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면적 역할로 실현되는
브랜드의 정체성

마땅히 해야 할 일로
느껴지게 만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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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는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재화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브랜드들은 비즈니스에 머물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탄탄히 구축하며,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정의하죠. 정의가 명확할수록 브랜드의 정체성은 더욱 입체적으로 직조됩니다.

브랜드 정체성은 우리 삶에서 그들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에 따라 가시화됩니다. 우리는 변화의 주체가 되기를 자처하며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브랜드에 열광합니다. 여기 자신들의 정체성을 다양한 역할로 풀어내고 있는 브랜드 두 곳이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건축 사무소 스노헤타(SNØHETTA)와 영국의 프라이빗 라운지 클럽 소호 하우스(SOHO HOUSE)입니다.


대자연의 굴곡과
인공 건축물

스노헤타(SNØHETTA)

‘의식주’ 중에서도 ‘주’는 편안히 쉴 수 있는 삶의 기반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머무는 공간이 안락함을 줄 뿐만 아니라 개인이 추구하는 미적 감각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면, 그 만족감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그러나 건축물은 본질적으로 ‘인공물’이므로 자연과의 조화를 반드시 고려해야 하죠. 이는 ‘자연을 파괴할 것인가, 아니면 공존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연결되며, 궁극적으로 인간의 문화적 유산이 자연과 어떻게 융합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으로 확장됩니다.

오슬로 오페라 하우스(Oslo Opera House), 이미지 출처: Snøhetta

스노헤타(Snøhetta)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건축 사무소로, 오슬로 오페라 하우스(Oslo Opera House)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Bibliotheca Alexandrina)의 설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들의 디자인은 이용자 친화적이면서도 혁신적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스노헤타의 작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심미적 요소에 그치지 않는데요. 이들은 건축을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총체적 과정으로 바라보며, 두 요소가 어우러질 수 있는 지점을 끊임없이 탐구하기 때문입니다.

공동 창립자 케틸 토르센(Kjetil T Thorsen)은 스노헤타의 핵심 가치에 대해 “경관과 건축의 교차점을 찾아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라 말합니다. 이는 건축물이 경관 그 자체가 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인간과 자연의 고유성을 해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통합하는 것이 스노헤타의 비전임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오슬로 오페라 하우스(Oslo Opera House), 이미지 출처: Snøhetta

예를 들어, 오슬로 오페라 하우스는 전반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실용적인 건축물이지만, 멀리서 바라볼 때 하나의 풍경처럼 느껴지게 인근 환경의 특성을 반영하여 설계되었는데요. 스노헤타가 말하는 ‘지속가능성’은 결국 인간의 사회적 행동과 자연의 풍광이 아키텍처에 스며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스노헤타의 디자인은 ‘자연의 보존’과 ‘인간 문화의 존속’이라는 두 가지 역할이 통합된 결과입니다.

스노헤타가 설계한 유럽 최초의 수중 레스토랑 언더(Under)는 인간의 문화와 자연 생태계의 직접적인 공존을 구현한 대표적인 공간입니다. 지상에 있는 입구를 통해 내려가면, 해저 5미터 깊이에 위치한 레스토랑이 나타나며, 대형 유리창 너머로 생생한 바다 속 풍경이 펼쳐집니다. 언더가 특별한 이유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장면을 현실에 옮긴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건물은 인공 암초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해양 생물이 모여 서식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유도했는데요. 건축물이 주변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고 살아 숨쉴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 것입니다. 한정된 자연에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건축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수중 레스토랑 언더(Under)의 입구, 이미지 출처: Snøhetta
수중 레스토랑 언더(Under), 이미지 출처: Timon Koch / cinemarine.no

자연을 해치지 않는 건축은 어렵고, 인간은 새로운 건축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건축’은 양 극단을 오가는 복잡한 작업입니다. 스노헤타는 이러한 양 극단의 가치를 하나씩 선택하여 자신의 미션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언더’는 해양 생물들에게도 하나의 경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보는 프레임 속에서 해양 생물들을, 해양 생물이 보는 프레임 속에서 인간들을 바라보는 순간, 경관과 건축의 경계선이 더욱 모호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호스피탈리티와 커뮤니티

소호 하우스(SOHO HOUSE)

영화 존 윅(John Wick) 시리즈를 좋아합니다. 영화에서는 암살자들이 머물며 휴식과 정비를 할 수 있는 컨티넨탈 호텔이 등장하는데요, 전 세계에 여러 지점을 두고 있으며, 암살자들이 비즈니스 출장(암살)을 갈 때 언제든 머물 수 있는 장소로 묘사됩니다. 동종 업계 종사자들을 만날 수 있는 프라이빗한 호텔이라니 흥미롭지 않나요. 킬러가 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여행 중에도 나를 반겨주는 장소와 동료들이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지 상상해봅니다. 물론, 존 윅은 동료들에게 쫓고 쫓기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지만 말입니다.

