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에버랜드에서 아기 판다 ‘푸바오’의 매니저를 뽑는다는 소식에 1만3620명의 지원자가 몰렸다는 이야기를 접하며 동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전례없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플랫폼과 채널들을 통해 우리 곁의 동물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어여삐 여기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아직도 불법 번식장과 펫샵, 동물원 동물들의 폐사, 철장을 탈출한 동물들에 대한 무자비한 사살 등 비극적인 사건들이 만연해 있습니다. 동물과의 성숙한 공존을 꿈꾸려면 우리 인간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 길잡이가 될 책들을 만드는 출판사 ‘책공장더불어’의 김보경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인터뷰어 조현주
인터뷰이 책공장더불어 대표 김보경
안녕하세요. 간략한 자기 소개 부탁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1인 출판사 ‘책공장더불어’의 대표 김보경입니다. 출판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10년간 잡지 피처팀에서 기획 기사, 인터뷰 기사를 담당하며 기자로 일했습니다. 철야 야근을 밥 먹듯 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쳐서 직장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막연하게 출판계 언저리에 머물러 있겠거니 했는데, 함께 살던 반려견이 늙고 떠나가면서 관련 서적을 찾기 시작했고, 당시에만 해도 국내에는 볼 만한 책이 하나도 없어서 외서를 뒤적이다가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출판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책공장더불어’ 소개 부탁 드립니다. 이 출판 활동을 시작하게 되신 계기와 활동의 주된 목적은 무엇인가요?
앞서 말씀 드렸듯이 사고처럼 출판사를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 기준 반려동물 1세대인 1993년생 개와 살면서 많은 지식과 정보가 필요했지만, 국내에서는 전혀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살면서 문제를 맞닥뜨리면 책에서 도움을 구하는 편이어서 실망감이 더 컸습니다. 그러다 함께 살던 반려견은 늙고, 제 곁을 떠나갔습니다. 인생에서 처음 겪는 힘든 상황임에도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책이 없어서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전적으로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 외서 번역을 시작했고,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 같아 출판사를 열게 되었습니다. 2006년에 첫번째 책을 냈는데, 2023년까지 이 일을 계속 하고 있을 거라고는 그때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첫번째 책은 미국의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리디아 히비(Lydia Hiby)가 20년 동안 수천 마리 동물들과 나눈 이야기 모음집을 번역한 『동물과 이야기하는 여자』입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란 말 그대로 동물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사람으로, 주인이 집을 나가기만 하면 짖어대는 개, 갑자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고양이, 집 나간 개 등과 저자가 대화를 통해 동물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을 번역하기로 한 이유는 단순하고, 또 명료했습니다. 아무 정보 없이 반려동물의 노화와 맞닥뜨린 반려동물 1세대의 인간 가족들, 문제 행동을 보이거나 아프고 나이 들어가는 반려동물들의 돌봄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추지 못한 당시 국내 독자들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이렇게 출판사 창업도, 첫번째 책 선정도 꽤나 단순하게 이루어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일이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반려동물과 살아가다보니 가족에게 버려져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죽어가는 동물들, 개와 산책할 때마다 만나는 동네 길고양이들의 삶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개와 보호소의 개, 동네의 고양이가 뭐가 다르지?’ 무엇이 다른지 저는 답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거대한 생명의 그물망이라는 세계에 포섭되어 버렸고, 소중한 생명의 줄을 하나라도 더 지키기 위해 애써 보자는 마음에 출판사의 문을 닫지 못했습니다.
책공장더불어의 책들 중에서도 ‘동물권리선언 시리즈’라는 총서가 정말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취지와 방식으로 발간되고 있나요?
