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은
노 키즈 존이어야 할까

모두에게 열린 공간
누구에겐 닫힌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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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어린이는 예술가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커서도 예술가로 남을 수 있느냐다.

_파블로 피카소

작고 빨갛던 존재가 컸다. 쪼글쪼글하던 조카는 이제 팔다리 튼튼한 어린이가 되었다. 그런 조카와 피카소의 유명한 격언을 새기며 서울에 있는 한 사립 미술관에 갔다. 그런데 문조차 열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입구에 ‘노 키즈 존(No-Kids Zone)’이라 적힌 안내 문구 때문이었다. 모두에게 개방된 공간임과 동시에 특정 사람들에게만 닫혀 있는 미술관, 이대로 괜찮은 걸까?


왜 ‘노 키즈’일까

stpo 옆에 서있는 남자 아이
이미지 출처: pixabay

미술관이 ‘키즈(Kids)’를 ‘노(No)’한 이유를 살펴보기에 앞서 그 용어와 개념을 짚어보자. 노 키즈 존은 말 그대로 ‘영유아 및 아동들이 출입할 수 없는 공간’을 의미한다. 2014년 하반기부터 유행하듯 퍼진 용어다. 강남, 홍대, 수원, 고양 등 아이가 있는 가정의 거주 비율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하였다.

시작점은 ‘매장에서 발생한 안전사고의 책임은 업주에게 있다’는 법원 판결문이었다. 2011년, 부산의 한 음식점에서 뜨거운 물을 들고 가던 직원과 부딪힌 어린이(10세)가 화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한다. 2013년, 부산지방법원은 이에 대해 종업원 부주의와 업주의 직원 안전 교육 미흡 등을 이유로 ‘4,1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다.

이후에도 서울, 춘천 등 각지에서 비슷한 사고가 일어났지만 매번 업주에게 배상 책임을 묻는 판결이 나왔다. 여기에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내는 소리나 행동으로 불편감을 겪었던 이들까지 목소리를 내 영화관, 공연장, 쇼핑센터, 비행기 등 노 키즈 존은 점차 특정 분야를 넘어 넓게 퍼진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은 전국 500곳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미술관이
노 키즈 존을 선언한 이유

2022년 12월 촬영된 서울 종로구 한 사립 미술관의 정문. 노 키즈 존(No-Kids Zone)이 명시되어 있다.
2022년 12월 촬영된 서울 종로구 한 사립 미술관의 정문. 노 키즈 존(No-Kids Zone)이 명시되어 있다.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노 키즈 존을 설치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주로 이 한 가지를 꼽는다. 아이의 출입을 금지하여 아이를 위험 상황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속뜻은 그렇지 않다. ‘아이를 통제하지 못할 경우라면 그 부모를 제한하겠다’에 가깝다. 미술관이 노 키즈 존을 선언한 상황에 대해 ‘고가의 예술품이 훼손되는 걸 막기 위해 사업주로서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의견과 ‘단순히 나이 만으로 출입 여부를 가르는 게 옳은가’하는 의견이 팽팽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3 마이애미 아트 페어에서 VIP 컬렉터가 벌룬독으로 알려진 ‘제프 쿤스’의 작품을 만졌다 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2023 마이애미 아트 페어에서 VIP 컬렉터가 벌룬독으로 알려진 ‘제프 쿤스’의 작품을 만졌다 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미지 출처: shaperomodern

미술관이 노 키즈 존을 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아이가 작품을 만질 수도 있기에 훼손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대개 아이는 시끄럽기 때문에 다른 관람객의 감상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선택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작품이 깨지거나 찢어진다면 그 누구도 쉽사리 보상해 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예외적인 경우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 아트 페어에서 미술계를 잘 알 법한 VIP 컬렉터가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을 만졌다 훼손한 사건, 어릴 때부터 천재라는 말을 들었던 작가 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예술에 재앙을 주는 어른들

다음 사례들을 보면 작품을 망가뜨리는 존재로 아이만을 꼽을 수 없을 것이다. 무균 상태로 보존되어야 할 작품은 힘을 잃고 마음껏 망쳐졌다. 세계 곳곳에서 그랬다. 목적과 이유도 저마다 달랐다. 미술품은 특정 목적에 이용당하거나 훼손 과정 자체가 새로운 작품이 되기도 했다.

1) 예수? 감자? 원숭이?

