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영감을 녹인
오늘의 그룹사운드

지나온 과거를 끌어안아 그린 미래
인디밴드 차세대의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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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사운드(Group Sound)라는 단어를 접하시면 어떤 그림이 떠오르시나요. 요즘 대중음악, 특히 국내시장에선 잘 안 쓰이는 단어이다 보니 생소하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저는 록 밴드가 제일 먼저 생각납니다. 특히 비틀즈(Beatles)나 비치보이스(The Beach Boys)가 전 세계를 강타한 이후 미8군 쇼를 중심으로 태동한 국내 록 밴드들이 말입니다.

밴드 차세대의 음악을 들었을 때 그랬습니다. ‘아, 이거 완전 그룹사운드잖아!’ 싶었지요. 그런데 밴드명은 ‘차세대’입니다. 구세대의 음악을 구사하는 오늘날의 차세대 밴드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조합일까요. 하지만 차세대의 노래를 들으면 ‘아이러니’함이 새로운 독창성으로 다가옵니다. 이젠 진부해진 ‘그 시절, 복고 열풍’이라는 말과는 다른 느낌으로 말이죠.

그리운 어느 지점을 노래하는 듯하다가, 종잡을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노스텔지어를 그리는 밴드, 차세대의 오래된 독창성을 발견할 수 있는 노래 3곡을 소개합니다.


울려 퍼져라 소년의 고함아
인디언 함성처럼

아들

[The Next Generation] (2019)

2019년, 차세대는 EP 앨범 [The Next Generation]으로 대중들에게 첫선을 보입니다. 총 4개의 트랙으로 구성된 이 앨범에는 차세대가 추구하는 음악적 지향성이 여실히 드러나 있는데요, 마치 1960년, 댄스홀이 있는 고급 술집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농밀한 영어 노랫말이 나오는, 끈적한 트랙으로 포문을 열더니 난데없이 촌스러운 가사의 로큰롤 트랙으로 가 닿다가 카바레 밤무대에서 정장을 차려입고, 몸을 살랑거리며 부를 것 같은 3번째 트랙에 도착합니다.

[The Next Generation] (2019)
이미지 출처: 차세대

‘아들’은 마지막 트랙으로, 옛것의 냄새가 짙게 배 있되, 문학적인 은유로 가득한 차세대의 가사가 제일 두드러집니다. 노래는 신시사이저로 시작합니다. 이전 트랙에선 낭창하게, 때론 능글맞게 흔들리던 보컬의 목소리는 천천히 가사를 읊조립니다.

가사는 화자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삶의 지혜에 관해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엄마같이 지혜롭고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라’, ‘더딘 것은 괜찮으니, 너만 아는 방법으로 그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라’라는 가슴 따듯한 조언들이지요. 종반부로 향할수록 사운드가 천천히 쌓여가고, 아래와 같은 문장에 도달할 때쯤, 모든 이야기가 전복됩니다.

언젠가 내게 찾아올 너에게 먼 옛날인 지금부터
눈썹에 이 말을 품고서 기다려
아빠가 널 사랑해

앞서 했던 조언들이 마치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들’에게 전달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먼 옛날인 지금’이라는 말은 시간대를 가늠하기 어렵게 만들고, ‘눈썹에 이 말을 품는다’라는 표현은 미간을 찌푸린, 감동적인 표정의 화자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울려퍼져라 소년의 고함아 인디언 함성처럼’이라는 후렴구는 비단 노래 속 아들뿐만 아니라, 밴드 구성원들을 비롯해 청자들에게 소리치는 미래에 대한 희망찬 찬가처럼 들리죠. 아버지의 목소리를 빌려 말했던 애정 어린 조언들까지도요.

생각에 잠기게 하는 문학적인 표현은 ‘차세대’라는 이름과 맞물리면서 그들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여러 번 곱씹게 합니다. 그들이 사랑하는 먼 옛날 복고 스타일의 로큰롤, 대책 없이 낭만적인 미래에 대한 낙관 등 무수한 가능성의 메타포 그 자체들이 차세대가 그저 옛 음악을 복기하는 밴드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여름은 보통 그런 거니까

해비치

[해비치] (2021)

여름이 한창이니 차세대가 그린 여름의 풍경도 소개합니다. 2021년 발매한 EP 앨범 [해비치]의 동명의 타이틀곡 ‘해비치’입니다. 앨범 커버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발매 당시 인디신엔 유난히 레트로한 컨셉의 앨범들이 많았고, 옛날 사진을 커버 표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해비치]의 커버는 ‘어, 이거 진짜 30년 전 테이프 아니야?’ 싶을 정도로 뿜어내는 레트로의 아우라가 상당합니다.

80년대 여름 피서객들을 취재한 뉴스 자료에서나 볼법한, 그 시절 합체 로봇 도색에 쓰일법한 컬러네이션의 수상 보트가 떡하니 있고, 그 위에 올라탄 남성의 헤어스타일이나 수영복도 요즘 것은 아닌 게 확실합니다. ‘해비치’라는 폰트도, 어감이 주는 무드도 20년대의 스타일은 아니죠.

