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동대문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의류 산업이 발달한 지역답게 가족 구성원들의 대부분이 의류 산업에 종사했고, 지금도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살면서 목도한 것은 화려한 패션 시장 뒤에 있는 봉제 노동자들의 현실이었다. 그렇기에 유수의 브랜드들이 새로운 트렌드를 제안하고, 대중들이 옷을 소비하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조그마한 봉제 노동자들의 얼굴들이 먼저 떠오른다.
사진 지정현
복잡하고, 빠르고, 고된 것
동대문구 사람들은 크건 작건 ‘옷’과 엮인다. 필자만 하더라도 부모님께서 줄곧 봉제 공장을 운영하셨고, 친인척 분들 중 동대문에서 의류 공장을 운영셨거나, ‘미싱 시다(수습 재봉사)’로 일했던 이력이 있다. 지인들 몇몇은 가족이 운영하는 원단 공장을 물려받거나 의류 부자재 상점을 개업했다.
요 근래 유행하기 시작한 ‘빈티지’의 흐름도 새로울 것이 없었다. 동네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동묘 구제 시장이 있었는데, 부모님은 그곳을 기웃대는 것을 영 탐탁지 않아 하셨다. ‘남이 입던 옷을 왜 입니?’라는 타박은 공장 노동자로서, 새로운 옷을 만들고 있다는 직업적 자부심에서 기인했던 것 같다. 그래도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학생에게 싼값에 ‘폴로’나 ‘리바이스’ 같은 브랜드의 옷을 싸게 입을 수 있다는 건 큰 메리트였다.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빈티지 시장이 인정받지 않던 터라 더욱 그랬다.
필자에게 있어 패션은 생계와 직결되는, 아주 지극히 일상적인 생산품이었다. 옷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 동네에서 패션은 ‘바쁘고, 복잡하고, 고된 것’이었다. 급한 일감이 들어오면 새벽에 출근해 새벽에 퇴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주말에도 쉴 틈 없이 미싱 기계를 돌려야 하는 ‘노동’에 가까운 것이었다.
패션은 비즈니스다
필자가 생각하는 패션은 ‘예술’보다 ‘거대한 비즈니스’에 가깝다. 특히 의류가 빠르게 소비되고, 트렌드에 민감한 국내 패션 시장의 특성상 공급자와 생산자는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동대문의 ‘생계’도 결국 비즈니스를 움직이는 ‘한 축’일 뿐이고, 그 키를 쥐고 있는 패션 브랜드와 봉제 노동자 사이의 간극에서 시장의 생리는 잔혹하리만큼 정교하게 움직이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가 아닌 대중과 가까운 브랜드일수록, 시장 원리는 더욱 정밀하게 작동한다. 값 싼 노동력으로 원단을 공수해 옷을 완성하는 것이 그 첫번째. 마감일을 지키기 위해 공장 노동자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미싱을 돌린다. 그렇게 생산된 옷들은 브랜드가 내새우는 ‘카피라이트’와 함께 대중들에게 소비되고, 유행과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브랜드만이 바쁘게 흘러가는 국내 패션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이름은 더욱 커진다. 그들이 어필하는 심미적인 아름다움, 옷의 완성도와 같은 셀링 포인트의 이면에 있는 노동자들의 노고는 아주 미세한 부분일 뿐이다. 동대문의 생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내게 그런 패션의 심미성들이 허울 좋은 비즈니스로 보일 뿐이다.
봉제 시장의 몰락
봉제는 순수 노동이다. 인건비가 올라갈수록, 자연스레 봉제 산업은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국내 봉제 산업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적으로 봉제 산업이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넘어가면서 일감은 줄고, 인건비와 물가는 높아지면서 국내 봉제 시장은 점점 축소되고 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봉제 업체 수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줄고 있다. 연령대도 50~60대의 장년층이 8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고령화됐다. 봉제 산업을 중심을 이루고 있는 숙련된 기술자들은 은퇴를 앞두고 있으나, 물가 상승률과 별개로 임가공 단자는 제자리걸음이니 신규 인력이 들어오지 않는다. 해외 봉제 시장도 녹록지 않다. 중국과 베트남 등의 봉제 노동자들의 연령층도 점점 고령화되고 있다.
