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가나 앞장서는 사람들이 있다.”
하루에 클래식 한 곡을 추천해 주는 책, 『하루 클래식 공부』의 첫 문장입니다. 저자인 ‘글릿’을 잘 설명해 주는 말이죠. 클래식 콘텐츠 플랫폼 글릿을 이끌어가는 두 에디터는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 작은 균열을 내기 위해 행동하기로 결심한 음대 출신 20대 여성들인데요. 고상한 포장지를 벗겨내고 클래식 음악을 다른 관점에서 보자고 제안하는 글릿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인터뷰어 율리
인터뷰이 글릿
사진 글릿 제공
음악을 글로 잇는 뉴스레터
글릿을 운영하고 계신 에디터 두 분, 반갑습니다. 소개를 부탁드려요.
W: 안녕하세요, 글릿 에디터 W입니다. 현재 음악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1년 4개월 차 직장인이자, 클래식 음악 뉴스레터 ‘글릿’을 햇수로 4년째 운영하고 있어요. 음악 감상 못지않게 딥하게 빠져 있는 것이 많은 취미 부자이기도 합니다.
S: 안녕하세요 글릿 에디터 S입니다. 저희가 전공한 음악학을 ‘뉴스레터’로 공유해 보면 어떨까 해서 W와 함께 글릿을 시작하게 됐어요.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 그리고 미디어를 향한 관심이 현재까지 이어져 지금은 미디어/콘텐츠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 뉴스레터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에디터 두 명 모두 음악대학을 나왔어요. 같은 과 선후배로 만난 사이고요. 코로나가 막 시작해서 대외활동이 힘들었던 시기, 우연히 클래식 음악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어요. 인사이더로서 몸소 느끼고 있는 클래식 음악계의 여러 한계점을 공유했죠. 그런데 갑자기 이게 너무 탁상공론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행동하기로 결심합니다. ‘음악을 글로 잇다, 글릿’이라는 이름은 그로부터 약 3일 뒤에 탄생했어요.
현재 글릿의 주 콘텐츠는 매주 금요일 오전마다 발행되는 뉴스레터인데요. 사실 처음에는 온라인 매거진으로 시작했어요. 무작정 웹사이트를 만들어 글을 올렸었는데, 독자에게 보다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가닿고 싶었어요. 그 결과 ‘글릿 뉴스레터’가 만들어졌죠. 여기에는 그 당시 뉴스레터가 막 떠오르는 뉴미디어였다는 것도 한몫했어요.
어떤 독자들이 글릿의 콘텐츠를 읽으면 좋을까요?
글릿은 단순히 음악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인사이트를 주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성별과 나이 상관없이, 클래식과 친해지고 싶지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모르는 분들이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이미 클래식과 친한 ‘클잘알’이어도 무관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30 여성이 전하는 음악 이야기에 공감할 분들이 타깃 독자입니다. 글릿은 정보를 많이 담는 뉴스레터라기보다, 계속해서 물음표를 던지는 색깔 있는 뉴스레터거든요!
글과 말로 클래식을 사랑하기
뉴스레터 외에도 클래식의 이면을 폭로하는 잡지 『Ambivalence』를 텀블벅 펀딩으로 발간하셨어요. 어떤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인가요?
‘Ambivalence’는 양면적인, 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많은 분들이 클래식 음악을 정제된, 세련된 문화라고 생각하시지만 클래식에도 뿌리 깊은 차별과 혐오가 존재해요. 일례로 오페라 속 여성 캐릭터는 벼랑 끝에 몰린 불쌍한 존재이거나, 광기에 사로잡힌 여자 둘 중 하나로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음악과 돈이라는 키워드를 함께 이야기하기 꺼린다는 것도 고고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한 주에 곡을 하나 소개하는 콘셉트의 뉴스레터에서는 이런 내용을 담아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던 차에, 클래식 음악이 가진 추한 면을 드러내는 콘셉트의 매거진을 기획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죠.
이후 출간하신 『하루 클래식 공부』(글릿 지음, 유유출판사)은 클래식 음악과 함께 자라온 두 여성의 발랄하고도 진지한 일기장 같아요. 매일매일 소개되는 음악과 에디터가 맺은 관계가 잘 보이죠. 책을 집필하면서 느낀 점이 궁금해요.
맞아요! 너무 잘 소개해 주셔서 감사해요. 평소 글릿 레터를 받아보시고 『Ambivalence』 프로젝트를 인상 깊게 보신 편집자님께서 ‘하루 한 곡을 공부하는 컨셉의 책을 써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셔서 집필하게 됐어요. 좋아하던 출판사라 뛸 듯이 기뻤던 기억이 있네요. 『하루 클래식 공부』는 독자가 일상에서 클래식 음악을 찾을 수 있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어요. 방대한 정보를 담기에 하루 한 페이지는 턱없이 부족할 수도 있지만, 최대한 곡과 연결된 저희 경험과 감상을 남기려고 노력했죠. 독자들이 이 책을 편하게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프로젝트를 계속 기획하는 동력은 어디에 있나요? 글릿이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또 있다면, 안티에그 독자들에게 살짝 공개 부탁드립니다.
마음속 깊이 자리한 클래식 음악을 향한 애정이 이를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클래식 음악은 아직 사회의 움직임과 발맞추어 발전해 나갈 여지가 많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일조하고 싶다는 마음이 큰 것 같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이렇게 내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나의 콘텐츠가 소중하다고 더욱 느끼고 있기도 하고요!
글로 시작한 사업인 만큼, 현재 음악을 글로 풀어내는 또 다른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아마 실제 연주회장과 더 가까워질 것 같은데요. 현재 정형화되어 있는 음악회 프로그램 북을 저희 방식대로 풀어내려고 준비 중이에요. 구체적인 건 나중에 공개할 예정이니 기대해 주세요!
