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에
끌리는 이유

스킵과 숏폼의 시대
사이다 콘텐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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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콘텐츠는 ‘사이다’로 통한다. 탄산음료인 ‘사이다’는 한 모금을 마시면 속이 뻥 뚫린 것 같은 시원함을 준다. 이러한 특성은 답답한 상황을 통쾌하게 해결해주는 주인공의 행동, 혹은 상황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사이다’라는 용어로 재탄생 되었다. 이와 반대로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답답한 상황, 감정은 ‘고구마’로 표현된다.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높은 인기에 힘입어 시즌2로 돌아온 <모범택시> 등 흥행 콘텐츠에는 사이다가 빠지지 않는다. 사이다가 흥행 공식이 된 사회, 우리는 왜 사이다 콘텐츠에 빠지게 됐을까?


더 빠르고, 더 짧아진 콘텐츠

1) “답답한 건 싫어요”

다양한 콘텐츠 아이콘
이미지 출처: unsplash

‘사이다 콘텐츠’의 탄생과 흥행에는 향유 방식과 변화가 큰 영향을 끼쳤다. 드라마와 영화부터 웹툰, 웹소설과 유튜브까지. 스마트폰의 보급화와 OTT 플랫폼의 확장 등, 2023년을 사는 우리는 콘텐츠의 바다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방 사수’를 해야만 했던 올드 미디어 시청 방식은 ‘언제 어디서나’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는 뉴 미디어 시청 방식과 맞지 않다. 시청자는 시청 방식을 통해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한다.

2) 스킵에서 시작되는 사이다

유튜브
이미지 출처: unsplash

유튜브에 드라마, 영화의 제목을 검색하면 ’30분 만에 몰아보는 ㅇㅇㅇ’라는 제목의 ‘요약 콘텐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6부작, 혹은 8부작 드라마를 ‘정주행’하기 위해서는 최소 1000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정된 시간 안에 다양한 콘텐츠를 보고 싶은 이들은 1000분 짜리 정주행 대신 30분짜리 요약 콘텐츠를 선택한다. 높은 화제성을 기록하고 있는 <더글로리>, <약한 영웅>의 요약 콘텐츠는 10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대표적인 콘텐츠 향유 방식이 된 요약 콘텐츠는 중심 사건, 캐릭터를 제외한 사건은 생략하거나 축약한다. 그 과정에서 전체 스토리와 메세지는 분해되고 새롭게 조립된다. 조회수를 위해 갈등-해결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사이다 콘텐츠’로 재탄생 시키기 때문이다. 요약 콘텐츠를 통해 전체 이야기를 스킵하는 향유자들은 “모든 이야기를 봐야 하는 이유가 있냐” 반문한다.

3) 숏폼 시청과 배속 시청

법쩐 하이라이트 썸네일
이미지 출처: SBSCatch

‘요약 콘텐츠’가 핵심 줄거리, 사건을 요약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면 클립 영상과 숏폼 콘텐츠는 장면에 집중한다. 화제가 된 장면, 특정 캐릭터의 대사에 집중하는 숏폼 콘텐츠는 영상의 내용을 텍스트로 요약해 적어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향유자는 텍스트를 통해 콘텐츠 내용을 미리 파악해 시청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숏폼 콘텐츠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이 원치 않는 요소를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출연진의 출연 장면만, 보고 싶은 장면만 다시 보며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는 ‘스킵’한다. 2022년 큰 화제를 모은 <환승연애2> 해은-현규의 데이트 장면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법쩐>의 이선균이 복수를 다짐한 숏폼 영상도 조회수가 56만 회에 육박한다.

배속 시청, 건너뛰기도 마찬가지다. 현재 OTT 서비스인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와 유튜브는 1.25배속, 1.5배속, 1.75배속, 2배속으로 재생하는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왓챠, 디즈니+ 등 배속 감상 기능이 없는 OTT 구독을 꺼리는 시청자도 있다.¹⁾ 다양한 형태의 ‘스킵’은 ‘통쾌함’에 몰두하는 심리를 대변한다. 이는 ‘사이다 콘텐츠’의 탄생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향유 방식에 맞춰 변화하는 스토리텔링

