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질을 파헤치는
잔인한 천재 도스토옙스키

인생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쓴 작가들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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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문학을 놓지 말아야 할 여러 이유 중 하나로는 책 속 세상을 통해 우리 눈에 보이는 표상 너머의 본질을 고민하는 힘을 기르고 그 의미를 깨달아 내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도록 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인데 그 안에 인간의 본질이 모두 들어 있다면 어떨까요?

독창성(originality)은 대상의 기원과 그 본질(origin)을 첨예하게 파악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과 그 삶의 본질을 낱낱이 드러내 보여주는 여러 작품을 남겨 ‘작가들의 작가’로 상찬받는 대문호입니다. 독보적인 천재성으로 독창적인 작품을 탄생시켜 고전 문학계의 기원(origin)이 된 작가, 도스토옙스키와 그의 대표작을 소개합니다.


『가난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이미지 출처: 열린책들

『가난한 사람들』은 나이 많은 하급 관리 마카르와 병약한 고아지만 문학을 즐겨 읽는 소녀 바르바라가 주고받는 편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서간체 소설입니다. 그들이 서로를 향한 애정을 드러내며 자신과 주변 일상을 전할 때 독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인데요.

러시아 문학의 거장을 뽑을 때 함께 거론되는 톨스토이와는 달리 도스토옙스키는 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을 겪었습니다. 취미 혹은 편한 수단으로 소설을 썼던 배부른 작가들과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 글을 써야 했죠. 당시에도 베스트셀러 작가였지만 도박 중독, 뇌전증 등 정신적, 육체적으로 쇠약했던 그에게 글은 생활 수단이었고 가난은 일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스토옙스키가 그려낸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은 그 어떤 작가가 묘사한 가난과도 비교할 수 없이 비참합니다. 단순히 가난한 모습만이 아니라 가난이 사람의 본질까지 스며들었을 때 나오는 모습들을 긴밀하게 관찰하기에 더욱 처절합니다.

반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 “The Potato Eaters”
반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 “The Potato Eaters”,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그저 ‘가난뱅이’ 혹은 ‘하층민’의 전형적인 모습만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 가난해도 사랑도 하고 자존심도 지키고 불가능한 꿈을 꾸기도 하죠. 그들이 견딜 수 없는 지점은 가난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들을 바라보는 타인의 눈초리입니다. 그리고 가난 앞에 자존심을 버리고 옴짝달싹할 수 없이 타락해 버린, 자기 자신의 변해버린 모습이죠.

“가난한 사람들은 까탈스러워요. 하느님이 지으신 세상도 다른 식으로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삐딱하게 쳐다보고,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면서 사람들이 혹시 자기에 대해 말하는 건 아닐까 해요.”

_도스토옙스키, 『가난한 사람들』

단순히 가난에 대해 묘사하는 것이 아닌, 가난한 사람들의 세밀한 심리까지 섬세하게 그려낸 이 작품을 통해 데뷔하며 도스토옙스키는 일약 스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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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죄와 벌』
이미지 출처: 문학동네

도스토옙스키 작품들 대부분이 간결한 스토리지만 『죄와 벌』은 그중에서도 깔끔하고 짜임새 있는 구성이 특징입니다. 가난하고 생각 많은 한 청년이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도끼로 살해하고 시베리아로 유형을 간다는 내용이죠. 이 단출한 이야기가 어째서 유명할까요? 그것은 살인을 저지르는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의 심리가 탁월하게 묘사되며, 그가 살인을 저지르기 전후로 펼쳐가는 사상의 흐름과 그에 얽혀 벌어지는 사건들을 따라가는 과정이 상당히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는 ‘초인’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초인은 일반인과는 달리 모든 것이 허용되는 비범한 인간을 말합니다. 남들보다 뛰어나기에 일반인에게 적용되는 윤리적, 법적 규율과 관습에 매이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인신(人神), 현자이자 엘리트이죠. 라스콜니코프는 이 사상을 탁상공론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현실 공간에서 노파를 죽임으로써 스스로가 초인, 즉 인신인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악질적인 고리대금업으로 수많은 사람을 고통에 빠뜨리는 저 악인을 죽인다면 그것은 노파에게 빚을 지고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고통받고 있는 자기 자신과 가족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을 구원하는 ‘심판’이 될 것입니다. 게다가 자신의 철학까지 논리적으로 입증하는 셈이 되고요.

이미지 출처: 영화 <죄와 벌>(1969) 스틸컷

죽이고 싶었던 사람을 살해하면 기분이 어떨까요? 통쾌하고 짜릿할까요? 한편으로는 그토록 검증하고 싶었던 자신의 사상, 자신의 비범함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알게 된 사람의 심정이란 어떨까요?

