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커버의 전설이 된
디자인 그룹 힙노시스

정사각형 프레임 속에서 빚어낸
예술적 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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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배경 속 프리즘을 통과하는 무지갯빛의 그래픽. 록 음악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핑크플로이드의 [The Dark Side Of The Moon] 앨범 커버는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거예요. 발매된 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록 음악의 상징처럼 사용되죠. 그렇다면 이 그래픽은 누가, 어떤 생각으로 디자인했을까요? 록 음악의 황금기에 전설적인 앨범 커버를 여럿 남긴 디자인그룹 ‘힙노시스’의 활동을 살펴보며 1960-70년대 영국의 분위기를 함께 느껴보아요.


힙노시스의 시작

힙노시스의 멤버 오브리 파월은 영국 케임브리지의 하숙집에서 지내던 중, 소위 ‘힙’해 보이는 젊은이들이 한 집에 들락날락하는 걸 발견합니다. 오브리는 그들과 친구가 되고자 다짜고짜 그 집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힙노시스의 주축이 되어 수많은 디자인을 함께 만들어낼 스톰 소거슨과 만나게 되죠. 집 안에는 훗날 핑크플로이드를 결성하는 시드 바렛도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핑크플로이드는 힙노시스의 커리어에 전환점이 되는 커버를 여럿 의뢰하며 중요한 클라이언트가 됩니다. 이들이 처음부터 디자인과 협업을 위해 뭉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함께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듣는 동네 친구들이었죠.

힙노시스의 멤버 오브리 파월
이미지 출처: repubblica.it

1960년대, 영국의 많은 젊은이가 런던으로 이주합니다. 반전을 외치며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는 문화적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서요. 이 시기 런던은 ‘활기차고 멋진 런던(Swinging London)’으로 불리며 미술, 음악, 패션, 영화 등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기능했습니다. 오브리 파월과 스톰 소거슨,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 역시 런던으로 이주하며 창조적 에너지의 한가운데로 몸을 던집니다.

핑크플로이드 [A Saucerful Of Secrets] 앨범 커버
이미지 출처: 핑크플로이드 [A Saucerful Of Secrets] 앨범 커버

런던으로 이주한 뒤,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했던 스톰을 따라 오브리 역시 사진을 공부하게 됩니다. 그리고 창작에 몸담고 있던 주변 친구들을 통해 책 표지, 앨범 커버 등의 디자인 작업을 의뢰받기 시작하죠. 핑크플로이드 역시 2집 앨범 커버를 친구였던 오브리와 스톰에게 의뢰합니다. 그들은 ‘스페이스 록’으로 불리며 명성을 얻고 있던 핑크플로이드의 음악을 마블 코믹스의 닥터 스트레인지에 등장하는 우주적 이미지를 차용하여 표현합니다. 마블 코믹스와 연금술 책에 있는 매혹적인 이미지들, 직접 찍은 밴드 멤버의 사진을 합성하여 디자인을 완성해요. 이렇게 힙노시스의 첫 앨범 커버가 탄생하죠.

[A Saucerful Of Secrets]의 앨범 커버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뒤, 힙노시스는 핑크플로이드의 매니저를 통해 다른 밴드들의 앨범 커버를 의뢰받기 시작합니다. 본격적으로 앨범 커버 디자인 역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기죠. 힙노시스는 CD와 MTV가 등장하며 앨범 커버의 중요도가 급락하게 된 1980년대 초까지, 약 15년간 300장이 넘는 앨범 커버를 디자인합니다.

필자는 수많은 힙노시스의 디자인 중에서 3개의 앨범 커버를 뽑아 보았습니다. 그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는지, 어떠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는지 3개의 앨범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해요.


과학 잡지의 이미지가
록 음악의 상징이 되기까지

핑크플로이드의 [The Dark Side Of The Moon], 1973

핑크플로이드 [The Dark Side Of The Moon] 앨범 커버
이미지 출처: 핑크플로이드 [The Dark Side Of The Moon] 앨범 커버

힙노시스의 디자인 중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앨범 커버를 뽑으라고 하면 단연 [The Dark Side Of The Moon]일 것입니다. 직선과 삼각형의 간결한 구성으로 만들어진 이 디자인은 롤링스톤스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의 앨범 커버’에서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지금까지도 최고의 앨범 커버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핑크플로이드의 키보드 연주자였던 리처드 라이트는 힙노시스의 기존 스타일인 초현실주의 사진 대신 단순하고 그래픽적인 디자인을 요구했습니다. 그날 오후, 작업실에서 물리학 잡지를 뒤적이고 있던 오브리를 보며 스톰이 외칩니다. “내가 해냈어. 프리즘이야”. 그들은 스튜디오로 달려가 밴드 멤버들에게 프리즘 아이디어를 전했고, 만장일치로 통과합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디자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비밀을 파헤치는 심정으로 본 입장에선 좀 허무하기도 합니다. 어떤 생각으로 디자인했을까? 왜 하필 프리즘일까? 그들이 어떻게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지 그 비밀을 알면, 그들처럼 좋은 디자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질문이 꼬리의 꼬리를 무는 와중, 필자는 오브리 파월이 기록한 스톰 소거슨과의 대화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프리즘을 떠올린 스톰에게 오브리는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왜지?” 난 스톰에게 물었다. “몰라,”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냥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_오브리 파월, 『바이닐. 앨범. 커버. 아트』

