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사진을 위한
공간 뮤지엄한미

사랑과 기술의 융합으로 탄생한
국내 최고의 사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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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살아간 이들에겐 추억의 소재이자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겐 역사적 기록이기도 한 사진. 삶을 기록하는 매체를 넘어 오늘날 예술로서 자리 잡은 사진을 위해 탄생한 공간이 있습니다. 국내 최초 사진 전문 미술관인 뮤지엄한미가 바로 그곳인데요. 뮤지엄한미는 작년 12월 삼청동에 개관한 미술관으로 가현문화재단이 송파구 방이동에 개관한 한미사진미술관의 맥을 이어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뮤지엄한미가 세상에 탄생하기까지의 시간을 톺아보며, 한국 사진사의 새로운 앞날을 계승해나가는 뮤지엄한미를 오롯이 만나보고자 합니다.


사진 애호가가 일궈낸
국내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

뮤지엄한미
이미지 출처: 뮤지엄한미
뮤지엄한미
이미지 출처: 뮤지엄한미

뮤지엄한미의 시작은 2003년 송파구 방이동 한미약품 사옥에 개관한 한미사진미술관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국내 최초 사진을 전문으로 다루는 미술관으로 출발한 한미사진미술관은 지난 20년간 국내외 주요 사진 작품을 수집하고, 사진전을 기획하고 여러 방면에서 사진작가들을 지원하는 등 한국의 사진 문화예술계에 구심점 역할을 해왔는데요. 개관 당시 사진을 기반으로 창작과 전시 활동을 지원하는 전문 기관을 찾아볼 수 없었기에 이들의 출발은 더욱 의미가 깊었습니다.

모기업인 한미약품의 사옥에서 벗어나 오늘날 사진 전문 수장고를 갖춘 명실상부한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건 송영숙 관장의 사진 사랑이 큰 바탕이 되었습니다. 한미약품 창업주인 고 임성기 전 회장의 아내이자 현재 뮤지엄한미를 이끌고 있는 송영숙 관장은 사진작가이자 유명한 사진 애호가인데요. 숙명여자대학교 출신인 송 관장은 4년제 대학에 사진학과가 없어 사진 동호회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학교를 선택했다는 일화도 잘 알려져 있죠. 그는 사진 예술을 기반으로 한 전문 기관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국내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을 운영하고, 학술연구기관인 한국사진문화연구소를 설립해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며 사진 예술의 육성에 크게 이바지한 장본인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는
국내 최초의 사진 전문 수장고

홍순태, “갈치”, 1971
홍순태, “갈치”, 1971
신현국, “동심”, 1963
신현국, “동심”, 1963

한국 사진사의 체계화와 사진 문화예술의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뮤지엄한미가 일궈낸 가장 큰 성취는 국내 최초로 사진 전문 수장고를 만든 것입니다. 지난 20년간 수집한 2만여 점의 사진 소장품 보존을 위해 국내 최초로 세계적인 수준의 저온 수장고와 냉장 수장고를 구축했는데요. 전 세계에서 이러한 수준의 수장고를 갖춘 사진 박물관은 미국 LA의 게티센터를 비롯해 5~6개에 불과합니다. 뮤지엄한미의 수장고는 그런 곳들과 비교를 해봐도 전혀 손색없는 뛰어난 기능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뮤지엄한미에서 수집한 근현대사의 한국을 담은 사진들은 역사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자료로 손꼽힙니다. 하지만 기술적인 한계로 보관된 사진 중 곰팡이가 피거나 열화와 같은 손상이 일어난 것들이 많았는데요. 더군다나 계절마다 기온 차가 큰 우리나라는 상온에서도 필름을 제대로 보관하기 어려운 환경이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빈티지 프린트 필름 보존하는데 큰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장품을 보존하기 위해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던 뮤지엄한미의 부단한 노력은 그들만의 수장고를 개발해내며 사진 보관 기간을 500년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쾌거를 이뤄낼 수 있었죠.

