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를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예술을 보고 영감을 얻기도 하고, 일상에서 느끼기 어려웠던 종류의 감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코미디는 보거나 들었을 때 웃겨야 합니다. 유머(Humor)가 있어야 하는 것이죠. 유머는 재미(Interest)와는 다릅니다. 재미는 이목을 집중시키는 원초적인 감정에 기인한다면, 유머는 좀 더 사회적이고, 치밀한 계산하에 일어나는 화학 작용과도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코미디는 어떤 예술보다 우리 삶에 가까운 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과 그들의 소속사인 메타코미디를 통해 코미디의 예술성을 살펴봤습니다.
백상예술대상
그리고 피식대학
지난 4월에 열린 제59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쟁쟁한 OTT, TV 프로그램을 제치고 피식대학의 <피식쇼>가 유튜브 채널 최초로 TV부문 예능 작품상을 받았습니다.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 유튜브 채널이 상을 탔다는 것도 흥미롭지만, 그 대상이 ‘피식대학’이기 때문에 더욱 눈길이 갑니다. <개그콘서트>, <웃찾사>와 같은 공개 코미디가 자취를 감춘 후 대다수의 코미디언이 유튜브로 활동 영역을 옮겼는데요. 그와 같은 흐름의 중심에는 김민수, 이용주, 정재형 세 사람의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백상예술대상 수상은 국내 코미디의 주 무대가 유튜브로 옮겨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과 동시에 지상파 코미디의 완전한 종식의 선언처럼 느껴졌습니다.
피식대학의 맏형 이용주는 <피식쇼> 속 자신의 캐릭터를 유지하면서 ‘We made our game by ourselves, a tool called comedy’라고 수상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공개 코미디가 자취를 감춘 후 3년 동안 피식대학은 유튜브를 통해 자신들만의 입지를 단단히 해왔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를 읽고, 대중들이 원하는 니즈를 신속히 반영하면서 신선한 유머를 가져왔죠. ‘자신들이 새로운 판을 짰다.’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메타코미디
코미디를 대중 예술의 영역으로
피식대학의 성공은 당연히 ‘기획력’입니다. 웃기고, 재미있으니까, 인기가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들의 기획력이 과거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 본다면, ‘그냥 재밌으니까요’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아쉬움이 남습니다. ‘원초적인 재미’가 아닌 ‘유머’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적확하게 말하자면, ‘코미디의 본질’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소속사인 메타코미디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메타코미디는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코미디 크리에이터를 지원하는 코미디 레이블입니다. 현재 국내 유튜브 코미디신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숏박스’, 김해준, ‘빵송국’도 메타코미디 소속입니다. ‘다나카’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김경욱도 같은 소속이죠. 이외에도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장삐쭈’, ‘과나’나 스탠딩업 코미디언 대니 초, 손동훈 등도 품고 있죠. 다방면으로 ‘웃기는 데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모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메타코미디의 정영준 대표는 소문난 코미디 마니아입니다. 메타코미디를 설립하기 이전에는 YG엔터테인먼트에서 유병재의 ‘블랙코미디’와 ‘B의 농담’ 등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기획하였고, 샌드박스에선 소속 크리에이터들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했었습니다. 코미디 기획자, 크리에이터 매니지먼트 그리고 코미디 마니아. 메타코미디가 탄생할 수밖에 없는 흐름이지 않나요?
지난 4월, 중앙일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에게 코미디가 예술이냐고 물으면 묘하게 대답이 오래 걸려요. 당연히 예술이거든요. 너무 쉽잖아요. ‘왜 고민을 하지?’하고 불만이 많았습니다.”라는 그의 답변에서 엿볼 수 있듯 ‘Meta Comedy’라는 이름에는 ‘코미디의 가치를 높이고 싶다.’라는 정영준 대표의 바람이 서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메타코미디가 생각하는 코미디의 예술성과 가치는 무엇일까요?
코미디
위험하고 아슬아슬하게
피식대학의 주요 콘텐츠는 콩트(Conte)입니다.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상정하고, 짧게는 10분, 길게는 30분이 되는 시간 동안 짜인 대본을 연기하는 짧은 단막극이나 드라마에 가까운데요, 피식대학은 ‘유튜브’라는 미디어 플랫폼을 바탕으로 하나의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 갑니다. 매회가 독립된 에피소드이지만, 회차가 거듭되면서 큰 스토리 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인물들을 좀 더 입체적이고, 디테일하게 살아납니다.
