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무미건조해질 때가 있습니다. 자극이나 감정이 엇비슷하게 느껴지면서 하루하루가 틀에 갇히는 것만 같죠. 이러한 ‘정체됨’은 어디서 기원하는 것일까요? 아마 내 삶이 안온하게 계속될 거라는 섣부른 판단과 작은 성취, 미묘한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시기에는 다른 삶의 방식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예술가 4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나 보세요.
<조앤 디디온의 초상>
미국 문학계에 거물이라고 불리는 조앤 디디온은 자전적 글쓰기로 주목받았던 에세이스트이자 통찰력 있는 저널리스트, 소설가, 비평가 등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활약한 작가입니다. 특히 1968년 출간된 대표작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는 뉴저널리즘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현재까지 회자되고 있죠. <조앤 디디온의 초상>에는 디디온이 미국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서 보낸 유년 시절부터 작가로 명성을 얻은 시기, 결혼 생활과 사별, 딸을 잃은 슬픔과 상실을 글로 쓰게 된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디디온을 나아가게 했던 것과 힘든 순간에도 놓지 않았던 것은 무엇일까요?
<앤디 워홀 일기>
하나의 심볼처럼 호명되는 앤디 워홀. 그는 1968년 총격 사건 이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약 10년간 일기를 써 내려갔습니다. 다큐멘터리 <앤디 워홀 일기>는 1976년 11월 24일부터 1987년 2월 17일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죠. 시리즈에는 AI로 구현한 앤디 워홀의 음성이 흘러나오고, 내밀한 이야기들이 수면 위로 드러납니다. 다이어리를 기반으로 한 만큼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과 사랑, 한 시절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무기력을 호소하기도, 시대의 압박에 통탄하기도 하지요. 공적인 페르소나에 가려진 워홀의 삶은 어땠을지, 다큐멘터리를 통해 읽어 보세요.
<디터람스>
브라운 사의 수석 디자이너로 유명한 디터람스는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 보셨을 텐데요. 한국에는 턴테이블 제품으로 하나의 명사처럼 불리던 인물입니다. 그의 디자인 철학인 ‘less but better’과 디자인 십계명은 바이블처럼 전해지고 있죠. 디터람스의 철학을 잘 담아낸 콘텐츠 하나만 꼽아 보라면 역시 다큐멘터리 영화 <디터람스>입니다. <디터람스>는 게리 허스트윗 감독이 3년간 디터람스와 함께하며 촬영한 작품입니다. 프레임, 음악, 전개 방식을 통해 그의 철학을 다채롭게 전하고 있죠. 영상에 등장하는 프랑크푸르트 헤센 주 숲에 위치한 그의 집도 관람 포인트 중 하나랍니다.
<슈칼스키의 삶과 예술>
앞서 세계적인 명사들의 다큐멘터리를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잊혀진 예술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폴란드의 천재 조각가였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모든 작품을 잃고 예술계에서 잊힌 슈칼스키. 1973년, 예술품 수집가 글렌 브레이가 우연히 슈칼스키의 작품을 알게 되고, 그의 이야기를 하루에 3~4시간씩 200여 시간에 달하는 영상으로 제작하는데요. 바로 이 영상을 엮어 만든 영화가 다큐멘터리 <고뇌-슈칼스키의 삶과 예술>입니다. 인터뷰어인 글렌 브레이는 “세상에는 많은 천재들이 있고, 저는 저만의 천재를 찾았다”고 말합니다. 천재성이란 어떻게 발현되는 걸까요.
각기 다른 모양으로 치열하게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는 삶에 새로운 영감을 선사합니다. 무기력한 나날에 활력이 필요했다면, 예술가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하루에 한 편씩 시청해 보는 건 어떨까요. 어딘가 낯설면서도 익숙한 삶의 방식을 인지하다 보면, 안개는 차츰 걷힐 것입니다. 찌뿌드드한 몸을 조금씩 풀어내 듯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