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의 한복판, ‘승리로의 계단(A Stairway to Victory)’이라는 별칭의 회랑에는 고대 그리스의 걸작 “사모트라케의 니케(The Winged Victory of Samothrace)”가 자리하고 있다. 이 조각상이 수많은 관람객의 발길을 끄는 것은 2미터가 훌쩍 넘는 키와 전시장이 주는 특유의 장엄한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머리와 두 팔이 없음에도 위풍당당한 여신의 모습이 감명 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불완전한 상태로 남겨진 지금이 오히려 신비함을 더해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조각상을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듯 훼손된 모습도 그 작품의 아우라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예술과 손괴(損壞), 그리고 보존 사이의 관계를 곱씹어보게 된다. 예술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것에는 어떠한 의미와 기준이 있을까.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지키고 되살려야 할까. 이번 글에서는 그 윤리적 맥락을 짚어보고자 한다.
예술품 보존이 추구하는 것
인류는 늘 작은 토기에서부터 거대한 건축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무언가를 만들고, 고치고, 그것이 너무 빨리 사라져버리지 않도록 시간에 맞서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보존의 역사는 예술의 역사만큼이나 유구하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익숙한 수많은 명화와 조각상, 건축물 등은 이미 수 세기 전부터 여러 차례 보존의 손길을 거쳐왔다. 일례로 1565년에는 미켈란젤로의 천장 벽화가 있는 시스티나 성당이 완공된 지 53년 만에 보수됐고, 1726년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벽화 “최후의 만찬”이 최초로 복원됐으며, 1851년에는 렘브란트의 “야경”의 캔버스가 새로운 마감 처리를 거쳤다. 특히 “야경”은 현재까지 무려 25차례나 복원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세기부터 예술품 보존은 그 전문성과 필요성을 인정받아 독립된 분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20세기 중엽까지 진행됐던 예술품 보존은 주로 ‘repair(수리)’ 혹은 ‘restoration(복원)’의 형태로, 예술품이 이미 손상된 후에 ‘수리’하고 원형의 상태를 단순히 ‘회복’하는 것에 그쳤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보존학은 좀 더 확장된 개념과 기법을 갖추게 된다. 현대적 의미의 예술품 ‘보존’, 즉, ‘컨서베이션(conservation)’은 작품의 문화적인 가치에 대한 평가와 연구를 통해 보존의 필요성에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손상된 사후의 처리뿐만 아니라 작품의 의의, 물질적인 형태와 미적 성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예술품을 다루는 것을 포괄하는 분야로 발전한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경향은 ‘예방 보존’이라는 개념으로 더욱 구체화되었다. 예방 보존이란 그 이름이 내포하는 것처럼 예술품의 노화와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환경적인 요인들을 알아내어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한 접근법을 의미한다. 이것은 작품의 상태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습도, 조도(照度), 해충에의 노출, 보안상의 문제 등 많은 오염 요인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현대 과학이 구현할 수 있는 최선의 수장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에는 작품의 훼손에 대한 비상 대책 수립, 관련 종사자 및 대중의 교육까지도 포함된다. 정리하자면 오늘날의 예술품 보존은 작품을 중심으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예상하여 주의를 기울임과 동시에, 작품의 원형을 최대한 존중하고 직접적인 개입은 최소화한다는 윤리 의식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이것은 마치 시간적 진공 상태를 조성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훼손이 가치를 창출하는 순간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술품이 훼손되는 사건은 종종 발생한다. 2021년 3월, 경주 솔거미술관에서 열린 소산(小山) 박대성 화백의 특별기획전 ≪서화, 조응하다≫ 전시장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생으로 추정되는 어린이 관람객 두 명이 전시 중인 작품 위에 올라가 장난을 치는 바람에 작품이 훼손되는 일이 일어났다. 현장에는 아이들의 아버지도 함께 있었지만, 상황을 전혀 제지하지 않았던 것이 드러나 빈축을 샀다. 훼손된 작품은 통일신라시대의 명필 김생의 글씨를 모필한 것으로 시장가치 1억 원을 상회하는 가로 39cm, 세로 19.8m의 대작이었다.