예수를 묘사한 프레스코화. (좌) 엘리아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 “Ecce Hommo”, 19세기 / (가운데) 눅눅한 습기 때문에 변형된 모습 / (우) 세실리아 히메네스가 복원을 시도한 그림
예수를 묘사한 프레스코화. (좌) 엘리아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 “Ecce Hommo”, 19세기 / (가운데) 눅눅한 습기 때문에 변형된 모습 / (우) 세실리아 히메네스가 복원을 시도한 그림. 이미지 출처: NY Times

예수가 아니라 감자가 아니냐, 원숭이가 아니냐 등 우스꽝스러운 갑론을박을 부른 그림은 수많은 패러디 짤을 양산하며 한동안 SNS를 달구기도 했다. 때는 2012년 8월에 스페인 사라고수자, 주민이 5,000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 ‘보르하(Borja)’에서 벌어진 일이다. 미세리코르디아 성지 성당에는 19세기 프레스코화가 있었다. 세월이 지나며 그림 곳곳이 벗겨졌는데, 이를 본 80대 아마추어 화가 ‘세실리아 히메네스(Cecilia Giménez)’는 직접 복원에 나선다. 선의로 칠한 붓질은 되려 본래 그림을 망치고 만다. 그림의 제목은 ‘Ecce Homo(이 사람을 보라)’였지만, 복원 실패한 그림이 공개된 직후 ‘Ecce Mono(이 원숭이를 보라)’로 바꿔야 한다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 원작 화가 마르티네즈의 후손들도 큰 충격에 휩싸였다.

각종 패러디를 양산한 히메네스의 버전
각종 패러디를 양산한 히메네스의 버전. 이미지 출처: South Florida Art Conservation

그러나 기사 사진이 공개된 후 실물을 보고 싶어하는 이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한산했던 마을이 연간 5만 명 이상 방문하는 큰 관광지가 됐다. 그림을 망쳤다는 생각에 우울증을 앓으며 칩거했던 히메네스도 사람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자 다시 인터뷰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세상 밖으로 나왔다. 결과만 보면 파급 효과가 커 긍정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복구와 보존을 지향하는 미술품 복원의 첫 번째 원칙을 달성하는 덴 엄연히 실패했다.

2) 페인트 테러받는 모네

스웨덴 국립박물관에서 기후 활동가들이 모네의 “화가의 지베르니 정원”에 페인트를 부었다
스웨덴 국립박물관에서 기후 활동가들이 모네의 “화가의 지베르니 정원”에 페인트를 부었다, 이미지 출처: nbcnews

그런가 하면 2023년 6월에는 스웨덴 국립박물관에서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작품이 붉은 페인트 테러를 당했다. 기후 활동가 20대 1명, 30대 1명의 소행이었으며,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하려는 의도였다고 전했다.

비슷한 사례는 유럽 곳곳에서 2022년부터 이어져왔다. 이들은 단체명도, 활동 지역도 모두 다르지만 던지는 메시지와 타겟은 비슷하다. 모네, 고흐, 고야, 페르메이르 등 사람들이 알 법한 작가들의 작품만을 대상으로 한다. 방법도 같다. 페인트, 액체 형태의 식료품 등을 던지고 자신들의 신체 일부를 작품에 접착제로 붙이는 등이다. 대체로 보호와 보존을 위한 유리막이 씌워져 있어 작품 자체에 대한 피해는 없었으나 유적지로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어 훼손 우려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들이 미술관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언론과 대중에게서 단시간에 가장 많은 관심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관찰해 보면 상업적 목적의 갤러리가 아니라 공익적 목적을 지닌 ‘뮤지엄’에서 주로 행한다는 걸 알 수 있다.

2022년 10월, 영국 네셔널 갤러리에서 기후 단체가 반 고흐의 “해바라기”에 토마토 수프 캔을 뿌렸다.
2022년 10월, 영국 네셔널 갤러리에서 기후 단체가 반 고흐의 “해바라기”에 토마토 수프 캔을 뿌렸다. 이미지 출처: Japan Forward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등 뮤지엄 92곳은 2022년 11월에 소장 작품들은 대체 불가능하며 훼손에도 취약하다는 성명을 낸 바 있다. 기후 활동가들이 얼마나 사람들의 움직임을 이끌었는지는 측정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점은 어른들의 작품 훼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키즈 프렌들리 미술관

그렇다면 미술관을 아이와 적극적으로 함께 즐기는 방법은 없을까? 모든 미술관이 아이 출입을 금하진 않는다. 국내 곳곳에 아이를 환영하는 키즈 프렌들리(Kids-Friendly) 미술관도 있다. 해당 공간은 아이와 함께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관람객인 아이의 눈높이를 이해하고 있다.