그들의 코미디 속 등장하는 인물들은 익숙합니다. <한사랑산악회>는 조금은 투박한 중년 남성들이고, <05학번이즈백>은 05년에 유행했던 옷을 입은 그 시절 셀럽들을 오마주 했죠. ‘이즈백’ 시리즈의 스핀오프인 <05학번이즈히어>는 신도시에 사는 30~40대 부부들입니다. 일상에서 한 번쯤 만나봤을 이들의 모습은 피식대학만의 디테일과 집요함으로 익살스럽게 묘사됩니다. 예컨대 큰 소리로 통화하거나, 시대에 맞지 않는 조언을 하는 50대 아저씨 모습을 통해 그 나이대 중년 남성들의 단편적인 면모를 우스꽝스럽게 그려내는 것이지요. 소위 ‘놀리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정준영 대표는 코미디의 본질은 ‘누군가를 놀리는 고급 예술’이라고 합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대상을 우스꽝스럽게 놀리면서 ‘유머’로 승화시키는 것이 코미디의 예술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미디가 고급 예술이라는 할 수 있는 지점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우리가 감정적으로 인지하는 도덕적인 선을 지키면서 대상을 놀려야 한다는 부분입니다. 그 선을 너무 넘어버리면 비난이 되어버리고, 미달이라면 코미디의 제1원칙인 재미를 놓쳐버립니다.
하지만 이런 코미디의 본질은 필연적으로 ‘불편함’을 야기합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놀림의 적정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놀림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라면 더욱이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코미디는 위험한 예술이기도 합니다. ‘선’은 사람마다 다르고, 아주 뛰어난 코미디나 농담이라고 하더라도, 의도적으로 그 선을 넘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이 아주 옛날 것이라면, 고루한 코미디로 받아들여지지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도태되어 사라진 것처럼요.
그렇기에 코미디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정준영 대표는 말합니다. 우리가 예술을 접할 때, 작품에 투영된 작가의 의도와 생애, 그 작품이 만들어졌을 때의 사회적인 상황을 고려하는 것처럼, 코미디도 하나의 예술을 읽듯 ‘통찰’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시대성’도 중요합니다.
애정 어린 관찰자들
피식대학만의 놀림 그리고 미학
피식대학의 <피식쇼>는 영미권 토크쇼 프로그램의 스테레오 타입을 패러디했습니다. 동양권… 아니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영미권에 대한 이미지를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이지요. 한국 교포들이 강의한다는 콘셉트의 한국어 강습 프로그램 <데일리 코리안>도 같은 맥락에서 기획되었습니다. 최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3>의 홍보 차 감독인 제임스 건과 배우 크리스 프렛이 피식쇼에 출연한 것을 보면, 이 정도의 놀림은 영미 문화권에선 유머로 넘길 수 있나 봅니다.
수상 이후, KBS와의 인터뷰에서 피식대학은 <한사랑산악회>를 만든 계기에 대해 ‘부모님을 바라봤을 때 생기는 애정 같은 것들을 한 번 코미디로 녹여보고 싶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이렇듯 피식대학의 ‘놀림’에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 녹아있습니다. <05학번이즈백>은 멤버인 이용주와 정재형이 실제로 겪었던 시절이고, 30~40대 신도시 부부들을 연기한 <05학번이즈히어>는 그들의 동년배 친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피식대학의 코미디에는 애정 어린 관찰이 있습니다. 찬찬히 살펴보면, 대상에 대한 부정적인 점도, 긍정적인 점도 웃음에 녹입니다. 집단을 특정하는 모든 총체를 아우르기에 오히려 편견 없이 대상을 유머라는 범주 안에 투영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맥락이 있기에 그들의 코미디를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코미디는 동시대를 투영하는 고급 예술입니다. 그리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소통의 예술이기도 하지요. 프로레슬링을 볼 때, 대본이 있는 엔터테인먼트인 것을 인지하고 관람하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천차만별인 것처럼요.
프로레슬링 얘기가 나온 김에 저도 농담을 하나 해볼까 합니다. 코미디는 프로 레슬러 스티브 오스틴과 영화배우 드웨인 존슨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기술을 멋있게 거는 사람이 있으면, 맛깔 나게 받아주는 사람도 있어야 하니까요. 설명이 필요한 농담은 실패한 것이라고 하니,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