그러나 작품의 저작권자인 박대성 화백은 ‘커가는 아이들이 저지른 일이니 아무 문제도 삼지 말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의 작품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것이 오히려 좋다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솔거미술관 측이 작품을 복원할 것을 제안하자 그는 ‘좀 긁힌 것도 하나의 역사이니 놔두는 것이 낫겠다’며 필요한 조치는 최소화하여 전시를 마친 후에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지난 2월 16일에는 미국 마이애미 ≪아트 윈우드≫ 페어의 개막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VIP 행사에서 한 방문객이 제프 쿤스(Jeff Koons)의 작품 “파란 풍선개(Balloon Dog – Blue)”를 손으로 두드려보다가 전시대에서 떨어뜨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작품은 도자기로 제작된 것이었기 때문에 즉시 100여 개의 작은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이번에도 사람들은 다소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우선 작품의 저작권자 제프 쿤스는 예술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안타깝지만, 모두 알다시피 그것은 도자기 접시 한 장이 깨진 것과 마찬가지인 일일 뿐’이라며 사고를 일으킨 관람객을 책망하지 않았다. 제프 쿤스의 말대로 “파란 풍선개”는 799개의 에디션이 있는 시리즈로, 다른 색깔과 크기의 “풍선개”들까지 포함한다면 수천 점의 조각상이 전 세계에 흩어져 소장되어 있다. 사고가 발생한 아트페어 부스를 관리하던 벨에어파인아트 갤러리(Bel-Air Fine Art)의 책임자 세드릭 보에로(Cédric Boero)는 이번 일로 “파란 풍선개” 시리즈의 총 작품 수가 798개로 줄어 오히려 그 희소성과 가치가 높아졌다며 ‘수집가들에게는 좋은 소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트페어를 방문한 관람객들도 부서진 작품을 퍼포먼스나 설치 예술로 해석하는 등 흥미로운 이벤트로 받아들이면서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런 와중에 작품의 파손 장면을 직접 목격한 미국의 예술가 겸 컬렉터 스티븐 갬손(Stephen Gamson)이 깨진 상태의 “파란 풍선개”를 구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과연 훼손된 작품이 얼마나 시장성을 가질 수 있을지, 새로 책정될 가격은 얼마일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고 발생 이전 “파란 풍선개”는 4만 2천 달러(한화 약 5천 500만 원)의 시장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 바 있다. 갬손은 이번 사건이 원래의 작품에 ‘스토리’를 더했다며, 작품의 외형은 변했어도 그 가치는 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만약 갬손과 제프 쿤스의 거래가 성사된다면 예술품에 있어 물리적 훼손이 반드시 가치적 훼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매우 구체적이고 확실한 선례를 남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훼손은 훼손이다
하지만 모든 사례가 훼손에 관대한 입장을 보인 것은 아니다. 2022년 10월, 한국 예술 시장을 대표하는 대형 화랑 중 하나인 국제갤러리와 그 협업 화랑 티나킴 갤러리는 도널드 저드(Donald Judd) 재단으로부터 작품 훼손에 대한 17만 달러(한화 약 2억 4000만 원)의 배상소송을 당했다. 두 화랑은 2015년 재단으로부터 알루미늄제 수직 서랍장 모양의 조형물 “무제”(1991)의 판매를 위탁 받아 수 년간 관리한 후 2018년에 반환했는데, 그 후 발견된 지문 얼룩 때문에 작품이 영구히 변질되어 더이상 판매가 불가능할 만큼의 피해를 봤다는 것이었다. 재단 측이 요구한 배상액은 2015년 당시 작품의 판매 가격으로 책정됐던 85만 달러(12억 1000만 원) 중 보험사로부터 이미 배상받은 68만 달러(9억 6000만 원)를 제외한 금액이며, 여기에 더해 별도의 손해배상금까지 지급받아야 한다는 것이 재단 측의 최종 주장이었다.
이 사건은 늘 터무니없는 숫자가 난무하는 현대 예술 시장이 고작 지문 한쪽에 집착하는 해프닝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예술품 보존에 대한 또 다른 윤리적 가치관이 들어있다. 소송의 원고인 재단 측이 대리하는 예술가 도널드 저드(1928-1994)는 미국의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거장이자 이론가이다. 그는 물질 그 자체가 주는 현상학적 경험에 주목했으며 이것을 극대화하기 위해 직접 금속판, 유리, 베니어판 등의 산업적 재료를 사용하여 마치 모듈 가구를 연상시키는 함축적인 형태의 조형물을 만들었다. 그는 개념의 완벽한 구현을 위해 조형물의 모든 표면을 강박적으로 마감했으며, 미세한 털로 먼지를 제거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직접적인 접촉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였다. 작품의 무결한 상태가 바로 작품 그 자체였던 셈인 것이다. 작가가 타계한 후에도 재단 측은 이러한 입장을 고수해왔고 그랬기 때문에 이번 사건을 그냥 넘길 수 없었던 것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즉, 앞서 소개된 사례들에서처럼 손괴까지도 작품의 일부로서 보존할 수 있는 경우는 작가의 가치관과 작품을 둘러싼 맥락이 그것을 수용할 수 있을 때까지 만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훼손을 일으킨 사건이 마치 노이즈 마케팅처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켜 새로운 시장가치를 창출할 수는 있으나, 그에 앞서 작품의 원형에 담겼던 작가의 의도가 가장 우선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오늘날의 예술품 보존이 어떠한 윤리적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지 살펴보고, 그 동전의 뒷면인 작품의 손괴는 어디까지 작품의 가치로 편입될 수 있을지 고민해보았다. 여기에는 단순히 관습적인 판단만이 아닌 작품에 담긴 잠재성과 관련된 모든 사건의 중첩을 고려한 신중하고도 입체적인 가치관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작품의 외형만큼이나 그 안에 포함된 유동적이고도 섬세한 가치도 주목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전시장에서 작품을 마주할 때 그곳에는 공간뿐 아니라 시간이라는 축도 분명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작품의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 김은진,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생각의힘, 2020.
- 조선일보, 어린이가 ‘1억 작품’ 훼손…화백은 “그게 애들이지 뭐”, 2021. 05. 06.
- The Artro, 미술품 보존복원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2015. 08. 19.
- 한겨레, 美 아트페어 VIP가 제프 쿤스 ‘풍선개’ 깨뜨려…”행위예술인 줄”, 2023. 02. 20.
- 한겨레, 작품에 지문 묻었으니 2억4천만원 물어내…그래야 할까?, 2022. 10. 11.
- Artnet News, The Judd Foundation Is Suing Two Galleries for ‘Disfiguring’ an $850,000 Donald Judd Sculpture With Fingerprints, 2022. 10. 06.
- Los Angeles Times, Jeff Koons’ ‘Balloon Dog (Blue)’ shattered. Art collectors are fighting for the shards, 2022. 02. 23.
- NPR, He watched the Koons ‘balloon dog’ fall and shatter … and wants to buy the remains, 2022. 0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