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진정성
이라는 덫

음악의 의미와
진정성의 역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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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음악의 의미란 무엇인가?’ 같은 거창한 질문을 던져볼까 한다. 물론 이 글이 저 심각한 질문의 무게를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렇지만 진지한 질문일수록 그냥 무심하게 던져보는 거다. “당신이 음악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기준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 가치 있는 음악이란 무엇인가? 음악의 의미는 무엇에 있는가? 이 심오한 물음들의 깊이를 감당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 음악엔 진정성이 없어!

음악회 일러스트
이미지 출처: iStock

음악학자 최유준은 예술 음악과 대중 음악의 허구적 경계에 관해 비판적으로 탐구하면서 ‘진짜’ 음악이라는 관념을 언급한다. 그는 음악, 더 넓게는 예술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기본적으로 ‘진짜’를 추구하는 마음에 있다고 말한다. 영국의 음악학자 니콜라스 쿡 역시 이와 같은 결의 생각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음악에 관한 몇 가지 생각』의 첫 장을 시작하면서 음악의 ‘진정성’을 문제삼는다. 쿡은 음악의 의미란 ‘진정성’에 있다고 믿는, 음악에 관한 우리의 태도가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묻는다.

두 사람의 문제 제기는 앞서 ANTIEGG에 발행한 “오래된 음악은 빛바랜 유물일까”에서 다룬 고음악 분야의 논쟁적 화두 ‘정격성(authenticity)’과 다르지 않다. ‘진짜’와 ‘진정성’의 문제는 ‘authenticity’에 관한 것이다. 이 개념을 가지고 두 사람이 본질적으로 묻는 물음의 방향은 다르다. 그렇지만 두 학자 모두 한결같이 지적하는바, ‘진정성’이라는 관념은 계몽주의 운동을 일으킨 서구의 근대성 프로젝트와 함께 ‘만들어진’ 사고다. 어떤 음악을 들으면서 ‘그 음악엔 진정성이 없어!’라고 말하는 한, 우리는 알게 모르게 200여 년 전의 서유럽식 사고를 품고 있는 것이다.


변기가 예술 작품이 되는 이유

최유준의 ‘진짜’, 곧 ‘진정성’ 논의는 칸트의 미학이론으로 이어진다.a) 18세기 당시 상충하던 합리론과 경험론을 화해시킨 칸트가 제시한 예술의 형식은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다. 합리론이니 경험론이니 하는 것은 다 무엇이고, ‘목적 없는 합목적성’ 같은 이상한 한국말은 또 무엇인가? 합리론과 경험론은 ‘우리는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관한 두 가지 다른 대답이다. 합리론자들은 객관적 이성을 통해, 경험론자들은 주관적 경험을 통해 앎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서로 다른 두 진영의 대답을 화해시켜 예술의 형식으로 제안한 것이 바로 칸트의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다. 이때 ‘목적 없는’은 경험론의 비논리적 경험과, ‘합목적성’은 합리론의 논리적 이성과 연결된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샘”.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샘”. 이미지 출처: Succession Marcel Duchamp/ADAGP, Paris and DACS, London 2023

칸트에 따르면 예술은 ‘목적 없는 합목적성’의 형식으로 존재한다. 이는 뒤샹의 “샘”(Fountain, 1917/1964)이 예술 작품이 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샘”에 사용된 사물(변기)을 노폐물 배출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대할 때 그것은 ‘변기’다. 그러나 ‘변기’라는 사물을 향한 지향성을 제거하는 순간 그것은 작품이 된다. ‘목적’을 이루려는 도구적 관심에서 벗어나 목적 없이 바라본 변기는 비로소 매끈하고 새하얀 표면의 순결성을 발산한다. 그러니 칸트의 입장을 새길 때 진정한 음악이란 음악 외의 다른 목적을 갖지 않는 음악이다. 순수 예술, 자율적 예술,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 같은 19세기의 예술 관념이 근거를 두는 곳이 바로 여기다.


진정성의 역사성

그러나 서양예술음악사에서 순수한 음악만이 진정한 음악이라는 생각이 나타나는 것은 칸트 시대 한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컨대 교회 음악이 그렇다. 중세의 교회 음악은 종교 외 다른 목적을 갖는 것을 철저히 금지했다. 그레고리오 성가를 악기 반주 없이 남자 목소리로 부르는 것은 불순한 여자 목소리와 악기 소리를 내는 것이 교회에서는 엄격한 금기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열지 말라니 열고 싶은 판도라의 마음처럼, 하지 말라니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니던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를 거친 교회 음악의 순수성은 당시 세속적 인기를 끌던 유행가를 예배에서 부를 만큼 불순물로 얼룩진다. 결국 16세기 반(反)종교개혁과 함께 교회 음악에 묻은 세속적 흔적은 다시 한번 모두 씻겨나가고 만다.