팬데믹 이후 의류 산업은 해외 시장에 의존하는 산업 구조와 인력난을 타파하기 위해 봉제 산업의 자동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봉제 작업에는 현존하는 자동화 기술로 완전히 대체하기 힘든 공정이 존재한다. 게다가 수천 명의 노동자가 집약적으로 일하는 해외 봉제 공장과 달리 국내 봉제 시장은 10명 남짓의 기술자가 기능적으로 일하는 형태이다 보니 자동화 도입이 녹록지 않다.
K-패션과 메이드 인 코리아
‘한류’가 ‘K’라는 접두사로 바뀌었다. K-뷰티, K-콘텐츠 등 ‘메이드 인 코리아’를 어필하는 요소들이 범람하고 있다.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해 빠르게 신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 ‘K-패션’의 장점과 생리는 과거 동대문이 ‘패션의 메카’로 성장할 때의 그것과 유사하다. 그렇다면 K-패션이 자랑하는 ‘비 배타성’과 ‘트렌디함’은 국내 패션 산업의 특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K-POP을 장르적으로 규정지을 때 그룹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처럼 말이다. 생산의 주체와 방식이 ‘코리아’스러워야 한다는, 즉 ‘메이드 인 코리아’여야 한다는 뜻이다.
패션은 비즈니스다. 그렇기에 유수의 브랜드들이 좀 더 경제적인 방법으로 옷을 생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국내 봉제 산업이 점점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 또한 자본주의적 원리에 따른 자명한 수순이다. 하지만 K-패션이 수면 위로 오를 동안 봉제 산업의 현실을 진지하게 고민했는지 의문이 든다. 국내 K-패션이 신진 디자이너를 양성하고, 해외 시장으로의 활로를 개척하는 동안 봉제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과 처우는 그대로였다.
동대문의 수준 높은 퀄리티와 빠른 작업 속도의 봉제 기술은 여전하다. 그리고 K-패션은 동대문이 가진 장점을 여과 없이 활용해 성장했다. 신진 디자이너와 브랜드들이 탄생할 수 있는 배경에는 늘 동대문이 있었다. 동대문과 봉제 노동자들은 K-패션의 근간에 있는 ‘메이드 인 코리아’의 최전선에 있었다. 그렇기에 국내 봉제 노동자들의 문제를 외면한 K-패션의 선전이 더욱 공허하게 보인다.
어릴 적 동대문 시장은 늘 번잡스러웠다. 젊은 디자이너들이 원단 먼지가 풀풀 날리는 좁은 복도를 쏘다니고, 배달 기사분들은 ‘저렇게 쌓으면 오토바이가 넘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원단들을 쌓은 채 도로를 달렸다. 부모님은 늘 자신보다 어린 디자이너들에게 ‘디자인대로 봉제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하셨다.
여전히 부모님은 같은 자리에서 젊은 디자이너들과 이야기한다. 그간 함께한 이웃 공장들은 하나둘 자리를 비웠다. 평일에도 굳게 셔터가 내려간 곳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동대문이 돌아가는 방식과 공장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노쇠한 사람들이 자리를 떠났을 뿐이다.
‘서울패션위크’가 열릴 때도 공장의 미싱은 돌아갔다. ‘두타’와 ‘밀리오레’ 뒤에 있는 공장들은 생계에 떠밀려 문을 닫고 있는데, 패션 축제를 열고 있는 그 풍경이 너무나 괴이했다. 필자가 목격한 생계들이 결국 비즈니스를 움직이기 위한 하나의 톱니바퀴에 불과하다는 생각과 함께 ‘봉제’라는 일의 무력감도 느꼈다.
필자는 복잡하고, 고되고, 바쁘게 돌아가는 분주함 속 나름의 규칙이 존재하는 동대문 시장이 좋다. 만약에 동대문의 봉제 인력들이 모두 고갈된다면, 국내 패션계는 온전히 존재할 수 있을까. 무엇이 ‘메이드 인 코리아’이고, K-패션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