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즈 캔슬링의 시대
우리는 어떻게 듣는가

ASMR의 팅글과
신체화된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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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윽 쓰윽. 톡톡톡. 휘이잉. 사라락. 이것은 최근 크게 주목받고 있는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영상 콘텐츠에 담기는 다양한 소리를 언어화해 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먹방 유튜버들 사이에서 먹는 소리를 정교하게 들려주어 미각을 자극하는, 먹방과 ASMR을 결합한 영상 콘텐츠가 유행하면서 ASMR이 곧 먹방인 것처럼 오해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ASMR은 글자 그대로 트리거(trigger)가 되는 특정 소리가 신체에 자동으로 기분 좋은 감각을 전달하게 하는 영상을 일컫는다. ASMR 크리에이터는 영상에 담긴 섬세한 소리를 효과적으로 감상하기 위해서 청취자들에게 이어폰을 착용하라고 권한다. 스테레오로 녹음된 소리는 양쪽 귀를 오가며 공간감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ASMR 영상 콘텐츠는 이렇듯 이어폰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매우 작고 미세한 ASMR의 소리는 외부의 소음을 차단해주는 이어폰을 착용하고 감상할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상용화된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은 ASMR 청취에 가장 최적화된 매체다. 이어폰이 없었다면, 어쩌면 ASMR이 유행하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어폰은 우리가 무엇을 들을지, 어떻게 들을지를 결정하는 적극적인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어폰의 등장은 우리의 청취 경험을 어떻게 재편하고 있을까? ASMR의 경우를 통해 이 문제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ASMR에 관한 첫 번째 기억

기분 좋게 나른한 주말 오후였다. 방금 세탁을 마친 젖은 빨래는 배란다에서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늘어져 있었다. 점심을 먹고 침대에 반쯤 기대고 누워있자니 건조대 위 늘어진 빨래처럼 노곤해졌다. 한 손으로 핸드폰을 쥐고 유튜브에 접속해 목적 없이 기계적으로 스크롤을 내리다, 무심코 개그우먼 강유미의 ‘강유미 yumi kang좋아서 하는 채널’에 올라온 ASMR 영상을 클릭했다. 그 영상에서 강유미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브러시를 쓸어내리거나 메이크업 스펀지를 두들기는 시늉을 하면서 메이크업 아티스트 연기를 보여주었다. 화면 속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움직임과 실제 화장하는 것 같은 소리는 직접 메이크업을 받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개그우먼의 정체성을 발휘한 강유미의 재미있는 입담과 함께 어딘지 모르게 편안함을 주는 메이크업 소리에 스르륵 잠이 들었는데, 그 기분 좋은 단잠을 잊을 수 없어 그날 이후 매일 ASMR을 듣고 있다.

‘강유미 yumi kang좋아서 하는 채널’
이미지 출처: ‘강유미 yumi kang좋아서 하는 채널’

편안한 소리를 좇는
소리 덕후들과 ASMR의 시작

ASMR은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에서 각 단어의 앞 글자를 골라 만든 신조어다. 우리말로는 ‘자율감각쾌락반응’으로 번역되곤 한다. 원어와 한글 번역어 모두 무슨 전문 의학 용어처럼 보이지만, ASMR이라는 말은 학술적 맥락과는 관계 없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제니퍼 앨런(Jennifer Allen)이라는 사용자가 제안한 것이다.

이 말이 생겨난 배경은 ‘Steady Health’에 올라온 하나의 게시글에 있다. ‘이상한 느낌인데 기분 좋아 Weird Sensation Feels Good’라는 제목으로 게시한 이 글의 작성자는 어렸을 적 인형극을 보거나 친구가 마커로 손에 그림을 그려줄 때 느꼈던 기분 좋은 감각에 대해 술회한다. 그러면서 이 느낌이 무엇인지 물었다. 아래 인용은 게시글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가끔 이런 감각이 느껴져요. 그 감각을 느끼게 하는 트리거는 딱히 없어요. 그냥 아무 때나 일어나요.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인형극을 보거나 이야기책을 읽을 때 그런 느낌이 났어요. 또 10대 때는 같은 반 친구가 마커로 제 손에 그림을 그려줄 때도 그랬고요. [중략] 그 느낌은 내 머릿속과 온몸에서 나타나요. [중략] 이 느낌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도와주세요.”

