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EGG를 조명한 기획자의 감상을 전합니다.
사르트르는 말한다. “예술적 창조의 주요 동기 중 하나는 분명 세계에 대해서 우리 자신의 존재가 본질적이라고 느끼려는 욕망이다.” / 이 세계로부터 자신의 존재의미를 발견하려는 욕망이 창작의 동기라는 것이다. / 많은 예술 장르 중 오직 산문만이 부조리한 사회를 바꾸는 일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 / 그렇다면 산문 작가가 ‘쓰는 행위’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려는 목표는 무엇일까. / 작가의 사명은 ‘쓰는 행위’를 통해 세계를 드러내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내밀어 사회를 변화시키도록 행동의 변화를 유발하는 것이다. / 이때 작가가 사용하는 도구는 ‘쓰기 행위’ 곧 문학이다.

현우주, <문학이란 무엇인가> 中

사르트르에 의하면 예술적 창조 활동 중 특히 문학(산문)을 쓰는 작가는 그들의 작품이 ‘존재 이유’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창작을 하는 목적은 자신이 살아오며 겪은 다양한 경험을 작품에 녹여 자신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독자와 함께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독자와 함께’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작가의 ‘쓰는 행위’만으로는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부족함이 따르기 때문이라고 덧붙이지요. 작품의 모든 면면을 알고 있는 작가는 자신이 직접 쓴 작품과 자신을 완전히 분리할 수 없어, 작품의 또 다른 깊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따라서 작가는 독자의 존재를 요청하게 됩니다. 작가 자신의 삶과는 다른 경험을 겪으며 살아온 독자가 자신의 작품을 읽음으로써 작품에 또 다른 깊이를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죠. 이렇듯 작가의 ‘쓰는 행위’와 독자의 ‘읽는 행위’가 함께일 때, 비로소 문학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삶에서 겪은 사회의 여러 부당함을 마주하고, 언어로 풀어 쓰는 행위를 통해 작품이라는 그릇에 담아 독자에게 건넵니다. 함께 부조리한 사회를 직시했다면,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그 사실을 바꾸는 것입니다. 작가와는 다른 경험과 시선을 가진 우리가 독자로서 ‘읽는 행위’를 통해 변화의 시작에 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래 현우주 에디터의 아티클을 읽으며, 작은 시작을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