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이라는 시대의 부름 앞에 많은 대기업이 미래의 기술을 탐구합니다. 생분해되는 섬유, 플라스틱에서 추출한 섬유 등 기술을 앞세워 지속가능성의 방향을 모색하죠. 스토리엠에프지(Story mfg.)는 다른 기업들과 다른 길을 걷습니다. 그들은 과거로 향해요. 사라져가는 고대의 염색 기술과 공예를 연구하고 활용합니다. 인도와 태국, 터키 등지의 염색, 공예 기술자들을 고용하고 옷을 만들죠. 그들은 왜 소비주의에 반격할 대안을 공예에서 찾았을까요? 그들이 말하는 진정한 지속가능성이란 무엇인지 살펴보며 지금 시대에 공예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알아봅시다.
패션의 선순환을 위해
출사표를 던진 브랜드
패스트패션의 등장으로 우리는 유행에 맞는 옷을 더 저렴하게, 자주 구입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빠른 생산주기와 저렴한 가격을 위해 얼마나 많은 개발도상국 노동자가 착취당하고 있는지 알 수 없죠. 수많은 대기업이 이들의 노동력과 자원에 의존하고 있지만, 결코 그것을 수면 위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합성 섬유와 화학 염료의 사용, 노동자 착취, 대량 폐기라는 톱니바퀴가 날카롭게 맞물리며 거대한 패션 산업을 굴립니다.
반대로 환경에 대한 소비자의 문제의식은 나날이 높아져 갑니다. 이에 응하기 위해 많은 브랜드가 지속가능성이라는 슬로건을 내겁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바뀌는 것은 소재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기존의 생산-폐기라는 사이클은 유지되죠. 지속가능성이 마케팅을 위한 공허한 외침으로 전락하는 듯 합니다.
영국과 인도를 기반으로 하는 패션 브랜드 스토리엠에프지는 이러한 관행에 반기를 듭니다. 패션이 사회적 행동주의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다고 믿으며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위해 정진해요. 스토리엠에프지의 홈페이지엔 ‘긍정적 제품 선언문(The Positive Product Manifesto)’이 적혀있습니다. 천연자원 및 기술의 활용과 공예가들에 대한 지원, 모든 생명과 지구를 해치지 않는 자세. 선언문은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패션업계에 출사표를 던진 이 브랜드는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에 이르렀을까요?
수익성이 아닌 지속가능성을
공예에서 찾은 선순환 구조
스토리엠에프지의 첫 시작은 인디고 데님이었습니다. 트렌드 예측 회사에 다니던 케이티는 업무차 방문한 무역박람회에서 다양한 천연 섬유 제품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천연 제품은 너무 비싸거나 품질이 일정하지 않아 상품성이 낮아 보였죠. 케이티와 사이드 알 루베이 부부(Katy and Saeed Al Rubeyi)는 직접 자신들이 원하는 품질의 인디고 염색 옷을 만들어보고자 인도로 떠납니다. 그들은 인도에서 얻은 천연 인디고 섬유로 청바지 몇 벌을 만들었고 이후 자켓, 셔츠, 머플러 등으로 제품을 늘려나갑니다.
몇 미터의 원단을 짜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했던 그들은 이제 몇 키로미터 단위의 원단을 생산합니다. 급격한 성장을 이뤄낸 듯 보이지만 그들은 모든 것이 매우 느리게 진행되었다고 말합니다. 스토리엠에프지의 옷은 공예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섬유의 생산부터 염색, 자수까지 모든 게 수작업으로 이루어집니다. 2배의 주문량을 소화하기 위해선 2배의 인력이 필요하죠.
관점에 따라서 비용 절감은 사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릅니다. 더 많은 주문을 받기 위해 자동화 기계를 도입하거나 더 저렴한 공장과 계약하는 방식으로요. 하지만 비용 절감을 이유로 이들이 기존 공장과의 협업을 멈추어버리면 공장의 기술자들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습니다. 이는 그 지역 사람들이 가진 공예 문화의 타격으로 이어지고요. 스토리엠에프지는 공예야말로 폭주하는 소비주의 관행에 맞설 수 있는 대안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들이 느린 성장과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지역 공예가들의 고용을 멈추지 않는 것도, 함께 일하는 인도의 공장을 ‘아뜰리에’라고 부르는 것도 그러한 이유겠지요.
속도에 가려진 패션의 진실
그렇다면 스토리엠에프지는 왜 공예에서 대안을 찾을까요? 아일랜드계 이라크인으로서 사이드는 식민주의의 심각성을 깊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식민 지배로 인해 이라크의 자원과 문화적 유산이 약탈당하고 남용되는 현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를 통해 식민 지배의 역사는 맥을 이어갑니다. 이는 패션 산업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서구 거대 기업의 패션 브랜드들은 개발도상국의 값싼 노동력과 자원에 의존하며 그들의 전통과 기술을 착취하죠.
케이티와 사이드 부부는 이러한 관행을 끊어내고 다양한 지역의 공예 문화를 지키기 위해 공예가들과 함께 일하기를 선택합니다. 이들은 인도, 태국, 터키 등의 나라에서 염색 기술자, 재단사, 자수 공예가들을 고용하며 그들에게 충분한 급여와 고용 안정성을 제공합니다. 또한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직원들의 모습과 의류 제작 과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죠.
또한 케이티와 사이드 부부는 인도와 태국 등지의 전통 염색 기법이 얼마나 환경친화적인지 발견합니다. 원료가 될 식물을 재배하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들은 전부 비료가 되어 땅으로 돌아가죠. 그들은 공예라는 전통이 우리가 발 디딘 땅과 연결되어 있으며 지역에 긍정적인 산업을 발달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이들이 ‘예술 후원자’를 자처하며 지역 기반의 공예 산업을 지키기 위해 힘을 쏟는 이유입니다.
케이티와 사이드 부부는 옷 만드는 과정을 와인 만들기에 비유합니다. 스토리엠에프지의 옷은 날씨나 토양, 제작자의 손길에 따라 미세하게 색과 형태를 달리합니다. 계절에 따라 수확되는 염료의 색깔도, 염색된 섬유가 마르는 데 걸리는 시간도 제각각이기 때문이에요. 초창기에는 이로 인한 컴플레인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스토리엠에프지가 지금까지 사랑받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많은 이들이 그들의 옷에 담긴 가치와 정성에 공감한다는 뜻이 아닐까요?
WEBSITE : 스토리엠에프지
INSTAGRAM : @storymfg
스토리엠에프지의 행보를 통해 내가 입은 옷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긴 여정을 그려봅니다. 지구 위의 우리는 촘촘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 나의 소비가 먼 나라의 사람들, 자연환경과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죠. 우리가 자신의 영향력을 섬세히 감지할 때, 변화의 움직임은 벌써 시작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