_okaywhatever51838, WEIRD SENSATION FEELS GOOD

그러자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작성자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네티즌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이 글에 댓글을 단 네티즌들은 자신이 작성자와 유사한 감각을 느꼈던 개인의 경험, 그런 감각이 느껴진 환경, 그 감각의 트리거가 된 특정 소리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이상한 느낌인데 기분 좋아 – PART 2’까지 만들어졌고 이 글에는 더 많은 댓글이 달리면서 첫 번째 게시글에서보다 훨씬 긴 스레드가 만들어졌다. 네티즌들은 자신들에게 기분 좋은 감각을 일으키는 트리거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고, 어떤 영화 속 특정 장면을 추천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 같은 현상에 이름을 붙이자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그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바로 ASMR이다. 처음에는 특정 트리거가 자동으로 신체적 반응을 일으키는 그 ‘현상’을 부르던 것이 나중에는 유튜브라는 영상 콘텐츠 플랫폼과 만나면서 그 트리거들을 모아 놓은 영상 콘텐츠 자체를 일컫는 용어가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공통으로 주장하는바 그 트리거는 주로 소리이며 그 소리는 어쩌면 소름 돋는 것과 비슷한, 몸이나 뇌 속에서 찌릿한 감각(tingle)을 통해 신체적∙정서적으로 편안함을 준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ASMR이라는 말은 사실상 편안한 소리를 좇는 소리 덕후(!)들의 온라인 공론장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어폰과 소리의 이동성

이어폰의 등장은 소리의 이동성을 가속했다. 우리가 각자의 소리를, 각자의 음악을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소니에서 최초로 발매한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이름이 ‘워크맨walkman’이었던 것은 이런 맥락에 있다. 이어폰을 착용한 순간 우리는 물리적 소리 환경을 떠나 각자의 가상 소리 공간으로 이동한다. 심지어 그 공간은 고정된 공간도 아니다. 사용자의 걸음을 따라 이동하는 움직이는 소리 공간이다.

이 말은 곧 이어폰이 나오기까지 우리는 주로 고정된 장소에서 음악을 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커다란 카세트 플레이어를 어깨에 이고 걸어 다니면서 음악을 듣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여전히 이어폰은 개인적 청취라는 점에서 카세트 플레이어와는 다르다. 게다가 카세트 플레이어의 스피커는 소리와 소리를 듣는 청각 기관의 물리적 거리를 전제하는 것과 달리 귀에 꽂는 이어폰의 소리는 청각 기관과 착 달라붙어 마치 귓속에서, 혹은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는 것 같은 착각까지 일으킨다. 카세트 플레이어의 스피커와 이어폰은 모두 소리를 확성하는 기계지만, 둘은 분명 구별된다.


노이즈 캔슬링의 시대와 ASMR

바야흐로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의 시대. 노이즈 캔슬링 기술을 만난 이어폰은 그 고유한 특성이 더욱 강화된다. 이제는 상용화된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은 외부 소음을 단순히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것을 넘어 기술적으로 제어하기 때문이다. 외부 소음을 차단하는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의 질은 꽤 높은 수준이다. 필자의 경우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처음으로 착용하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이어폰을 귀에 꽂자 인도 옆 도로를 지나는 버스의 ‘우웅-’ 하는 커다란 엔진 소음이 갑자기 중단되어 눈앞에 버스를 보고 있으면서도 버스가 사라진 것 같았던 그 경험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버스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면, 그 순간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이 불러들인 무소음의 세계로 순식간에 빨려들어 간 것인지도 모른다.

매우 작은 소리를 녹음해서 만든 ASMR 콘텐츠는, 그래서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착용하고 들을 때 그 효과가 커진다. 사물을 손끝으로 톡톡톡 두드리는 소리나 브러시를 사라락 쓸어내리는 소리, 연필로 종이에 끄적이는 소리처럼 작고 섬세한 소리는 아무리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고 해도 버스의 엔진 소리나 지하철 운행 소음 같은 커다란 외부 소리에 쉽게 묻히기 때문이다.

헤드폰으로 듣고 있는 남자 뒷모습
이미지 출처: The Times of India

ASMR이 ‘심신의 안정을 돕는 소리’라고 할 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이어폰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어폰은 그러한 효과를 만들기 위한 청취 ‘형식’이고, ASMR은 그 ‘내용’인 셈이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은 외부 소리를 차단함으로써 우리의 신체를 물리적 환경과 단절된 가상의 사적 공간으로 이동시킨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과 함께 눈앞의 버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혹은 무소음의 세계에 진입한 필자의 경험이 바로 그 예다.