이미지 출처: 영화 <LP 재킷의 전설, 힙노시스> 스틸컷

어쩌면 예술은 ‘선택’의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스톰은 프리즘을 커버 디자인에 이용하기로 ‘선택’한 겁니다. 거기엔 어떤 의미도 이유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연관 없던 두 개의 이미지가 부딪힐 때, 보는 이는 그사이의 이야기를 상상합니다. 의미에 대한 해석은 보는 이의 몫으로 남겨두고 창작자는 자신의 마음이 끌리는 대로 향하는 것이죠. 힙노시스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용했습니다. 음악과 아무 연관 없는 소 사진을 앨범 커버로 쓰는 식으로요. 밴드 이름도 앨범명도 적혀있지 않은 소 사진 커버로 차트 1위를 차지한 것을 보아 힙노시스의 방식은 분명 획기적이고, 성공적이었습니다.


홍보물이 되기를 거부한 디자인

핑크플로이드의 [Wish You Were Here], 1975

핑크플로이드 [Wish You Were Here] 앨범 커버
이미지 출처: 핑크플로이드 [Wish You Were Here] 앨범 커버

불에 타고 있는 남자와 태연하게 악수하는 남자. 이 사진이 조금의 합성도 하지 않는 실제 상황이라는 게 믿어지시나요? 힙노시스는 성공적인 커버 디자인으로 명성을 쌓으며 예산 사용과 디자인 기획에 있어 주도권을 갖게 됩니다. 지금이라면 실현되기 힘든, 큰 비용과 위험이 따르는 디자인도 힙노시스였기에 가능했죠. 또한 당시에는 음반 제작사보다 밴드 멤버의 영향력이 더 컸습니다. 힙노시스는 홍보 효과를 노리는 레코드 회사의 요구에서 벗어나 더 자유롭게 디자인을 전개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위 이미지는 앨범을 사도 볼 수 없었습니다. 앨범 전체가 검은 비닐로 덮여있었기 때문이죠. 커버 디자인이 앨범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광고판의 역할을 하던 시기임에도 이런 결정을 한 것은 레코드 회사 경영진들을 곤란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일화는 당시 힙노시스가 커버 디자인에 있어 주도권을 가졌다는 사실을, 그리고 앨범의 판매를 떠나 순수하게 디자인 자체만을 고민했다는 걸 보여줍니다.


시대적 배경 속에 성장한 힙노시스

10cc의 [Look Hear?], 1980

10cc의 [Look Hear?] 앨범 커버
이미지 출처: 10cc의 [Look Hear?] 앨범 커버

바닷가에 놓인 정신과 소파와 그 위에 앉아있는 양을 찍기 위해 힙노시스는 하와이로 날아갑니다. 바닷가도, 정신과 소파도, 양도 영국에 있지 않냐고요? 글쎄요, 그 사실은 힙노시스에겐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들은 원하던 긴 형태의 소파가 하와이에 없어 소파를 새로 제작합니다. 양을 촬영하기 위해 수의사와 조련사를 고용했고요. 천문학적인 돈을 써가며 촬영한 사진은 커버를 가득 채운 타이포그래피 사이에 조그맣게 자리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1981년 MTV가 등장하기 이전, TV에서 록 음악을 조명하는 채널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현재는 뮤직비디오를 통해 음악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홍보하지만, 당시에는 바이닐의 앨범 커버가 음악의 정서를 표현하는 유일한 창구였죠. 앨범 커버는 안에 담긴 음악을 상징하며 각 밴드의 색깔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앨범 커버 들고 있는 여자 옆모습
이미지 출처: unsplash

또한 앨범 커버는 젊은이들에게 자신을 정의해 주는 존재였습니다. 집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앰프와 스피커 옆, 가지런히 놓인 바이닐은 구매자의 성격, 음악적 취향을 드러냅니다. 12인치의 정사각형을 가득 채운 아름다운 그래픽은 ‘가난한 자들의 예술품’이 되어 그들의 방 한쪽을 장식했죠. 많은 밴드가 앨범 커버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큰 비용을 커버 디자인에 지출하게 됩니다. 힙노시스는 그러한 시대적 배경에 힘입어 비용에 구애받지 않고 커버 디자인을 할 수 있었고요.


앞서 언급했듯이, 1981년 MTV가 등장하고 음반 제작사들은 더 이상 앨범 커버를 위해 큰돈을 지출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뮤직비디오 제작에 열을 올리죠. 힙노시스 역시 영상 제작 사업에 뛰어들지만, 그 명성을 이어가진 못합니다. 거대한 변화의 흐름 앞에서 멤버들은 각자 지향하는 바가 달라졌고 팀이 와해됩니다. 15년간의 역사를 뒤로하고 힙노시스의 시대는 막을 내려요.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습니다. 스트리밍의 시대에 앨범커버는 앨범과 앨범을 구분하는 라벨 정도로 기능하는 듯해요. 중요도의 변화만큼 투자되는 비용과 시간, 그에 따른 결과물 역시 달라졌겠죠. 오직 앨범 커버 디자인을 위해 고민과 실험을 멈추지 않았던 힙노시스, 그들의 디자인이 지금까지도 우리를 매혹하는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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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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