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티클을 쓰는 지금, 필자는 이탈리아에 머물고 있습니다. 길 잃기 좋은 피렌체의 골목을 보고 있으면 마치 화면 너머로 들어온 것만 같습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다른 이들은 여행 통해 무엇을 얻는가 궁금해졌습니다. 지인들에게 묻자 쉼을, 낭만을, 생각과 마음의 정리를 얻는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행을 통해 얻은 사유를 오래 기억할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필자에게는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별한 시선으로 쓰인 여행 에세이 3권을 소개합니다.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우리는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거나 결말을 맺어야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상실한 어느 지점에서, 주제와 의도, 인과와 의무를 망각한 지점에서만 진정한 글쓰기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_정지돈,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정지돈 소설가의 산책이 담긴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파리와 서울을 걸으며 작가의 머릿속에 떠오른 문학, 젠더 이슈, 자본주의 등에 대한 다채로운 사유를 담은 에세이입니다. 건축에 관심이 많은 작가답게 이 책은 도시를 이루고 있는 건축과 예술, 역사와 문학을 넘나드는데요. 그뿐만 아니라 동료 작가들과의 대화도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을 읽는 재미 중 하나입니다. 특유의 위트 넘치는 문체로 다룬 여러 주제들이 산책하듯 여행하는 그의 삶을 보여줍니다.
『공항에서 일주일을』
“우리는 모든 것을 잊는다. 우리가 읽은 책, 일본의 절, 룩소르의 무덤, 비행기를 타려고 섰던 줄,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 등 모두 다. 그래서 점차 행복을 이곳이 아닌 다른 곳과 동일시하는 일로 돌아간다. 항구를 굽어보는 방 두 개짜리 숙소, 시칠리아의 순교자 성, 아가타의 유해를 자랑하는 언덕, 꼭대기의 교회, 무료 저녁 뷔페가 제공되는 야자 나무들 속의 방갈로. 우리는 짐을 싸고, 희망을 품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 욕구를 회복한다. 곧 다시 돌아가 공항의 중요한 교훈들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_알랭 드 보통, 『공항에서 일주일을』
공항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필자에게 공항은 떠남과 남겨짐의 장소이자 북적임과 고요함의 장소, 설렘과 아쉬움이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으로 기억됩니다. 처음 이 책을 만났을 때 ‘첫 공항 상주 작가’라는 소개가 이목을 끌었습니다. 히드로 공항 터미널 5의 소유주로부터 초청을 받은 알랭 드 보통은 일주일 동안 공항에 머물며 통행제한 없이 이곳저곳을 누빌 수 있는 특권을 선물받는데요. 그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일반 여행객들은 볼 수 없는 생소한 공항의 뒤편을 발견합니다. 공항 한복판에 책상을 설치하고 작업을 하는 작가의 모습만큼 생소하진 않을 테지만요. 공항에서 발견한 일상의 사유가 궁금하신 분들께 추천하는 에세이입니다.
『쉬운 천국』
“강이 내려다보였고, 펜스에 닿은 햇살들이 부서져 아이들 어깨 위에서 흩어졌다. ‘축복’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햇살은 너무나 강렬하게 몸과 마음을 데워 내 머릿속은 노랗게 변했다.”
_유지혜, 『쉬운 천국』
여행을 시작하기 전 가방에 이 책을 챙겼습니다. 이전에 최은빈 에디터의 아티클, ‘감각적인 문장을 빚어내는 4명의 산문가들’에 소개되었던 작가이기도 하죠. 유지혜 작가는 청춘을 감각하게 하는 낭만적인 작가입니다. 설거짓거리가 주어지면 신세 지는 미안함을 보답할 수 있어 고마웠다는, 티켓을 구하지 못해 유리창에 귀를 대고 들은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가 더없이 로맨틱했다는 작가. 불안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그의 시선에 비친 세상이 궁금하다면 『쉬운 천국』을 펼쳐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사실 필자는 여행을 좋아하면서도 그리 적극적인 편은 아닙니다. 그건 일상에서도 충분히 여행의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막상 떠나오니 여행은 제 안에 있는 새로운 문을 열 키를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올여름 유독 장마가 길다고 하네요. 궂은 비를 피해 어디로든 사유하는 여행을 떠나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