최초의 소호 하우스인 Soho House 40 Greek Street, 이미지 출처: SOHO HOUSE
Soho House 40 Greek Street의 레스토랑 풍경, 이미지 출처: SOHO HOUSE

소호 하우스(SOHO HOUSE)는 크리에이티브 업계 종사자들을 위한 멤버십 기반의 프라이빗 클럽입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이곳은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먼저, 창의적인 업계에 종사해야 하며, 일반적으로 금융, 법조, 정치 분야의 종사자는 제외됩니다. 또한, 문화예술 분야의 발전에 기여할 잠재력이 있고,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고요. 무엇보다도 기존 회원 2인 이상의 추천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입 조건도 까다롭습니다.

소호 하우스가 제공하는 멤버십 혜택은 무엇일까요? 우선, 회원들이 모일 수 있는 호스피탈리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전 세계에 약 44개의 하우스가 운영 중이며, 회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호텔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각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인테리어를 갖춘 하우스 내부에는 레스토랑, 스파, 수영장 등이 마련되어 있고, 회원들을 위한 사교 모임과 이벤트도 열립니다. 이처럼 하우스라는 공간을 매개로 회원들에게 특별한 호스피탈리티를 제공하며, 단단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습니다.

마이애미에 위치한 Soho Beach House, 이미지 출처: SOHO HOUSE
이탈리아 Soho House Rome, 이미지 출처: SOHO HOSUE

미감적으로 로컬의 매력을 살린 소호 하우스의 인테리어와 아트 컬렉션 그리고 수준 높은 서비스는 그 자체로도 강점이지만, 물리적인 제약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가까운 곳에 소호 하우스가 없다면 이들이 제공하는 ‘프라이빗 호스피탈리티’를 누릴 수 없으니까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소호 하우스는 ‘City without House’(이하 CWH)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공간의 제약을 허물고 있습니다.

CWH는 ‘소호 하우스가 없는 지역에서도 멤버십을 유지한다’는 개념의 서비스로, 팝업 형식으로 멤버들을 모아 자신들만의 호스피탈리티를 제공합니다. 지역 브랜드와 기업과 협력해 멤버들을 위한 이벤트나 페스티벌을 주최하며, 현지 셰프와 함께 팝업 디너를 열어 소호 하우스 레스토랑의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죠. 이를 통해 ‘물리적 공간이 없는 호스피탈리티’를 만드는 것입니다. ‘멋진 장소를 제공하는 프라이빗 호텔’이 아니라, 커뮤니티를 위한 호스피탈리티를 제공하는 것이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 브리스톨에서 열린 CWH 정찬 행사, 이미지 출처: SOHO HOUSE
남아공 케이프타운 CWH 활동 모습, 이미지 출처: SOHO HOUSE

또한, 소호 하우스는 자신들의 정체성인 ‘호스피탈리티’를 브랜드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소호 하우스의 인테리어 가구를 판매하는 SOHO HOME은 단순히 가구를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호 하우스와 같은 디자인을 구현하는 인테리어 서비스도 제공합니다. 소호 하우스의 상징인 스파는 COWSHED라는 배스 용품 브랜드로, 글로벌 비즈니스맨인 회원들을 케어한다는 가치는 스킨케어 브랜드 SKHO Skin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멤버십 수익성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일 수 있습니다만,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물성을 지닌 서비스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소호 하우스라는 브랜드의 존재 의의를 더욱 강하게 부각합니다.


국립국어원은 역할의 뜻을 ‘자기가 마땅히 하여야 할 맡은 바 직책이나 임무’로 정의합니다. 여기서 ‘마땅히’와 ‘직책이나 임무’라는 표현은 결코 가볍지 않은 의미로 다가오는데요.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브랜드의 역할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명확히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존재 의의가 없는 브랜드는 단순히 비즈니스 논리로만 굴러가고, 자아 없는 혼탁한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스노헤타가 소호 하우스가 펼치는 활동은 ‘자선 활동’이 아닙니다. 가치가 있는 재화를 만들고, 판매하는 영리 활동이지요. 그럼에도, 이들의 비즈니스가 ‘‘마땅히 해야 하는 임무’로 읽히는 이유는 브랜드 정체성을 다각도 해석해 두 가지 이상의 역할로 전개하기 때문입니다. 스노헤타는 ‘건축물’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그들의 역할을 집약했고, 소호 하우스는 ‘호스피탈리티’라는 개념을 멤버십, 제품, 서비스로 확장해 풀어냈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존재 의의를 명확히 아는 브랜드만이 할 수 있는 행보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마치 자아가 단단한 사람의 행보를 보고 멋지다고 느끼는 것처럼요.

여러분들이 애용하는 물건을 면밀히 살펴보세요.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유심히 관찰하는 겁니다. 두 가지 이상의 역할을 전개하고 있다면, 그 역할이 삶에 실제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그것이 긍정적인지 고민해 보세요. 나에게 필요한 브랜드를 고르는 유용한 프로세스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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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현

새삼스러운 발견과 무해한 유쾌함을 좋아하는 사람.
보고, 듣고, 느낀 예술을 글로 녹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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