러시아어로 ‘죄’라는 단어는 영어로 말하자면 ‘overstep’, 즉 ‘한 걸음을 내딛다’, ‘선을 넘는다’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선을 넘어 ‘죄’를 저지른 라스콜니코프는 ‘벌’을 받습니다. 그것은 비단 법정의 선고가 아닌 그에게 주어진 온갖 혐오감과 고독, 비참 그리고 죄책감입니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는다는 단순한 권선징악의 교훈으로 작품을 마무리하지 않습니다. 그는 마치 변증법처럼 인간이 구원받으려면 앞서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바로 선으로 들어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회해서 죄와 고통이라는 통과 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라스콜니코프는 단순히 고통받는 죄인의 모습으로 도망 다니다가 형사상 선고를 받는 스토리로 퇴장하지 않습니다. 온몸을 짓누르는 벌을 무릅쓴 죄인 라스콜니코프가 어떤 길을 가는지, 그리고 단순해 보이는 스토리에 얼마나 세세한 논리와 다채로운 주변 인물들이 녹아 있는지 궁금하시다면 주저 없이 페이지를 펼쳐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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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미지 출처: 민음사

도스토옙스키의 모든 작품은 걸작으로 평가받지만 그중에서도 작가들이 엄지를 치켜세우는 작품이 있으니, 바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입니다.

줄거리는 역시 간단합니다. 방탕한 수전노 아버지 표도르와 세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첫째는 아버지 못지않게 방탕하며 아버지와 돈으로 얽힌 드미트리, 둘째는 똑똑하고 합리적인 냉혈한 이반, 셋째는 카라마조프 집안답지 않게 깊은 신앙심을 지녔으며 모두의 사랑을 받는 알료샤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표도르의 사생아로 의심되는 그 집 하인 스메르쟈코프가 핵심 등장인물입니다. 어느 날 아버지 표도르가 침실에서 살해된 채 발견되고, 평소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떠들며 방탕하게 살았던 드미트리가 모두의 의심을 받고 용의자로 지목되어 재판받는 스토리죠.

Brothers Karamazov Illustrations
Brothers Karamazov Illustrations, 이미지 출처: William Sharp

이 작품의 매력으로는 어느 하나 평범한 사람이 없다는 점입니다. 주연은 물론 잠깐 등장하는 조연들까지 아주 입체적이고도 개성 있는 성격을 지녔습니다. 단편적인 이야기일수록 한 인물은 한 가지 특성을 보입니다만, 사람은 결코 한 가지 성격으로 살지 않죠. 숭고한 면모와 동시에 욕망, 어둠, 어쩔 수 없이 타고난 악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천재적 면모가 여기 드러납니다. 각 인물에게 이중적이고 입체적인, 나아가 ‘예측할 수 없는’ 성격을 부여해 마치 실존 인물처럼 만들고, 전지전능한 작가로서 사건에 개입하기보다 그들이 우당탕 벌이는 사건에서 한발 물러나 현장 다큐처럼 생생히 독자들에게 전달하죠. 살면서 어떻게 모든 일이 딱딱 들어맞게 일어나나요? 절묘한 우연도, 분명한 인과관계 끝에 돌아오는 업보도, 집요한 논증으로 벌여내는 사상의 대결까지도 모두 생동감 넘치게 녹여내 우리는 잠시 이 책이 그 고리타분한 고전 문학임을 망각하거나 ‘이건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구나’ 하고 착각하게 됩니다. 도스토옙스키는 마치 손에 잡히는 영상을 재생하는 듯한 엄청난 몰입감과 긴박함을 이 장편 소설에 녹여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작품은 딱 잘라 장르를 정의할 수 없습니다.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누가 진범인지 추리하고 있으니 범죄소설이기도 하고, 무신론자와 러시아 정신의 대결이 심오하게 다뤄지니 종교를 주제로 하고 있기도 하고, 열렬한 사랑 때문에 살인까지 일어난 것이니 연애소설이기도 하고, 자식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일까지 일어나는 러시아의 타락을 꼬집는 사회비판소설이기도 하죠. 단, 어떤 장르로 분류하던지 그 장르의 최고로 인정받을 만한 소설이라고 많은 이들이 단언합니다.

놀랄 만한 사실은 사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3부로 집필할 예정이었는데, 작가가 1부만 쓰고 명을 달리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장편 소설도 3분의 1에 불과한 것이죠. 오늘날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 대작이 만약 3부까지 완성됐다면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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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을 초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작품을 남긴 도스토옙스키는 위대한 작가이지만 위대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정치범, 지독한 도박 중독자에 병약한 뇌전증 환자였죠. 하지만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작품의 위대함과 작가 개인에 대한 평가는 어느 정도 분리될 수 있다는 주장에 한 표를 던지게 됩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우리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건드립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이 세상은 어떠한지를 비극적인 사건과 인물을 통해 낱낱이 까발리는데요. 거대한 서사를 다루기보다 한 개인, 혹은 한 집단이나 사상에 확실한 목표 지점을 찍고 한 치의 미화 없이 깊은 곳까지 무자비하게 파고들어 가는 까닭에 ‘잔인한 천재’라는 수식어를 얻게 되기도 합니다.

소설보다 더욱 소설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이기에 인생이라는 아이러니와 인간의 다층적인 심리까지도 통달할 수 있었던 작가. 그의 책에는 인생에서 만나볼 수 있는 모든 인간 군상이 들어있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하나만 읽어봐도 도스토옙스키의 책에는 “인생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했던 커트 보니컷의 말이 납득될 것입니다.


이한빈

이한빈

고전이라는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
방황하고 반항하며 만드는 담론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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