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 31년 만에 전면 개정된 동물보호법이 지난 4월 27일 시행됐다. 가장 큰 변화는 정당한 사유 없이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가 금지되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잔인한 방법’처럼 특정 조건 아래 이뤄지는 도살 행위만 처벌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법에 명시된 사유를 벗어나 행해지는 모든 도살에 대해 법적인 문제 제기가 가능해졌다. 그동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던 식용 목적의 개 도살을 처벌할 수 있는 여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김건희 여사가 개 식용 문화 종식을 언급한 것과 맞물려, 식용견 논쟁을 다시 한번 뜨겁게 가열하고 있다. 긴 시간 이어져 온 만큼 양측의 대립은 한껏 팽팽하다. 지속적으로 몸집을 키워가는 축산업의 그늘에서 개는 다른 축산물들과 무엇이 다를까.
한국의 개 식용 문화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의 영광 뒤에는 늘 몇 가지 오명이 따라붙었다. 그중 하나가 개 식용 문화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과 함께 대표적인 개 식용 국가로 분류되던 대만, 중국에서는 얼마 전 개 식용이 금지되었으며, 베트남, 캄보디아 정도에만 개 식용 문화가 남아 있다. 식용견의 집단 사육을 위한 개 농장이 존재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개고기를 먹는 것이 조선시대에서부터 이어진 관습이라는 점에서 다른 문화권의 잣대를 기울이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동물권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이 날로 높아지면서 각국의 전통 식문화 또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기에, 개 식용에 대한 국제적 규탄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더욱이 국내 동물 반려 인구가 1,500만 명대로 진입한 시대에 개고기는 다수의 국민에게 더 이상 반가운 존재가 아니다.
약 2백만 년간 육식 위주의 최상위 포식자였던 인간이 지금까지 육식을 즐기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럽다. 공장식 축산의 환경오염과 인위적 비육에 대해 꾸준한 문제 제기가 있음에도, 축산업은 좀처럼 주춤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 희생되는 동물이 수십 종인 가운데 유독 개 식용에 대한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려오는 건 왜일까. 가장 큰 이유는 누구나 짐작했겠지만, 개가 인간과 수만 년을 함께 해온 대표적인 반려동물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개 식용에만 유독 민감한 사회 분위기가 감정에만 호소하는, 편파적이고 위선적인 이중잣대라고 비판한다. 생명이 있는 동물이라면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감정을 가진 인간이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동물에게 더 깊은 애착을 형성하는 것은 당연하다. ‘애완’이 ‘반려’가 되는 동안 개는 인간의 가족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다. 반려동물과 관련된 가족법상 법리가 생겨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회문화적인 맥락에서 반려동물을 다른 동물에 비해 특별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법도 결국 인간이 만드는 것이기에, 인간의 관점과 선호가 배일 수밖에 없다.
회색 지대에 놓인 육견 산업
그러나 이러한 이유만으로 개 식용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 육견 산업은 법의 회색 지대에서 교묘히 성장해 왔다. 축산법에서 개는 가축으로 정의된다. 육견 산업 관련 종사자들은 이를 근거로 개도 고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축산법상 가축으로 고시된 동물에는 관상용 조류와 곤충들도 포함되어 있다. ‘가축=식용 목적’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식품위생법에서도 개는 식품 원료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식약처에서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개고기의 유통 및 조리에 대한 단속 책임을 미뤄왔다. 법은 존재하지만 불법이 단속되지 않는 현실 속에 개고기는 별다른 제재 없이 유통될 수 있었다.
식품 또는 식품 원료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개들을 더 잔혹한 궁지로 내몰았다. 식약처는 식품위생법에 근거해 원료별로 가공, 조리, 보존법 등을 규정하고 있지만, 개는 식용으로 인정되지 않아 규정된 기준이 없었다. 소, 돼지 같은 가축 도살에 적용되는 최소한의 기준도 적용되지 못했다. 국내 개 농장의 열악한 사육, 도살 환경은 이러한 배경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기준이 없어 보호받지 못한 개들과 달리 개 농장주들은 폐기물처리업자로 둔갑해 이득을 취한다. 음식폐기물이 사료로 가공되어 공급되기 위해서는 멸균처리와 성분 검사를 반드시 거쳐야 하지만, 환경부는 개 농장에 이 같은 의무를 부여하지 않고 폐기물 처리업 신고를 수리했다. 개 농장주는 출처를 알기 어려운 음식물 쓰레기를 개들에게 급여하는 한편, 폐기물을 처리해 주는 대가로 별도의 부수입까지 얻은 것이다. 이쯤 되면 법과 기관이 개 식용을 제한하려고 했던 것인지 지원하려고 했던 것인지 의문이 든다. 특별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순간에, 개는 다른 가축들과 달리 특별 취급을 받았다.
보신을 위한 살생의 필요성
개 식용 금지가 우선되는 수순이 합리적이라고 생각되지만, 보신용 도살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개 식용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확산되면서 보신탕의 대체재로 염소탕의 인기가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보신탕으로 유명했던 식당이 염소탕 전문으로 간판을 내거는 일도 적지 않다. 넘치는 수요 탓에 염소값은 폭등한지 오래다. 생후 3개월 된 암염소를 뜻하는 ‘젓띄기’의 가격이 가장 높게 뛰었다는 사실이 사뭇 안타깝다. 지금껏 개에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그대로 염소에게 옮겨간 것이다. 음식으로 몸보신하기를 즐기는 한국인의 식문화까지 변화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야흐로 영양과잉의 시대다. 과거 먹거리가 넉넉치 않았던 시절과 달리, 이제 음식은 물론이거니와 알약 하나, 음료 한 컵으로도 풍부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 건강기능식품과 영양제 또한 날로 고도화되고 있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끼에 2만 원을 호가하는 염소탕을 즐겨 먹을 정도라면 대체재를 구입하는 데 특별한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기계를 이용해 쉽게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세상, 몸을 보양할 방법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생을 통한 보신을 고집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특히 개고기의 경우 ‘보신탕’이라는 이름이 기만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처참한 환경에서 사육, 도축되어 오염된 상태인 경우가 많다. 보신탕이 실제로 우리 몸에 이로운지는 이 문제의 본질과 거리가 멀지만, 지옥 같은 환경에서 항생제로 연명해 생산된 고기가 좋으면 얼마나 좋은 약이 되겠나. 보신과 미식이라는 허울 좋은 변명 아래 우리는 너무 많은 고통을 묵인해 왔다.
육견 산업 종사자들은 생존권을 내세우며 개 식용 종식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오랜 시간 동안 관행을 방패로 여러 불법 행위를 저지르며 경제적 이윤을 취해왔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필자는 개 식용 종식을 외치는 목소리가 너른 관점에서 육식에 대한 의식 변화, 동물의 보편적 복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전에는 흔한 음식이었던 개고기에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것처럼, 언젠간 육식 자체가 환영받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인간에게 있어 육식 욕망을 절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그럼에도 해볼 만한, 해볼 이유가 충분한 일이기에 그 흐름을 만들어 가는 이들을 응원하고 싶다.
- 네이버 지식백과, [가축 vs 동물] 법적으로 본 개고기 논쟁
- 한국일보, 동물 임의도살 금지, 남은 과제는(2023-04-29)
- 동물자유연대, 개고기는 불법식품! 식약처는 사회적 합의 핑계 마라!(202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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