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것 그대로의 음악
펑크 밴드 오토보케 비버

원초적으로 쏘는 분노
일본 펑크 밴드 오토보케 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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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다녀 왔습니다. 무섭게 내리쬐는 볕 때문에 서 있는 것도 고역이였지만 평소 궁금해하던 밴드들을 보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녔습니다. 일본 교토 출신의 4인조 펑크 밴드 오토보케 비버(Otoboke Beaver)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둘째 날 서브 스테이지. 4명의 여성 멤버들은 각기 다른 네온 컬러의 원피스를 입고, 사운드 체크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렁찬 인사와 함께 첫 번째 곡이 시작됐을 때, 빠르고 변칙적인 기타, 무대를 정신 없이 휩쓸고 다니는 보컬과 충격적인 사운드에 어안이 벙벙했죠. 그날 관람한 어떤 밴드보다도 강렬한 무대였습니다.

난장판 속, ‘하고 싶은 말’을 내뱉는 여성 4인조 밴드. 오토보케 비버(Otobokea Beaver)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곡 몇 개도 덧붙입니다. 귀가 아플 수 있으니, 볼륨은 조금 줄여주세요.


브레이크는 옵션에 없습니다

앞만 보고 달리는 펑크 밴드

동영상 출처: 오토보케 비버 공식 유튜브

오토보케 비버는 2009년 교토에서 결성됐습니다. 범상치 않은 밴드명은 오사카에 있는 러브호텔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단순히 발음이 재밌다는 이유에서요. 어떤 음악을 할지 예상되지 않는, 오묘한 밴드명처럼 그들의 노래도 어디로 튈지 예측이 안 됩니다.

2018년 3월, 영국 싱글 차트 38위에 오른 ‘Love is Short’는 2분 30초가량의 짧은 노래입니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리프 위에서 랩처럼 쏟아내는 가사, 짧은 러닝타임. 영국 인디신을 달궜던 초창기 악틱 몽키즈(Artic Monkeys)가 연상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노래가 영국 차트에 진입한 것도 이젠 맥이 끊긴 2000년대 초반 개러지 펑크(Garage Funk)와의 유사성 때문일 것입니다.

기승전결 없이 무작정 내달리는 사운드는 정신이 없다고 느껴질 만큼 빠르고 직선적입니다. 가사는 더욱 단순한데요. 짤막한 노랫말들도 의미를 도출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곡의 전개도 휙휙 바뀌어서 같은 곡을 듣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하죠.

길길이 날뛰는 야생마처럼, 오토보케 비버의 노래는 앞만 보고 달려갑니다. 속도를 늦추는 건 옵션에 없지요. 이러한 원초적인 사운드 덕분에 오토보케 비버는 록의 중심지인 영미권으로부터 수많은 관심을 받습니다.


장난기 가득하게

어떤 감정인지만 알 수 있다면

동영상 출처: KEXP 공식 유튜브

오토보케 비버의 공격적인 음악성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것은 노랫말입니다. 정확한 문법보다는 곡의 리듬과 표현하고자 하는 분위기에 맞도록 작사를 한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그들의 노래는 별 뜻이 없거나, 장난스러운 느낌이 가득합니다.

‘Yakitori’는 서로 상관없는 단어들이 나열됩니다. 야키토리(YAKITORI), 우체통(post box)이 반복되어 나오다가 다짜고짜 ‘때려 부수자(Destory)’라고 샤우팅합니다. 이 노래는 ‘오토보케 비버 맴버들은 외국인들과 논다’라는 소문에 대한 반발심에 만들었다고 합니다.

노래에 그런 감정을 가사로 담기보다는, 곡의 분위기 안에서 녹아들 수 있는 기능적인 단어들을 골라 쓰는 것이지요. 야키토리는 스시처럼 외국인들에게 친숙한 일본 음식이니까 사용한 것이고, 밴드에 대한 왜곡된 시선에 대한 날카로운 반응은 곡에 뉘앙스에서 잔뜩 풍기니, 굳이 의미를 담을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보컬의 성난 목소리만 들어도 그 감정이 느껴지실 겁니다.


우리를 규정하지마

‘하기 싫은 것’에 저항하는 것

동영상 출처: 오토보케 비버 공식 유튜브

흔히 펑크를 ‘저항의 음악’이라고 합니다. 사회 저변에 짙게 깔린 이데올로기에 반발하는, 거칠고 전위적인 음인데요, 이런 태도는 펑크 장르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분노’는 펑크 음악을 움직이는 큰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토보케 비버의 반복되는 간결한 가사도 분노와 저항에서 기인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출신이 일본이고, 전원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관객들 입장에선 분노의 대상이 또렷이 맺힐 수밖에 없습니다. 밴드의 의도와 무관하게 외신들이 ‘억압된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밴드’라고 소개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 부분입니다.

‘I won’t dish out salads’의 가사는 단순합니다. ‘샐러드를 그릇에 나눠 담지 마!’가 전부입니다. 제3의 화자가 물어보듯이 ‘샐러드를 나눠 담아야 할까요?’라고 물어보면 단호히 ‘나눠 담지 마!’라고 외치죠. 직장 남자 상사에게 여성이 먼저 음식을 덜어주는, 사회적인 관념에 저항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동영상 출처: 오토보케 비버 공식 유튜브

‘Dirty Old Fart is Waiting For My Reaction’도 순종적인 여성상을 바라는 사회에 대해 격렬히 저항하고 있습니다. 나이 많은 남성을 ‘Dirty old fart’라고 표현하면서 말이죠.

사실 밴드는 자신들이 ‘페미니스트라고 불리는 것이 유감’이라고 말해왔습니다. 그냥 하기 싫은 것에 관해 노래를 했을 뿐인데, 페미니스트가 자신들을 쉽게 규정짓는 편리한 단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관객들이 자신들을 받아들이는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오토보케 비버는 원초적인 밴드 사운드, 관객을 휘어잡는 파괴적인 곡의 전개, 탄탄한 라이브 실력 등 록밴드로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요소들을 모두 가진 밴드입니다. 록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필자가 펜타포트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두커니 서서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밴드에 대해 조사할수록, 분석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가사처럼요.

이미지 출처: PRM,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로 첫 내한을 한 오토보케 비버

영미권에서 주목받은 밴드인 만큼, 펜타포트에도 동양권이 아닌 외국인 관람객들이 많았습니다. 같은 문화권에 있는 한 명의 동양인으로서, 필자는 그녀들이 얼마나 많은 ‘관념’과 맞서 싸웠을지를 생각했습니다. 동양인 여자, 짧은 원피스, 펑크 밴드… 타 문화권에서 납작한 시선을 갖기 쉬운 요소들을 지녔으니까요.

그래서 그녀들이 더욱 멋져 보였습니다. 짧은 치마는 아랑곳 않고 방방 뛰어다니고,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어 관중들에게 욕을 내뱉는 모습에선 통쾌하기도 했습니다. 본문에 소개한 내용은 다 잊으셔도 됩니다. 이것만 기억해 주세요. 오토보케 비버는 라이브로 만나보셔야 합니다.


INSTAGRAM : @otobokebe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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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현

새삼스러운 발견과 무해한 유쾌함을 좋아하는 사람.
보고, 듣고, 느낀 예술을 글로 녹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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