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이들을 위한 실천
리슨투더시티

배제되고 묵살된
도시의 목소리를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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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을 위해, 재개발로 인해 쫓겨난 주민을 위해, 보금자리를 잃은 새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도 예술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예술가의 보편적 역할은 아름다운 풍경을 옮기거나 기념할 만한 상황, 혹은 신의 권위를 전달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아우라를 창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술은 곧 시각적 아름다움으로 직결되며 색다른 미적 경험을 관람객에게 전달했죠. 하지만 현대의 예술은 어떤가요? 미술관에 다큐멘터리가 상영되는가 하면 심리 상담가가 관객을 연구하고, 심지어는 집회의 형태를 띠기도 합니다. 예술의 범위는 점점 모호해지고, 본 적 없는 형태의 예술에 관람객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합니다.

미술, 디자인, 건축, 영화, 인문학, 도시계획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만든 콜렉티브 ‘리슨투더시티’는 예술가인 동시에 연구자이자 활동가를 자처합니다. 이름 그대로 도시의 목소리를 듣는 이들은 도시를 함께 살아가지만 주변부로 밀려난 동료 시민의 목소리를 듣죠. 그들의 이야기는 예술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다양한 형태로 널리 증폭되고, 이해와 연대의 지점을 향해 갑니다. 각자의 어려움을 토로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한 공론의 장을 만들기 위해 리슨투더시티는 예술의 역할을 사회적, 윤리적, 공동체적 실천으로 확장합니다.


누구도 남겨 두지 않는다

2017년 11월, 포항에는 리히터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합니다. 1098채의 주택이 파괴되고 18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22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한국이 지진을 관측한 이래로 가장 큰 규모의 피해지만 비교적 적은 인명 피해에 가슴을 쓸어내렸죠. 그러나 이는 장애가 없이 신체가 온전한 이들만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대피를 하지 못했거나 포기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적지 않은 국민이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재난 대피 매뉴얼은 제한적이며 여전히 비 장애인들만의 영역에 머물러 있습니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재난 대피 매뉴얼은 신체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신체 보조 기구가 없으며 상황에 따른 민첩한 대처가 가능한 이들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인명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자연재해나 재난 상황이 닥쳤을 때,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장애인은 속수무책으로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합니다. 지진 상황에는 책상 밑이나 사각지대를 찾아 몸을 피하고, 화재가 발생하면 물에 젖은 손수건으로 입을 막은 상태로 완강기를 통해 탈출하라는 매뉴얼이 과연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일까요?

다큐멘터리 ‘누구도 남겨 두지 않는다’. 이미지 출처: 리슨투더시티 홈페이지

리슨투더시티의 <누구도 남겨 두지 않는다>는 재난을 겪은 장애인의 경험을 듣고, 관객에게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나아가 모두가 함께 대피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포항 지진을 겪은 장애인들의 인터뷰를 엮은 다큐멘터리와 새로운 재난 대비 매뉴얼을 만들기 위한 사례 연구, 그리고 재난 시나리오 워크숍으로 구성되어 있죠. 특히 워크숍에서는 재난 상황에서 더 큰 위험에 처하기 쉬운 장애인의 경험과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대피 매뉴얼을 작성합니다. 단순히 이야기를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워크숍을 통해 필요한 장치나 건물 설계, 그리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할 수 있는 행동 요령을 구체적으로 고안하는 겁니다. 참가자들은 재난 대피 지도를 작성하고, 대피 훈련을 통해 실제 상황에 대비하며, 다양한 재난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폭넓은 재난 약자를 위한 대처법을 실험합니다. 비 장애인은 재난 약자의 시점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고, 장애인은 각자 상황에 맞는 대처 방법을 몸에 익혀 재난에 대한 불안에 대비할 수 있죠. 프로젝트가 말하고자 하는 건, 우리 사회가 보다 포괄적인 상상과 공감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평등하지 않은 재난 상황에 ‘누구도 남겨 두지 않기’위해서요.

워크숍북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 재난 함께 준비하기』. 이미지 출처: 리슨투더시티 홈페이지

서울시보다 을지로를 잘 이해하기

도시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에 시장이나 정치가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도시는 거주민 뿐만 아니라 그 도시에서 일하는 사람들, 맛집이나 명소를 찾는 사람들 혹은 도시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다 함께 이용하는 공공의 장소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좀 다릅니다. 서울시는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를 철거하고 공원과 초고층 주상 복합을 세워 녹지와 주택을 보급해 서울을 뉴욕으로 재탄생 시킨다는 원대한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거주민은 물론 을지로가 터전이던 사람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서울시의 독단적인 행보는 그들의 삶을 위협했습니다. 인쇄소, 철공소 등이 밀집한 유서 깊은 제조업 거리와 상권을 철거하고 브랜드 아파트 단지와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대형 상권이 들어선다면, 또 을지로의 원주민들이 일자리를 잃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해 다른 지역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다면, 그 도시 계획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서울시가 을지로라는 지역의 맥락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리슨투더시티는 오직 부동산 가치라는 편협한 근거로 시민들의 의견을 묵살한 채 재개발을 강행하는 서울시에게 주민의 의견을 직접 전달합니다.