이어폰으로 형성된 가상의 사적 공간은 ASMR의 작고 미세한 소리로 구체화된다. 매우 근접한 거리에서만 인식할 수 있을 만한 ASMR의 작은 소리는 귓속에 꽉 채워져 크게 들린다. 연필을 종이에 사각거리는, 실제로는 매우 작은 소리가 이어폰을 통해 커다랗게 확대되면서 그 작지만 커다란 소리가 불러일으키는 좁은 가상의 공간으로 신체가 이동된다. 이 같은 효과는 ASMR의 주요 콘텐츠를 이루는 ‘롤 플레이’ 영상에서 더 커진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헤어 디자이너, 피부샵 관리사 같은 역할이 ASMR의 대표적 롤 플레이인 것은 이 같은 특정한 환경과 공간에서 케어 받는 경험을 구현하려는 것이다. 그 환경과 공간에서 들을 수 있을 법한 소리로 구성된 ASMR은 소리를 통해 우리의 몸을 가상의 메이크업 샵으로 불러들인다.


팅글, 뇌를 관통하는 찌릿함

이어폰을 타고 귓속에 흘러든 ASMR의 소리는 신체에 기분 좋은 자극을 일으키는, 이른바 ‘팅글’(tingle)의 기제가 된다. ASMR 청취자들은 팅글을 느끼기 위해 ASMR을 듣는다고 입을 모은다. 팅글을 느끼도록 하는 소리의 종류는 개개인이 다 다르지만, 특정 소리가 뇌를 관통하는 것 같은, 혹은 목뒤가 찌릿하는 팅글을 감각한다는 것만큼은 똑같다.

헤드폰 끼고 감상하는 모습의 일러스트
이미지 출처: NPR

의미심장한 것은 ‘소리’가 ‘신체’에 ‘자극’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의 일종인 소리를 ASMR의 청취자들은 실제 물리력을 가진 사물처럼 신체적으로 감각한다. 소리를 신체적으로 감각한다는 것은 소리의 과정, 소리의 의미, 혹은 그 소리의 출처를 인식하면서 듣는 것과 다르다. 그 소리가 어떤 사물에 마찰을 가해서 만들어진 소리인지를 인식하고 분별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리를 내는 사물을 손으로 만지고 그 사물의 질감을 촉각적으로 감각하는 것에 가깝다. 소리를 신체적으로 감각한다는 것은 내 몸에 닿는 사물의 물성을 소리로 경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이라는 청취 ‘형식’과 ASMR이라는 ‘내용’의 결합은 실제 공간을 왜곡시켜 소리로 지각되는 가상의 공간을 이미지화하는 한편, 물질화된 소리가 신체에 자극을 일으키는 촉각적 청취로 이끈다.


언제나처럼 지하철의 문이 열리면 주머니 속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는다. 그러고는 곧 지하철 안의 수많은 소음 환경에서 무소음의 세계로 이동한다. 지하철 내 안내방송, 환승 신호음, 지하철 문 개폐 신호음을 비롯해 탑승객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벨소리와 영상 소리가 뒤엉킨 소음 환경 속에서 그것과 분리된 우리의 사적인 공간이 만들어진다. 가장 좋아하는 ASMR 크리에이터의 채널에 접속해 좋아하는 소리가 담긴 영상 하나를 클릭한다. 무소음 세계에서 들려오는 ASMR의 촉각화된 소리는 우리의 신체와 정서를 편안하게 이완시킨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은 단순히 소리를 출력하는 기계가 아니고, ASMR은 단순히 사물의 소리가 아니다. 이 둘의 결합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소리 안정제 같은 것일지 모른다.

  • 박수인, “인식적 청취에서 촉각적 소리 경험으로: 구체음악과 ASMR 음악 작품의 경계 가로지르기”, 이화음악논집 26/4, 2022, p59-88.
  • 장세연, 박진서, 류철균, “ASMR 방송의 실존적 공간 연구”, 글로벌문화콘텐츠 24, 2016, p269-287.
  • 정경영, “쩌는 음색의 육체성: 청취의 기술과 세대의 문제”, https://youtu.be/-2sZ5B6HUAM
  • Weird Sensation Feels Good’, https://www.steadyhealth.com/topics/weird-sensation-feels-good

박수인

박수인

음악과 음악활동을 하는
우리에 관해 생각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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