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공간은 그것 자체로 하나의 콘텐츠가 됩니다. 사람들은 멋진 공간을 찾아다니며 향유하고, 사진 찍고, 공유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올린 사진을 보며 또다시 새로운 공간을 갈구하죠. 건축가 홍윤주는 빼어나고 멋들어진 공간만을 이야기하는 작금의 현상에 의문을 가집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일상적 공간으로 눈을 돌려요. 그가 기록한 한국의 ‘진짜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요?
일상 속 공간을 기록하는
‘진짜공간’
건축 잡지 속 매끄럽고 정돈된 공간과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은 크게 동떨어져 있습니다. 이에 괴리감을 느낀 홍윤주 건축가는 2011년부터 웹진 ‘진짜공간’에 우리를 둘러싼 일상적 공간을 포착하고 기록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이웃의 방을 취재하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 보수하고 증축하며 저만의 독특한 형태를 빚어낸 건축물과 사물 등을 기록하기도 합니다. ‘진짜공간’ 웹진 속에는 오랜 기간 그가 기록해온 서울과 지방의 다양한 풍경이 담겨있습니다. 이렇게 쌓인 기록은 동명의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죠.
네 방을 보여줘
소셜미디어 속엔 세련된 감각으로 무장한 누군가의 집이 끝없이 나타납니다. 아름다운 공간을 갖고 싶은 열망만큼 현재 내가 몸담은 공간의 초라함도 커집니다. 체리색 몰딩, 창문에 붙은 화려한 문양의 필름지, 통일감 없는 가구들의 합창은 왜 이리도 못나 보일까요. 홍윤주 건축가는 단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정돈되고 연출된 인테리어 잡지 속 공간이 아닌, 생활감이 물씬 묻어나는 공간을 취재합니다. 인터뷰에 함께 기재된 보증금, 월세, 평수 등의 정보는 그가 얼마나 현실에 발 디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드러내는 대목이에요. 아름다운 공간을 꾸미기 전에 우리가 맞닥뜨려야 할 것은 임차인과 임대인의 관계, 비용, 계약 기간과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일 테니까요.
‘네 방을 보여줘’ 인터뷰 시리즈는 기존의 건축 잡지나 인테리어 잡지가 심화시킨 현실과의 괴리감을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그가 의도했던 것처럼 ‘사실은 우리 다 이렇게 살잖아, 다 비슷비슷하게 생활하고 있어’를 보여줍니다.
살아 움직이는 생활 건축
건축은 우리의 생활을 전개하는 터전입니다. 사람들은 건물의 지붕을 손보거나 벽을 허물고 공간을 넓히기도, 창문을 뚫었다가 또 없애기도 합니다. 건축은 형태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필요에 따라 모습을 바꿉니다. 살아있는 생명체와도 같죠. 오래된 건축일수록 그 건물이 통과해온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보기 흉한 흉터이고, 누군가에겐 생활의 역사일 건물의 모습을 홍윤주 건축가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 기록합니다.
그가 기록해온 건축의 모습은 놀랍도록 독특하고 자유롭습니다. 머릿속으로 계획해서는 절대 만들어낼 수 없는 즐거운 형태적 요소들이 우리 일상 곳곳에 숨어있다는 걸 알려주죠. 추하다, 혹은 아름답다고 말하며 가치를 판단하기에 앞서 우선 존재하는 것들을 존중하자고 홍윤주 건축가는 말합니다. 투박한 외형 너머에 얼마나 풍부한 이야기가 들어있는지 알게 되면 건축을 대하는 태도도 자연히 달라질 겁니다. 무작정 허물고 바꾸기보다 평범한 것들의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이고 그 소리를 지켜가는 방향으로요.
건축의 범위 확장하기
건축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건축 잡지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공간, 책에 적힌 건축 담론과 미학적인 형태만이 건축일까요? 홍윤주 건축가는 경비실, 포장마차, 리어카 등 일상적이고 평범한 공간을 들여다봅니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직접 고치고 덧붙이고 주워 온 물건을 재활용하며 만들어낸 형태를 포착해요. 사진 속, 1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엔 구둣방이 자리하고 있어요. 들풀처럼 거대하고 복잡한 도시의 틈새에서 어떻게든 자리를 잡고 생활을 전개하는 사람들. 이들이 살아가는 공간이야말로 ‘진짜 공간’이 아닐까요?
WEBSITE : 진짜공간
INSTAGRAM : @jinzaspace
잠시 휴대폰 화면에서 눈을 돌려 주변을 둘러봅시다. 정사각형 프레임 바깥,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진짜 공간’은 어떤 모습인가요? 아름답고 이상적인 이미지로써의 공간이 아닌, 우리의 삶을 오롯이 담아내는 공간을 바라보아요.
‘진짜공간’ 속 기록들은 일상 속 건축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안경을 만들어 줍니다. 그 안경을 소중히 끼고, 익숙하게 지나던 거리를 다시금 천천히 걸어봅니다. 이번 주말엔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평범한 얼굴을 한 거리를 보물찾기하듯 즐거운 마음으로 누벼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