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세계를 확장하는
클래식 아티스트 3명

시간의 먼지를 털어내고
새 옷을 입은 클래식 커버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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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많은 사람들은 커버 음악에 열광합니다. 잘 만들어진 커버 음악은 원곡의 인기를 넘어서기도 하고요. 커버 음악을 떠올리면 대체로 대중음악에서의 작업들이 떠오를 텐데요. 사실 서양음악 역사에서는 이런 작업이 아주 오래전부터 발견됩니다. 한때는 ‘패러디(parody)’ 기법이라는 특정 용어로 불릴 만큼 많은 음악가들이 선호하기도 했습니다. 과거의 노래를 지금 다시 부르는 것은 지나버린 시간 속에서 화석이 된 소리에 숨을 불어넣는 일입니다. 오늘은 아주 오래된 역사 속 음악을 재해석한 클래식 음악 아티스트들의 커버 음악¹⁾을 소개하겠습니다.

1) 클래식 커버 음악: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편곡 연주, 혹은 재작업(rework) 역시 넓은 의미에서는 커버 음악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있던 음악을 자기 나름대로 다시 연주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이걸 ‘클래식 커버 음악’이라고 부를 생각입니다.


현대의 감각으로 재해석한
몇백 년 전의 음악

그 전에 알아둘 점이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에서 커버 작업의 의미는 대중음악과 다르다는 건데요. ‘원작’이라는 말로 지칭하는 것이 서로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중음악의 경우 원작은 ‘그 음악의 원래 주인이 부른 노래’를 의미하지만, 클래식 음악의 경우 ‘그 음악이 원래 작곡된 형태’를 뜻합니다.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대중음악에서는 ‘노래’가, 클래식 음악에서는 대체로 ‘악보’가 원작을 의미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피아노로 연주하라고 작곡한 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하면 원작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지만, 이를 오케스트라로 편곡해 연주할 경우는 커버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 음악을 처음 연주한 원래 주인이 누구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셈입니다.

이런 차이를 염두에 두고 시작해 볼게요. 콘서트홀에서나 들을 법한 웅장한 대편성 작품을 피아노와 아카펠라로 커버한 아담한 음악을 꼽아봤습니다.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음악가들에게서 새롭게 되살아난 2~300여 년 전 음악은 우리에게 어떤 감각을 선사할까요?


예술과 시간
비킹구르 올라프손

비킹구르 올라프손
비킹구르 올라프손, 이미지 출처: Ari Magg / Deutsche Grammophon

비킹구르 올라프손(Vikingur Olafsson)은 아이슬란드 출신 피아니스트입니다. 2017년, 클래식 음악 분야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첫 번째 앨범을 낸 후 매년 새로운 음반을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는데요. 그의 연주는 물론 탁월합니다. 그렇지만 지난 약 6년간 그가 내놓은 음반 작업에서 더욱 눈에 띄는 것은 연주 목록입니다. 그가 연주한 음악은 피아노를 위해 작곡된 음악보다 그렇지 않은 음악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여러 악기가 합주하는 관현악곡이나 사람 목소리가 노래하는 아리아 같은 것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겁니다. ‘Reworks(재작업)’라는 말이 음반 제목에 붙을 만큼, 사실상 올라프손의 거의 대부분의 작업을 커버 음악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몰라요.

올라프손은 혹 원곡을 그대로 연주하더라도 그 음악을 이상한 순서로 재배열합니다. 클래식 음악은 대체로 하나의 작품이 여러 개 악장으로 구성되곤 하는데요. 올라프손은 여러 악장 중 한 곡만 연주하거나 여러 악장을 연주하더라도 자기 식대로 음악의 순서를 재배치합니다. 원래 음악의 시간 흐름을 재구성하려는 것처럼 말이에요. 원작을 커버하거나 원작의 악장 배열을 바꾸면서 기존 작품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하는 일련의 작업은 커버 작업이 올라프손의 음악적 정체성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비킹구르 올라프손 – 라모의 ‘레 보레아드’ 중 ‘예술과 시간(The Arts and Hours)’, 동영상 출처: Deutsche Grammophon

오늘 소개할 올라프손의 음악은 프랑스 작곡가 장 필립 라모(Jean-Philippe Rameau)의 오케스트라 음악입니다. 라모라는 이름이 조금 낯선가요? 그렇다면 그 사람의 음악도 생소할 텐데요. 올라프손의 커버 작업이 의미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은 잊힌 역사 속 보석 같은 음악을 찾아내고, 시간의 먼지를 털어내어 새 옷을 입히기 때문입니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세 어른이 각각 어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합니다. 각자의 문을 여는 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과거 빛나는 시간으로 이동하는 것 같거든요. 아끼는 장난감이 있던 방으로, 오래된 책이 쌓여 있는 퀴퀴한 서재로, 어릴 적 즐겨하던 게임기가 있는 놀이방으로 말이죠. 제가 고른 음악은 라모의 작품 중에서도 오페라 ‘레 보레아드(Les Boreades)’의 4막이 시작할 때 나오는 음악입니다. 올라프손이 피아노로 연주한 장 필립 라모의 ‘예술과 시간’을 들어보세요. 구구절절한 제 글은 모두 잊어도 좋을 만큼 아름답습니다.