이미지 출처: 리슨투더시티 홈페이지

리슨투더시티는 재개발로 인해 쫓겨날 위험에 처한 소상공인과 연대합니다. 특히 지금의 ‘힙지로’를 있게 한 노가리 골목의 가게 OB 베어를 지키기 위한 ‘을지OB베어 공동대책 위원회’, ‘청계천 을지로 보존연대’, ‘FDSC(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클럽)’와 손을 잡고 지속 가능한 을지로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기존 상권을 활성화하면서도 을지로의 원주민도 자연스럽게 흡수되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인 겁니다. 지역의 전통과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소위 선진국의 결과물을 모방했던 도시 계획 대신 ‘우리만의 서울’을 만들기 위해 주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합니다. 초고층 빌딩을 새로 짓는 것이 과연 필수적인지, 주민들은 어떤 인프라를 필요로 하는지, 을지로 청계천 일대의 전통이 왜 보존되어야 하는지 현장 답사를 통해 주민들에게 질문하죠. 답변을 통해 을지로만의 고유한 가치를 극대화해 서울의 다양성에 기여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상주 주민의 삶을 보장하는 을지로의 모습을 디자인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도시 계획을 서울시에 제출하며 마무리합니다. 워크숍 모든 과정을 이끄는 건 바로 서울의 주인인 시민들이었습니다. 서울이 배제한 목소리를 다시 모아 그들이 간과한 점을 일깨우는 겁니다. 바로 도시의 주인은 우리 모두이며 모든 결정 또한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을요.

이미지 출처: 리슨투더시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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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의 쫓겨난 친구들

자본의 힘은 도시를 넘어 도시 주변부와 그 바깥까지 뻗어나갑니다. 2009년, 지역 발전과 수변 공간 조성이라는 명분으로 추진된 4대강 사업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5억 7,000만㎥의 모래가 사라지고, 낙동강에서는 녹조가 발생해 수질이 오염되어 수많은 생명을 앗아 갔으며 멸종위기 동식물의 개체 수가 크게 감소했죠. 경상북도 봉화, 영주, 예천을 가로지르는 ‘내성천’도 예외가 아닙니다. 멸종 위기종 약 20종의 서식지이자 낙동강에 1급수를 제공해 주던 내성천 영주댐 부근은 4대강사업과 동시에 많은 모래가 쓸려내려가 맑고 아름답던 모습을 잃고 말았습니다. ‘녹색 뉴딜’, 즉 생태를 재정비함으로써 도시의 녹색 성장을 도모한다는 취지의 사업이 사실은 생태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인간의 독단적 이기심에 뿌리를 두었음을 보여준 겁니다. 인간과 달리 말 못 하는 동식물은 자본의 수탈에 꼼짝없이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업에 반대하는 집단적 행동을 할 수도, 의견을 제시할 수도 없으니까요.

이미지 출처: 리슨투더시티 홈페이지
이미지 출처: 리슨투더시티 홈페이지

말 없는 생명의 죽음에 무감각한 사회에서, 리슨투더시티는 내성천의 소리 없는 언어를 듣습니다. 2011년부터 자비를 들여 내성천을 답사하고 생태계를 글과 그림, 전시와 영상으로 남깁니다. 그리고 『내성천 생태도감』을 펴냅니다. 내성천을 터전으로 삼았지만 멸종 위기에 처한 개체의 특징을 직접 관찰하여 사진이 아닌 드로잉과 수채화의 형식으로 기록했죠. 리슨투더시티의 디렉터이자 예술가인 박은선은 강이 변하고 생태계가 위험과 직면하는 현실을 바라보며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본 간접적 풍경이 아닌, 사라져가는 동식물의 형태와 색깔뿐 만 아니라 그 모습을 직접 보고 느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방식을 택한 겁니다. 또한 4대강과 내성천의 현실을 알리고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30차례가 넘는 전시를 기획했죠. 리슨투더시티가 이토록 적극적인 이유는 단순합니다. 내성천과 생태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아름다운 자연을 그저 온순한 수탈의 대상으로만 보았습니다. 『내성천 생태도감』은 내성천 생태의 그 아름다움을 기억하기 위한, 또 우리가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세대가 되지 않기 위한 간절한 소망입니다.

이미지 출처: 리슨투더시티 홈페이지

모두가 예외 없이 평등과 자유를 누리며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는 사회. 수많은 사회적 부조리를 마주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단지 허황된 꿈이자 유토피아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개인의 자유가 강조되는 만큼, 차별과 혐오, 불평등도 마치 정당성을 갖춘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그들은 반복적으로 소외를 경험합니다. 평등하지 않은 재난에서 몇 배의 위험에 노출된 장애인들, 고급 아파트와 대기업 상권을 위해 삶의 터전을 잃어야 하는 을지로 주민들, 그리고 인간 중심의 도시 개발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동식물들. 리슨투더시티는 이런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이들의 언어를 기록하고, 그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실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활동은 예술일까요?

리슨투더시티에게 예술이란 밀려난 이들의 목소리를 모으고, 모두가 공존할 방법을 찾는 과정입니다. 예술은 단순히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유와 공감, 그리고 실천의 과정이죠. 여기서 ‘사유’는 우리 삶과 사회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근본은 결국 상생, 즉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리슨투더시티는 분명 예술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은 예술가이기 이전에, 약자와 장애인, 소수자가 차별받지 않고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연대하는 동료 시민으로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리슨투더시티는 넓게는 사회를, 좁게는 개인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행동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속 가능한 삶과 연대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WEBSITE : 리슨투더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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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연

하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은 미술 노동자.
경계없는 문화예술을 옹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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