없는 만남과 행위가 그러하듯, 걷기 또한 ‘어디로 가야 한다’, ‘언제까지 가야 한다’는 목표가 없어졌을 때 비로소 오롯한 경험이 됩니다. 앞서 추천드렸던 레베카 솔닛의 『길 잃기 안내서』와도 비슷한 맥락이 느껴지는데요.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자신을 찾고 싶은 분들에게 『느리게 걷는 즐거움』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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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도, 의미도 없이 자연히 태어난 우리에게, 세상은 어떤 목표와 의지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공’이나 ‘성장’이라는 목표 아래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죠. 세 책의 저자들은 공통적으로 목표가 해체된 걷기에서 우리 존재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길 위를 표류하며 마주쳤던 풍경을 공유하면서요.
어쩌면 걷기, 그리고 방황의 의미를 우리는 단편적으로 해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방황은 계산 오류나 현실의 교착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당연하게 여겨졌던 경계를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걷는 일이 아닐까요. 이미 우리는 삶이 곧게 뻗어있는 직선이 아닌, 상처와 오솔길로 가득한 구불구불한 모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목표 없이 과정을 즐기는 것, 그 안으로 틈입해 오는 우발적인 사건과 경이를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작가들이 전하고자 했던 걷기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목표 지점까지 빠르게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은 분명 편리하지만, 우리는 출발점과 목표점 사이에 있는 무수한 풍경을 놓치게 됩니다. 괜찮다면 잠깐 시간을 내, 정처 없이 걸어 보며 걷기 그 자체를 향유해 보는 건 어떨까요. 어떤 길 위에 있든, 부디 스스로가 택한 길을 걸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