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게 죽거나 분노를 품은 채 죽은 사람들을 우리는 ‘원귀’라고 합니다. 많은 작품 속의 원귀들은 바스러져 가는 죽기 직전 모습을 하고 이승의 어두운 곳들을 떠도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이들의 사연 속에는 성폭행 후 살인, 국가의 폭력에 의한 죽음, 사회의 억압에 의한 희생 등 부당하고 억울한 죽음이 반영되어 있죠. 이렇듯 호러 미스터리라는 장르는 다른 세계의 삶을 말하지만, 그들이 겪었던 문제와 상처는 바로 지금 이 세계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연처럼 마주친 존재의 억울함을 말하는 호러 미스터리는 우리 사회에 필연적으로 필요한 장르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지워진 존재들을 이야기하는 호러 미스터리 소설 3권을 소개합니다.
우리 곁의 귀신은 누구인가,
『귀신들의 땅』
소설 『귀신들의 땅』의 주요 배경은 타이완의 한 마을인 용징입니다. 온갖 귀신 이야기와 죽은 짐승이 썩어가는 강이 있는 마을이죠. 7남매의 막내아들 톈홍은 독일에서 동성 애인을 살해하고 자신의 고향인 이 마을로 돌아옵니다. 톈홍이 귀향한 때는 귀문이 열려 귀신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중원절이죠. 첫째 누나 수메이만 남은 집에 톈홍과 둘째, 셋째 누나 그리고 생전에 끝맺지 못한 말을 하러 찾아온 원혼들이 함께 모여들며 귀신극의 막이 오릅니다. 소설은 특유의 기묘한 분위기로 전개됩니다. 그 기묘함은 죽어서 귀신이 된 자와 산 채로 귀신이 된자의 모호한 경계에서 시작되죠. 막내아들인 톈홍은 천부적인 작가의 재능을 가졌지만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가족에게 외면당하고 담임에게 구타당하는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후 톈홍은 자신의 고향 마을 떠나 소설을 내고 베를린으로 도피해 자유로운 삶을 꿈꿉니다. 하지만 베를린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삶도 녹록지 않았죠.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존재인 톈홍도 그렇게 산 채로 귀신이 되어버립니다.
“사람들 속에서 드러나지 않은 채 배경으로 녹아들고, 거울에 비춰도 모습이 나타나지 않고, 길을 걸어도 발자국이 남지 않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면서 살지는 않으나 존재하지 않는 그런 것.”
_『귀신들의 땅』 , 천쓰홍
『귀신들의 땅』을 읽다 보면 우리 곁의 지워진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삶과 죽음의 여부를 떠나 귀신이 되어버린 사람들을요. 어두운 복도 끝에 구슬피 울고 있는 울음소리가 누군가의 구조 요청은 아니었는지, 밤마다 들렸던 이름 모를 소리가 절박한 외침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곁의 지워진 존재가 궁금하다면 그리고 가끔 내 자신이 힘없는 귀신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면 이 소설을 읽어보세요.
악의에 맞서는 악의 그리고 그다음,
『대불호텔의 유령』
『대불호텔의 유령』은 소설가인 ‘나’의 담담한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니꼴라의 유치원’이라는 소설을 쓰려고 할 때마다 악의 가득한 목소리가 자꾸만 들려와 고통받았다는 이야기죠. ‘나’는 악의에 찬 목소리에 맞서 ‘잔인하고 못된 감정으로 가득한 이야기’를 괴팍하게 쓰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친구인 ‘진’에게서 니꼴라 유치원의 모습이 대불호텔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곳을 방문하죠. 대불호텔에서 ‘나’는 그곳에서 오래전 사망한 여성의 환영을 보게 되고, ‘진’은 이 여성이 자신의 외할머니가 이야기하던 여성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두 사람은 ‘진’의 외할머니인 ‘박지운’을 방문하게 되고, ‘박지운’의 이야기가 시작되며 소설은 독자를 1955년의 대불호텔로 데려갑니다. 이 소설의 전반을 장악하는 키워드는 ‘악의’입니다. ‘나’가 소설을 집필하게 된 이유도, 대불호텔에 머물렀던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들도 모두 악의에서 시작한다는 공통점이 있죠.
“일단 재미있잖니, 누가 누구를 의심하고 미워하고, 그러다 죽게하고 도망치고……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싶은 마음이란, 어쩜 그렇게 공감하기 쉬울까.”
_『대불호텔의 유령』 , 강화길
1955년의 인천의 대불호텔을 다루는 이야기 속의 인간 군상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슬프게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 혐오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 속에 유령처럼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강화길 작가는 혐오를 이야기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악의를 품는 사랑까지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대불호텔의 유령』은 소설 <힐 하우스의 유령>에 대한 오마주이지만 두 소설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다릅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서늘함보다는 따뜻함이 마음에 남으실 겁니다. 한국 전쟁 이후를 배경으로 한 고딕 호러 소설이 궁금하다면, 『대불호텔의 유령』을 펼쳐보세요.
비합리적인 관념으로 감지되는 세계,
『건널목의 유령』
『건널목의 유령』은 주인공인 마쓰다가 독자 투고로 취재하게 된 기차 건널목의 유령의 정체를 파헤치는 내용입니다. ‘건널목의 유령’이라고 불리는 이 존재는 시모키타자와 역 3호선 부근 선로 가로등 불빛 아래서 한들 거리는 기체 현상으로 목격됩니다. 한 독자가 보낸 사진엔 허리 아랫부분이 없는 긴 머리 여자가 뿌옇게 찍혀있었죠. 마쓰다는 유령이란 존재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 이유는 그가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신문기자인 이유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그가 찾아 헤매던 아내의 유령을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쓰다는 이 사건을 빨리 해치워 버리고자 하지만, 취재를 시작하고 의문의 전화가 계속 걸려오자 그는 이 사건에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흉기에 살해당한 신원 미상의 여성이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말이죠.
“마쓰다는 다들 어디로 가 버렸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생물학적인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죽은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이 세계와 다른 어디론가 가 버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_『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마쓰다의 취재를 따라가다 보면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르포 프로그램이 떠오릅니다. 르포 프로그램에서도 피해자의 시신이 마침 수색하던 형사가 지나가는 시점에 맞춰 강에서 떠오르거나 하는 기묘한 일들이 발생하곤 하죠. 이런 우연을 가장한 필연은 마치 이성의 세계 너머 다른 비합리성으로만 감지되는 세계가 존재함을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차가운 땅에서 홀로 죽어간 피해자들에게 다른 세계의 힘은 꼭 필요한 존재였는지도 모르죠. 과학적으로 밝혀내기 어려운 존재를 함께 추리해 보고 싶은 독자분들에게 1994년 말의 도쿄를 배경으로 한 심령 서스펜스 『건널목의 유령』을 추천합니다.
미스터리는 항상 음습한 곳에서 일어납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어떤 사건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어떤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미스터리의 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현실에서 해결되지 않은 방치된 자들을 소설 속으로 데려다 놓을 땐 더욱 그렇죠. 어른이 된 후 심령 미스터리를 읽을 때면 사연 뒤의 사람들이 궁금해집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아직도 이토록 무서운 이유는 아직 숙제처럼 남아있는 이 사회의 현실들이 두려워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필자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유령이 배회하는 사회를 바라보려고 합니다. 눈을 감는다고 그 유령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독자 여러분들 곁에 지워진 존재들은 안녕하신지 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