INSTAGRAM : @vikingurolafsson


투명하게 공명하는 목소리
VOCES8

VOCES8
VOCES8, 이미지 출처: ‘Jóhannsson: A Pile of Dust (Arr. Rimmer)’

VOCES8은 영국을 대표하는 아카펠라 그룹입니다. 악기 반주 없이 사람의 목소리로만 노래하는 것을 아카펠라(a cappella)라고 하죠. ‘카펠라’는 이탈리아어로 ‘교회’를 의미합니다. 여기에 ‘~풍으로’를 뜻하는 ‘아’가 붙어 글자 그대로의 ‘아카펠라’는 ‘교회풍으로 노래하라’는 의미를 담습니다. 교회에서 무반주 다성합창음악이 유행하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런 양식으로 된 음악을 폭넓게 ‘아카펠라’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지금은 교회에서 부르는 노래가 아니더라도 반주 없이 사람 목소리로만 여러 성부를 부르는 조화로운 노래를 의미합니다. 2003년 처음 결성되어 올해 20주년을 맞은 VOCES8은 2023 그래미 어워즈에 노미네이트 될 만큼 예술성과 대중성 모두를 겸한 그룹입니다. 이들은 클래식 음악부터 재즈, 팝, 전통적인 민속음악까지 무척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아카펠라 편곡으로 노래합니다. 그 작업들은 유튜브의 VOCES8 채널에 업로드되어 손쉽게 감상할 수 있고요.

VOCES8,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 동영상 출처: VOCES8

그중 여기서 소개하려는 음악은 에드워드 엘가가 작곡한 ‘수수께끼 변주곡’에 수록되어 있는 아홉 번째 변주, ‘님로드(Nimrod)’입니다.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은 주제와 열네 개의 변주로 구성된 관현악 음악입니다. 각각의 변주에는 ‘C.A.E’ ‘H.D.S.-P’ 따위의 수수께끼 같은 제목이 붙어 있는데요. 이 알파벳은 엘가 친구들의 이니셜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작곡가는 친구들을 떠올리며 각각의 성격을 연상시키는 음악을 열네 곡의 변주로 완성한 겁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9번 변주 ‘님로드’는 이 곡만 따로 분리해 자주 연주할 만큼 유명한 음악입니다. 특히 관현악단의 음악회에서는 앙코르 음악으로도 곧잘 연주되는데요.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음악이어서 이 곡을 예기치 못하게 앙코르로 듣게 되는 날엔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에 잠기곤 합니다. VOCES8은 원래 50여 명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음악을 단 여덟 명의 목소리로 부릅니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함과는 다른, 목소리로 부르는 ‘님로드’의 투명한 공명을 들어보세요.


INSTAGRAM : @voces8


고향의 소리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 이미지 출처: Gavin Evans / Sony Classical

우수에 찬 표정과 구릿빛 피부, 윤기 흐르는 구불구불한 머리칼. 유명 배우를 수식하는 말이 아닙니다. 네모난 사진 속에 보이는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Khatia Buniatishvili)의 얼굴입니다. 발음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는 조지아 출신의 세계적 피아니스트입니다. 1987년생의 이 젊은 피아니스트는 6살에 이미 조지아에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며 주목받았고 10살에는 세계 무대에 오르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일찍부터 시작된 프로 연주자 경력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피아니스트를 알게 된 건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2015년에 발매된 음반 [Motherland]로 처음 그의 음악을 들었거든요. 오늘 소개할 바흐의 ‘사냥 칸타타’ 중 ‘양들은 편안히 풀을 뜯고’가 수록된 음반이기도 합니다. [Motherland]라는 음반 제목이 얼마간 알려주는 것처럼, 이 음반에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음악으로 담겼는데요. 리스트의 ‘자장가(Wiegenlied)’나 차이콥스키의 ‘사계’ 중 ‘10월’처럼 우아한 음악부터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 같은 비교적 빠른 템포의 춤곡까지 다양합니다. 그 일련의 음악은 일찍이 고향을 떠나 전 세계를 누비는 화려한 피아니스트가 이면에 간직한 노스탤지어겠지요.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 바흐의 ‘사냥 칸타타’ 중 ‘양들은 편안히 풀을 뜯고’. 동영상 출처: Sony Classical

그래서 이 음반은 수록된 여러 음악 중 특정 음악 하나를 골라서 듣기보다 부니아티쉬빌리의 호흡에 맞추어 전곡을 차근히 들어보는 것이 더 좋을지 모릅니다. 음반 속에 담긴 각각의 음악이 나름의 정서적 스토리를 가질 테니까요. 그럼에도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하고 싶은 음악은 바흐의 ‘사냥 칸타타’ 중 한 곡인 ‘양들은 편안히 풀을 뜯고’입니다. 칸타타란 여러 악장으로 된 합창음악 장르입니다. 각 악장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이야기를 노래하죠. 바흐의 ‘사냥 칸타타’ 역시 사람의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입니다. 여기에 악기 반주가 더해지는데요. 부니아티쉬빌리는 성악과 기악이 함께 연주하는 이 음악을 피아노로 커버 연주합니다. 바흐 음악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여러 성부가 매우 복잡하게 얽히면서도 조화로운 음악을 만들어 간다는 점인데요. 부니아티쉬빌리의 피아노 커버 연주는 혼자서 연주하기에 까다로운 칸타타의 여러 성부 소리들을 부족함 없이 조화롭게 꿰어냅니다. 고향을 향한 피아니스트의 향수와 함께, 자기 내면의 무언가를 향한 그리움에 귀 기울여 보세요.


INSTAGRAM : @khatiabuniatishvili


미디어학자 마셜 매클루언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말했습니다.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니, 담고 있는 내용이 같아도 무엇을 수단 삼아 전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 곧 메시지는 달라진다는 겁니다. 커버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케스트라의 합주로 듣는 ‘님로드’와 VOCES8의 목소리로 듣는 ‘님로드’는 다른 음악입니다. 미디어, 즉 소리를 전달하는 악기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커버 음악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선율이 다른 악기, 혹은 목소리와 만나 우리가 경험하는 음악의 세계를 무한히 확장시킬 테니까요.


박수인

박수인

음악과 음악활동을 하는
우리에 관해 생각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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