재벌집 막내아들 포스터
이미지 출처: JTBC
약한영웅 포스터
이미지 출처: WAVVE

다양한 ‘스킵’이 향유방식으로 자리잡으며 스토리텔링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최근 큰 인기를 얻은 ‘회귀물’ 장르도 기존의 스토리텔링 문법과 반대된다. 과거로 돌아가거나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회귀물’은 주인공이 회귀를 통해 타 등장인물보다 ‘우위’에 선다. 회귀물은 ‘전지전능한 주인공’이 주는 우월감과 스트레스 해소가 핵심이라는 것²⁾을 작품 속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동명의 원작을 각색한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도준이 미래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순양가에서 자리를 잡은 것도 이러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향유자들은 주인공이 복수를 하기 위해, 혹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지켜보지 않아도 된다. 회귀를 통해 새로운 능력을 쌓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생략되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우월함, 빠른 스토리 전개는 ‘사이다’로 이어진다. 8부작으로 구성된 드라마 <약한 영웅>도 시은-영빈의 갈등 상황, 시은의 가정사 등 캐릭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생략한다. 서서히 갈등을 고조시키고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는 기존의 스토리텔링 대신, ‘해결’에 초점을 둔다. ‘스킵’이 일상이 된 시대, 향유자가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사이다에 집중하며 스토리텔링도 변하는 것이다.


우리는 왜 사이다를 찾나

눈을 가린 남자
이미지 출처: pixabay

문화 콘텐츠에는 사회가 녹아있다. 그렇다면 사이다 콘텐츠의 흥행에는 어떤 현실이 담겨있을까? 1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구직·교육·직업 활동을 하지 않는 ‘니트족’ 규모가 올 들어 39만 명까지 불어났다.³⁾ 극심한 취업난과 경기 침체로 취업 자체를 포기하는 2030의 문제는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극심한 학업 경쟁, 청년 고립, 금수저 흙수저 논쟁으로 대변되는 빈부격차 모두 ‘고구마’ 같은 2023년 한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로또
이미지 출처: pixabay

SK커뮤니케이션즈 시사 폴 서비스 ‘네이트Q’가 성인남녀 9613명을 대상으로 ‘만약 당신이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절반에 가까운 4747명(49%)이 “주식이나 비트코인, 로또 등 투자로 인생 역전을 하겠다”고 답했다. 특히 20·30세대의 인생 역전 욕구가 돋보였다. 20대, 30대가 “과거 회귀 시 인생 한 방을 노릴 것”이라고 답한 비율은 각각 54%와 56%로 다른 연령대보다 높았다.⁴⁾

2030이 ‘인생 역전’을 꿈꾸는 것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정서’와 맞닿아있다. 학업, 취업 등 성실하게 살아왔으나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불공정을 느끼며 절망감에 빠진 것이다. 현실에 대한 불만과 답답함, 상실감이 높은 2030은 통쾌함을 선사하는 사이다 콘텐츠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모범택시 포스터
이미지 출처: SBS

2년 만에 시즌2로 돌아온 드라마 <모범택시>는 ‘사적복수 대행극’이다. “정의가 사라진 사회”를 외치는 <모범택시>는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가해자들을 ‘응징’한다. 학교 폭력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더글로리>, 자신을 괴롭히는 일진들을 응징하는 <약한 영웅>에도 ‘사적 복수’가 등장한다. 사적 복수 장면은 ‘제대로 응징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참교육’이라는 밈(meme)으로 불리며, 사이다를 선사한다. 사적 복수가 사이다가 된 것은 공권력에 대한 불신, 차별과 불합리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뿌리 깊은 좌절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결국 ‘정의’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

몇 년 전 연예계를 강타한 학폭 논란은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트렸다. 많은 이들은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말도 옛 말이다. 저렇게 잘 먹고 잘 살지 않냐”며 회의감을 토로했다. 인내와 성실, 권선징악 등 우리 사회가 강조하고 우리가 믿어온 ‘정의’가 깨어지는 것을 경험한 이들이 ‘사이다 콘텐츠’를 통해 위안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다. 악의 패배를 통해 여전히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 ‘정의’가 ‘사이다’를 불러올 것이라는 확신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정의롭고 질서정연하다는 것을 확인하는⁵⁾ 수많은 이들의 바람이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다.

1) 쿠키뉴스, ‘바쁘다 바빠’ 빨리 보고 짧게 보는 청년들 [지금, Z세대], 2022
2) 미디어오늘, ‘빨리 감기’ 필수인 세대 왜 ‘회귀물’에 열광하나?, 2022
3) 아주경제, [극의 시대] 취업 포기하는 2030…질 낮은 잡으로 몰리는 6070, 2023
4) 뉴시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9600명에 물었더니…”코인·로또로 인생 역전”, 2023
5) 김세연. “뉴미디어 시대 속 ‘참교육’ 콘텐츠와 현대인의 의식구조.”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22.4 (2022): 468-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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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영

예술, 사람, 그리고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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