요즘 주목하고 있는 뉴스레터나 브랜드, 혹은 영감을 주는 대상이 있다면?
S: 출판사 뉴스레터를 자주 읽어요. ‘글’을 다루는 사람들이 뉴스레터를 쓰는 방법을 구경하는 게 재밌거든요. 또 ‘매거진 B’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요. 무언가를 소개한다는 컨셉도 비슷하고, 다양한 각도의 시선과 메시지를 담은 종이 매거진이라는 것 때문에 볼 때마다 공부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W: 여행에서 영감을 많이 얻습니다. 여행에서 구해온 음반이나 책, 그리고 찍어온 사진들이 뉴스레터를 쓰는 데 소중한 자양분이 되거든요. 얼마 전에도 유럽에서 음악과 관련한 사진을 잔뜩 찍어왔어요. 현상이 완료되면 콘텐츠에 적극 활용할 예정입니다.
글릿을 꾸려오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작년 이맘때 오프라인 북토크를 한 적이 있어요. 글릿을 구독하시는 분들, 혹은 『하루 클래식 공부』로 글릿을 알게 된 분들이 오셨죠. 강의 주제는 ‘예술가의 셀프 브랜딩’으로 글릿이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채웠습니다. 연주자가 아닌 음악 전공자들이 어떻게 예술로 돈을 버는지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저희를 통해 용기를 얻으셨다는 분들을 보고 보람을 느꼈어요. 더불어, 몇 달 전 저희 책이 중쇄에 들어갔는데요. 정말 많은 책이 발간되지만 그중 중쇄를 찍는 책이 드물다고 들어서 굉장히 뿌듯했답니다.
20대 여성의 관점을 더하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클래식을 대중과 연결하려는 시도는 적지 않은데요. 글릿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보통 대중화에 사용되는 ‘덜어내기’ 대신 ‘더하기’를 택했어요. 무조건 쉽고 단순한 것보다는 평소 접해보지 못했던, 그래서 낯설 수도 있는 목소리에 흥미를 느끼게 해보자는 목표를 세웠죠. ‘20대 여성’이 만든 뉴미디어라는 글릿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부분이에요. 다소 무거운 사회문제까지 다룰 때도 있어요. 음악과 연결되는 지점만 있다면요. 이게 글릿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자, 여타 클래식 음악 매체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정형화된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찾아 나갈 때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나요?
글릿을 시작하고, 처음에 내건 핵심 가치를 지금까지 지켜올 수 있었던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었어요. 하나는 ‘혼자가 아니라 같이’라는 데서 오는 용기예요. 클래식 음악계의 한계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을 때쯤, 서로의 존재로 시작할 용기를 얻게 되었죠. 또 다른 한 가지는 자기 확신이에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건 다른 차원이잖아요. 그 누구라도 내가 가진 생각이 옳다는 확신이 있고, 견고한 근거가 있다면 아마 행동으로 옮기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탁월함과 고유의 개성, 둘 중 독창성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요?
작금을 두고 ‘스스로를 브랜딩 하는 시대’라고 하잖아요. 기존의 질서에 나를 맞추기보다는 나만의 정답을 찾아 나서는 게 오늘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더 익숙할 것 같아요. 앞서 이야기했듯, 확신이 있다면 누가 뭐라고 하든 끝까지 밀고 나가보세요. 고집으로 보일 수 있을 만큼요. 나의 차별점을 낳는 독창성은 그제야 비로소 생겨나는 것 같아요. 그럼 꼭 탁월하지 않아도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생길 거예요.
클래식 음악이 낯설지만 궁금하다면,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요?
‘잘 몰라’, ‘어려워’, 이렇게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BGM을 듣는 것처럼 편안하게 들어보세요. 최대한 많이 접하고 나만의 감상을 가지는 것이 포인트예요.
(에디터 W의 경우) 막 중학교를 졸업했을 때쯤 바그너 음악을 즐겨들었어요. 어렵다고 알려진 작곡가지만, 오랜 전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 많아서 몰입이 쉬웠어요. 특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서곡을 들으면서 참 로맨틱하다고 느꼈는데요. 나중에 대학 진학 후 바그너가 여러 음악적 장치를 통해 서곡에서 주인공들의 운명을 예고했다는 것을 배우고 나니 신기했어요. 아마 곡을 듣기 전에 이론적인 배경을 먼저 알았다면 별로 재미가 없었을 거예요.
클래식은 ‘많이 알아야 들린다’고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잘 안다는 건 절대적인 지식의 양이나, 전공 여부 등으로 판단할 수 없거든요. 겁을 먹기보다 내 취향을 찾아간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듣다 보면 들리고, 들리면 관심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궁금한 것들을 찾아보게 될 거예요.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빠르게 변하는 과학기술과 달리 클래식 음악은 18세기부터 지금까지 어느 정도 정형화된 방식으로 향유되고 있는데요. 글릿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또 30대, 40대가 되어서도 저희의 시각과 정체성을 반영하는 매체가 되었으면 해요.
자기만의 길을 찾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클래식이 있는지 묻자, 두 에디터는 생전에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지만 다채로운 음악세계를 구축한 스트라빈스키, 그리고 직장 생활을 병행하면서도 통념을 거스르는 곡을 꾸준히 작곡한 찰스 아이브스의 음악을 꼽았습니다. 기존 클래식 음악계의 고정관념들에 대항해 뚜렷하고 차별화된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글릿다운 선곡이었죠. 클래식을 보는 새로운 눈을 선물하기 위해 오늘도 발로 뛰는 그들의 행보,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WEBSITE : 글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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