뮤지엄한미의 수장고는 저온과 냉장 수장고의 이중 체제를 구축해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저온 수장고는 내부 온도 15°C에 상대습도 35%를 유지하고, 냉장 수장고는 5°C와 35%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뮤지엄한미는 왜 두 가지 온도의 수장고를 마련했을까요? 이는 사진이 가진 외부 환경과 온도에 취약하다는 특성에 기반을 둡니다. 사진을 보관하기에 5°C는 안전한 온도지만 바로 상온으로 나오면 결로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데요. 중간에 온도를 적응시키지 않으면 사진 표면에 이슬점이 맺히는데, 이는 사진의 보존에 최악인 상황을 초래합니다. 반드시 15°C에 준하는 저온 수장고가 필요한 이유죠. 이들은 냉장 수장고에서 작품을 외부로 꺼냈을 때 결로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중간 단계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결국 저온 수장고를 국내 최초로 탄생시켰다는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뮤지엄한미의 수장고
이미지 출처: 매거진한경

또한 뮤지엄한미의 냉장 수장고는 모기업인 한미약품의 기술을 적극 도입해내기도 했습니다. 사진과 약품이라는 이질적인 두 요소를 융합하는 과정을 통해 국내 최고의 수장고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죠. 건축 규제 때문에 공간을 넓게 확보할 수 없었던 수장고는 2만여 점의 소장품을 보관하기엔 한계가 있었는데요. 하지만 이들은 발상을 전환해 수장고의 높이를 7m까지 쌓아 올리자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높게 위치한 보관 시설 때문에 소장품의 보관과 정리가 힘들다는 또 다른 단점을 마주했지만, 모기업인 한미약품의 약재를 꺼내고 다시 넣는 첨단 약재 보관 기술을 적극 활용해 극복할 수 있었죠. 세상에 없던 수장고를 만들기까지 참고할 만한 해외 선례가 없어 그 과정이 쉽지 않을 거라는 관계자들의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국내 기술을 적극 도입해 한국 최초이자 최고의 수장고로 자리매김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수장고가 만들어낸
뮤지엄한미만의 전시 공간

뮤지엄한미 전시공간
이미지 출처: 뮤지엄한미

뮤지엄한미에선 올해 4월까지 1929년에서 1982년에 이르는 50여 년의 한국 사진사를 조망하는 전시 ≪한국사진사 인사이드아웃 1929-1982≫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선 1929년에 열린 국내 최초의 사진전인 정해찬 작가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첫 사진전인 임응식 작가의 회고전이 진행됐던 1982년을 기점으로 그간 대외적으로 활동했던 사진가들을 엄선해 조명하는데요. 이번 개관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빈티지 프린트로만 작품을 구성하고자 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빈티지 프린트는 세상에 선보이기 어려운 작품 중 하나였는데요. 사진을 전문으로 보관하는 수집가들 또한 50년이 넘어가니 필름 막이 손상되고 필름의 상이 사라지는 등 해마다 2~3%에 달하는 사진들이 세상 속에서 사라지는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대다수였죠. 하지만 뮤지엄한미의 냉장 수장고는 보관에 취약한 폴라로이드, 컬러 사진과 빈티지 사진들까지도 수명을 상당 부분 끌어올릴 수 있었던 덕분에 쉽게 개최할 수 없었던 사진전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뮤지엄한미 전시공간
이미지 출처: 서울신문

또한 수장고에 출입할 수는 없지만, 한쪽 벽을 유리로 만든 저온 수장고 덕분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진 작품을 관람객이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도 뮤지엄한미만의 큰 장점인데요. 최적화된 항온항습시스템으로 1860년대 사진도 수명을 500년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던 덕분에 주요한 사진들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사진을 도입한 황철이 촬영한 원각사지 10층 석탑 사진과 1880년대 전통 혼례 사진, 초창기 국내 사진관에서 촬영한 인물들의 초상화와 더불어 교과서에서만 봤던 흥선대원군의 원본 초상 사진까지. 보이는 수장고를 통해 선보이는 12점의 사진은 작은 전시지만 쉽게 만날 수 없는 사진의 원본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9길 45
운영 시간: 화~일 10시~18시 (월요일 휴관)


WEBSITE : 뮤지엄한미
INSTAGRAM : @museumhanmi


사진을 위해 탄생한 뮤지엄한미지만, 이들은 사진만 전시하는 것이 아닌 사진을 매개로 여러 장르를 다채롭게 선보일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뮤지엄한미와 맥을 같이 한 사진작가들과 함께 음악을 기획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한계를 두지 않고 색다른 예술 콘텐츠에 도전할 수 있던 원동력은 ‘사진’이라는 기본을 지키는 힘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요? 사진을 기반으로 세상에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려는 뮤지엄한미의 앞으로가 무척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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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연

누군가의 관점이 담긴 모든 것이 예술이라 믿습니다.
ANTIEGG와 함께 예술을 기록하고, 세상에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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