교회 음악
이미지 출처: Kaitlin Bove Music

교회 음악만이 아니다. 18세기 이후 음악은 다른 무엇과 결부되지 않은 순수성을 중요한 가치로 삼았다. 이때의 순수성은 사회나 정치 문제 따위에 휘말리지 않고 작곡가의 예술성과 독창성을 얼마나 잘 담아냈는가에 달렸다. 대표적인 예는 베토벤의 음악을 대하는 여론이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베토벤 음악은 당대의 사회, 문화, 역사적 맥락과 관계 없이 음악의 내부 논리로서 가치 있다는 것이 주된 반응이었다. 그의 음악은 다른 무엇과 희석되지 않고 그 자체로 온전한 의미를 갖는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베토벤은 18세기의 비엔나라는 시기적, 지리적 지점에 위치해 누구보다도 그 사회를 처절하게 살아간 음악가다. 음악의 ‘진정성’ 문제의 핵심은 이렇듯 그 음악이 얼마나 순수한가 하는 물음과 다르지 않다.


변하지 않는 것의 섬뜩함

지금도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 시대에 음악의 진정성은 이제 음악이 자본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와 관계 맺는다. 대중에, 상업에, 자본에 영합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는 음악가를 향해 우리는 ‘진정한 음악가’라고 말한다. 대중이 좋아할 만한, 그래서 상업적으로 성공할 만한, 결국에는 자본을 쌓을 만한 음악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불순한 목적을 따를 바에야 돈 좀 못 벌고 인기 좀 없어도 나만의 음악을 관철하겠다는 어느 어설픈 음악가의 표명이 변명이 아닌 이유는, 그가 진정한 음악가라서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그러나 생각해 봐야 한다. 음악이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오래된 것이다. 그 낡은 관념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을 곱씹으면 섬뜩하다.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다. 중세 시대부터 서구인의 삶과 문화 속에 자연스레 새겨 있던 ‘진짜’를 향한 욕망, 그리고 칸트가 ‘목적 없는 합목적성’의 형식으로 완성한 미학이론은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다. 아무런 쓸모 없이도 뚜렷한 목적성을 갖는 것이 예술이라는 칸트의 이론은 19세기를 지나며 여러 철학자, 예술가들이 수행하며 당위가, 나아가 제2의 자연이 되며 지금까지도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니 잠깐 멈추고 생각해 봐야 한다. 역사성을 갖는 ‘진정성’은 그것이 절대 진리가 아니라 역사의 과정 속에서 구성된 산물이라는 것을.


그러고 보면 고음악 분야가 ‘정격성(authenticity)’ 개념을 일찍이 무효화한 일이 새삼스럽다. 가장 오래된 음악을 연주하고, 심지어는 옛 방식을 되살리겠다는, 일견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가장 보수적인 듯 보이는 고음악계가 얼마나 유연하고 진보적인 사고를 갖는지 보여주는 것 같아서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글을 읽은 독자를 힘빠지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 글이 ‘음악에 진정성을 요구하는 태도를 폐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지난 글 “오래된 음악은 빛바랜 유물일까”에서 다룬 것처럼 ‘정격성’ 혹은 ‘진정성’을 요구하는 태도는 필연적으로 어딘가에 ‘진짜’가 있다는 생각을 전제한다. 그리고 ‘진짜’에서 벗어나는 한, 그 음악은 진정성을 가질 수 없다. 게다가 음악의 ‘진정성’이라는 관념은 당위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다. 오히려 특정한 역사적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사고방식이다. 그러니 우리는 물어야 한다. 음악의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음악의 의미란 무엇인가? 진정성의 의미는 불변하는가? 그것은 혹 유연할 수는 없는가?

a) 최유준, 『예술 음악과 대중 음악, 그 허구적 이분법을 넘어서』, 책세상, 2004, p. 134~144.

  • 박수인, “오래된 음악은 빛바랜 유물일까”, ANTIEGG, 2023
  • 최유준, 『예술 음악과 대중 음악, 그 허구적 이분법을 넘어서』, 책세상, 2004
  • 니콜라스 쿡, 『음악에 관한 몇 가지 생각』, 곰, 2016.
  • 에두아르트 한슬리크, 『음악적 아름다움에 대하여』, 이미경 옮김, 책세상,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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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인

음악과 음악활동을 하는
우리에 관해 생각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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