1) 클레이아크 미술관

클레이아크 미술관 내부
클레이아크 미술관 내부. 이미지 출처: koreaheritage

클레이아크는 흙을 뜻하는 ‘클레이(Clay)’와 건축을 의미하는 ‘아키텍처(Architecture)’의 합성어로 2006년 김해에서 문을 열었다. 건축, 과학, 예술 등 체험 거리가 많은 분야들을 주로 다룬다. 미술관 외벽 역시 이름에 걸맞게 수 천장의 도자기 타일로 이루어져 있어 건축물 자체가 거대한 예술품이다.

주변 역시 의미가 있다. 100여 개의 도기를 굽는 가마가 곳곳에 있고, 도예촌, 도자테마 거리 등과 더불어 80개 이상의 공방도 있다. 미술관은 상설 전시뿐만 아니라 도자기나 미술을 놀이 형태로 체험할 수 있다. 레고 블록을 도자기로 표현하거나 소가구를 알록달록하게 꾸밀 수도 있다.

2) 부산시립미술관

스티로폴을 활용해 어린이 관람객과 함께 만드는 김홍석 작가의 전시
스티로폴을 활용해 어린이 관람객과 함께 만드는 김홍석 작가의 전시. 이미지 출처: 국제갤러리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유치부,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어린이 관람 예절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아이를 배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이와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프로그램 방식도 앉혀 놓고 단순히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 형태로 참여를 요청한다. 친근한 캐릭터와 함께 미술관을 보호하고 탐험하는 수호자가 되어보자는 테마다.

그런가 하면 어린이 관람객과 작가가 함께 협업해 작품을 완성하는 참여형 전시를 개최하기도 한다. 2023년 12월까지 부산시립미술관 어린이갤러리에서는 ‘김홍석’ 작가의 신작 공개와 함께 가볍고 무른 스티로폼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미술관은 경직되고 고고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접근하기 쉽고 가면 즐거운 곳으로 인식되도록 체득하게끔 돕는 것이다.


한 때 우리 모두는 아이였다

책 읽는 아이 그림
이미지 출처: pixabay

어른보다 아이가 실수할 확률이 높으니 ‘아이’라는 집단 자체를 배제하는 건 폭력적이다. 아이를 보호할 목적이었다면 용어에 아이를 명시하지 않아야 했다. 특정 계층을 대중적인 용어에 표기하는 순간부터 용어가 만들어진 계기와 의도는 금방 잊힌 채 문제적 대상으로서만 인식되니까.

혐오의 허들을 넘는 것이 쉬운 일이 된다면, 그다음은 더 어렵지 않다. 뭐든 처음이 가장 어려울 뿐 두 번째부턴 쉽다. 아이 다음 타겟은 누구인가? 노인? 청년? 중년? 섬세하지 않은 기준으로 배척하고 나면, 먼 미래에는 예술 곁에 그 누구도 다가올 수 없으며 어떤 사람도 예술인을 꿈꾸지 않을 것이다.

아이는 원래 말이 많다. 아이는 모든 시야와 사물들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질문하는 존재다. 아이는 원래 동작이 크다. 항상 뛰어다니며 웃거나 운다. 다 만져보려 할 만큼 호기심도 크다. 이 특성들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튼튼한 어린이로 자랄 수 없다. 튼튼하지 못한 어린이는 자기감정을 존중하거나 표출할 줄 모르는 건강하지 못한 어른이 된다. 우리는 늘 바쁘고 힘들어서 종종 잊는다. 우리 모두 한 때 어린 아이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가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일은 ‘고요하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지켜주는 일’이다. 그곳을 아이가 출입할 수 없는 곳으로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수용할 수 있도록 더 크고 넓게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다. 예술이 어른의 영역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곳에 가면 모두가 해방감을 느끼고 저마다의 감상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곳은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그곳은 미술관이다.

  • 김도균,유보배. (2016). 노키즈존 확산, 어떻게 볼 것인가?. 경기연구원 이슈&진단, (221), 1-25
  • 채상원.(2021). 젠더화된 공간과 여성혐오의 비/가시화: ‘노키즈존’을 사례로, (사)한국대학교육협의회, 1-12
  • BBC, 80대 할머니와 소도시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예술적 재앙’ 사건(2022.8.18)
  • 경향신문, 스웨덴 기후 활동가들, 모네 그림에 ‘손 부착’ 시위(2023.6.15)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아이와 함께 떠난 미술여행(feat. 2022 미술주간)(2022.9.1)
  • 매일경제, 한국에만 500곳 존재…‘노키즈존’ 찬반 논쟁 불 붙었다(202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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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윤지

미술 에디터.
작은 것에서도 의외성을 찾아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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