사실 동물권리선언 시리즈는 독자들의 책 선정에 도움을 주고자 만든 타이틀이라 큰 의미는 없습니다. 책공장의 책들은 모두 동물의 권리에 관한 책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이 총서를 만든 건 우연히 저희 책 한 권을 접하게 된 독자가 시리즈로 엮여 있는 다른 책들도 살펴봐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입니다. 마케팅에 큰 투자를 하기 힘든 소형 출판사로서는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그 책 말고 이런 책도 한 번 읽어보세요’하고 자연스럽게 권할 방법이 필요합니다. 이 시리즈에는 반려동물부터 동물원의 동물들, 농장동물, 그리고 멀게만 느껴지는 해양동물까지 우리가 사실 그들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사는지 이야기하는 책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공장에서 만들고 있는 책에는 반려동물 실용서도 많은데, 저는 그 또한 동물의 권리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돌보지 않으면 마땅히 돌봄을 받아야 하는 아이의 권리를 침해했으니까 아동 학대라고 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인간이 자의로 집에 들인 반려동물도 돌봄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반려인은 함께 사는 동물의 생태와 습성에 맞춰 의사소통을 하고, 먹이고, 건강을 챙기고, 치료하고, 숨을 다할 때까지 돌볼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반려동물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문제행동을 보이는 동물을 교육하고, 적합한 생활 환경을 마련하고, 노화에 대비하고, 결국에는 잘 이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실용서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인간도 인간답게, 동물도 동물답게 공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잡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동물권리선언 시리즈의 가장 최근 책인 『동물노동』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소개한다면 어떤 책인가요?
『동물노동』(2023)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종간 정의’를 고심할 때 동물을 노동자로 인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책입니다. 이 물음은 답하는 것부터 쉽지가 않습니다. 동물을 노동자로 인식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동물을 이용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괴로운 사실을 인정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장애인 가정에 분양되기 위해 훈련을 받는 시각장애인 안내견, 땅 속의 송로버섯을 찾아내기 위해 투입되는 돼지. 이러한 동물의 일과 기능을 ‘노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리고 동물을 노동자로 인정하면 그들의 법적, 정치적 지위가 향상될까요? 이 책에는 그러한 쟁점에 답하는 샬럿 E 블래트너, 오마르 바추르, 알라스데어 코크런 등 법학, 철학, 노동학, 환경학 분야의 학자 12명의 생각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동안 인간과 동물 사이의 종간 정의를 논할 때 ‘노동’이라는 주제가 논외로 간주되어 온 것은 감금, 사육, 도살, 동물 실험 등 인간이 멋대로 동물의 목숨과 권리를 앗아가는 행위까지도 노동으로 정당화될 우려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약자 착취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의 노동은 분명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착취와 소외를 가져옵니다. 하지만 동물노동을 동물을 억압하는 족쇄로만 봐야 할까요? 동물노동을 노동의 형태로 인정하고, 동물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동물이 노동을 통해 복지를 누리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더 큰 인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지점에서 『동물노동』의 저자들은 동물들을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닌,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목소리를 가진 주체로 여기며 ‘도구화된 동물과 착취하는 인간’이라는 관계를 ‘성원권(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권리)을 공유하고 협력하는 관계’로 전환하기 위한 도발적인 논의를 펼칩니다. 동물에게 안전하고 좋은 노동이란 무엇인가, 사육을 노동이라 볼 수 있는가, 동물에게 ‘퇴근 이후의 삶’이란 무엇인가 등 흥미로운 질문들이 가득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앞으로의 인간과 동물의 공존은 종간 차별 없이 더 정의롭고, 더 윤리적이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신간을 준비 중이시라고 들었는데, 어떤 내용의 기획인지 살짝 스포일러 가능하신가요?
1인 출판사이다보니 보통 1년에 몇 권밖에 출간을 못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밀린 프로젝트들이 있어서 책 두 권이 한꺼번에 나올 것 같습니다. 한 권은 동물복지 선진국이라는 영국에서 2차세계대전 중이던 1939년에 개와 고양이 40만 마리가 대규모로 안락사 된 사건에 관한 책입니다. 정부와 동물 단체 모두가 반대했는데도 왜 안락사가 이루어졌는지 그 내막을 알아보는 역사서입니다.
다른 한 권은 그래픽노블입니다. 독일의 한 일러스트레이터가 인간과 교류하며 살았던 동물들이 죽음 너머의 세계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려냈습니다. 22편의 에피소드 중 두 편은 한국판에만 실리게 될 예정입니다. 사육곰과 마당개에 관한 에피소드들입니다.
많은 동물들은 사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들의 고통 위에서 눈먼 호사를 누리는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고찰할 용기를 낸다면 모두가 정의로운 공생을 누릴 수 있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다가오지 않을까요? 그때까지 동물들의 든든한 동지가 되고 싶은 ‘책공장더불어’에 관심과 힘을 보태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