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은 어떤 예술 작품을 좋아하시나요? 유독 마음을 끌어당기는,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작품을 만나본 경험이 있나요? 아름다운 색감과 부드러운 선, 조화와 균형이 빛나는 작품은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정반대의 것에 끌리기도 해요. 불편한 감정을 건들고 규칙을 무너트리는 이상하고 기묘한 작품들 말이죠. 그중에서도 류성실 작가는 불편함과 유머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의 주관을 허무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한 그의 작품 세계를 소개합니다.
엄숙한 공간에 던지는 농담
지난해 강남의 에르메스 매장엔 비밀스러운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친절한 직원들의 인사를 받고 반짝이는 명품들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면 류성실 작가의 전시 ≪류성실: 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가 펼쳐졌습니다. 장례식장의 조화들이 90도로 허리를 굽히고 사람들을 맞이하는 공간, 강아지 ‘공주’를 기리는 애견 장례식 현장입니다.
제19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 전시인 그곳에선 공주를 기리는 추모영상과 화장, 추모곡 제창에 이르는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시를 관람할수록 갈피를 잡기 어려웠습니다. 장례식이라는 컨셉에 맞게 숙연한 마음으로 슬픔에 잠겨야 할까요? 아니면 어설프고 과장된 모습에 웃어야 하는 걸까요? 류성실 작가는 그렇게 이야기를 건넵니다. 선을 넘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타면서 보는 이 자신도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헷갈리게 만듭니다.
작가는 가상의 세계와 인물을 만들어 이야기합니다. ‘이대왕’과 같은 기묘한 캐릭터가 대표적입니다. 여행사 ‘대왕트래블’로 졸부가 된 이대왕은 돈이 되는 건 무엇이든 문어발식으로 뻗어가는 사업가입니다. 코로나로 여행 사업이 어려워지자 애견 장례를 사업화하기에 이릅니다. 작가의 말처럼 상조업은 코로나로 수요가 급증한 ‘블루오션’이고, 애견은 몸집이 작아 회전율이 좋은 ‘효율적인 사업’ 대상입니다.
이어 이대왕은 과장된 표정과 몸짓으로 장례식을 주도하며 그 과정을 희화화합니다. 과거 대왕트래블의 직원이었던 ‘나타샤’는 이번엔 상조회사 직원으로 등장합니다. 작가 본인이 직접 거죽으로 분장한 채 이상한 추모식에 동참해 하늘나라로 떠난 강아지와 견주 사이 소통을 돕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라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다름 아닌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
캐릭터들의 우스꽝스러운 말과 행동에 기묘함을 느끼는 건 필자뿐이 아니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진짜 장례식장에 온 듯 어색하고 뻣뻣하게 작품을 보다가도 이내 실소를 터트리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이대왕은 추모곡으로 트로트가 연상되는 ‘진짜배기 사랑’을 부르지만, 가만 들어보면 가사는 자기 자랑과 홍보로 가득했습니다. 그의 영상 옆으로 일반적인 장례식장에서 볼 수 없는 거대한 기념비가 보였고, 그 뒷면엔 ‘카페형 장례식장 및 화덕피자 서비스’ 같은 어이없는 회사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그 배경엔 힙합그룹 바밍타이거의 음악도 들렸습니다. 세차장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화환까지 전시장의 모든 구성물이 엄숙하고 농담 따위를 하면 큰일 날 장례식이라는 공간을 뒤흔들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불편함을 주는 인물과 소재이지만, 전시를 모두 관람하고 나면 이내 깨닫게 됩니다. 불편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너무나 현실적인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류성실 작가의 전시장엔 아슬아슬한 장난과 뾰족한 통찰이 공존합니다. 무엇이든 상품화하는 현대 자본주의에 주의를 보내지만, 동시에 말합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돈과 속물적인 것에 끌린다는 사실을요. 류성실 작가도, 작품 앞에 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강남의 에르메스 안에서 한다는 것도, 끝없이 빚어지는 모순에 그만 웃어버리게 됩니다.
류성실 작가는 계속해서 불편하면서 웃긴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작가의 또 다른 대표 캐릭터인 ‘BJ 체리장’의 모습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체리장은 아프리카TV와 유튜브에서 가짜 뉴스를 뿌리며, 일등 시민권을 얻기 위해 자신의 말을 따르라는 이상한 이야기를 전파합니다. 그의 죽음과 부활까지 공개되며 혼란을 가중했습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인 건지, 그의 말들이 진심인지 장난인지, 보는 이를 헷갈리게 만듭니다.
체리장 시리즈는 미술관이 아닌 아프리카 TV와 유튜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인터넷 플랫폼은 결심하고 찾아야 하는 미술관과 달리 불특정 다수와 만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미술관, 더 많은 사람이 누리는 전시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진입장벽과 미술관이 지닌 배제성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처럼 작품의 내용부터 형식, 유통되는 매체까지 독특한 류성실의 작품 속에서 오늘날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기묘함을 사랑하는 사람들
작가만의 독특한 캐릭터와 세계관, 혼란스럽지만 중독적인 그 모습은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2022년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KIAF(한국 국제 아트페어)에서도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어느 부스보다 붐비는 모습에, 사람들은 류성실의 작품 앞 까치발을 들고 기웃거리고 있었습니다. 차례를 기다려 작품을 감상하고, 중간중간 구매를 원하는 애타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대기업과 주요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에서도 그의 작품이 종종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그의 작품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습니다.
WEBSITE : 류성실
INSTAGRAM : @sungsilryu
류성실 작가의 다음 작품과 전시를 기다리면서, 예술 작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작품만큼, 숨기고 싶은 감정들, 불안과 공포, 기이함을 그린 작품에 끌리게 되는 마음이 있습니다. 작품의 어떤 점이 불편한지, 스스로 어떤 것에 끌리는지, 각자 작품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 과정은 자기만의 예술관을 넘어 세계를 분석하고 주관을 완성해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류성실 작가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다양한 감정의 부분부분을 건드는 폭넓은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독자님 저마다의 취향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