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음역대 사운드를 구사하며 드럼과 함께 그루브를 만드는 베이스 기타는 밴드에선 어딜가나 빼놓을 수 없는 악기입니다. 하지만 밴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농담 섞인 각종 조롱을 받는 신세기도 합니다. 기타와 보컬, 드럼의 화려한 사운드에 묻힌 베이스의 저음을 듣고는 ‘지금 치고 있는 거야?’, ‘사실 안 쳐도 모를걸.’이라는 반응도 있는데요. 특히 베이시스트를 가장 화나게 만드는 건 그루브가 부족하다거나, 연주가 단조롭다는 말보다, “왜 이 기타는 줄이 네 줄밖에 없어?”라고 묻는 것인데요. 이처럼 베이스 기타는 6줄이 아닌 4줄이라는 이유로 ‘메가 우쿨렐레’라는 별명도 얻습니다.
그러나 장담컨대 베이스 사운드에 한번 빠진 사람들은 그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드럼의 파워풀한 리듬 위로 기타와 건반, 보컬 등이 켜켜이 쌓인 사운드 사이에서 은은한 평양냉면 같은 베이스 소리를 느낄 수 있다면 밴드 사운드의 진가를 알게 될 테니까요. 지금부터 베이스가 밴드에서 짊어진 역할을 알아보고, 베이스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요즘 핫한 밴드들의 음악에서 그 매력을 느껴보려 합니다. 베이스에 집중하는 순간, 고막이 트이고 가슴이 뛰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밴드의 인터페이스

베이스는 밴드에서 인터페이스 역할을 수행합니다. 사운드와 리듬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이죠. 드럼이 튼튼한 하체를, 보컬이 머리를, 기타와 신시사이저를 비롯한 다양한 멜로디 악기들이 양팔을 담당한다면, 베이스는 이 모든 걸 이어주는 몸통의 역할을 담당합니다. 도드라지는 음과 음 사이 벌어진 틈에 시멘트를 발라 넣어 음악을 더욱 견고하고 입체적으로 만든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밴드에 베이스가 없으면 단순히 음악이 ‘가볍고 허전’한 게 아니라, 마치 중력을 잃은 듯 여러 사운드가 제각각 부유하게 됩니다.
그루브를 만들거나 여러 사운드의 중심을 잡는 등 베이스는 눈에 띄지 않아도 묵묵히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밴드 전면에 나서는 다른 포지션에 비해 베이스는 존재감이 조금 덜한 경우가 많죠. 그래서 요즘 국내 밴드 씬에서 사랑받는 팀 중 유독 베이스 소리가 도드라져 귓가에 맴도는 밴드를 소개해 보려 합니다. 이를 계기로 베이스 사운드의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다면, 여러분은 앞으로 베이스만 찾아 듣는 은밀한 취향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같은 꿈을 꾸는 듯한 호흡
봉제인간

친구들끼리 우연히 합주 연습을 하다 탄생한 이 밴드는 ‘봉제인간’이라는 이름마저 첫 공연을 오르기 직전에 급히 지었다고 하는데요. 2022년에 결성된 신예 밴드지만 어쩐지 농익은 연주와 환상의 호흡이 수상하리만큼 훌륭합니다. 알고 보니 세 사람은 각각 유명 밴드에 소속되어 있었는데요. 밴드 ‘파라솔’과 ‘술탄오브더디스코’의 지윤해(보컬과 베이스), ‘혁오’의 임현제(기타), ‘장기하와 얼굴들’의 전일준(드럼)이 뭉친 봉제인간은 등장과 함께 여러 록 페스티벌에서 관객을 압도했습니다. 그들은 각 멤버들의 출신 밴드의 색깔을 잊을 만큼 고유하고 색다른 사운드를 선보였죠.