[해비치] (2021)
이미지 출처: 차세대

해비치’는 ‘가장 먼저 해가 비치는 곳’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라고 합니다. 서프록(Surf Rock)처럼 찰랑이는 밴드의 사운드는 여전히 ‘적당히 촌스러운’ 지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힘을 쭉 빼버린 보컬이나, ‘꽃게처럼 해변을 바라본다네’ 같은 청승맞은 가사는 어딘가 옛 서울말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바다가 너무 좋아서요. 그냥 하루 종일 바다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져요.’

‘밤새 들어준 모래를 파도가 끌어안고 가는 걸 보네’

예스러운 노래는 그저 단순히 그 시절을 상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목격했던 여름의 풍경을 생생하게 그립니다. 흔히 옛 노래를 듣고, 사람들은 ‘지나오지 않은 시간을 그리워한다’고 합니다. 또는 ‘낭만의 시대’였다고 평가하기도 하죠. 하지만 곰곰이 시간의 선상을 뒤돌아보면, 우리가 문화적으로 소비하는 복고에 서린 낭만, 혹은 그것과 유사한 종류의 감정을 느껴본 때가 한 번쯤은 있을 겁니다. 다만 그때의 사소한 감정선을 포착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일지도 모르죠.

차세대의 노래는 그런 작은 낭만을 노래합니다. ‘여름은 보통 그런 거 아닌가’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순간들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밴드가 찬찬히 우려내는 사운드나 시적인 표현(또는 옛 서울 사투리스러운 어미들)은 낭만을 노래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합니다. 요즘 노래들처럼 기교가 많거나 꽉 들어가 있거나, ‘나’를 중심으로 모든 이야기를 서술하지 않으니, 비어 있는 여백에 청자의 경험을 녹이기 좋습니다.


이 빗속에 모두 잠겨버리면
그게 바로 사랑

사랑은 내게

[거짓말] (2022)

그간 발표했던 곡들이 모두 ‘로큰롤’이었지만, 이 앨범은 정말 직선적인 로큰롤을 추구합니다. 각 트랙의 흐름이 기승전결이 확실해진 탓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사랑’에 대해 울부짖고 노래하거든요. 망해도 사랑, 내 일상이 어그러져도 사랑, 사랑한다는 말이 거짓말이여도 사랑.무작정 ‘러브 앤 피스!’를 외치는 로큰롤 스타가 떠오르는 트랙들입니다.

[거짓말] (2022)
이미지 출처: 차세대

5트랙 중에 하나만 소개한다는 것이 곤란할 정도로 전체 트랙을 추천합니다만, ‘이 빗속에 모두 잠겨버리면 그게 바로 사랑’이란 가사가 이 앨범을 단순 명료하게 설명하는 문장인 것 같아 ‘사랑은 내게’를 골랐습니다. 곡의 구성도 장르적인 장벽 없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트랙이기도 하고요.

“새까만 밤 저기 멀리 작은별이 보이면 그건 아마 사랑일거야”

사랑만 울부짖는 것이 정말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음악은 어느 지점에서 아주 지극한 사실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수많은 지향점이 존재하고, 취향이 부유하는 근래에는 단순한 감정이나 직감도 꽤나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쳐 표출되곤 합니다. 사실은 ‘숨을 쉬고 내쉬는 것’처럼 설명이 필요 없는 자연스러운 것들임에도 말이죠.

그런 원초적인 감정을 노래하는 것이 로큰롤이고, 주류 음악에서 벗어나 있는 인디 밴드만이 낼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이지요. 이런저런 복잡한 이유로 과포화된 문제들을 백 번 고민해 봐도, 해결책이 사랑인 것 같다면 ‘죽어도 사랑이야’하고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다음 세대

차세대
이미지 출처: 차세대

차세대처럼 복고 사운드를 추구하는 밴드들은 많습니다. 근 몇 년 동안 불어온 레트로 열풍을 인디씬도 피해 갈 수 없었으니까요. 다만, 차세대의 음악에는 우리가 잠시 놓치고 있던 ‘낭만’의 정서가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그때처럼 우리도 살아가 보자’라는 메시지도 담겨 있지요. 그렇기에 자신들은 ‘여러분들의 다음 세대, 차세대’라고 소개할 수 있는 겁니다.

멤버 전원이 한 집에 모여서 작업하고, 자신들이 공연을 열 공연장을 만드는 등의 모습을 통해 그들이 그룹사운드 문화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음악적 스타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때의 음악과 문화들을 사랑하기에 가능한 행보입니다.

록의 불모지에서, 매우 클래식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음악을 알려 나가는 행보가 그들의 음악을 더욱 ‘독창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이지요. 밴드 문화를 좋아하는 한 명의 팬으로서, 밴드 차세대를 ‘오래된 독창성이 돋보이는 그룹사운드’라고 소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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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현

새삼스러운 발견과 무해한 유쾌함을 좋아하는 사람.
보고, 듣고, 느낀 예술을 글로 녹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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