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주 ANTIEGG에 발행한 “음악의 진정성이라는 덫”의 연장선에 있다. 진정성은 예술의 순수성 문제인 것만큼이나 역사성을 갖는 관념이라는 것이 지난 글의 핵심이었다. 음악 예술의 순수성 문제에서는 19세기 음악미학자 한슬릭(Eduard Hanslick, 1825~1904)이 기여한 바가 크다. 그는 음악이 음악의 요소 외에 다른 것과 결코 연결되지 않고 음들의 울림 그 자체, 음과 음의 연결만으로 아름다움을 갖는다는, 이른바 ‘절대음악(absolute music)’을 주장했다. 가사가 있는 노래는 물론, 악기로만 연주하는 음악이더라도 음악 밖에 있는 무언가를 묘사하는 한, 그것은 진정한 음악이 아니다. 이 글은 순수 예술이 진정한 예술이라는, 일견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러한 생각에 다시 한번 제동을 거는 시도다.
음악이 다른 예술과 만날 때
음악은 다른 예술과 만나 창조적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를테면 시에 음악을 붙이면 가곡이 된다. 시를 문학으로 향유하는 것과 음악이 붙은 노래로 듣는 것은 다른 경험이다. 시와 가곡이 같은 내용을 갖는다고 해도 그렇다. 음악은 시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하기도, 혹 의미의 표면을 관통해 심층을 꿰뚫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시에 음악이 붙으면서 시의 원래 의미가 전복되기도 한다. 작곡가 김지현의 음악극 《춘향의 말》(2022)이 그 예다. 김지현의 《춘향의 말》은 시인 서정주의 연작시 『춘향의 말』을 재구성해 음악극으로 만든 것이다. 김지향은 ‘1. 추천사,’ ‘2. 다시 밝은 날에,’ ‘3. 춘향유문’ 세 편으로 구성된 연작시를 창조적으로 재조직한다. 사회적 금기를 뛰어넘은① 이몽룡을 향한 사랑②, 그러나 결국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유서③로 이어지는 원작 시의 내용은 김지현의 음악극에서 ② – ③ – ①의 순서로 배치된다. 현실에 순응하는 여성 춘향은 김지현의 음악극에서 강인한 인물로 재탄생한다. 더불어 시에 감도는 분위기를 소리로 효과적으로 묘사하거나 특정 시어를 여러 번 반복하는 등의 음악적 장치는 다른 예술과 만난 음악이 어떻게 독창성을 획득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시대를 담은 음악
음악은 다른 예술과 결합되지 않을 때에도 음악이 아닌 무언가를 품는다. 이를테면 음악은 그것이 태어난 시대와 접속한다. ‘시대’라는 말은 각 역사적 시기의 사유 방법이나 음악 양식, 소리 풍경(soundscape)까지 폭넓게 포괄한다. 가령 목적지향적 사고관이 주요 흐름을 이루던 근대 이후 서양예술음악이 ‘기-승-전-결’을 품은 소나타 형식을 완벽에 가까운 음악 형식으로 간주한 것이나, 하나의 선율을 여러 성부가 돌림노래처럼 주고 받는 푸가 양식이 바로크 시대 음악을 떠올리도록 하는 것이 그런 예다. 작곡가 김택수의 《국민학교 환상곡》(2018)은 마지막, 곧 그 사회의 소리 풍경이 담긴 경우다. 이 음악에는 지금은 사라진 ‘국민체조’ 노래, 90년대 초등 교실에 한 대 씩 꼭 비치되어 있던 풍금 소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선율 따위가 등장한다. 80~90년대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의 기억에 각인되어 있는 소리들이다. 그 시대의 소리 풍경에서 출발하는 《국민학교 환상곡》은 청중의 시간을 과거로 되돌린다. 음악은 그것이 속한 시대와 환경에서 자유롭기보다 그것과 함께 존재한다.
음악 안에 들어온 일상
음악이 시대의 소리 같은 집단의 기억만 담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음악은 개인의 사소한 일상을 소리로 포착한다. 이 일상성은 음악학자 강지영이 최근 현대음악에 나타나는 주요 경향이라고 지목한 것이기도 하다.a) 음악은 이제 사회∙정치적 문제, 철학적 사유, 존재론적 물음이나 음악 예술의 의미 같은 묵직한 주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요구에서 자유롭다. 가령 음악은 오늘 낮 고객센터 직원과 통화한 일에서 출발할 수 있다. 작곡가 엄시현의 《폰콜》(Phone Call, 2022)이 그렇듯. 《폰콜》은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가 이 부서, 저 부서로 재차 다시 연결되며 문제해결이 지연되는 상황을 담는다. 다른 부서로 재연결될 때마다 반복되는 전화연결음, 고객 문의, 직원 응대 과정이 음악적으로 처리된다. 해결이 지연되면서 답답함을 느끼는 고객의 감정 상태에 따라 음악의 긴장 또한 높아진다. 이렇듯 음악은 일상에서 일어난 사소한 사건을 반사하기도 한다. 음악은 한 시대, 곧 그 사회의 소리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경험과도 분리되기 어렵다.
여기 소개한 작품들은 음악 바깥에 있는 것과 만나 완성된다. 국지적으로나마 순수한 음악이 진짜 음악이라는, 음악 예술에 관한 전통적 가치를 빗나가는 음악들을 살피려는 시도였다. 다시 생각해도 음악이 다른 무엇과 관계 맺지 않은 채 자율적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래야만 음악다운 음악이라는 생각은 부자연스럽고 또 불가능해 보인다. 음악이 정치∙사회∙종교적 의미, 자본, 심지어는 다른 예술과 결부되지 않을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는 입장을 취하는 한 음악의 길은 빈곤해진다. 진정한 음악이 무엇인지, 순수한 음악이 과연 진짜 음악인지, 우리는 왜 음악에 순수를 바라는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a) 강지영, “21세기 한국 현대 음악의 몇 가지 토픽들” 제8회 한양현대음악제 Conference: 21세기를 듣다
- 박수인, “음악의 진정성이라는 덫”, ANTIEGG, 2023
- 강지영, “21세기 한국 현대 음악의 몇 가지 토픽들”, 제8회 한양현대음악제 Conference: 21세기를 듣다, 2022
- 에두아르트 한슬리크, 『음악적 아름다움에 대하여』, 이미경 옮김, 책세상,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