‘기타, 베이스, 드럼’이라는 밴드의 가장 기본적인 악기 구성만으로도 충분히 꽉 찬 사운드를 만드는 봉제인간의 중심에는 보컬 겸 베이시스트 지윤해가 있습니다. 듣는 이를 꿈으로 초대하는 듯 나른한 목소리와 대비되는 리드미컬하고 탄탄한 베이스 사운드가 봉제인간의 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이죠. 지윤해만의 베이스는 때론 기타처럼 화려하게, 때론 드럼처럼 묵직하게 음악을 지탱해 줍니다. 영상 속 지윤해의 베이스가 곡의 템포와 분위기를 차려 놓으면 드럼과 기타가 차례로 올라타듯, 그렇게 봉제인간만의 사운드가 구축되죠. 다양한 이펙터로 디자인된 색다른 베이스 소리가 매력적인 봉제인간의 다른 명곡들도 꼭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뜨거운 나라에서 건너온 그루브
Cadejo

재즈, 블루스, 소울 등의 흑인음악 장르를 기반으로 즉흥적인 연주를 선보이는 까데호(Cadejo)는 2018년에 결성한 3인조 밴드입니다. ‘세컨세션’의 이태훈(기타)과 ‘윈디시티’의 김재호(베이스), 그리고 ‘플링’의 김다빈(드럼)이 한자리에 모여 자유분방한 잼(Jam) 연주를 시작하면 까데호만의 그루브가 절로 흘러나오죠. 신나는 댄스곡이 아님에도 까데호의 음악을 듣다 보면 고개에 이어 몸까지 흔들거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은 일정하게 박자를 세어 주는 메트로놈 없이 자유분방한 연주를 선보입니다. 멤버들은 그 순간, 그 상황에 어울리는 사운드와 템포로, 마치 한 몸이 된 듯 함께 음악을 만들어 나가죠.

흑인음악 특유의 그루브를 만드는 건 세 사람의 음악적 감각과 흥이 더 해진 결과지만, 유독 김재호의 베이스가 귓가에 닿을 때마다 고개가 움찔거립니다. 그의 쫀득한 베이스 사운드에서는 자유분방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데요. 한국의 대표 흑인음악 밴드 ‘윈디시티’ 출신의 김재호는 소울, 재즈, 레게, 블루스 등 빠르지 않아도 충분히 신나는 리듬을 이어가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억지로 인위적인 그루브를 만들지 않고, 그저 멤버들의 사운드가 잘 들리도록 여백을 만드는 그의 베이스는 까데호만의 흥겨운 그루브를 완성시키는 듯합니다.
대어를 낚은 듯한 기분
jisokuryClub

멤버들이 캠핑과 낚시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스스로 ‘캠핑락’, ‘피싱팝’이라는 장르를 만들어 선두 주자를 꿰찬 밴드가 있습니다. 바로 ‘2022년 헬로루키’ 대상을 수상한 밴드 지소쿠리클럽(jisokuryClub)입니다.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 도심에서 벗어나 캠핑장에, 낚시터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하는데요. 특유의 나른하고 편안한 사운드가 휴양지의 자연 풍경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지소쿠리클럽은 솔로 활동을 하던 보컬 지소쿠리가 대학 동기와 같은 학원 출신의 동료를 찾아 나서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홍비(베이스), 신제로(기타), 빈(건반), 문산수(드럼)가 함께 밴드를 이루며 지금의 사운드를 만들어냈죠.

지소쿠리클럽이 조성하는 편안한 분위기 속, 홍비의 베이스 기타는 마치 강물을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펄떡이는 생명력을 드러내기도, 튼튼한 낚시대처럼 사운드를 단단히 지탱해 주기도 하는데요. 그의 베이스라인은 나른하면서도 점차 흥이 오르는 지소쿠리클럽의 매력적인 음악 세계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 줍니다. 두 대의 기타와 보컬, 신시사이저와 드럼 사운드 사이에서 또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베이스의 매력을 느껴보면서, ‘라이징 록스타’ 지소쿠리클럽의 음악을 감상해 보세요.
영상에서 네 줄 기타를 다루는 베이시스트를 찾았지만 아직까지 베이스 소리를 구분하지 못하겠다면, 두 가지 방법이 남았습니다. 스테레오 스피커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좌우로 치우치거나 퍼지지 않고, 정 가운데에서 들리는 낮고 무거운 소리를 찾아 집중해 보는 것, 혹은 직접 라이브 공연에 찾아가서 발바닥과 심장을 크게 울리는 소리를 느끼는 것이죠.
필자가 베이스의 매력에 홀린 순간 역시, 문 닫힌 지하 라이브클럽에서 유일하게 새어 나오는 베이스의 ‘음압’ 때문이었습니다. 귀보다 몸을 울리는, 그렇게 몸이 반응하도록 마법을 부리는 베이스의 참 매력에 여러분도 빠져보시길 권해봅니다.